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명동(鳴動)’의 뜻은 ‘크게 울리어 움직이다’이고, ‘충수돌기’는 소장이 끝나고 대장이 시작되는 부위에 있는 주머니 모양의 연결 부위, 즉 ‘맹장’의 의학적 명칭이다. 시인의 몸과 마음을 환하게 불 밝히는, 작년에 떼어낸 충수돌기까지 환하게 불이 들어올 만큼 큰 힘을 가진 ‘너’는 누구일까? 나를 명동시키는 너의 정체는 무엇일까? 컵에 가득 담긴 필기도구들이 해명의 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 너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 편지로 밖에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사람, 컵 속에 몸을 엉킨 필기도구처럼 한때 어깨를 맞대었던 헤어진 연인….
그러나 우리를 명동시키는 것이 어찌 러브 스토리뿐이겠는가. 잠든 의식을 일깨우는 낯선 충격, 시인을 원고지 앞에 불러 앉히는 죽비(竹비)같은 에피퍼니(Epiphany), 이를테면 새벽녘 머리맡을 적시는 빗소리 같은 것, 빗소리가 호명하는 참척의 서사, “엄마, 먼저 가서 미안해요!” 화염 속 딸아이의 마지막 문자 같은 것….
첫댓글 끝내 끝낼 수 없는
약속할 다짐마저 무너져 버린
저 건너에서 밝은 빛은 차라리
어두움의 그림자일 뿐
슬프도록 애닲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