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여름휴가는 어땠을까?
우리에게 여름휴가는 무척 소중합니다.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날에 즐길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그곳에 존재하는 듯합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기차역이나 공항은 생각만 해도 배꼽을 간지럽히죠.
그러나 또 어떤 이는 시원한 집에서 늘어져,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달콤한 낮잠을 자는 상상에 벌써 나른해지곤 합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어 자발적 집콕이 더 신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으니까요.
이쯤에서 저는 방구석 시간여행자가 되어 조선시대를 종착지로 떠나보려 합니다!
조선시대 직장인이라 함은 모두 관직을 맡은 공무원이었다고 하는데요.
달력이 없어 요일을 나눌 일도 없었을 테니, 평일과 주말의 개념도 없었답니다.
한 달을 열흘 간격으로 초순, 중순, 하순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럼 여름휴가도 열흘쯤 되었을까요. 버스나 기차, 비행기 등 단숨에
멀리 달아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니 목적지를 기준으로
오고가는 시간이 꽤나 걸리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직 기록상 밝혀진 여름휴가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없지만,
다행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조선시대 직장인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입춘이나 동지 등, 한 달에 두 번 꼴로 있는 24절기는 휴무였다고 합니다.
또한 국선왕의 제사일이나 특정한 제사일을 임의로 정해 국가 공휴일로
보내기도 하고요. 근친을 찾아뵙는 것으로 제한하여 휴가 관련
문서를 제출하여 결재를 받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와, 조선시대 휴가철은 조선의 왕부터 참 소박했습니다.
궁궐을 벗어나는 것이 매우 드물었던 왕은 항상 업무에 쌓여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도 왕은 여름휴가를 떠난 것처럼 풍류를 즐기기도 했는데요.
시원하게 두었던 수박이나 식혜, 수정과 등의 음식을 먹고 경복궁이나 경회루,
창덕궁 같은 누각을 바꿔가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흐르는 물에 꽃과
술잔을 띄웠습니다. 조선에서 규모가 가장 큰 홈캉스를 제대로 누렸던 셈이지요.
선비들 또한 냇가를 더위를 여러 방법으로 무척이나 즐겼던 것 같습니다.
흐르는 강물이나 계곡에 발을 담구고 시원한 물보라가 일면 절로 흥이 나서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더위를 났던 것이죠. 시원한 그늘 아래 ‘탁족’이
가장 대표적인 피서였다고 하는데요. 고사탁족도나 노승탁조도 등,
조선 중기 민화로도 많이 남겨져 있답니다.
혹자는 어떻게 그 더위와 무료함을 견뎠을까,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맞물려 기후도 많이 변하고 있는 중이지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기에 같은 시대에 만나지 못한 우리는
기후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행복’의 중요함은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매일, 매순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길거리를 걸으며 나도 모르게 노랠 흥얼거리나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
감탄하며 사진 한 장으로 시간을 남겨두는 일. 나만의 레시피로 만들어 먹는
집밥에 노곤해지는 것처럼, 때때로 기쁘고 때때로 즐겁고 때때로 행복할 뿐이죠.
그러나 그런 순간들이 각자의 시간을 연결시켜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시대 임금만큼의 규모는 아니더라도 내 집이 천국이라 말할 때의
그 편안함으로 방구석 시간여행자가 되어 보았습니다. 같은 시대에 만나지
못했어도 여름의 쉼으로 같이 이어진 것이 왠지 모를 위로가 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