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도 꽃이랴."
"호박벌도 벌이랴."
호박꽃과 호박은 못생긴 처녀나 아낙네를 빗대어 하는 말이라면 호박벌은 어리숭하고 지지리도 못난 총각이나 남정네를 빗대어 하는 말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다른 날보다 좀 일찍 일어나 호박을 심었다. '호박은 거름만 많이 주면 늦게 심어도 잘 달린다.'는 옛 어른들 말씀을 상기하며 예년에 비해 좀 늦기는 했어도 변소 옆 적당한 거리에 널찍하게 구덩이를 파서 넉넉하게 퇴비를 넣고 그 위에 복합비료를 서너 움큼 뿌린 다음 다시 흙을 덮어 부드럽게 북을 만들어 물에 불린 호박씨를 심었다.
열흘쯤이면 흙이 갈라지면서 어김없이 복스런 새싹이 올라온다. 넉넉잡아 달포
남짓하면 풋풋한 호박 넝쿨이 변소 지붕을 기어오르면서 노란 호박꽃은 초롱불 처럼 피기 시작하여 무서리가 내릴 때까지 피고 지기를 계속한다.
암꽃에는 애호박이 달린다. 동그스름하거나 갸름한 얼굴에 송송 이슬이 맺히면서 하루가 다르게 굵어 가면 놈을 똑 따서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주고 싶기도 하다.
더러는 사람의 눈을 피해 덩굴 속 은밀한 곳에서는 가만가만 들키면 큰일나는 숨들을 쉬면서 저 혼자서 굵어 간다. 차츰 덩굴 세(勢)가 약해지는 가을이 가까워 오면 그제야 수줍은 듯 나 보란 듯이 달덩이 같은 얼굴을 드러내기도 한다.
수꽃도 마냥 무심히 피었다 지는 것은 아니다. 암꽃보다 더 일찍 더 많이 피면서 벌에게는 꿀을 주는 대신 암꽃에 가루받이(受精)를 시키는 식물의 일생 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은 원뿔 모양의 어린 수꽃을 따서 포르르 된장찌개에 끓여 내면 그 기막힌 맛과 향을 요즘에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잎 또한 밥이 뜸들 때쯤 밥 위에 얹었다가 쌈을 싸서 먹으면 입천장의 가슬가슬한 감촉과 쌉싸래한 맛은 가히 예술이다.
호박 추수는 반드시 서리가 내리기 전에 한다. 이때까지도 애호박인 놈들은 얄팍한
두께로 썰어 도타운 가을볕에 잘 말려 호박고지를 만들기도 하며, 누르스름하게 잘 익은 놈들은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 호박범벅을 쑤어 먹으면 제 맛이 난다. 뿐만 아니라, 굵직하고 모양 좋은 놈들은 두어 덩이 따로 골라 장롱 위에 얹어두고 바라보기만 해도 삼동이 넉넉하다.
호박처럼 한 그루에서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는 식물은 오이, 참외, 수박, 오리나무, 소나무 등 무수하게 많다. 이런 식물을 자웅동주(雌雄同株)라고 한다. 동물 중에도 달팽이, 거머리, 지렁이, 멍게, 미더덕 등과 같이 암수 구별이 없이 하나의 개체인 것을 자웅동체(雌雄同體)라고 한다.
태고 적에 땅 위에 출현한 호모사피엔스는 양성(兩性)의 기능을 함께 가진 안드로기노우스였다고 한다. 안드로기노우스는 육체와 뇌가 커서 초능력을 갖게 되어 급기야는 신의 영역까지 넘보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심기가 뒤틀린 신은 구조조정을 통하여 몸을 둘로 가르고 자웅을 분리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간들은 그때부터 잃어버린 진정한 나의 반쪽(my batter half)을 찾아 끊임 없이 한 몸이 되려는 본능을 갖게 되었으며, sex라는 단어는 라틴어 sectus(끊어서 갈라놓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몸이 자웅동체였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물론 남녀 구별이 없었으며 남녀간에 아름다운 사랑도 없었을 것이다. 그 위대한 사랑의 힘은 오늘날 이 지구상에 수많은 인류를 번성케 하면서 나날이 새로운 인류문화를 창조하는 유장한 원천이 아니었을까? 또한 그 사랑으로 인하여 숱한 슬픔과 고통도 생겨났으며,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과 배신도 정녕 그 사랑 때문에 있었으리라.
먹고 먹히는 치열한 동물의 세계에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나서 죽을 때까지 제자리를 지키는 식물의 세계에서도 나름대로 순수한 사랑이 있을 것이다. 하찮은 한 마리의 곤충과 한 포기의 식물 사이에도 그냥 생존의 본능이라고만 여기기에는 안타까운, 어쩌면 인간보다 더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몇 년째 호박을 심으며 알았다.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 나는 이른봄부터 대부분의 벌들은 부지런하면서도 민첩한 행동으로 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모으기 시작하지만 어리호박벌은 봄이 저물 즈음에야 슬그머니 나타나 다른 벌들이 이미 거쳐간 꽃을 찾으니 자기 딴에는 아무리 부지런히 다녀도 항상 꿀벌이나 땅벌에 비하여 소득이 적은 편이다. 한로(寒露)가 지나고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가까워 오면 대부분의 꽃들은 진작 지면서 결실을 서두르면, 대부분의 곤충들도 알을 낳고 생을 마감 하거나 충분한 량의 꿀을 모아 겨울 채비를 한다.
호박꽃은 어차피 맺지 못할 결실인 줄 아는지 모르는지 무서리가 내릴 때까지 끊임없이 피고 지기를 계속한다. 이때까지 어리호박벌도 석양녘의 갈길 바쁜 나그네처럼 분주하게 호박꽃을 찾아다니다가 해가 저물면 미쳐 집까지 돌아가지 못하고 그냥 호박꽃 속에서 하룻밤을 머물어 가는 놈도 있다.
"어리호박벌이라고 하는 지나는 길손입니다. 가을날이 어찌나 짧은지 어느새 날이 저물어 하룻밤 머물까 하여 왔습니다만......"
"바깥 날씨도 이리 찬데 어서 오세요. 어리호박벌님"
"정말 향기롭고 포근한 방이군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손님이 신지요?"
"온 곳도 갈 곳도 모르는 가을 나그네지요. 이제 가을날이 얼마 남지 않아 내일 날이 밝으면 어디론지 또 다른 호박꽃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무척 고단해 보이는군요. 내일 아침 일찍 깨워 드리겠습니다."
어리호박벌은 꽃 속에 들어 갈 때는 그냥 불쑥 들어가는 법이 없다. 꽃잎에 조용히 앉아 조심스럽게 꽃 안의 사정을 살핀 다음 들어간다. 꽃 속에서 나왔을 때도 댓바람에 그냥 날아가는 법이 없다. 꽃 주위를 두어 바퀴 선회한 다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호박꽃을 찾아 정처 없이 날아간다.
선회하는 그 의미는 아마도 포근한 잠자리를 마련해 준 온정에 대한 감사의 몸짓이며, 하룻밤 맺은 풋사랑에 대한 아쉬움이며, 영영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마지막 작별의 인사가 아닐까?
겉보기에 색깔이나 생김새가 아름답지 못한 꽃이 호박꽃이다. 장미의 화려함도 라일락의 감미로움도 코스모스의 청순함도 지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꽃도 지니지 못한 순박한 시골 처녀의 때묻지 않은 순결을 지닌 꽃이다.
어리호박벌 역시 못생기고 덩둘하게 보인다. 나나니처럼 날씬한 허리는 가지지는 못했어도 나부대지 않는다. 다른 벌처럼 민첩한 행동도 할 줄 모르는 듬쑥한 시골 총각의 모습이다.
하찮은 미물이지만 호박꽃과 어리호박벌에 얽힌 이 얼마나 지순한 사랑의 이야기인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드라마인가! 누가 감히 못생긴 여자와 남자를 호박꽃과 호박벌에 비유하려 하는가.
나는 올해도 한 포기의 호박을 심으며 머지않아 변소 지붕 위를 기어오른 풋풋한 호박 넝쿨에 필 노란 호박꽃의 이미지며 호박꽃을 찾아올 한 마리 어리호박벌을 그리면서 그들만이 엮어 가는 참으로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