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동물 보호소 - 김명기
버려진 개 한 마리 데려다 놓고
얼마 전 떠나버린 사람의
시집을 펼쳐 읽는다
슬픔을 더 슬프게 하는 건
시만 한 게 없지
개 한 마리 데려 왔을 뿐인데
칠십 마리의 개가 일제히 짖는다
흰 슬픔 검은 슬픔 누런 슬픔
큰 슬픔 작은 슬픔
슬픔이 슬픔을 알아본다
갈피를 꽂아두었던
시의 가장 아픈 문장에
밑줄을 긋고 나니
남은 문장들이 일제히 눈가에 젖어든다
슬픔은 다 같이 슬퍼야 견딜 수 있다
근본 없다는 말 - 김명기
마당가 배롱나무 두 그루에 꽃이 한창이다
한 그루는 장날 뿌리째 사다 심었고
한 뼘쯤 더 자란 나무는 가지를 베어 꺾꽂이했다
뿌리째 심은 나무는 사방 고르게 가지를 뻗어 꽃 피우고
베어 심은 것은 뿌리내리며 가지를 뻗느라 멋대로 웃자랐다
그중 제일 먼저 뻗은 가지는 땅을 향해 자란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을 힘 다해 살았겠지
기댈 데가 없다는 건 외롭고 위태롭다
죽을 수가 없어 죽을 힘 다하는 생
뿌리가 얼마나 궁금했으면 아직도 땅을 향해 자라날까
무심코 내뱉는 근본 없다는 말에는 있는 힘 다해 뿌리내리며
허공을 밀어 올리는 수없는 꺾꽂이 같은 삶이 깊숙이 배어 있다
새들의 거처- 김명기
날이 저물면 새들은 뒷산 조릿대 숲으로 돌아온다
댓잎을 들치고 자리를 잡느라 부산스럽지만
어둠이 내리면 울음소리조차 잠잠해진다
새들은 페루에서 죽는다는데
한 번도 그런 새를 본 적이 없다
그가 본 것은 페루에서 살다 죽은 새들이겠지
종일 허공을 움켜쥐고 있는 것들도 저녁이 되면
발 딛고 잠들었다가 날 새기 무섭게 출근하듯
각자 하늘로 날아오른다 텅빈 대숲은
바람을 불려들여 종일 소지하느라 분주하다
새의 잠꼬대를 흉내 내며 묵은 깃털을 털어내거나
구겨진 침대보를 살피듯 반듯하게 허리를 편다
어떤 목숨이든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지혜롭나
새들의 거처에는 흔한 고지서 한 장 날아오는 법이 없는데
날마다 무언가 날아와 쌓이는 사람의 거처는
어둠을 견디기 위해 또 불이 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