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중앙기독초등학교에 다닌다면 4학년 2학기 초에 아빠캠프에 참가 한다는 것은 기정사실.
재작년 큰 아들 우석이에 이어 올해 4학년이 된 둘째 윤석이와 아빠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6월에 예비모임으로 시작해서 대략 두개의 미션을 수행하고 9월 초에 본격적인 아빠 캠프에 참가하게 되지요.
여름방학 동안 마쳐야 할 미션 하나는 아빠와 단 둘이 여행하기, 하루 또는 1박 2일로 단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새로운 직장에 나가게 되어 시간이 도저히 안나는 관계로 어느날 저녁 때에 대학로에 가서
제가 일했던 교사극단의 정기공연을 함께 보는 것으로 때웠습니다.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울역 앞 서울 스퀘어 빌딩에 투사되는 백남준 비디오아트를 같이 보게되어
그것도 하나의 활동으로 반영했었지요.
또 하나의 미션은 나무토막을 깎아서 경주용 자동차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 모형 자동차 경주는 아빠캠프 행사의 밤 프로그램 중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이지요.
대략 20미터 정도되는 레일을 따라 달리게 될
150 그램짜리 자동차를 하나 만들면서 아이를 위해서 바친 아빠의 시간과 노력의 흔적을 보이게 되지요.
2년 전 우석이 때 참여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동차의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차체의 크기는 줄이고
무게 중심을 앞에 두기 위한 납덩어리를 앞쪽에 갖다 붙힌다는 설계도를 머리속에 가지고 있었지요.
조각도를 가지고 나무를 깎아내다가 손 끝을 찔러 피가 나기도 했습니다만 예수님의 손바닥에 난 못자국에 비하면
이게 바로 조족지혈이구나 생각하며 아내의 조심하라는 잔소리를 대충 들으며 열심히 계속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자동차 이름은 G7. 그러나 본명은 Gaenata입니다. Sonata의 이미테이션입니다.
디자인 상 부분은 포기하고
경주부문에 기대를 걸었는데 준결승에서 아깝게, 정말 간발의 차로 탈락했습니다.
불과 2-3센티 정도 늦어서 결승 진출에 못 나갔습니다.
이거 한번만 더 만들게 되면 진짜 빠른 차 하나 만들 수 있겠는데
시간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여러가지 여건 상 이젠 다시 아빠 캠프에 참가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2년 전 우석이와의 아빠캠프 때의 주제는 [아빠와 같이, 아빠의 가치]였는데
이번 아빠캠프의 주제는 [용감한 아빠들]입니다.
물론 요즘 뜨고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의 제목에서 빌려왔습니다만
정말 이 캠프에 참가한 아빠들은 용감한 아빠들이 맞습니다.
저도 이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잘 나갈뻔한 새 직장을 한달만에 그만 두었다고 해도 아주 조금 말이 됩니다.
정말 지난 6월 새로 일하기 시작한 직장 분위기 상 아빠캠프 예비 모임에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사무실 책상에 앉아 본의 아니게 윤석이를 '애비 없는 자식'으로 만든게 어찌 미안하던지.
그리고 계속 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7시40분까지 출근, 11시 퇴근.
집에 오면 잠든 아이들 얼굴만 쳐다보다 보니 어느 주일날 낮, 교회 가면서 훌쩍 키가 자란 우석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란 키 만큼 서먹해진 우리 관계. 같이 밥상에 앉아 대화하던 시간이 그 언제였던가 싶더군요.
그래서 용감하게 사표쓰고 나왔습니다. 아빠 캠프에 확실하게 참석하려구요.
첫날 낮시간에는
4가족이 한조가 되어 아빠와 함께 최소 5가지 활동을 해야합니다.
선택 활동 3가지와 필수 활동 2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는 선택활동에서 축구공 차서 맞히기, 농구 골 넣기, 탁구공 스푼으로 옮기기를 했는데
윤석이 축구공 차기에서 실력 발휘를 했고, 저는 농구골 넣기에서 실력발휘를 해서 팀 점수를 끌어 올렸습니다.
윤석이는 현재 학교 대표 축구 선수이고, 저는 초등, 중등학교 시절 학교 대표 농구 선수였으니 그 실력이 어딜 가겠습니까?
서로 보며 와~ 대단한데 하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 주었습니다.
필수 활동은 주어진 미션에 따라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우리 팀의 미션은 '은하철도 999를 표현하라' 였습니다. 대충 있는 가발 둘러 쓰고, 모자 쓰고 얼굴에 철길 그리고
숫자 999를 써 넣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냥 아빠의 이름으로 한번 망가져 보았습니다.
이 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이 6년 동안 공부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사건 베스트 원(1)이 아빠캠프라고들 한답니다.
밤에 자동차 경주가 끝나면 Candle Fire를 하면서
아빠가 아들에게 유서를 써서 읽어주는 시간은 특히 더 아빠에게도, 아이에게도 잊지 못하는 시간이 됩니다.
올해는 김요셉 목사님이 진행을 하면서 유서라기 보다는 진솔한 편지를 써서 읽는 시간으로 하자고 해서
저도 그 정도가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감했습니다.
왜냐면 이 때 쓴 유서가 진짜 유서가 되는 경우가 어쩌다 한번씩 있었다고 하니까요.
편지를 쓰기 전 용감한 아빠에 대한 설교 말씀과 함께 편지에 담을 내용에 대한 안내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용감한 아빠답게 자녀에게 먼저 용서를 빌자는 것입니다.
아빠도 인간인지라 인간 본연의 죄성이 살아있어 자녀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경우가 있었을텐데
그에 대한 용서를 구하여 자녀들의 이해를 얻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자녀들을 용납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실수와 잘못을 고백하는 아이들을 큰 가슴으로 용납해 주고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격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읽어주는 시간 여기 저기서 아이들이(간혹 아빠도)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만
우리 부자는 서로 감정 조절을 잘 하고 있었습니다.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썩 즐기지 않다보니
캠핑 용품을 모두 남에게 빌렸습니다.
다행히 간편하게 조립할 수 있는 텐트와 침낭 등을 빌려서 하룻 밤 잘 지냈습니다.
밤새 소낙비가 두차례 내렸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130여개의 텐트로 채워진 운동장.
늘 보던 학교 공간이 색다른 장면으로 연출되었습니다.
텐트에서 하루밤 자고 일어나면 일단 아이들은 교실로 가서
어제밤 아빠들이 편지를 쓰는 동안 따로 모여 만들었던 선물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텐트를 다 철수한 뒤 모여 앉아 정리예배를 드릴 때
아빠에게 정중하게 수여를 합니다.
바로 아이가 아빠에게 수여하는 '좋은 아빠 상'입니다.
내용을 읽다가 맨 마지막 줄을 '힘들게 해주셔서'로 읽는 바람에
잠깐 멈칫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맞춤법도 한 군데 틀렸습니다.
윤석이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자유 분방, 쾌활 명랑한 가운데서도 차분하고 반듯하지만 살짝 빈 틈을 보여 아빠를 웃음나게 하는 것.
하룻밤 집을 나와 있었지만
꽤 많은 시간을 밖에 나와 산 듯
집에 있는 엄마와 형아가 궁금해집니다.
사실은 엄마와 형아한테 해주고픈 얘기가 더 많겠죠.
아빠의 선물로 길이 남을 자동차와 많은 이야기거리 가지고 집으로 빨리 달려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