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사지를 받고 나서일까, 아니면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이곳 시각으로 오후 5시 가까이, 서울시각으로 오후 7시경, 출발하기 전 인천공항 라운지에서 이것저것 주워 먹고는 내내 아무것도 넣지 않았지, 그래 배꼽시계가 무엇을 뱃속에 넣으라고 신호를 하는 것이야.
밤 8시 40분까지 아직도 시간은 널널 하겠다, 에티오피아 항공 기내식도 내 입맛과는 한참 거리가 있을 것이고, 그래 오랜만에 시원한 태국 쌀국수 ‘꿰떼오’를 먹어보자, 아까 보아둔 너절한 식당으로 갔다.
‘This, Noodle, Thai style, Please' 나는 손가락을 짚어 보이면서 가득 기대감을 담아 주문하였다.
120바트로 매겨진 가격이 엄청 비싸지만(보통 20-30바트), 오랜만에 그 맛을 만나게 되는데, 또 시간을 죽여야 하는데, 그 값을 따지고 자시고 할 이유가 없었다.
주문한 쌀국수가 나왔는데, 앗不死, 내가 그렸던 그 ‘꿰떼오’가 아니었다.
우리의 라면 비슷한 것이 제대로 익지 않은, 그저 뜨거운 물만 담뿍 머금은, 졸나게 어정쩡한 끓임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벌써 국물이 얼큰하고 면발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침을 꼴딱거리게 해야 할 ‘꿰떼오’님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점원을 불러 물어볼까 하다가,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을 것이고, Noodle을 주문하였고 그것이 나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애라이썅 한 번 맛이나 보자 하였다.
이리뒤적 저리뒤적 몇 번을 휘젓으며 마지못하게 몇 가락을 쪽쪽대어 보았는데, 처음에는 조금 앙탈을 부리더니, 두세번 들락날락 하고부터는 독특한 매운 맛이 내 입안을 점령하고 말았다.
처음 봤을 때, 생긴 것은 얄궂해서 우리의 도시풍 라면의 대대함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골풍 ‘꿰떼오’의 소박함도 아닌, 어정쩡 범벅이었는데, 그 톡 쏘는 독특한 맛이 내 입속을 후비고 내 간장을 녹이고 말았다. ‘못 생겨도 맛은 좋아’ 였던 것이다.
짭짤한 것이 지나친 감이 있었지만 이 한국토종촌놈의 뱃속 채우는데는 그만이었다.
9시간여를 비행할 것인데, 에티오피아 현지음식이 어쩔지도 모르는데, 이만하면 비싼 값을 톡톡히 해낸 것 아닌가.
새로운 맛과의 만남, 기존의 ‘꿰떼오’와는 전혀 다른 맛과의 조우, 몰랐으니 만나진 것 아닌가. 주문하기 전에 ‘꿰떼오’가 아닌 것을 알았다면 난 주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난 이 전혀 새로운 맛을 만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때로는 이렇게 모르고, 잘 못 알고 무슨 일을 저지르는 것이 좋은 경험으로 돌아올 때가 많다.
무슨 일을 사전에 꼭 알아야, 그것도 철저하게 알고 나서야 일을 벌리곤 하는 소심한 샌님들, ‘먹물’ 범생들이 한번은 새겨둬도 좋을 일 아닐까?
‘알아야, 알고 나서야 일을 해야지, 모르고서야 어찌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알았다면 그런 일을 왜 했겠는가, 몰랐으니까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지’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모르면 두려우나 알고 나면 두렵지 않던가, 아니면 그 반대이던가?
아는 것이 힘인가? 모르는 것이 약인가?
모험은 알고 하는가 모르고 하는가?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은 맞지 않는가?
‘아니야, 아냐, 둘 다 옳고 둘 다 맞는 것이야’
하느님부처님공자님이 말씀하셨다.
‘자기 마음가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을, 다만, 대충대충 어영구영이 아니라 열심히 살면 되는데, 뭐시 꺽정이냐.’ 하셨다.
이번 나의 에티오피아 여행은 알고 하는 준비된 어드벤쳐인가, 모르고 가는 위험하기만 한 어드벤쳐인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인가, 또 아니면 이것과 저것이 함께 들어있는 재미있는 ‘깨 쏟아질’ 벌판, 에티오피아 대평원의 벤처일까?
첫댓글 꿰떼오 는 궤테도 오케이한 국수인가 ? 그럼 방장이 궤테가 아닌가 ...
범생의 삶속에서의 다양한 경험.... 덕분에 우린 멋진 간접 경험을 하는군요.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 했는데 모르는데서 두려움이 초래하니 둘 다 맞는 말이 분명하겠지요.
물리에서 관성의 법칙이 있지요? 보통 사람들은 늘 익숙한 길로만 가고 싶어하고 모험을 피하려 하지요. 젊지 않은 사람이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 감동적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