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자 결혼식
심양은 요령성의 성도로서 동북3성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며 한때는 청조의 도읍으로 중국내에서도 그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는 지역이다.
요령성에 23만(심양시 8만)의 우리조선족 동포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각각 몇 개의 소부락을 이루면서 한족 중심의 다민족 국가에 조선족 언어를 사용하고 효를 숭상하며 부모를 공경하는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비교적 잘 보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붐을 타고 생활이 윤택해 지면서 한족이나 타 민족에 비해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곳 심양에도 한족 이외에 소수민족으로 약20만의 회족이 있고, 그 다음이 조선족인 것이다. 회족은 그 모체가 사라져 점점 세가 약화되면서 한족화 되는 경향이 있는데 조선족은 아직도 그 조상의 본체가 한반도에 7천만을 헤아리는 민족으로 번창하고 있으니 뿌리에 대한 확실한 신념과 애착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 조선족들은 집단적으로 상권을 형성하고 민족협회와 같은 단체도 결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조선족을 위한 격일간 조선어 신문도 발간하고 있어 한족문화권에서 비교적 높은 수준의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
본인이 ‘97,2월 이곳에 부임하고 이곳 조선어 신문인 조선문보의 부주필이 찾아와 이곳 교민들이 한국공단에 관심이 지대하므로 우리공사와 조선문보 간에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한국공단에 대한 특집기사 게재를 약속하였다. 그 며칠 후 기자 한분이 찾아와 기사를 작성하고 그와 잠시 환담을 하였는데, 흔히 보는 조선족 중국인답지 않게 눈매가 날카롭고 언어구사의 예리함이 중국생활에 적응하려는 나에게는 친근감으로 다가 오는 것이다. 중국의 언론은 사실에 입각한 사실보도와 중앙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하고 비평이나 비판의 소리를 낼 수 없을 뿐 아니라 대우나 보수도 뛰어난 것이 아니어서 인기 있는 직업은 아니다.
그 후로 한국인이나 조선족 사회의 행사에서 몇 번 만나면서 가깝게 지나게 되었는데,6월의 어느 날 아가씨를 대동하고 와서 결혼 상대자라며 나에게 소개시켜 주는 것이다 .나는 놀라면서 37살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니, 아들이 하나 있는데 같은 신문사에 근무하는 기혼 여직원과 가깝게 지나면서 양측이 다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에 이혼이 쉽게 가능하겠느냐 하고 의심은 가겠지만, 이혼이라는 것은 개인의 기초적인 문제로서 얼마든지 가능하며,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도입되면서 부터 이혼 빈도가 더 높아져 지금은 한국보다 이혼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곳 중국은 남녀가 같이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남녀 간의 접촉이 빈번하고, 특히 조선족 사회에서는 한국행에 따른 본의 아닌 별거, 한국인과의 위장결혼을 위한 이혼, 한국행 후 한국남자와의 불륜, 결혼 등으로 이혼 결손 가정이 많아 조선족 초등학교 아동의 20%이상이 부모가 이혼한 가정의 아이라는 통계도 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축의금을 3백원으로 정하고 빨간 봉투에 넣어 (중국은 축의금을 1,3,5,7,9등 홀수 금액으로 하여 보통 100원 ,친분이 있으면 300원, 잘 아는 사이는 500원정도로 근로자의 한 달 월급이 5백 원 정도 하는 사회에서 상당히 많은 돈을 축의금으로 내는 것을 느꼈음)예식장에 도착하였다.
‘97.6.28일 토요일 서탑의 조선족 예식장 10:30분에 예식이 시작 된다 하여 시간에 맞추어서 예식장 안으로 들어서니 축의금을 받는 접수대도 없고, 큰 홀에 원탁형 테이블과 전면의 가라오케 같은 무대만 덜렁 있으며 몇몇의 촌 아낙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잡담과 음식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만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신랑의 안내로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몇몇의 친분이 있는 중국인, 한국인들이 들어오면서 합석을 하게 되었다. 처음 접해보는 일이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 기대가 된다.
우리 한국식으로 잠시 인사만 하고 축의금을 전달하고 돌아오려던 생각이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다 되어가도 식이 시작되지 않는 것이다. 지루하게 기다리다 12시 30분에 예식이 시작되는데 우리처럼 신랑이 혼자 입장한 후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를 데리고 입장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자의 사회에 따라 신랑, 신부가 같이 입장하며 연단위로 올라가는데 연단위에는 연대나 주례도 없고 신랑과 신부 둘 많이 나란히 서서 사회자의 진행순서에 따라 예식이 진행된다.
식순은 우리와 대충 비슷하다. 우리의 주례와 같은 사람이 나와서 중화인민공화국 결혼증서를 수여하고 간단한 인사말, 가족대표의 인사말, 신랑측 저명인사의 격려 말, 친구의 축사 와 양측의 예물교환(신랑 금반지, 신부 금시계)이 이루어지고, 하단으로 내려와 양가 부모에게 큰 절을 3번씩 하고, 다시 연단에서 신랑신부 맞절을 3번 하면서 결혼식은 끝났다. 이곳 중국에서도 요즈음은 서구화의 바람을 타고 즐거운 분위기속에서 결혼식이 진행되는데, 사회자가 신랑은 장인장모에게 딸을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얼굴에 뽀뽀를 권하고, 신부는 시부모님을 잘 공경하겠다는 뜻에서 키스를 하라는 청에 모두 부끄러워하면서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기도 하였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면서 한국의 옛 가락이 흘러나오고 기념사진 촬영이 이어진다. 이때 부터 식탁위에 음식이 차려지면서 담화와 여흥이 시작되는데, 이곳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음식인 떡(인절미, 절편)등은 집에서 준비하고 나머지는 예식장 음식을 이용한다. 여흥이 시작되면서 신랑신부는 각 테이블을 돌며 하객들에 인사를 하는데 이때 준비해 간 축의금을 신랑, 신부에게 직접 전달하므로 사실상 결혼식이 끝나기 전까지는 결혼식장을 빠져 나갈 수 없는 것이다.
3시가 다 되어서 식사 끝났는데, 약 5시간 동안의 행사가 약간은 지루한 것 같지만 인륜지대사를 우리처럼 30분 만에 형식적인 의식절차 보다는 정감이 가고 진실로 결혼을 축하 해 줄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첫댓글 동기동창 이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