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54]아름다운 사람(41)-문화의 힘을 믿는 송하스님
날마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지만, 어제 오후에 잠깐 만나뵌 동안童顏의 스님과 차를 한 잔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진짜로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야에 고수들이 많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나, 이 분의 꿈이 크고 아름답기에, 못쓰는 글이나마 이 신새벽 기록하지 않을 도리가 없음을 어이하랴.
만행산에서 비홍재까지 72km의 산줄기를 ‘천황지맥(72km)’이라고 하는데, 남원 사매면을 병풍처럼 길게 감싸안은 산이 풍악산(해발 610m), 그 가운데 노적봉(해발 567m)이 있다. 노적봉 아래 30여m 높이의 바위에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그 밑에 호성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한다. 2005년쯤인가, 한 스님이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호성암의 유래를 들은 후 호성암의 복원을 꿈꾸었다 한다. 그 과정의 하나로 지금의 호성사虎成寺의 회주가 되고, 절 앞 수 천평의 땅을 매입하여 미술관을 짓고 우여곡절 끝에 개관을 앞두고 있다. 처음엔 작가 조정래와 인연이 있어 고향 순천 쪽을 생각했으나, 시절인연이 전북의 남원땅, 그것도 남원시가 노적봉 아래에 83억을 들여 지은 혼불문학관 옆 부지에 필이 꽂힌 것이다. 혼불문학관 옆에 자리를 잡으면 요즘말로 83억의 건물과 함께 ‘콜래보’ 효과도 있다고 본 것이다.
혼불문학관 바로 옆에 있고 청호저수지 바로 위에 있다하여 청호미술관이다. 법명답지 않은 법명인 송하松河 스님은 1951년생(74세)으로 12세에 출가했으니 법랍法臘이 60년을 넘었다.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화가 양태석 선생이 10대때 화가의 꿈을 심어줘 동국대학교 미술학과를 다녔다. <달마도>를 순식간에 잘 그리신 스님은 유럽에서 8년간 미술공부를 하고(서양화와 동양화의 접목을 시도, 스님만의 색상을 구현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94-98년 유럽 16개국 순회전시회도 가졌으며 한국서화대전 초대작가이기도 하다. 전남 순천 벌교 출신. 위로 이제 딱 한 분만 살아계시지만 누나만 7명. 한 스님이 지나가는 말로 그의 부친에게 쌍계사 아래 암자를 하나 세우면 옥동자가 태어날 거라고 했다던가. 딸부자집에 아들이 태어난 것은 불가의 인연 덕분. 부친은 65세(모친은 46세)에 얻은 금지옥엽 아들을 아예 절에 맡겼다고 한다.
아무튼, 그가 꿈꾸는 것은 미술관에 이어 박물관과 함께 작가들의 창작공간인 <문화예술인촌> 조성이다. 화가와 작가, 영화인, 사진작가 등 90여명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마음껏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미술관 앞의 준비해놓은 수천평의 넓은 공간을 보니 못이룰 까닭이 없겠다. 지자체의 행정적 뒷받침이 조금만 있어도 수년내 가능할 성싶다. 당국의 예산지원은 생각지도 않고 밑그림이 다 그려져 있다고 한다. 또한 청소년들을 위한 유스호스텔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양산 통도사와 울산의 절에 있을 때에도 장학사업을 했다. 미래의 주인공인 꿈나무들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는 것이 부처님을 모시는 것과 같다는 신념에서라고 한다.
그리고 혼불문학과과 청호미술관 앞 넓직한 공간에 문화광장을 만들어 전국의 문화애호가들이 벅적벅적 모이는 연례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좋은 작가들을 전폭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K-컬쳐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이 아니겠냐며 환하게 웃는다. 재원은 스님이 그린 작품들이 만들어주고, 스님을 아는 재력가들의 후원도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이제 시작이지만, 3-5년 내에 마무리한 후, 초심대로 호성암을 복원하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무슨무슨 축제나 출렁다리, 짚라인, 케이블카 등을 만들어 관광객들을 모시는 듯한 경쟁이 못마땅하다는 스님은 ‘문화의 힘’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믿으며, 관련 컨텐츠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남원 춘향테마파크에 김병종미술관도 있지만, 지역에 이런 품격있는 미술관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윤택해지지 않겠는가. 현대인의 지친 심신들을 힐링해주는 문화의 플랫폼이 될지니. 한 스님의 엄청난 열정으로 힘들게 이룩하고 있는 미술관과 예술인촌의 조성에 무한응원을 보내는 까닭이다. 60년이 넘게 부처님만을 신봉하는 스님이 무슨 사리사욕이 있을 것인가(땡초도 많은 세상이긴 하지만). 죽어서 그 많은 재산을 누구 하나 가져간 위인이 있던가. 불심佛心으로, 예술인으로 작품을 통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지렛대역할을 하겠다는 통큰 스님의 청사진이 이른 시일내 이뤄졌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스님, 성불하소서!
부기: '호랑이가 지은 절'이라는 뜻의 호성사虎成寺 이름의 유래는, 믿거나말거나이지만 이렇다. 한 노승이 산길을 가다 입을 쩌억 벌리고 신음하는 호랑이를 만났는데, 목구멍에 사람의 비녀가 꽂혀 있었다. 놀라 달아나다가 호랑이가 불쌍하여 되돌아가 비녀를 빼내주었다고 한다. 호랑이가 은혜를 갚고자 사슴 한 마리를 스님의 집앞에 놔두어 살생은 안된다며 호통을 쳤더니, 예쁜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아가씨에게 물으니 인근 고을 원님의 딸이라 하여, 원님에게 데리고 가니 호랑이밥(호식)이 된 줄 알고 초상까지 치렀다고 한다. 딸이 살아온 것에 감격해 스님에게 소원을 물으니 작은 암자를 지어달라고 한 것이 '호성사'라 했다. 한국전쟁때 인민군들이 숨기 좋다고 하여 불을 질렀다고 한다. 사진에 보듯 마애여래좌상 아래에 있었다는데, 그 아래엔 겨울에도 얼지 않는 청정수가 있다. 신계리 마애여래좌상과 함께 꼭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레터 98]남원의 숨어있는 보석 2선(마애여래불 & 암각화)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