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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
계시록 22:12-21
오늘은 부활절 마지막 주일, 부활절 7번째 주일입니다.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에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내용은 한 마디로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20절에서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분명히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입니다.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에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말씀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면서
부활을 증거 하시고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1:3)
그런 후에 500여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이 승천 때 두 가지 중요한 일들이 있는데요,
하나는, 주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힘입기 위하여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그렇게 승천하실 때 흰옷 입은 두 사람 즉 천사가 그 곁에 서서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셨고 승천하신 주님은 다시 재림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흐름입니다.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은 서로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에 승천하셨고 승천하셔서 영원토록 살아계신 주님이시기에 주님은 곧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활주일에 재림을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다면 승천하신 주님도 믿어야 하고 재림의 주님도 믿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은 역사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재림하십니다.
재림하심으로 역사는 마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살아계시는 주님은 다시금 재림하십니다.
재림신앙을 가진 자는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는 기다림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그의 왕국을 기다리는 내용이며,
신약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그가 약속하신 천국을 기다리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때부터 재림의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환상으로 보면서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은 비단 사도 요한만의 기도가 아니고, 사도 요한만의 바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어야 하고 바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간혹 유명하다고 하는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가 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몇 십 분을 기다리다가 음식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다리다가 음식을 먹을 때 정말 맛이 있으면 ‘기다린 보람이 있다.’
‘기다리면서 먹을 만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다가 음식을 먹었는데 맛이 별로 없으면
‘괜히 기다렸다 이것 먹으려고 여기까지 왔나? 내가 그렇게 기다렸나’ 후회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다림에도 의미 있는 기다림이 있는 반면에 의미 없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는 기다림이 있고 기다린 보람이 없는 기다림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가장 의미 있고 가장 가치 있는 기다림인 줄 믿습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기다림은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행복한 기다림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는, 분명히 주님이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세 번이나 “내가 속히 오리니”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말씀하신 주님은
12절에서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셨고,
20절에서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것이 주님의 약속이기에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시겠다는 재림의 약속보다 더 확실한 약속은 없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고 그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자세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주님이시기에 우리의 기다림은 의미가 있고 분명한 보람과 가치가 있습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허무한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실체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재림의 주님이 오실 때 주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상급을 주십니다.
12절에 보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신랑 되신 주님이 이 세상에 강림하시게 되면 그 분은 기다린 자들에게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상급이 있는 기다림이 진정한 기다림인 줄 믿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상급이 없고 뭔가 주어지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의미 없는 기다림이요 세월만 허송하는 쓸모없는 기다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을 기다리는 이 일에는 절대 실망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분명히 약속하신 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고 그렇게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는 최고의 상급을 주실 줄 믿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신다면 예수님의 재림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재림을 통하여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분은 우리의 신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간 자식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문을 열어놓고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밤낮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버지들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가끔 기다리는 아버지가 안쓰러워 아직도 안 왔느냐? 가끔 묻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만이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내만이 출장 간 남편을 기다리고 자식들이 퇴근하는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출장 간 남의 남편을 기다리는 여자가 있다면 그것은 뭔가 이상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다른 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신랑이십니다.
17절에 보면 ‘성령과 신부가 오라’하는 말이 나오는데 신부는 바로 우리 성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입니다.
신랑을 기다릴 자는 신부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신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신랑이십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누구를 기다리겠습니까?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된 성도들은 14절 말씀대로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세’로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 두루마리를 빤다는 것은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인생 두루마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는 것을 말합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깨끗해야 합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요구하고 바라는 가장 중요한 것이 거룩이고 순결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요한일서 3장 3절에서도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가 복이 있고 그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게 됩니다.
신랑 되시는 주님을 거룩한 모습으로 깨끗한 모습으로 기다리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왜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까? 그 분의 오심은 역사의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의미를 한 마디로 하면 이 세상의 역사가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몇 가지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먼저, 모든 사람들이 다 부활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세 번째는,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자와 지옥에 들어갈 자가 결정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재림을 기다리며 믿음을 지킨 자들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역사의 마지막이요 성도들의 마지막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기다림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끝나게 됩니다.
이제는 그 기다림의 상급만이 있을 것이고 더 이상 기다림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마지막 기다림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고 재림과 함께 역사의 대장정이 마쳐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마지막 기다림을 잘 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7절 말씀에서 주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기다린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잘못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다미 선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을 벗어던지고
흰옷으로 갈아입고 기도원에서 찬송만 하고 기도만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전혀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는 말씀을 지키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일하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 우리에게 맡겨준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어떤 이상한 모습이 아니라 평소에 살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이 상을 주시려고 오시는데 상 받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절대 그냥 놀고 지내서는 안 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봉사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완성하신 구원의 복음을 전해서 한 생명이라도 구원해야 합니다.
어떤 크리스천 의사가 거리에 떠도는 아이를 데려다가 병원에서 심부름을 하며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에게 전도를 합니다.
그러나 거친 사회에서 냉대를 받으며 잡초처럼 자라난 이 아이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해를 못하고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한가한 시간에 의사는 아이에게 성경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재림에 관한 부분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존아!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는데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고 했다.
어느 날 천사장의 호령소리와 나팔소리와 함께 예수님이 친히 하늘로부터 오실 것이야."
신기한 듯이 쳐다보고 있는 아이에게 의사는 계속 말합니다.
"존아! 주님께서 강림하시면 그 때는 내 집을 네가 가지도록 해라."
소년은 아주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의사의 집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대저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집뿐만 아니고 모든 가구와 차까지도 너에게 다 줄게 나는 예수님을 만나야 하거든."
그날 밤 존은 흥분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 모르지만 오시기만 하면 수지맞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꿈꾸던 모든 것을 가지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좋은 곳이면 좋은 집과 새 차, 그리고 모든 재산을 버리고 그곳으로 가겠다는 것인가?’
아이는 즉시 의사의 침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 가는 곳에 가면 안돼요.’
의사는 아이를 끌어안고 축복해 주었습니다.(김00목사 예화)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시는 날, 그 때는 이 땅의 물질이, 금, 은, 보화가, 호화로운 집과 큰 차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신부로서 화려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 날을 기다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재림을 기다리는 자는 가장 가치 있고 가장 보람되고 가장 행복하게 사는 자인 줄 믿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은 분명 다시 오십니다.
주님이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승천도 없을 것이고 재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셨기에 주님은 분명 다시 오십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약속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실 상급을 갖고 다시 오십니다.
그 상급을 받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요 축복받은 자요 행복한 자입니다.
그 축복 속에 참여하시기 위해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거룩하고 깨끗하게 충성되게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3.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