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비 안 오겠지요?
정 원 탁
1
뭉게뭉게 헤매구르던 구름덩이들이 한데 뭉치더니, 이윽고 비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기 시작한다.
나는 골프 우산을 받쳐들고 300 미터 쯤 떨어진 상떼빌노인정을 향했다.
옆동 모퉁이를 돌자, 자주색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는
한 할머니가 시야에 들어온다.
“툭, 툭, 투득, 툭!”
할머니는 70 도 쯤 굽은 허리를 참나무 지팡이에 의지하고, 보도블록만
쳐다보며 서둘러서 집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나는 큰 소리로,
“어머니, 비 안 맞으셨어요?”
무슨 소리에, 극노인은 길 바닥으로 향한 머리를 천천히 위로 쳐든다.
누군가 하고, 돋보기를 낀 두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이내 아들임을 알아차린
노인은 주름투성이의 온 얼굴에 기쁜 빛을 띄며, 손사래를 치신다.
“응, 나는 괜찮어.”
“그냥, 노인정에 계시지. 비가 오면 제가 모시러 갈 텐데......”
올해로 꼭 100 살이 되신 어머니는, 행여 자식네가 모시러 갈까 봐 평소보다
빨리 노구를 이끌고 내려오시는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6. 25 골육상잔 때, 공개적인 고문(매질)으로 혼절했으나
차가운 물을 끼얹자 가까스로 깨어나셨던 어머니.
남보다 넉넉히 잘 살아보겠다고 억척같이 밤과 낮을 잊고 사시던 분이었지만,
그놈의 사상인가 뭔가 때문에 가슴 속이 숯덩이가 되었던 어머니.
얼마 못가서 돌아가실거라고 너나없이 여겼으나, 불가사의하게도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신 분일 줄이야 당신조차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뭇잎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점점 잦아져, 나는 우산을 접고 어머니와 나란히
집으로 향했다.
2
예나 이제나, 새봄과 장마 끝 무렵엔 날씨가 이를 데 없이 변덕스럽다.
아침을 들기 직전만 해도 주룩주룩 내리던 장대비가, 밥을 다 먹고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딱 멈추었다. 7월 하순이니까 지루한 장마가 끝날 때도 되었다.
온 하늘을 꽉 덮었던 먹장구름에 흐릿하게나마 균열이 생기는가 싶더니 한 두
덩어리씩 서북쪽으로 흩어지며, 남서쪽 하늘의 구름층이 군데군데 엷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제는 비 안 오겠지요?”
“장마 끝 무렵이라 도통 알 수 있어야지? 꼭두새벽부터 줄곧 퍼부어댔으니,
앞으로 오는 비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비인데.”
까맣게 그을렀지만 반짝거리는 얼굴의 어머니는, 낡은 지우산을 받쳐들고
채소나 깨, 콩 등이 간밤의 세찬 비에 쓰러지지 않았나, 혹시 물창들지나 않았나
하고 이 밭 저 밭을 돌아다니다가 방금 들어오셨다.
한편, 군자풍의 얼굴에 풍성한 반백의 긴 수염 때문에 실제보다 십년은 더 들어
보였던 아버지는, 동이 트기도 전에 밀짚 모자에 도롱이를 둘러쓰시고 물꼬를
보러 삽을 들고 논배미로 나가셨다.
대부분의 민가에는 아직 시계나 라디오가 없던 6. 25 사변 이듬해였다.
농군들은 종전 경험이나 가늠으로 날씨도 예측하고 매사를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하늘의 조화를 어떻게 할 수야 없겠지만, 비는 더 이상 안 올 것 같구나.
옛날부터 어른들은 ‘밤에 비가 많이 내리면 아침엔 갠다’고 말했었지.”
나는 어머니의 예측을 믿고, 우산없이 사립문을 나섰다.
나뿐만 아니라 어릴 적 그 누구인들,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들고 싶어 했겠는가?
요즘처럼 좋은 베우산이나 접는 우산은 아예 볼 수조차 없었고, 기름 먹인
지우산이 고작이었는데 그나마 시일이 좀 지난 것은 곰팡이가 피어 잘 찢어졌을
뿐만 아니라, 살대가 쉬이 부러지고 센바람이나 돌풍이 불면 휠떡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죽산초등학교는 우리집에서 3 킬로 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때문에 중도에서
해찰만 하지 않으면 한 시간 내에 넉넉히 도달할 수 있었다. 통학로는 세 갈래가
있었으나, 눈 비가 잦은 겨울, 여름에는 낮은 언덕길과 넓은 신작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도 검정 고무신을 신고 돌돌 만 책보를 옆구리에 끼고서 간혹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서쪽에 있는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알 수 없는 게 장마 끝
무렵의 날씨가 아니던가? 중간 쯤에 있는 ‘돌구덩이’ 께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덧 명의 꼬마들은 500 미터 쯤
전력 질주하여, 어느 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旌門) 비각’ 처마 밑에 죽
늘어선다. 우르릉 꽝! 하더니 기관총을 난사하듯 굵은 비를 사정없이 쏟아
붓는다. 내 무명바지와 모시베 웃옷은 흠뻑 젖어 살갗에 찰싹 달라 붙었다.
갑작스런 소낙비에 사내애든 계집애든 모두 비에 젖은 가련한 병아리 꼴이
되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키득키득 웃어대며 비가
멎기를 빌었다.
한 10 분 쯤 지났을까? 빗줄기가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구름 사이로 몇
가닥 햇살이 쏵 내비쳤다.
다시 1 킬로 쯤 뛰다걷다하여 학교가 있는 동산 옆길을 지나갔다. 사변 직전만
해도 동산의 숯가마 굴뚝에서는 시커먼 연기나 하얀 연기가 수시로 뿜어져
나왔는데, 언제부터인지 굴뚝이 무너져 내리고 험상궂은 몰골이 되어 유령집
처럼 보였다. 두 차례나 큰 전쟁을 치르면서 감시를 소홀히 하는 산야의 나무는
보이는 족족 베어버렸으니, 대부분이 들녘인 이 고장 어디에서 숯으로 쓸 나무를
구할 수 있었으랴.
그래도 동끝의 토담집 마당 가에는 노란 해바라기 꽃들이 활짝 피어, 드디어
작열하는 태양의 계절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하교길에 올랐다.
젖은 몸과 옷은 체온과 바람에 모두 말랐다. 두 세 권의 책 표지들이 아직도
수분을 머금고 있어 축축했으나, 집에 가서 마루에 펴 놓으면 금세 마를 것이다.
광활한 들 바람이 똘 가 솔숲을 지나 아이들의 가슴패기를 간지럽힌다.
꼬마들의 얼굴에 풋풋한 생기가 감돌고, 시시껄렁한 얘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집에 당도했다.
미노가 사립문 밖으로 나와 꼬리를 흔들며 반가히 맞이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소 대로 논 밭에 나가 계시고, 막내누나만이 중문 밖의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뒤안에 가서 진창에 더러워진 발과, 땀과
빗물에 전 몸을 우물 물로 씻고나서 청룡날에 올랐다.
너머뜸 위로 변산 울금바위가 뚜렷이 보이고, 한물(洪水)져 바다를 이루었던
되평들의 흙탕물이 많이 줄어서, 뒤짚힌 배처럼 보이던 초가집과 큰 논둑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결에 뒤따라 나왔는지, 미노가 잔솔 숲 사이
를 즐겁게 누비며 뛰어 다닌다. 남녘 앞들 위에는 회색 구름과 희뿌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며 흩어진다.
앞 논 위에서 사이좋게 공중곡예를 하던 한 쌍의 제비가 잽싸게 낙하하더니,
볏잎을 스치고나서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 초옥 처마로 날아간다.
(2004. 7.)
첫댓글 항상 나는 괜찮다고만 하시는 어머니, 지금도 제 테이블 뒤에서 수 만 번 되풀이했을 화투패 짝맞추기를 하고 계시는군요.
어머니 비 안 맞으셨어요? 하는 크라네보미님과 어머님의 모습이 그려지는 군요. 어머니님이 아직까지 고운 모습을 간직 하고 계실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크라네보미님, 언제나 좋은 글 고맙습니다. 어머님이 100세시라고 하셔서 참 경이로웠지요.... 게다가 건강하시기까지.... 항상 밝은 나날 되소서...(아참, 오늘 아침에 님의 목소리가 꼭 30대 같았습니다. 어찌나 우렁차시던지............ㅎㅎㅎ
그리고 초원님, 참 반갑습니다. 모처럼만에 꼬리글 고마워요..글쿠, 날마다 좋은 일만 생기시기를 바랍니다요^&^*
난정 선생님, 감사 또 감사합니다. 일은 잘 처리되셨나요? 초원 님, 늘 풋풋함을 지니고 계실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