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새벽에 요사채 방문 열고 밖에 섰다
승복 한 벌 가을비에 젖고 있다
두 철째 묵언중인 젊은 납자
가슴에 다 마르지 못한 것들 저리 많았는가
속살 베이도록 단단히 풀기 먹였는데
잠시 고개 돌리면
이 산중에서도 젖고 또 젖었다
두어라, 서둘러 걷을 일 없다
빳빳이 세웠던 풀기 다 빠져야
곧추선 허리 풀린다
그리운 이름 한 사발쯤 가슴으로 젖어야
이 겨울, 다시 눈 푸르게 넘기지 않으련
비 들이친다 문 닫아라!
박규리 시인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아대 예술대원 문예창작과정을 수료, 1995년 <민족예술>에 '가구를 옮기다가'외 4편을 발표하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 환장할 봄날에”
아이러니하게도 박규리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의 첫 시는 입추다.
시인은 이 환장할 봄날, 벌써 입추를 예견한 것일까?
지난해 시집을 사 읽었다가 며칠 전에 다시 끄집어내어 읽어 본다.
종고모님이 작은 암자에 기거하는 이유로 어린 시절의 상당부분을 절에서 지냈다.
걸어서 시오리 길이나 되었지만 방학만 되면 살다시피 했다. 산자락을 끼고 요사채 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안채가 있었고 달랑 대웅전과 산신각이 전부이던 말 그대로 암자였다.
산신각 아래 물맛이 참 곱던 샘이 있어 자주 찾았던 기억이 있다. 결혼을 하고 다섯 남매까지 낳은 종고모는 요즘말로 어울리지 않지만 호인이었다. 스님이기 전에 여자로서는 어울리지 않은 호탕한 웃음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게 하던 모습과는 달리 가냘픈 몸에 늘 술로 지내시던 잔소리군 종고모부는 환갑도 못되어 고모님이 돌아가시고 이듬해 뒤따라 가셨다.
지금은 수몰되어 자리를 옮겨갔지만 절이 있던 곳은 가끔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물속에 갇힌 샘은 지금도 고운 물을 토해 낼까?
첫댓글 네에, 향내가 그리운 가을길목입니다. 수몰된 절터에 관한 이야기들이 시어로 풀어질 날 기대합니다. 박시인님 한가위 잘 보내십시오.
흠~ 그대님을 대한지 어찌 이리 오래요 님의 향기가 지난 날 낙엽 같으니 손만대도 바스질 듯 가녀리요 자주 향기 내어 주시오 그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