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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24 하인드 헬리콥터
냉전 시대를 대표한 소련의 공격헬기
본격적으로 냉전이 시작되고 미국과 소련의 양강 대결 구도가 형성됐을 때 이들 ‘초강대국(superpowers)’의 새로운 전쟁 방식이 시험대에 오른 것은 바로 6.25전쟁 때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차세대 전차와 제트기가 최초로 등장한 이 전쟁은 앞으로 벌어질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 전쟁을 통해 헬리콥터의 진가를 발견한 미군은 다양한 용도로 헬기를 투입하면서 향후 헬리콥터를 공세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열었다. 당시 소련의 붉은 군대는 적절한 헬리콥터 플랫폼이 없었으므로 헬기를 대대적으로 동원하지 못했으나, 공산 측 역시 6.25전쟁을 겪으면서 근접항공지원이나 물자 수송 등에 있어 항공기보다 간편하고 이착륙이 용이한 헬기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소련은 미래 전장이 될 장소가 유럽이라 판단하고 있었으므로 중무장 병력을 지형과 관계없이 빠르게 수송하고, 동시에 기계화를 통해 기동 속도를 높인 기계화 자산의 빠른 전진을 지원할 수 있는 헬기 개발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발발한 베트남 전쟁은 또 헬기를 또 다른 무기로 탈바꿈시켰다. 미국이 시험적으로 운용한 제1공중기동 기병사단(1st Airmobile Cavalry Division)은 전장이 넓게 펼쳐진 데다 전선이 뚜렷하게 한 곳에 형성이 되어 있지 않은 베트남의 특성에 대응하기 위해 평소 병력으로 거점을 장악하고 있는 대신 필요에 따라 헬기로 필요한 병력을 전개했다가 퇴거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러시아의 항공우주 엔지니어인 미하일 밀(Mikhail Mil, 1909~1970)의 철학과도 일치했다. 그는 전장 위 병력의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병력 수송 임무와 화력 지원이 가능한 “날아다니는” 장갑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미하일 밀은 제329 항공기 공장의 시험기 개발 시설을 사용하여 스스로 수석 설계자를 맡아 ‘하늘의 보병전투장갑차’ 역할을 맡을 헬기 설계에 들어갔다. 밀은 여러 개의 설계 개념을 들고 나와 사업을 추진했다 최초에는 앞서 개발한 Mi-4(NATO 코드명 하운드(Hound)) 헬기에 무장을 더하는 방향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곧 이 개념은 금방 폐기되고 앞서 다목적 헬기로 개발하다가 취소한 V-22 헬기를 목업(mock-up) 모델의 틀로 삼아 형상을 만든 뒤 V-24로 명명했다. 미하일 밀은 기존 설계를 활용하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소련형” 헬리콥터를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며, 이 개념을 1966년 소련군에 제안했다. 이 V-24 개발안은 소련의 전략가 다수가 찬성했지만 일각에서는 무기를 헬기에 장착하는 것은 불필요한 방안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밀은 끈질기게 국방 제1차관 안드레이 그레츠코(Andrei Grechko, 1903~1976) 원수를 설득한 끝에 허가를 얻었다. 이 시기에 벌어진 베트남 전쟁에서 미 육군이 운용한 건십(gunship) 헬리콥터와 공격헬기가 ‘V-24’ 사업 설득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V-22 개발을 승인하게 된 소련 국방부는 1968년 5월 6일에 정식으로 밀에 생존성과 공격 능력을 갖춘 중형 무장, 쌍발 엔진 헬리콥터의 제안요청서를 발행했으며, 밀은 이에 해당 사업명을 가칭으로 Mi-24로 붙인 후 1969년 2월에 정식으로 계약했다.
시험비행 중인 V-24의 최초 비행시제기의 모습 <출처: topwar.ru>
밀은 최초 두 개의 설계 방향을 고려해 하나는 7톤 단발 엔진 설계로, 다른 하나는 10.5톤 쌍발 엔진 설계로 추진했으며 둘 다 모두 1,700마력 급 이조토프(Izotov) TV3-177A 터보 샤프트 엔진을 채택했다. 이 당시 밀의 경쟁 설계국인 카모프(Kamov)는 앞서 개발한 Ka-25 대잠전 헬기를 육군용으로 개조한 저가형 다목적 헬기로 한참 제안하고 있었으나, 소련 국방부는 V-24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하자 카모프 쪽의 사업을 취소해버렸다. 결국 다양한 고려 끝에 쌍발을 선택한 밀 설계국은 동체 설계에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우선 적에게 포착 당하거나 공격 당할 면적을 줄이기 위해 폭을 최소화했고, 조종석 캐노피 역시 최대한 강도를 높일 목적으로 한 개의 강화 프레임을 결합시킨 설계를 채택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본격적인 이 V-24를 본격적인 공격헬기 용도로 기대했으므로 몇 가지 부분에서 설계 변경을 요구했다. 우선 기수에 채택됐던 23mm 기관포를 제거하기를 원했으며, 대신 그 자리에 고속 중기관총을 터릿(turret) 형태로 기수 아래에 달 것을 요청했다. 또한 기본적으로 9K114 시뚜름(штурм: NATO 코드네임 AT-6 스파이럴[Spiral]) 무선 조종식 대전차 미사일을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소련 국방부는 1968년 5월 6일 자로 개발 지침을 하달하면서 해당 헬기를 “쌍발” 설계로 할 것을 최종 확정했다. 상세 설계는 1968년 8월부터 “옐로우(Yellow) 24”라는 코드네임으로 시작됐으며, 1969년 2월에는 실용 개발 단계로 넘어갔다. 최종 공개된 헬기는 동체에 위장 도색이 된 데다 독특한 굴곡의 조종석 모양 때문에 곧 “악어(Crocodile)”라는 별칭이 붙었다. 신형 헬기는 1969년 9월까지 시제기가 제작됐으며, 9월 19일 자로 유선으로 연결한 기체의 시험 비행을 실시했다. 이후 총 10대의 시제기가 제작되어 시험 절차가 진행됐으며, 1970년 6월부터 본격적인 평가와 개선이 시작되면서 테일로터 방향 변환과 특유의 무장 장착용 주익 추가 등 대대적인 개선이 이루어졌다. 소련 정부 역시 Mi-24의 개발 방향과 성능에 만족했으며, 1970년 6월부터 18개월간 수락 검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수락 검사 과정에서 일부 부분의 동체 강도 및 금속 피로 문제와 진동 문제가 제기되어 이를 바로잡았으며, 주익 끝에는 12도 정도의 하반각 날개가 설치되어 200km/h 이상으로 비행할 경우 더치 롤(Dutch roll) 현상을 최소화했다. 소련 국방부는 이들에 대한 개선 조치가 이루어지자 V-24를 Mi-24A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1971년에 정식으로 수락한 후 1972년부터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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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사실상 냉전 시기 소련의 대표적인 공격헬기인 Mi-24 시리즈는 NATO 진영의 전략가들을 괴롭힌 신개념의 공격헬기였다. 특히 외양만 보면 놀라울 정도로 서방 측의 공격헬기 개발 철학과 유사하다. 하인드 헬리콥터 역시 탠덤(tandem) 방식으로 두 조종사가 앞, 뒤로 앉는 배열이며, 조종사가 후방석에, 무장수가 전방석에 앉도록 설계했다.
2021년 6월 3일, 헝가리에서 실시된 세이버 가디언(Saber Gardian) 21 연습 중 헝가리 육군의 Mi-24 하인드 헬리콥터에 탑승 중인 미 육군의 매튜 콜(Matthew Cole) 중령. Mi-24는 탠덤식좌석을 채택했다. (출처: MAJ Robert Fillingham, US Army)
엔진은 이소토프의 TV3-117 터빈 엔진 2기를 채택했으며, 엔진 최대 출력은 2,200마력에 달한다. 하인드의 자체 중량은 8,500kg이나 병력이 탑승할 경우 최대 이륙 중량은 12,000kg에 달하지만, 이 경우에는 공격헬기에 필요한 특유의 기동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Mi-24는 항공기 속도를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한 점이 눈에 띈다. 우선 동체부터 유선형으로 설계해 바람 저항을 줄였으며, 스키드 대신 동체 안으로 수납이 가능한 랜딩기어를 택한 점도 불필요한 항력을 줄일 목적의 설계이다. 랜딩기어는 스키드가 아닌 타이어 형태로 장착됐으며, 동체에 2개, 기수에 1개로 삼각축 형태로 장착됐다. 고속 비행 시 동체 좌우에 붙은 날개는 최대 양력의 1/4에 달하는 적지 않은 양력을 부여하며, 메인 로터는 약 2.5도가량 아래로 향해 편류 현상을 상쇄한다.
Mi-24D 형상의 조종석. 동독 육군이 운용하던 기체로, 통일 후에도 독일연방군이 잠시 운용했으나 대부분 1992년에 퇴역했다. (출처: Public Domain)
하인드는 무장 장착을 위한 소형 주익이 달려있으며, Mi-24D와 Mi-24V는 야크(Yak)B 4연장 12.7mm 고정식 기관포가 장착 가능하다. 기관포의 발사 속도는 분당 4,000~4,500발 수준이며, 포구 속도는 860m/s에 달한다. Mi-24P는 30mm 고정식 기관포가 설치되어 있고, Mi-24VP에는 23mm 고정식 기관포가 장착되어 있다. Mi-24P와 Mi-24V 형상은 주익 아래 4개의 파일런이 있으며, 이곳에 12발의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다. Mi-24V(수출명 Mi-35)는 시뚜름(NATO 코드네임 AT-6) 단거리 반자동 무선유도통제 방식의 대전차 유도 미사일체계가 통합됐다. 시뚜름의 5.4kg 고폭탄 탄두는 최대 650mm 장갑을 꿰뚫을 수 있으며, 사거리는 5k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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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24V 및 P 형상은 장거리 미사일인 아타카(Ataka: NATO 코드명 AT-9) 대전차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다. 아타카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 8km이며, 공산 오차(CEP: Circular Error Probabiliy)는 3~6km 범위 내에서 0.96에 불과할 정도로 정밀하다. 아타카의 탄두는 7.4kg이며 관통을 위한 이중 탠덤(tandem) 탄두가 적용되어 최대 80mm 두께의 반응장갑까지 제거할 수 있다. Mi-24V/P 형상은 GOES-342 TV/FLIR 사이트 시스템 및 레이저 거리 측정기가 장착됐으며, 유사시 방어를 위해 적외선 재머(jammer), 레이더 경고장치, 전광탄(電光彈) 살포기 세트(CMDS: Countermeasure Dispenser System)가 설치됐다.
Mi-24 시리즈는 냉전 시기에 등장한 헬기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여러 국가에서 사랑받아 왔으며, 오늘날에도 업그레이드를 통해 계속 운용되고 있을 정도로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러시아군은 기존 Mi-24를 한차례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열상 이미지 장비를 포함한 항전장비를 개선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넬(Denel) 및 켄트론(Kentron)사와 협업으로 교체 사업을 실시하면서 “슈퍼하인드(Superhind)”로 명명한 이 기체는 이스라엘 IAI 타맘(Tamam)사의 FLIR가 장착된 HMOSP(Helicopter Multi-mission Optronic Stabilized Payload) 센서를 채택했고, 오토트래커(autotracker)와 내장형 GPS를 넣었으며 조종석에는 다목적 컬러 디스플레이를 넣었다.
체코 공화국,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역시 2003년 2월 합동으로 약 105대의 Mi-24D/V를 NATO 스탠더드로 개조하는 “비셰그라드(Visegrad) 4국 협정을 체결한 바 있으나, 이 형상은 중도에 취소되어버려 실물이 제작되지 못했다. 하지만 폴란드는 자국 보유 Mi-24를 NATO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했으며, 2004년 2월, 영국 BAE 시스템을 신형 항전체계 체계통합업체로 선정하여 “NATO 스탠더드&#로 사양을 변경한 Mi-24 시제기를 개발했다. 불가리아 역시 2005년 12월에 Mi-24 12대의 업그레이드 계약을 미국 록히드-마틴(Lockheed-Martin) 및 이스라엘 엘빗시스템(Elbit Systems)과 계약했으나, 2007년 예산 문제 등으로 사업 자체를 접었다.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차량행렬을 호위 중인 Mi-24 하인드 공격헬기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차량행렬을 호위 중인 Mi-24 하인드 공격헬기의 모습 <출처: Public Domain>
하인드 헬리콥터는 냉전 시기 소련의 주력 공격헬기로 활약했기 때문에 실전 기록도 화려하다. 최초로 활약했던 실전 사례는 1977년~1978년 동안 에티오피아-소말리아 간에 벌어진 오가덴(Ogaden) 전쟁으로, 이 전쟁에서 소말리아를 지원한 소련군은 Mi-24를 투입해 대량의 물자 수송을 실시했다. 바로 같은 해인 1978년 차드-리비아 전쟁(1978~1987, 혹은 “도요타 전쟁”)에 개입한 소련은 1980년 은자메나(N’Djamena) 전투에 Mi-24를 최초 투입해 차드 반군이 수도를 점령하도록 지원했다.
하인드의 본격적인 활약은 1979년부터 실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이었으며, 주로 근접항공지원(CAS) 용도로 투입되거나 무자헤딘에 대한 폭격 임무를 소화했다. 하지만 미국이 무자헤딘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면서 열상추적 방식의 FIM-92 스팅어(Stinger) 지대공미사일이 다량으로 무자헤딘 측에 공급되자 Mi-8과 Mi-24 헬기가 스팅어의 가장 손쉬운 먹이가 되고 말았다. 이 시기에 총 몇 대의 Mi-24가 투입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90년대 말까지 소련군이 보유하고 있던 하인드의 전체 수량이 1,420대였으며 일부 기록으로는 약 250대가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됐던 것으로 보고 있다.
제원용도: 공격헬기/헬리콥터 건십
제조사: 밀(Mil) 모스크바 헬리콥터 공장
승무원: 2~3명(조종사, 무장체계장교, 기술 엔지니어)
탑승 인원: 8명/들것 4개, 외부 슬링(sling)에 2,400kg 물자 적재 가능
전장: 17.5m(동체), 19.79m(로터 포함)
메인 로터 지름: 17.3m
메인 로터 면적: 235.1㎡
날개 길이: 6.5m
전고: 6.5m
자체 중량: 8,500kg
최대 이륙 중량: 12,000kg
출력체계: 2,200마력(1,600kW) 이소토프(Isotov) Tv3-117 터보샤프트 엔진 x 2
최고 속도: 335km/h
항속 거리: 450km
실용 상승 한도: 4,900m
기본 무장:
ㄴ 야쿠셰프-보르초프(Yakushev-Borzov) Yak-B 12.7mm 개틀링 기관총, 총 1,470발(선택)
ㄴ 쌍열식 GSh-30K 자동기관포(Mi-24P), 250발
ㄴ 쌍열식 GSh-23L 자동기관포(Mi-24VP/Mi-24VM), 450발
ㄴ GIAT(現 Nexter) 이중그반식 20mm M693 기관포(Mi-24 Mk.II/III/IV/V) 320발
장착 무장: 최대 1,500kg 탑재 가능
ㄴ 안쪽 하드포인트: 최소 500kg 장착 가능
ㄴ 바깥쪽 하드포인트: 최대 250kg 장착 가능
ㄴ 윙팁 파일런: 9M17 팔랑가(Phalanga) 대전차미사일 혹은 9K114 시뚜룸 미사일
ㄴ 폭탄: 최대 500kg 이내에서 장착 가능
ㄴ KGMU2V 소군탄(Submunition) 혹은 지뢰살포기 포드
ㄴ GUV-8700 건포드
ㄴ UB-16 S-5 로켓 발사기
ㄴ UB-32 S-5 로켓 발사기
ㄴ S-24 240mm 로켓
ㄴ 9M17 플레이타(Fleyta) 대전차미사일
ㄴ UPK-23-250 건포드 (GSh-23L 자동기관포 장착)
ㄴ B-8V20 경량 장거리 튜브식 로켓 발사기
ㄴ 9K114 시뚜룸 대전차 미사일
대당 가격: 추정 가격 약 1,200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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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 『이런 전쟁』(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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