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식욕/박목월
메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촌 잔칫날 팔모상床에 올라
새 사돈을 대접하는 것.
그것은 저문 봄날 해질 무렵에
허전한 마음이
마음을 달래는
쓸쓸한 식욕이 꿈꾸는 음식.
또한 인생의 참뜻을 짐작한 자의
너그럽고 넉넉한
눈물이 갈구渴求하는 쓸쓸한 식성食性
아버지와 아들이 겸상兼床을 하고
손과 주인이 겸상을 하고
산나물을
곁들여놓고
어수룩한 산기슭의 허술한 물방아처럼
슬금슬금 세상 얘기를 하며
먹는 음식.
그리고 마다가 굵은 사투리로
은은하게 서로 사랑하며 어여삐 여기며
그렇게 이웃끼리
이 세상을 건느고
저승을 갈 때,
보이소 아는 양반 앙인기요
서로 불러 길을 가며 쉬며 그 마지막 주막에서
걸걸한 막걸리 잔을 나눌 때
절로 젓가락이 가는
쓸쓸한 음식.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시인생각
<시 읽기> 적막한 식욕/박목월
메밀묵을 먹으며 아버지 생각을 합니다.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메밀묵과 아버지의 삶이 닮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름 때문에 외로웠겠지요. 당신께서 홀로 느꼈을 적막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추억합니다. 투박하게 썬 메밀묵이 있어도 다시는 아버지와 겸상을 못하게 되었지만 함께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 생각의 겸상에 마주 앉겠습니다. 이별이 그처럼 빨리 들이닥칠 줄 몰랐기에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못한 시간에는 후회만 남습니다. 사랑은 미루는 게 아니더군요.
―정진아 엮음, 『맛있는 시』, 나무생각,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