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적벽은 동복천 상류와 영신천 유역의 크고 작은 붉은 색의
수직 절벽으로, 붉은 색 때문에 적벽(赤壁)으로 불리게 된 경승지이다.
동복천의 상류인 창량천 유역에는 약 7km에 걸쳐서 절벽경관이 발달하고
있는데,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물염적벽, 창랑적벽의 4개가 가장 크며,
이중 이서적벽이라고도 불리는 노루목적벽이 가장 크고 수려하다.
물염정 입구
조선 중종(1506~1544) 때인 1519년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현으로
유배를 왔던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이 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소동파가 선유하며 유명한 적벽부를 지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적벽이라 부른것이 화순적벽의 이름이 되었다.
물염정(勿染亭)
김삿갓을 비롯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찾았던 상류의 노루목적벽
(이서적벽)은 1985년 동복댐 건설로 수몰되어 25m가량 잠겨버렸다.
화순 적벽은 198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었고,
2017년 국가 명승 제112호로 승격되었다.
뒤편에서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성묘객과 실향민을
제외한 일반인의 출입은 특정시간대의 셔틀버스외에는 제한되어 있어,
창랑리의 물염적벽과 물염정, 그리고 창랑적벽의 절경을 둘러본다.
물염정(勿染亭)은 물염 송정순(宋庭筍)이 물염적벽 맞은편
언덕에 세운 정자로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뜻이라 한다.
송정순은 1558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 춘추관
박사를 거쳐 무안 현감, 구례 현감, 영암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을사사화를 당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화순 동복에 물염정을 짓고
은거하다가 여생을 마쳤다.
물염정 마루위의 시판들
당대의 뛰어난 유학자 김인후(1510~1560)도 적벽 관련 시를 남겼으며,
조선 중기의 문인이며 임란시 의병장이었던 제봉 고경영(1533~1592)은
무등산 일대를 유람하고 기행문인 "유서석록"을 써 기록으로 남겼으며,
청년의 다산 정약용선생도 이곳 적벽을 둘러보고 시와 기행문을 남겼다.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도 이 곳에서 방랑을 멈추고 생을 마치는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을 다녀가면서 시와 기록들을 남겼다.
물염정(勿染亭) 편액
제물염정(題勿染亭) ~ 신재 최산두(新齋 崔山斗, 1483~1536)
백로가 고기 엿보는 모습 / 강물이 백옥을 품은 듯하고
노란 꾀꼬리 나비 쫓는 모습 / 산이 황금을 토하는 것 같네.
강함백옥규어로(江含白玉窺魚鷺), 산토황금진접앵(山吐黃金進蝶鶯)
마루위의 수많은 시판 편액들
물염정(勿染亭) ~ 김인후(金麟厚, 1510~1560)
명양주에 몹시 취하여 / 대취명양주(大醉鳴陽酒)
돌아와 보니 삼월 봄이어라 / 귀래삼월춘(歸來三月春)
강산은 천고의 주인이건만 / 강산천고주(江山千古主)
사람이야 백년의 손님일 뿐 일래라 / 인물백년빈(人物百年賓)
물염정기와 중수기, 시판 등
물염정 대들보 상량문
단기 4340년 세차 정해 6월 13일 무인 오시 입주, 20일 을유 사시 상량
물염정 마루에서 보는 동복천 상류
물염정 입구의 석비들 ~ 물염정 삼현선생 사적비, 물염정 전승비 등
금성나씨 화운 나영채종회장공적비, 화운송가 등
난고 김병연 시비(蘭皐 金炳淵 詩碑)
방랑시인 김삿갓(金炳淵, 1807~1863)은 이곳 화순에서
방랑을 멈추고, 죽기 전 물염정에 올라 자주 시를 읊었다고 한다.
난고 김병연의 시비(앞면)
영물(詠物) ~ 김삿갓(金炳淵, 1807~1863)
떠돌아 다니는 내 삿갓 빈 배와 같아
한번 쓰니 어느덧 사십 평생일러라.
소 치는 더벅머리 목동 들로 갈 때 차림이고
갈매기 벗삼아 고기 잡는 늙은이 그대로일세.
취하면 벗어 나무에 걸고 꽃구경하고
홍 일면 손에 들고 누각에 올라 달구경이네.
속인(俗人)의 의관이야 겉을 꾸민 것이지만
내 삿갓은 하늘 가득 비바람 몰아쳐도 홀로 근심 없다네.
난고 김병연의 시비(뒷면)
물염정 앞의 난고 김병연 시비
반석 아래에서 보는 물염정
물염정 앞에서 보는 화순 물염적벽
창랑적벽 유역
화순 창랑적벽
창랑적벽과 동복천 유역
화순 10경 유마사의 해련부도(국가유산 보물)
종을 닮은 바위위의 석탑
유마사 앞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