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야?”
해맑게 인사한 나에게 돌아온 차가운 질문.
가끔은 그쪽도 따뜻한 인사를 해줘도 될 텐데. 손을 열심히 흔들고 인사한 나만 민망해지잖아.
“네? 아- 저기.”
사장이고 뭐시고 간에 얼음같고 더욱이 싸가지 없는 건 변함이 없어. 괜히 긴장했잖아. 저 사람은 항상 아침마다 나에게 차가움과 싸가지란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람일 뿐인데.
“오늘 승현이 좀 빌려갈까 아니 데려갈까 해서요.”
“그 정도 일로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시간이 남아도나 보군.”
빈정거림.
얼음같이 차가운 사람이건 예의와는 담 쌓은 사람이건 다 상관없지만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은 내가 인간이 가야할 길을 인도해 줘야지.
“그 정도 일이라니요. 그럼 말없이 승현이를 데리고 가도 된다는 소리예요 뭐예요! 형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무관심해요. 사장이면 뭐하고 돈 많이 벌면 뭐하냔 말이에요. 아이에게 제일 필요한건 정과 사랑이란 말이에요 알아들어요!”
내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오른쪽 눈썹. 하고 싶은 말을 한건 후련하지만 무섭긴 무섭다.
위자에 앉아 있던 남자는 일어서서 나에게로 성큼 다가와서 내앞에 섰다. 크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어림잡아 봐도 나 보다 머리 하나쯤 더 큼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고개를 살짝 숙여 나의 얼굴과 대면하고 있다.
이...이사람 왜 이래. 혹시 날 때리려는 건가? 말도 안 돼! 그런데 왜 갑자기 하진이가 했던 ‘우리가 모르는 세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하기도 할 거야.’라는 말이 현재 나의 머리를 불현듯 스쳐지나가는 거냐고!
“저..저기 왜 이래요. 저..저는 당당한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자..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있으며 아..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아주 미세하지만 아주 살짝 올라간 입 꼬리. 매일 아침 보던 표정이 아닌 조금은 따뜻해진 표정이다.
지금 그게 아니지 나는 지금 코미디를 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어째서 매일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전할 때 지어야 할 표정을 지금 짓는 거냔 말입니다.
“꼬맹이 니가 왜 저 여자를 좋아하는지 알겠다.”
“나만 좋아 할 거니까 형은 좋아하지 마.”
아니 정말 이 형제가 이제는 쌍으로 날 가지고 노네!
속에서 부글부글 거리는 게 입으로 터지려는 순간.
“데리고 가.”
다시 처음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등골이 싸늘해질 정도로 차가워진 남자.
“뭐해 안 나가고.”
“네?”
“그거 허락 받으려 여기까지 온 거 아닌가?”
“그..그렇죠.”
“허락했으니까 그만 나가봐. 난 당신하고 시답지 않은 일로 대화할 정도로 여유가 많은 사람이 아니니까.”
아 네, 누구는 여유가 많아서 여기까지 찾아오고 누구는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사람을 내쫓아도 되고 참 세상 잘~ 돌아간다.
“그럼, 내일 꼬마랑 아침에 가죠. 가자 꼬마.”
[꽝-]
아~ 통쾌하다.
문이 부셔져라 닫긴 닫았는데 혹시 잡으러 나오는 거 아냐?
“꼬마, 달려!”
“아줌마 집이 여기야?”
온만 인상이란 인상은 다 쓰고 나의 아늑한 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는 승현이.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빨리 여기 와서 요리책이나 찾아.”
“뭐가 이렇게 더러워.”
“아씨 정말, 너 계속 쫑알쫑알 거리면 다시 집으로 돌려보낼 꺼다.”
“요리책이 어떤 건데?”
귀여운 자식.
단번에 내 옆으로 와서는 책상을 뒤적이고 있다.
“어떤 거긴 어떤 거야 요리책이라고 적혀 있는 거지.”
하진이가 아끼고 애지중지하는 요리책. 분명 이 근처에 꽂아두는걸 봤는데.
“나 한글 몰라.”
“뭐?”
“나는 미국에서 살았단 말이야!”
얼굴이 빨개져서는 씩씩거리는 승현이.
그렇다 이 녀석은 외국인이었던 거다. 그런 거에 비하면 한국말은 너무 잘하잖아?
“너 그럼 왜 한국말해?”
“그거야, 엄마가 한국말을 했으니까 그렇지.”
"엄마는 외국사람이라면서?"
"아빠가 한국사람이니까 한국말했어. 뭐 아빠를 본 적은 몇 번 없지만."
"음- 아빠가 바쁜 사람이었구나."
둘 중 한명이 한국사람이었구나. 하긴 승현이 형이라는 사람도 한국 사람이니까, 아니지 그럼 그 사람도 외국 피가 흐르고 있는 거구나. 승현이에 비하면 너무나 한국적인 외형이었는데.
승현이와 달리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었던 최한서라던 사람.
“그럼 너 혼혈이었던 거구나!”
“응.”
“혼혈이면 반은 한국 사람이라는 거잖아. 좋았어! 내일부터 한국어 공부에 들어간다.”
드디어 나도 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 거야! 보모면 어떻고 유치원 선생님이면 어때 아이를 가르치면 똑같은 거지. 난 특별히 개인수업을 하는 거뿐이야.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내가 원하는 유치원 선생님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위풍당당하게 나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나의 뒤통수에 알싸한 고통이 전해져온다.
“아파!”
“아..아...많이 아파?”
미안함이 가득 담긴 저 표정.
참자, 참자, 참자. 그래 아이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참아야 하느니라.
책상위로 올라가선 손을 뻗어 책을 꺼내려다가 헛손질을 해서 책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밑에서 책을 찾고 있던 나에게 정확히 명중시켰다. 누가 보면 고의적인 것이라고 할 정도로 정. 확. 히 말이다.
“어! 요리책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고의적인 것처럼 그것이 요리책이었다.
“좋았어. 이제 이것만 있으면 나는 천하무적이다. 꼬마 지금 몇 시지?”
“4시 13분.”
“벌써? 빨리 요리준비하자~”
열심히 카드를 끓고 사온 요리 재료들을 하나, 하나 꺼내서 식탁 위에 진열부터 해 놓고 다음은 요리책을 펴서 만들 음식을 찾는 거야.
요리가 이렇게 쉬운 거였으면 진작 하는 건데 말이야.
그렇게 요리책과 요리재료를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던 순간 현관에서 들리는 [찰칵]하며 문을 여는 소리.
뭐야 벌써 하진이가 온 거야? 지금 몇 시지?
정확히 짧은 바늘이 6을 가리키고 긴 바늘이 12를 가리키는 아주 영리한 시계. 나 여태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내 옆에서 쫑알쫑알 재료를 들고 장난치던 승현이도 이미 소파에 뻗은 지 오래인 듯 아주 깊은 단 잠에 빠져있다.
“누나.”
“와...왔어?”
이건 또 무안한 상황 start. 무안함에 어쩔 줄 모르는 내 입과 나의 손 그리고 요리 재료들.
“지금 뭐하는 거야?”
그리고 굳어버린 하진이.
하긴 내가 한 요리 먹고 병원까지 실려 간 놈이니 어련하겠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하면 되지. 설마 뭘 만든 건 아니지?”
아- 이 뻘쭘함과 괜스레 미안해지는 마음.
꼭 죽을듯한 표정을 하고 물으면 내가 할 말이 없어지잖아.
“벼...별거 만든 건 아니야 그냥 이것저것 책 보면서 하긴 했는데 좀 그게 말이지.”
그래 분명 별거 만들지 않았어. 그냥 책에 적혀 있는 양념들에 갈비를 넣었을 뿐이고 그저 물에 당면을 넣어 놓았을 뿐이고 그저 고추장에 떡을 넣었을 뿐이야. 그래 그거뿐이야 정말 별거 아니야.
나의 생각과 달리 부엌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절망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하진이.
“으악- 정말 내가 누나는 요리 하지 말라고 했잖아!”
포..폭발했다. 저 깨지지 않던 포커페이스가 깨지고 말았다! 이럴 땐 피신을 해야 해!
내 방으로 몸을 숨기려는 순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아줌마 다했어?”
아! 승현이가 자고 있었다.
“어? 형아!”
그리고선 하진이에게로 달려간다? 이건 또 무슨 당황스러운 연출이래?
“너...너...너 왜 여기 있어?”
오늘 여러모로 저 포커페이스 하진이의 다양한 표정을 감상 할 수 있는 귀한 날이구나.
그나저나 둘이 아는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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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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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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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22 00:52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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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재밋어용 ㅋㅋ
이 새벽에 안 주무시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헉;; 혹시 하진이가 저녁에 승현이를 돌봐주는 보모+ㅁ+???/
매번 꼬릿말 감사합니다. 정말 꼬릿말 보며 힘이 난다니까요. 하진이가 보모라 그건 퀴즈로 남겨두죠~ 궁금하면 계속 읽어 주시는 센스 아시죠?
아아 오타발견!! 밑에서부터 10번째 줄에서 정말 내나 누나는이아니라 정말 내가 누나는 같애요 ~ 근데 오타있어도 재밌긴 마찬가지예요 ㅋㅋㅋ
감사해요~ 오타 수정했습니다^^
재미있어요 !!! ㅋㅋㅋㅋ 아 어떻게 저 둘이 아는 사일까,,
ㅋㅋㅋㅋㅋ이게또우째된거야?ㅋㅋㅋㅋ
하진이랑 꼬마는 아는 사이.....?궁금해ㅜㅜ
재미잇게 보고있습니다...^^ 근데 하진이랑 승현인 우찌아는사이래요??? ㅎㅎㅎ
뭘까요
정말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