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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역사바로알기 스크랩 남존여비가 아닌 공경에 기초한 조선시대 부부관
기라성2 추천 3 조회 207 18.01.23 07:15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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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1.23 10:02

    첫댓글 너무 미화만 할 건 아닙니다.

    조선 후기의 그 악질적인 남존여비,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비하면야 조선 전기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남녀존중에 가까웠다는 것은 분명하나, 조선 전기의 문화가 오늘날 기준으로까지 남녀존중이라 말할 정도로 아주 바람직한 문화는 아니었으니까요.

    가령 본문 사례로 소개된 미암 유희춘과 그 아내 송덕봉의 이야기만 보면, 유희춘이 아내를 극진히 존중한 것처럼 보이나 본문의 이야기는 유희춘의 여성관 중 극히 일부만 드러낸 것입니다.

    사실 미암 유희춘은 부부간의 사랑보다는 다른 쪽으로 더 유명한 인물입니다. 바로 얼녀(천첩에게서 낳은 딸)를 속량(돈이나 곡식 등을 바치고 양인으로 신분전환)

  • 18.01.23 09:58

    한 것으로 유명하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547년 무렵에 함경도 종성으로 귀양을 가서 그 곳에서 이구(李懼)라는 양반의 사노비인 굿덕(仇叱德)이라는 여성과 눈 맞아 같이 살면서 딸 4명(해성, 해복, 해명, 해귀)을 낳습니다. 어미가 천출이니 딸들은 모두 얼녀이며, 신분은 노비가 되었지요. 이로 인해 유희춘은 굿덕의 신공(외거노비가 매년 주인집에 바치는 공물)을 대신 바쳐 주기도 합니다.

    유희춘은 첩(굿덕)에게서 낳은 4 딸의 신분을 모두 양인으로 바꿔 주려고 하는데, 이를 위한 첫 단계는 딸들의 소유권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유희춘은 첩 굿덕의 소유권을 가진 이구 집안 및, 굿덕의 원 소유권자인 이구의 처가

  • 18.01.23 10:01

    최씨 집안 및 이구 이외의 다른 사위 홍씨 등과 계속 교섭하면서 뇌물/선물도 주고, 심지어 이구의 아들에 대한 인사청탁까지 해 줍니다. (참고로 이 때 굿덕의 신공이나 굿덕 딸의 속량을 위한 각종 뇌물/선물 중에는 본처 송 부인이 마련하는 부분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유희춘이 얼녀 4명의 속량을 위해 오래 노력한 모습을 보면, 유희춘이 과연 본처인 송덕봉을 크게 존중하고 송덕봉과 아름다운 사랑만을 했는지는 좀 의문이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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