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시루섬의 기적’ 주인공들, 반세기만에 다시 만난다
1972년 단양 폭우로 남한강 범람
섬주민 250명 물탱크 등 붙잡고 14시간 사투 끝에 극적으로 구조
무인도로 변한 고향땅 19일 방문,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 영상 증언
충북 단양군은 ‘시루섬의 기적’ 50주년을 맞아 그날의 긴박하고 극적인 이야기를 널리 알리기 위해 19일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사진은 단양중 학생들이 50년 전 수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모습. 아래쪽 사진은 50년 전 수해 당시 주민들이 물과의 사투를 벌인 물탱크 모습. 단양군 제공
1972년 8월 19일 태풍 ‘베티’가 몰고 온 비구름이 사흘간 충북 단양에 폭우를 쏟아부었다. 이 비로 남한강이 범람하면서 행정구역상 단양읍 증도리에 속해 있던 6만 m² 면적의 ‘시루섬’ 전체가 물에 잠겼다. 섬에 살던 44가구 250여 명의 주민들은 급격히 불어난 물을 피해 물탱크와 원두막, 철선 등에 올라 서로를 붙잡고 버텼다.
높이 6m, 지름 5m의 물탱크에는 190여 명이 올라가 14시간을 버티다 구조됐다. 이 과정에서 생후 100일 된 아기가 압박을 못 이겨 숨을 거뒀지만, 아기의 어머니는 이웃들이 동요할까 봐 밤새 아기를 껴안은 채 슬픔을 삼켰다. 단양에서는 이 일을 ‘시루섬의 기적’으로 부르고 있다. 이 시루섬의 기적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이 50년 만에 ‘해후’한다.
시루섬의 현재 전경.
단양군은 시루섬의 기적 50주년을 맞아 당시의 긴박하고 극적이었던 생존담을 알리기 위해 19일 단양역 일원에서 기념행사를 연다고 16일 밝혔다.
행사는 생존자 60명이 충주호 관광선을 타고 현재는 무인도로 변한 고향 땅 시루섬을 방문하며 시작한다. 이어 △희생자 추모 천도재 △마을자랑비 이전 제막식 △50돌 합동 생일잔치 △영웅들의 이야기 등으로 진행된다.
50돌 생일잔치는 “물과의 사투 당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주민 모두가 동갑이니 시루섬에 가서 생일잔치를 하자”는 취지의 염원을 담았다. 영웅들의 이야기는 시루섬 그날 다큐멘터리 공연, 생존자 영상 증언, 물탱크 생존 실험 상영 등으로 구성됐다.
이어 ‘영웅’ 호칭 헌정과 당시 인근 마을주민들이 시루섬 주민들의 생존을 기원하며 밤새 불을 밝혔던 ‘희망의 횃불’ 점화식이 열린다. 참석자들은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주민들의 희생과 헌신 정신을 기릴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시루섬 주민들만 남아 50년 동안의 회포를 푸는 ‘짧은 만남 긴 이별’을 끝으로 행사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 만남에 앞서 지난달 21일 단양읍 문화체육센터에서는 ‘시루섬 모형 물탱크 생존 실험’이 진행됐다. 이날 도우미로 나선 단양중 학생들은 차례로 지름 5m, 높이 30cm 크기의 모형 물탱크에 올라섰다. 안전을 위해 높이는 30cm로 조정됐다. 50년 전 물탱크에서 살아남은 인원과 같은 197번째 학생이 모형 물탱크 위에 오르면서 그날의 기적이 사실임이 입증됐다. 실험 장면을 지켜본 시루섬 생존자 김은자 씨(66)는 “물탱크를 내려오니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시커먼 물바다 속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눈물이 난다”라고 회상했다.
이번 만남과 생존재현 행사는 김문근 단양군수가 단양부군수로 재직하던 2013년 시루섬 생존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사실을 구체화하면서 시작됐다. 군은 앞으로 시루섬의 기적을 소재로 한 책 출판과 영화 제작 등을 할 계획이다.
김 군수는 “시루섬의 기적은 3만 명 인구가 무너지며 지방소멸지역으로 지정된 현재의 위기 상황 속에서 기억해야 할 단양의 정신”이라며 “시루섬의 아픔을 기억하고 당시 주민들이 보여준 단결과 희생의 정신을 계승해 단양 발전을 위한 희망의 씨앗을 틔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