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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누구인가-헬레니즘(그리스, 로마)의 맥락에서
/ 박형진(횃불트리니티)
* 이 글의 일부는 한국선교연구원(KRIM)에서 발행하는 저널 「현대선교」에 게재된 필자의 논문에서 일부 발췌되었음을 밝힌다. “예수는 누구인가(Who is Jesus)?: 지구촌기독교(World Christianity) 역사의 시각에서,” 「현대선교」 14 (2012): 67-90.
지난 호에 살펴본 유대적 맥락에 이어 이번에는 헬레니즘, 즉 고대 그리스와 로마(Greco-Roman)의 맥락에서 본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글을 이어나가겠다. 성서에서 그리스인과 로마인에 대한 언급은 유대인, 헬라인, 야만인, 자유인, 종이라는 표현들(골 3:11) 속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유대인이 스스로를 선민으로 여기고 이방인과 구별한 것처럼, 헬라인(그리스인)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긍심을 바탕으로 자신들을 문명인으로, 다른 사람들을 야인(야만인)으로 구분하여 불렀다. 마찬가지로 로마인 또한 자신들을 자유인으로, 남들은 종이라고 불렀다. 전쟁을 통해서 복속시킨 자들을 종과 노예로 부린 것이다.
유대적 맥락에서 예수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이 나왔다. 복음 전파의 국면에서 볼 때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의 초토화는 복음이 유대 세계에서 이방 세계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되었다. 위기가 기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이 이방 세계로 전파되면서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으로 여겼던 헬라인과 로마인들은 예수를 어떻게 인식하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을까?
그리스와 로마
지중해에 나란히 이웃하고 있으며 인류 문명 가운데 탁월한 두 고대 문명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와 로마는 여러 면에서 공통된 부분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상이하고도 대조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그리스와 로마가 융화되며 만들어낸 소위 헬레니즘 문화권은 서구 문명의 모체가 되었다. 그리스 문명은 신구약 중간기에 거대한 제국과 문화권을 형성하였으며, 제정 로마의 첫 황제 아구스도(눅 2:1)와 더불어 등장한 로마제국은 예수의 탄생과 맞물려 이후 전개될 기독교의 향방과 특징에도 매우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리스(헬라1)와 로마의 혼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보다 헬라에는 철학적 전통이 있었다. ‘철학’(philosophy)이라는 말을 어원적으로 보면, 헬라어로 ‘사랑’을 뜻하는 ‘필로스’(philos)와 ‘지혜’를 의미하는 ‘소피아’(sophia)가 합쳐진 복합어이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말은 ‘지혜를 사랑함’이라고 풀 수 있다. 성서에서도 말하기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지만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고전 1:22)라고 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아덴(Athens) 사람의 특성을 묘사한 것에서 볼 수 있다.(행 17:16-21 참조) 철학적 전통과 더불어 강력한 헬라 제국을 이룬 알렉산더는 헬라 문명의 전도사를 자처하여 가는 곳마다 헬레니즘을 이식하였으며, 이로 인해 헬라어는 지중해권의 세계 공용어(lingua franca)가 되었다.
반면에 로마의 천부적 재능은 바로 군대에 있었다. 로마의 군대는 다니엘서에 예언된 바와 같이 부서뜨리는 힘에 있었고(단 7:7), 로마는 군사력을 통해 강력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토목, 건축, 수로 개설 등 엔지니어링 기술에서도 남달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대하고도 강력한 제국을 이룩한 로마가 통치 수단으로 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헬라의 혼’이 철학에 있다면, 이에 필적할 만한 ‘로마의 혼’은 바로 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로마의 법이 추구하는 공의와 질서는 로마의 핵심 가치였고, 오늘날 서구의 모든 법의 기초가 되었다.
헬레니즘의 중심 질문: 진리와 구원
헬레니즘을 구성하는 DNA의 두 축인 헬라와 로마의 특징을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다. 헬라의 철학자들은 우주와 자연의 본질을 물었다. 그리고 지혜를 찾아 진리를 규명하려고 하였다. 사람의 생각은 ‘말’(word)로 표현된다. 이 말을 의미하는 헬라어가 바로 ‘로고스’(logos)이다. 로고스는 세계 종교가 태동하고 철학 사상이 등장한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초기 철학 사상인 자연철학에서부터 등장하는 개념이다. 로고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묘사한 것처럼 인간에게 있는 3대 요소인 이성(logos), 감성(pathos), 품성(ethos) 중 하나로 단순히 지적인 이성을 의미하는 용어였지만, 중기 플라톤주의(Middle Platonism)를 거치면서 예수 당시에는 우주적이며 초월적 진리의 개념일 뿐 아니라 각 사람에게도 발견될 수 있는 진리의 씨앗(logos spermatikos)이라는 의미로 발전하였고, 3세기 이후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에 이르러 그 의미가 더욱 종교적으로 정착되었다.
특히 플라톤 철학은 불완전하고 변화하며 유한한 이 세상의 범주 바깥에 완전하고 변하지 않고 영원한 이데아의 세계가 있음을 믿고 동경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감옥에 갇힌 상태에 있기에, 죽음을 통해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곧 구원의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육체를 고행이나 금욕으로 다스리는 것이 영혼의 정화를 위해서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헬라적 맥락에서 기독교의 핵심 진리 가운데 하나인 성육신(Incarnation)은 헬라인에게 지극히 신비롭고도 매력적인 복음이었다. 초대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라는 말씀의 의미를 “하나님(God)이 사람이 되심은 사람으로 하나님(gods) 되게 하려 함”에 있다고 담대히 말하였다. 물론 이 말은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비록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의 신적 성품에 참여함으로써(벧후 1:4) 종국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이다.
성육신의 신비는 영원의 세계를 갈구하는 플라톤적 세계관에서 분명 희소식이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물질과 육체를 악하고 저속하게 여기는 헬라의 철학적 세계관에서는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신이 냄새나고 추악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온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구원 개념은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타나시우스는 성육신 사건이 신적 영역으로 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은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구원을 신적 과정으로 나아가는 신화(theosis 혹은 deification)로 이해하였다. 이것은 신비로운 과정이었고 체화된 성만찬은 이러한 신화 과정에 참여하는 과정으로도 이해되었다. 또한 신화의 과정은 교육적 과정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는 우리의 구원을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반면, 로마의 맥락에서는 구원을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헬라적 세계관에 철학적, 형이상학적 색채가 강했다면, 공의와 질서를 강조한 로마적 세계관에는 법적, 심판적 개념에서의 구원 이해가 그만큼 강했다. 한마디로 구원은 곧 죄사함 받음을 의미한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고, 죄인은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 예수가 이 땅에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시고 죄사함을 이루시기 위해서이다. 예수는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죗값(ransom)을 치르고 죽으신 구속자(redeemer)이시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원의 이해에 있어서 죄의 고백과 죄사함의 선포는 매우 중요한 교회의 기능이다. 로마가톨릭에서 볼 수 있는 고해성사는 바로 이러한 로마적 특성에서 발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헬라적 맥락에서의 구원관을 ‘신화’(神化, deification)라고 한다면, 로마적 맥락에서의 구원관은 ‘의화’(義化, justification, 혹은 칭의)라 할 수 있다.
예수는 누구인가: 로고스, 만유의 대주재, 최후의 심판자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선포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구절에서 ‘말씀’(The Word)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로고스’이다. 분명 사도요한은 헬라인을 염두에 두고 로고스를 사용했을 것이다. 유대인을 겨냥하여 쓰인 마태복음 1장과는 사뭇 다른 시작이다.
예수는 적어도 헬라인에게는 유대인이 기다려왔던 메시아적 인물이 아니었다. 이는 사도행전의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이 동료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고 전도했던 것(행 5:42)과는 달리, 사도행전 11장 20절을 보면 중요한 전환점이 발생한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일어난 핍박으로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헬라인에게도 증거하기를 “주 예수”를 전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요, 철저한 헬라적 교육과 사고를 가진 자로 사건의 나열과 묘사, 단어의 선택에서도 무척 신중을 기한 자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록에서 보듯이 예수에 관한 중요한 핵심어인 ‘그리스도’라는 말이 빠져 있다. 이는 유대인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그리스도(혹은 메시아)라는 의미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헬라인에게는 구약의 ‘약속된 자’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익숙했던 ‘메시아’라는 고백은 헬라적 맥락에서 ‘주’로 번역된 헬라어 ‘퀴리오스’(kyrios)로 바뀌었다.(‘퀴리오스’는 ‘주인, 상사, 신적 존재’라는 의미로 복합적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이러한 전환 과정을 보면 예수는 역사적 맥락의 메시아에서 철학적 맥락의 로고스로 의미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철학적 사고를 가진 헬라인들에게 ‘로고스’는 무척 중요하고 또 익숙한 개념이었다. 이는 그들이 궁극적으로 찾았던 ‘진리’의 개념을 함의하고 있다. 또한 영원한 속성을 지닌 것으로 이해하였기에 영원 전부터 존재하였던 말씀에 대한 언급은 분명 헬라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터이고, 요한은 고도의 선교적 포석으로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전개되는 헬라인들의 복음에 대한 이해는 2세기의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을 비롯하여 3세기경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오리겐(Origen) 등과 같은 교부들에 의해 점차 헬라적 특성과 철학적 개념에서 말하는 로고스로 그 의미가 융화, 발전해 나가는 양상을 띠게 된다. 기독교가 유대 경계를 벗어나 헬라 문화권까지 확산되어 감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은 ‘예수 로고스’라는 고백, 즉 ‘예수는 진리’라는 고백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예수에 대한 이해와 신앙고백이 한 민족의 구원자로서의 메시아/그리스도에서 궁극적으로 만물의 진리이시며 태초부터 존재하였던 하나님 자신으로 심화되고 확장되어 가는 복음의 여정이다.
또한 헬라와 로마의 상이한 특징은 예수에 대한 인식에 있어 각각 정교회와 가톨릭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조적인 이미지로도 설명될 수 있다. 헬라적 특성을 반영하는 정교회(그리스, 희랍, 혹은 동방정교회) 내부에는 예수의 이미지가 정교회의 둥근 돔의 하늘색 배경에 부활한 만유의 통치자(Pantocrator)로 나타난다. 반면 로마적 특성을 반영하는 가톨릭교회에서는 십자가상에 달려 고통 가운데 죄를 담당하고 계신 십자고상(crucifix)으로 나타난다.(때로 예수는 옹호자인 성모와는 대조적으로 심판자로 강조되기도 한다.)
같은 복음이지만 정교회가 예수의 부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가톨릭은 예수의 죽음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대조적인 면을 볼 수 있다. 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신화를 강조하는 헬라의 철학적이고 신비적인 면과 의화를 강조하는 로마의 법적이고 징벌적인 면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헬레니즘에서 본 예수는 로고스, 대주재, 심판자의 이미지로 부각되어 있다.
헬라와 로마의 공헌과 유산
헬라와 로마는 각각 복음의 준비 및 전파 과정에서 어떤 요소가 작용하여 어떤 공헌을 했는가? 첫째, 헬라의 철학적 세계관으로 인한 공헌이다. 유대인들에게 구약의 전통과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와 같은 이름이 있었다면, 헬라인들에겐 철학이라는 전통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이들이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헬라적 특징을 지닌 대표적 그리스도인을 뽑으라면 아마도 초대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인 순교자 저스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저스틴에게 기독교는 철학의 진정한 완성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독교는 ‘참된 철학’(true philosophy)이었다. 특히 플라톤 철학은 영원한 진리에 대한 목마름과 구도적 정신을 가지고 이를 찾았기에 종교적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기독교와 접목할 수 있었고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헬라와 로마의 언어와 문자로 인한 공헌이다. 언급했듯, 헬라어는 당시 세계의 공용어였다. 신약성서는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며,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서는 헬라어로 번역(70인역)되었다. 로마 또한 언어적 면에서 기여가 있었다. 로마의 글자, 즉 라틴어 알파벳은 거의 모든 서구의 글자가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것은 이들 지역이 로마제국 영토의 일부였고 로마 문명권으로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문자 체계가 없었던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로마 글자를 차용하여 표기하였다. 이러한 문자 차용은 대개 선교사들에 의해 선교 사역의 필요 때문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는 교회에서 중요하게 사용하는 언어로 존속되어 이들 모든 나라의 공통적인 예배와 신학의 언어로 남게 되었다.
셋째, 로마의 길과 로마의 평화이다. 유명한 속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는 말은 지중해 세계에서 거의 사실이었다. 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로마가 닦아놓은 길의 총 길이는 지구를 두 바퀴 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공법도 특이하여 오늘날의 고속도로와 같이 길을 닦아놓았고 어지간하면 직선으로 내었고 이정표까지 갖추었다. 로마인들이 이렇게 엄청난 길을 구축한 것은 바로 군사정벌을 위함이었다. 게다가 로마의 강력한 치안은 사람들이 육로 혹은 해로로 여행할 때 도적이나 해적으로부터 받는 위협에서 어느 정도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것이 ‘로마의 평화’(Pax Romana)이다. 로마의 거미줄 같은 도로망을 통해 지중해권의 복음 전파는 불과 수세기 안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제 헬라와 로마가 남긴 독특한 신앙의 유산이 있다면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첫째, 두 주요한 교회의 전통을 낳았다. 헬라와 로마의 상이한 특징들은 결국 헬라 전통과 로마 전통을 대표하는 동방의 그리스정교회와 서방의 로마가톨릭교회로 나타나게 된다. 무엇보다 구별되는 점은 교회의 통치체제이다. 헬라와 로마 둘 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지만 상이하게도 헬라가 도시국가 위주의 독립적인 연합체였던 반면, 로마는 제정로마 체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통합적이고 위계적이었다. 이러한 통치체제의 상이성은 각각 발현된 그리스정교회와 로마가톨릭의 체제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교회가 여러 대주교의 연합체적 모습으로 교회정치체계를 이룬다면, 가톨릭교회는 이를 대표하는 교황체계로 대변된다. 오늘날 서구권 법체계의 근간이 된 로마법의 전통처럼, 교회법 체계도 법질서를 추구한 로마적 특성을 안고 발전해 온 로마가톨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제국의 행정 관할에서 비롯된 소위 교구(diocese)는 로마의 행정체계가 교회 안에도 그대로 흡수되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두 교회의 전통은 언어에 대한 태도와 선교 정책 측면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정교회는 자국어(vernacular language) 중심의 선교를 지향한 반면, 가톨릭교회는 라틴어를 공용어(vehicular language)로 강요하는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둘째, 상이한 신학의 산출이다. 헬라와 로마의 특성적인 차이는 그 언어적 차이뿐 아니라 예배와 신학과 영성에서까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동서 교회를 가른 필리오케(Filioque, ‘아들로부터’라는 뜻) 논쟁을 예로 든다면, “아들로부터”라는 문구를 삽입한 서방 로마의 전통은 결국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 신학을 만들어 내어 그 신학적 범주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한정지으려 한 반면, 동방 헬라의 전통은 신 중심적(Theocentric) 신학을 만들어 보다 큰 범주의 다양하고 신비적이며 창의적인 영성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헬라와 로마, 동서 교회의 신학적 특징을 각각 살펴보면, 아마도 교부들의 저서들을 여과 없이 그대로 묶어 편찬한 『필로칼리아』(Philokalia)를 동방 신학의 대표적 산물로, 기독교 교리를 법전 체계에 맞추어 논리적이고 조직적으로 기술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을 서방 신학의 대표적 산물로 대별시켜 볼 수 있겠다.
셋째, 정통신앙의 창출이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초대교회 시대에는 헬라적 질문과 로마적 질서가 하나로 어우러져 헬레니즘적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들이 발현되어 감을 볼 수 있는데, 이를 전면으로 보여주는 것이 공의회의 등장과 여기서 나온 여러 신경(creed, 신조)이다. 이단들이 제기한 삼위일체와 예수의 이해에 관한 여러 이견을 정리하기 위해 결국 헬라적이고 로마적인 천재성이 동원되었다. 제국 내 분열된 진리를 허용하지 않았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권한으로 니케아회의를 소집하였고, 이를 통해 소위 ‘정통’(orthodox)이라는 신앙고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쟁 과정을 살펴보면,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과 같은 신학적 논의들에 헬라의 형이상학적 접근, 즉 본질을 따져드는 질문이 신학의 어젠다(agenda)가 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렇게 정리된 신조는 곧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잣대가 되었다. 헬라적 질문과 로마적 질서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헬레니즘적 산물이다.
헬레니즘의 위협과 도전
헬레니즘이 복음의 이해에 도움이 된 요소가 있다면, 반면에 위협과 도전이 된 부분도 있었다. 유대주의적 색채가 짙은 에비온파(Ebionites)가 초대교회에 위협이 된 것처럼, 헬레니즘에서의 강력한 위협은 마르시온파(Marcionites)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물질을 근원적으로 악한 것으로 여기는 영지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데, 천지를 창조한 구약의 하나님은 단지 물질세계를 창조한 조물주이지, 예수의 영적 아버지인 참된 하나님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구약의 하나님을 악신으로 여겨 구약 전체를 부정하였고 신약 중에서도 바울만이 참된 사도라며 그의 서신만을 정경으로 인정하다가 결국 이단 판정을 받게 된다.
헬레니즘에서는 특히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이해가 다각도로 나타났다. 이원론적이며 영적인 우월성을 강조하는 플라톤주의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영지주의의 그늘 밑에서 소위 ‘가현설’(Docetism)이라 불리는 이단이 등장하였다. 이는 예수의 신성만을 인정하고자 했던 견해로, 예수는 육체로 나타난 것처럼 보였을 뿐(허깨비처럼) 실제로 예수는 인성을 입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즉,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사도 시대에도 위협적인 이러한 요소에 대해 사도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이 1:7)라며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동일하게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두 본성이 어떻게 결합되느냐는 방식에 대한 논의 또한 많은 논란을 가져왔다. 소위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라고 알려진 바처럼 신성과 인성이 예수 안에 공존하지만 그 결합이 완전한 결합이라기보다는 분리된 듯한 이해 또한 이단으로 반박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었지만 이것이 뒤섞여 혼합된 하나의 본성이 되었다고 이해한 유티키스주의(Eutychianism) 또한 공의회로부터 정죄당했다. 결국 이러한 기독론 논쟁은 기원후 451년 칼케돈(Chalcedon) 신조에서 정의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아래에서 보듯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기독론은 헬레니즘 맥락에서 헬라의 형이상학적 이해에서 비롯된 양상으로 정리되었음을 볼 수 있다.
신성에 있어서 완전하시며 동일하신 분이 인성에 있어서 완전하시며, 참으로 하나님이시며 참으로 사람이시며… 신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시며 동일하신 분이 인성에 있어서 우리와 동일본질이시니… 두 성품에 있어서 인식되되 혼합됨이 없으시며 변화됨이 없으시며 분리됨이 없으시며, 분할됨이 없으시며….
나가면서
지금까지 기술한 헬라와 로마의 차이를 보면서 우리는 각 문화권과 언어, 인종 등 그 기질의 차이가 각각 특정한 질문으로 기독교 복음과 조우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 접촉면을 보면 유대인은 메시아와 그 표적을 찾았고, 헬라인은 지혜와 진리를 찾았으며, 로마인은 공의와 질서를 찾았다.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인식의 측면에서도 그들 각자가 무엇을 추구했는지에 따라 예수 이해가 서로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수의 의미와 이해가 이전에는 깨닫지 못한 더 풍성한 의미로 확장되었음을 보게 된다. 또한 각각의 전통에서 발현된 기독교의 모습 또한 차별적인 특성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대인에게서 시작된 기독교가 민족적이고 역사적이었다면, 헬레니즘에서 발현된 기독교는 우주적, 철학적, 영적 진리로 확장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기독교의 모습을 단순한 교리적 접근이 아니라 각 지역과 문화권마다 갖고 있는 특정한 맥락에서 접근하는 것은 좀 더 심층적이고 풍성한 이해를 가져다줄 수 있다.
기독교 역사의 첫 500년간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 세계의 지경 안에 있던 자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경륜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우리는 전 지구촌적인 시각에서 중요한 또 한 지역을 놓칠 수 없다. 바로 그리스와 로마의 동쪽에 있었던 시리아와 페르시아라는 동방 지역이다. 이들이 이해하였던 예수는 과연 그리스와 로마가 이해했던 방식과 어떻게 달랐을까? 다음 호에서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다.
주(註)
1 이하에서는 전통적인 표현에 따라 ‘그리스’를 ‘헬라’(Hellas)로 표현할 것이다. ‘헬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리스인들의 시조 ‘헬렌’(Hellen)에서 나온 말이다.
박형진|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선교 역사 및 지구촌기독교(World Christianity) 연구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으며, 지금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선교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저서로 『지구촌기독교 선교 역사 이해의 지평들: 아돌프 하르나크에서 앤드루 월스까지, 선교역사가 8인의 눈으로 본 기독교』가 있다.
첫댓글 꿀맛이네요. 잘 배웠습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음 안에서 일치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