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주)
* 시작 기도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주님...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친히 새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새 언약이 무엇이냐고 아무도 묻지 않은 것은 이미 구약에 정통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렘 31:31-34).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맺을 새 언약은 모세와 맺었던 옛 언약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인데, 이 새 언약을 십자가 지기 전날 밤에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이 성취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새 언약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이 죄인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새 언약을 알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예수께서 성취하신 참된 새 언약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복음을 압니다.
그 복음의 시작도 예수님이며 과정과 성취도 예수님이십니다.
그 복음 안에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오늘 공동체로 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소서.
어느 곳에서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마다 성령 충만한 예배가 있게 하소서.
내가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드리는 영과 진리의 예배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계 12:1-6
제목 :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1/3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기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 나의 묵상
요한은 하늘에 나타난 큰 표적을 보았다.
그것은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그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할 때가 이르자 해산의 고통으로 부르짖었다.
그런데 하늘에 또 다른 표적이 보였는데 곧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일곱 면류관을 쓴 큰 붉은 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1/3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
그리고 그 붉은 용은 여자가 해산하면 아이를 삼키기 위해서 그 여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여자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가진 자이다.
그 아이가 하나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갔다.
그리고 여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야로 도망하여 1,260일 곧 3년 반 동안 보호를 받았다.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이 교회는 단순히 유형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살기를 투혼하는 영생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이다.
이 교회는 해를 옷 입고 달을 딛고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쓴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임이 분명하다.
이 교회가 임신을 하고 해산할 때가 되어 부르짖는다.
드디어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로서 하나님 앞으로 올려갔다.
이 아이는 다름 아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물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낳으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자가 아이를 잉태하여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낳았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출현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참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이는 곧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늘 교제하며 아버지 품속에 있는 아들(요 1:18)과 같이 또한 아들의 품속에 있는 주의 자녀들을 계속해서 낳아야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에 있는 큰 붉은 용이 이 아이를 삼키려고 온갖 술책을 써서 궤계를 부린다.
그러나 아이가 하나님 앞으로 올려가자 여자는 큰 용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한다.
그 광야에서 1,260일 곧 3년 반 동안 보호를 받는다.
광야는 도망가기에 적합한 곳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숨을 곳이 없이 모두 오픈된 개활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곳곳에 사나운 들짐승들이 숨어 있어 어디서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곳이 바로 광야이다.
하지만 이 광야를 성전 삼고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했던 이가 있다.
바로 다윗이다.
(시 63:1-2)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다윗은 왕이 되었지만 그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의 자리인 왕권을 넘보았다.
그리하여 쿠테타를 일으켰다.
목숨이 위태로운 경각에 있을 때 그는 다른 곳이 아닌 유대 광야로 피신하였다.
그곳은 세상의 누구도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광야지만 자신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을 성소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광야인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다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광야로 가서 40일 동안 기도하셨다.
물론 그곳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았지만 그곳이 바로 가장 안전한 아버지의 품속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넉넉히 그 사탄의 유혹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이제 오늘 우리가 가야할 곳은 다름 아닌 광야이다.
어둠이 깊어지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
혼자서 고독하여 낮아지게 하는 광야.
세상 어디에도 기대거나 의지할 것이 없기에 오직 주님만 의지하게 하는 곳 광야.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물인지 알 수 없는 곳 광야.
그래서 오직 길 되신 주님만을 찾을 수밖에 없는 곳 광야.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광야교회로 이끄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셨던 하늘의 광야.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온갖 죄의 먼지를 다 씻기시고 벗겨내기 원하셔서 주님의 피가 묻어 있고 주님의 보혈이 넘치는 반석되신 주님의 광야.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곳 광야.
위로부터 다시 아들의 생명으로 태어나야 하는 곳 광야.
거듭남은 오직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인데(벧전 1:23), 그 말씀이 있는 장소인 광야.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어로 ‘다바르’인데, 히브리어로 ‘미드바르’는 광야를 뜻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광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광야 곧 고통과 위험이 자욱한 광야를 싫어하였다.
그래서 광야를 피하여 살기 원했고 또한 그렇게 피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는 곳이 광야인 것을 몰랐던 나는 너무도 어리석은 자였다.
하나님께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의 옷을 입혀주시고 달을 밟고 서 있는 놀라운 통치권과 열두 별의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승리의 왕권을 주시는 곳이 바로 광야인데 나는 그것을 몰라도 넘나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저 육신적으로 편한 곳, 내가 좋아하는 곳, 내가 가기 원하는 곳으로만 나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곳은 또 다른 광야였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나를 추적하셔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시며 생명의 교제가 있는 곳인 광야로 나를 이끄셨다.
비록 유형적인 교회가 깨지고 난파선과 같이 넘어질지라도 생명이 있는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하여 고난의 광야 속으로 밀어 넣으신다.
그런 사랑의 결정체가 있는 고난의 광야에서 생명의 복음을 알게 되었고 가장 안전한 주님의 품안에서 안식과 평강을 누리고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곳 역시 광야이다.
그 광야는 길이 보이지 않지만, 나의 길이 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두렵지 않다.
진리의 두 중심축인 아들의 생명과 창세전 약속을 믿기에 나는 담대히 그 길을 걸어간다.
나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님의 손을 잡고...
(찬양) 광야를 지나며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 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이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어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가는 길은 광야, 그 자체입니다.
내가 피하길 원했고 피하여 왔던 광야였으나, 알지 못하고 지나온 그 길이 바로 주님이 이끄신 광야였음을 고백합니다.
내 인생이 험하고 마음은 지쳐 살아갈 용기가 없어지는 광야에서도 주님은 늘 나와 함께하시며 나의 도움과 의지가 되어 주셨나이다.
나를 돌아보면 나는 아무 쓸모없고 가치 없는 자인데 이런 나를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보호하고 돌보셨는지요?
그런 나를 진흙구덩이에서 건지사 맑은 물로 씻어주시고 너는 내 것이라 불러주셨음에도 나는 여전히 주님을 떠나 살아온 자요 배반자이며 패역자입니다.
이런 나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창세전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어 당신의 생명을 주셨사오니 내 안에 그 생명으로 인하여 하늘의 기쁨이 넘치나이다.
오늘도 그 기쁨이 나의 힘의 원천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