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제국의 멸망원인
잉카제국은 지금의 페루지역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던, 안데스문명 최후의 국명을 칭합니다. 안데스산지에서는 BC1000년경부터 산지농업이 안착되어 옥수수농경 체계가 확립되었고, 종교의 힘이 더해져 사회의 계층화가 진전되었습니다. 이 결과로 1200년경에는,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처럼 많은 왕국형 정치 조직이 성립되게 됩니다. 잉카는 수많은 왕국들 중 하나로, 15세기 중엽부터 주변 왕국을 정복하여 15세기 말에는 광활한 안데스 지역을 평정하는 대제국을 이룩하게 되죠. 수도는 지금의 마주픽추가 남아있는 쿠스코였으며, 사회계층은 귀족과 평민이 양립하는 단순 구조였지요. 대제국임에도 불구하고 문자·철·수레는 없었으나, 토기·청동기·직물의 기술은 현대의 역사가들에게도 경이로울 정도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석조건축 기술은 극치라고 찬송 받을 정도였습니다.
1. 멸망원인 - 균
검은 악마 페스트는 14세기 중엽 유럽을 죽음의 공포로 떨게 했던, 역사적인 질병이었습니다. 많게는 인류의 절반 이상이 이 병으로 인해 사라졌을 만큼, 질병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페스트는 아니지만 잉카문명 역시 질병의 희생양이었죠. 에스파냐 군대가 잉카를 습격한 건 1530년의 일이었지만, 잉카문명을 휩쓸었던 천연두는 그보다 앞선 1527년에 잉카 전역으로 퍼지고 있었습니다. 정복자들이 스페인에서 출발해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는 속도보다 천연두가 퍼지는 속도가 더 빨랐던 것입니다.
천연두는 우리나라에서는 역신마마(媽媽)라고 불리던 질병으로, 주요 증세는 고열과 전신에 나타나는 발진입니다. 전염력이 몹시 강하며, 출혈성 천연두의 경우에는 앞서 말한 증상과 함께 전신에 점막출혈이 일어나 5~6일안에 고통에 비명하다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잉카의 황제 역시 천연두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잉카 황제가 잉카 북부를 시찰하고 있을 때, 수도에서 온 전령이 천연두의 창궐을 알립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곧장 발길을 돌리지만, 태양의 아들이라고 칭해지던 황제마저 수도에 도착하기 전 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황제의 급작스런 사망은 왕위찬탈을 위한 내전을 불러왔고, 잉카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2. 멸망원인 - 철
천연두가 잉카를 강타하고 난 후, 1532년 패권주의를 내세우며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170명의 스페인군이 잉카해안에 상륙합니다. 과연 어떻게 해서 고작 170명의 군대가 수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잉카를 멸망시킬 수 있었을까요? 정복의 힘은 바로 ‘철’에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잉카제국의 청동기·석조문명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해 있었으나, 철기문명으로의 진입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스페인은 화승총, 철제무기, 중기병으로 무장한 고도로 발달한 철기국가였지요. 게다가 잉카인들은 말이라는 동물을 생전 처음 봤기에, 전장에서 보이는 말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스페인 철기군의 힘을 볼 수 있는 전투의 한 장면을 소개하자면, 피사로가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잉카 해안에 도착했을 때, 스페인군은 수천 명의 잉카부족 군대와 대치하게 됩니다. 당시 잉카인들의 무기는 흑요석 날을 박은 나무칼이나 곤봉, 끝에 구리 날을 박은 도끼, 활 등 상대에게 치명상을 주기에는 무리가 있는 무기뿐이었습니다. 이런 무기를 들고 수천 명의 잉카인들은 피사로의 군대를 향해 돌격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에스파냐 군대에게 수없는 승리를 안겨주었던 장창병들이 선두에서 대형을 형성하여 돌격을 저지했고, 뒤에 있는 화승총병들이 사격을 가하면서 잉카인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려졌습니다.
피사로는 잉카인의 사기가 꺾였다고 판단한 후, 중기병대를 지휘하여 돌격하였고 잉카인들은 에스파냐군의 강철검과 랜스를 막지 못하고 처절하게 죽임 당했죠. 이후 잉카인들은 에스파냐군을 상대로 기습만을 펼치며, 전면전을 최대한 피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피사로가 파죽지세로 잉카제국의 심장까지 전진했을 때, 이미 잉카는 전염병으로 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당시 인구 3천5백만 가운데 2/3이 죽었다고 추산될 정도였죠. 이런 상황에서 사회, 정치체계의 붕괴는 당연했으며 주변 소수부족의 반란은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피사로는 손쉽게 잉카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