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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굴대신(小屈大伸)
조금 굽힘으로써 크게 펼친다는 뜻으로, 잠깐의 억울함과 불만을 참으면 나중에 크게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小 : 작을 소(小/0)
屈 : 굽힐 굴(尸/5)
大 : 클 대(大/0)
伸 : 펼 신(亻/5)
출전 : 삼국지(三國志) 卷42 두주두허맹래윤이초극전(杜周杜許孟來尹李譙郤傳)
이 성어는 삼국지(三國志) 卷42 극정(郤正)전에 보인다.
극정(郤正)은 삼국 시대 촉나라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촉나라 조정에서 중심을 잡고 일을 하였으나, 촉한이 망한 뒤 유선(劉禪)을 수행하여 낙양(洛陽)으로 가서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뒷날 진(晉)나라에서 파서태수(巴西太守)를 지냈다.
극정(郤正)은 이전 시대의 학자들을 본받아 문장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석기(釋譏)'를 남겼다. 그 가운데 일부는 다음과 같다.
때문에 도리에 통달한 인물(達人)은 도를 연구하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미세한 진리를 탐구하며,
是以達人研道, 探頤索微,
천체 운행시 나타나는 운명의 징조를 관찰하여 인간 세상의 흥성하고 쇠함을 고찰하며,
觀天運之符表, 考人事之盛衰,
변설가(辯者)는 유세하러 달려가고 지혜로운 자(智者)는 시기에 순응하며, 책모가(謀夫)는 계략을 추인하고 용감한 무사(武士)는 위험을 떨치며,
辯者馳說, 智者應機, 謀夫演略, 武士奮威,
구름이 합치고 안개가 모이고 바람이 거세고 번개가 번쩍이면, 시기를 관찰하여 일의 마땅함을 파악할 수 있고,
雲合霧集, 風激電飛, 量時揆宜,
처세의 자본을 취하여, 작은 몸을 굽혀 큰 것을 펴고, 공적인 것을 보존하고 사사로운 일을 홀시하며, 1척을 굽혀 8척을 펼 수 있고, 최후에는 빛을 날려 발휘하는 것입니다.
用取世資, 小屈大申, 存公忽私, 雖尺枉而尋直, 終揚光以輝也.
(三國志/卷42 杜周杜許孟來尹李譙郤傳)
(註)
극정(郤正, ?~278)
삼국시대의 촉한의 정치가, 자는 영선(令先), 본명은 극찬(郤纂), 하남군 언사현 사람이다. 조부 극검(郤儉)은 익주자사로 있다가 도적에게 살해당했고 부친 극읍(郤揖)은 맹달(孟達)을 따라 위나라에 항복하여 중서령사가 된다.
어려서부터 부친이 죽고 어머니가 재혼하여 혼자 외로운 생활을 했지만,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좋아하고 성질이 선천적으로 명예나 이익은 가볍게 보았다.
문장에는 특히 마음을 기울여 사마상여, 왕포, 양웅, 반고(班固), 부의, 장형, 채옹(蔡邕) 등이 남긴 문장이나 사부로부터 당대의 우미한 서간과 정묘한 논설에 이르기까지, 익주에 있는 것은 찾아 연구하며 거의 전부 읽어 약관(弱冠)의 나이가 되자 문장을 훌륭하게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 궁궐로 들어가 비서사가 되었고, 영사에거 랑으로 승진하고, 령까지 올라갔다. 그 중에 맹광(孟光)과는 특히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극정은 궁정 안의 직책이 임명된 이후로 환관 황호(黃皓)와 함께 일을 처리하며 30년을 보냈다. 황호는 극정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성질이 위에서 얘기했듯 명예나 이익을 가벼이 보는 성격이었기에 황호의 미움도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봉록은 6백 석에 불과했지만, 황호의 참언에 의한 우환은 면했다.
극정은 이전 시대의 학자들을 본받아 문장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고 '석기(釋譏)'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 문장은 최인(崔絪)의 '달지(達旨)'를 계승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어떤 사람이 나를 비난하며 말했다. '과거의 기록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릇 사업은 시대와 함게 일어나고, 명성은 공과 조화를 이룹니다. 이와 같으면, 명성과 사업은 이전 시대의 현인들이 긴급하게 처리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도를 세우고 규범을 만들 경우,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면 세울 수 없었고, 널리 칭찬하여 이름을 남길 경우에는 공로가 없으면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명성은 반드시 공을 세운 후에 나타나게 되고, 사업 역시 시기를 기다린 후에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도리에 통달한 인물은 도를 연구하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미세한 진리를 탐구하며, 천체 운행시 나타나는 운명의 징조를 관찰하여 인간 세상의 흥성하고 쇠함을 고찰하며, 변설가는 유세하러 달려가고 지혜로운 자는 시기에 순응하며, 책모가는 계략을 추인하고 용감한 무사는 위험을 떨치며, 구름이 합치고 안개가 모이고 바람이 거세고 번개가 번쩍이면, 시기를 관찰하여 일의 마땅함을 파악할 수 있고, 처세의 자본을 취하여, 작은 몸을 굽혀 큰 것을 펴고, 공적인 것을 보존하고 사사로운 일을 홀시하며, 1척을 굽혀 8척을 펼 수 있고, 최후에는 빛을 날려 발휘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삼국이 정립하고 있고 천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며, 광대한 사해 안은 재화와 멸망이 닥쳐 도덕과 인의의 상싱을 한탄하고 있고, 불쌍한 백성들은 떠돌며 고난을 겪고 있으니, 이것은 확실히 성인과 현인이 구제할 때이며, 열사가 공을 세울 기회인 것입니다.
그대는 고명한 재간과 보옥같은 미덕을 갖고 있으며 아울러 전적을 광범위하게 읽고 연구하였으며, 도덕 학술에 마음을 두어 먼 곳까지 이르지 못함이 없고, 깊은 곳까지 통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당신은 임명을 받아 궁궐의 비밀 문건을 처리하고, 제왕 곁에서 조용히 국가 중신의 직책을 맡았으며, 구고(아홉차례의 근무평가)에서도 옮기지 않아 궁궐로 들어온 이래 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고금의 진위를 탐구하여 현재 필요한 임무의 득실을 계산하였습니다.
당신은 비록 계책 하나를 바치면서 우연히 간언을 한마디 하여 자신의 관직의 책임을 지고, 이것으로써 국가의 봉록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충성을 다하고 가슴속을 피력하며 바른 말을 열거하고 직언을 받들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점에서는 우리처럼 비천한 신분의 사람의 귀에도 할 수 없음이 전해졌습니다.
당신은 또한 수레를 멈추지 않고 고삐를 느슨하게 하여 말머리를 돌려 길을 바꾸어서 수레바퀴를 느슨하게 하고 말이 뜻대로 가도록 하십니까? 물의 깊이를 자세히 살펴 건너고, 아름답고 평탄한 길을 구하고, 추란을 심어 세상에 향기가 나도록 하며, 우리를 도와 학업을 개척하는 것 또한 흉성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탄식하여 말했다. '아, 결국 이와 같이 말하는구나! 인심의 차이가 확실히 사람의 얼굴 같다. 그대의 말은 광휘가 나고 화려하며 아름답고 염려하지만, 대통 구멍으로 표범을 보고 광주리로 바다를 들어올리면서 자기의 식견을 고집하고 있으니, 우주의 형체에 대해 말하거나 여러 사물의 정련됨을 서술할 수 없구나!'
어떤 사람은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머리를 들어 눈썹을 떨며 말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우제는 겉으로 순종하는 것을 경계했고, 공성(공자)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허물로 간주했습니다. 당신의 말은 확실히 내가 생각했던 것이니, 그대를 위해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논리하여 해석하려 합니다.
과거 태고시대에 사람들은 처음으로 몽매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어 삼황(중국 최초의 지배자 세 사람)은 하늘의 비기를 순응하고, 오제(삼황의 뒤를 계상한 다섯 명의 군주)는 상서로운 운명을 이어 받았으며, 하, 상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전의 전적에 이미 적혀 있씁니다. 희주가 쇠망하고 도리가 피폐해지자 패자가 왕실을 보좌했는데, 영씨는 잔학하여 전영토를 병탄시켰습니다.
그래서 합종연횡의 책략가들이 구름처럼 일어나고, 속이는 기술이 별처럼 늘어섰으며, 아첨하는 행위는 벌 떼처럼 일어났고, 교활한 말은 풀에 싹이 돋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실을 꾸며 허위를 공격했고, 어떤 사람은 사악한 마음을 끼고 영예를 구했으며, 어떤 사람은 기교를 부려 자신을 뽑냈습니다.
정의에 등을 돌리고 사악함을 숭상하고, 정직함을 버리고 아첨으로 향했으며, 충성에는 일정한 내용이 없고, 도의의 개념에는 보편적인 원칙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상앙의 법이 정점에 이르자 사악함이 흉기하고, 이사의 법도가 실패하자 간사함이 출현했으며, 여불위의 문중은 거대했지만 종족은 멸망했고, 한비자는 능변으로 섰지만 처형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이익이 그 마음을 바꾸고, 총애가 그 눈을 비추며, 빛나는 용 장식, 찬란한 거마와 의복, 일시의 행운을 쥐고 전전반측하며 기뻐하고, 사악하고 음란하게 거리낌없고 수레 방울의 소리는 아직 조화를 이루지 않았는데 몸은 끌채곁에 있고, 궁궐의 정원은 아직 밝지 않았는데 마룻대가 부러지고 서까래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그 신령을 거두고, 땅이 그 은택을 거리며, 사람이 그 몸을 매장하고, 귀신이 그 이마를 베어냅니다.
당초에는 높은 산 위로 올라갔으므로 마지막에는 깊은 계곡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아침에는 위세를 머금었으므로 저녁에는 말라 비틀어진 혼백이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현명한 사람과 군자는 깊이 계획하고 멀리 생각하여 그 허물을 경계하고 세속을 초월하여 그 고상함을 들고 신령스런 거북이가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끄는 것>을 편안해 하듯이 혼탁한 세상의 영예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는데 어찌 군주를 경시하고 백성들에게 방자하게 굴고 시대의 임무를 홀시겠습니까? '주역'은 나아감과 물러남에 관한 경계를 나타냈고, '시경'은 안정과 공경의 감탄이 있는데, 이것은 신령이 들은 것이고, 규율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대한을 창업한 이래로 하늘의 명에 응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따랐으며, 정치의 융성함은 봄날의 햇살처럼 밝게 빛나고, 고개 숙여 대지의 법칙을 따르며, 얼굴을 들어 하늘의 현상을 법으로 취했습니다.
황제의 은택을 펼쳐 세상을 비추고, 풍부하고 순박한 교화를 빛내며, 군주와 신하가 법도를 집행하여 각자 그 본성을 각자 그 본성을 지켰습니다.
군주는 의견을 듣고 받아들여 도량의 넓음을 나타내고, 신하는 정치를 보좌하는 책임을 지며, 선비들은 겉으로 수식하여 총애받는 자를 없도록 하고, 백성들은 전일한 행위를 실천하여 찬란히 빛나도록 노력하고, 이와 같이 충성스런 사업을 숭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의에는 흥성함과 쇠함이 있고, 사물에는 흥함과 피폐함이 있으며, 음행할 때도 있고 정숙할 때도 있고, 밝을 때가 있으면 어두울 때도 있습니다.
양의 기운은 가을에 쇠하고, 음의 기운은 초봄에 누그러듭니다. 회화(태양의 수레몰이)가 가면 망서(달의 수레몰이)가 뒤를 잇고, 달의 기운이 다하면 태양의 빛이 내립니다.
후한의 충제, 질제가 요절하고, 환제가, 영제가 실정을 하자 영웅이 천하를 구름처럼 덮고 호걸이 그 시대를 압도하여 집집마다 다른 주장을 가졌으며, 사람들마다 다른 계획을 품었기 때문에 권모가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서술했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언론을 토해냈습니다.
지금 하늘의 기강(국법)은 이미 엮어졌고, 덕정은 서방 이웃에 세워졌으며, 선조의 커다란 법칙을 이어 선비들의 관직에 대한 야심을 제한시키고, 다섯 가지 가르침을 진흥시켜 습속을 훈도하며, 아홉 가지 덕을 풍부하게 하여 백성들을 구조하고, 신명한 제사를 정돈하여 행앟며, 제왕의 규율을 고찰하여 참된 천자를 보좌하고 있습니다.
비록 할거하는 자는 아직 통일되지 않았고, 거짓스런 군주는 아직 제거되지 않았지만 성인이 후대에 남긴 훈꼐, 즉 전체가 평등하여 가난한 자가 없습니다.
때문에 군주와 신하는 조정에서 아름답게 협력하고, 백성들은 들녘에서 기쁜 마음으로 제왕을 받드니, 행동할 때는 일정한 규칙을 중시하는 것 같고, 조용히 있을 때는 규칙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은 원개 같은 인물이며,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아는 것은 안자 같은 인덕이 이씃ㅂ니다. 강직한 행정은 염구, 계유의 정치 같은 인덕이 있습니다.
강직한 행정은 염구, 계유의 정치 같고, 매같이 날아오르고 맹금이 도약하는 무용은 이윤, 태공망처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준재들의 우수한 책략을 총괄하면, 모두 칠공의 세가지 계책(한나라 초기, 반란을 일으킨 경포의 상, 중, 하 세가지 계략을 설공이 예측하여 한고조에게 진언했다)을 포함하고 있으며, 장량, 진평의 신비한 책략을 펴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벌에 힘써 세상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했으며, 영재를 등용함에 있어서는 한가하게 하지 않았는데, 어찌 잡초 속에서 마른 대나무 잎을 찾으며 한가롭게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재능이 없어 조정에서 해를 거듭하면서 일신을 황상에게 의탁하고 마음을 기대었습니다. 창해의 광활함과 깊음을 좋아하고, 숭사의 우뚝 솟은 모습을 감탄하며, 공자가 자하를 칭찬하는 것을 듣고, 향교(각 지방에 세워진 학교)가 자기에게 좋음을 감개해 했습니다. 그 평중(춘추시대 재상)의 보좌 역시 선을 진언하고 악을 물리치도록 했씁니다.
때문에 저는 우매하고 어두운 주장이라도 항상 진언하고 있는것입니다. 마치 주인(교화를 선포하는 일을 맡은 관리)이 길거리에서 민요를 채취하고, 놀고 있는 어린 아이가 밭에서 노래부르는 것과 같이 복과 길상이 증가하기를 희망하므로 힘껏 제왕에게 간언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간언이 제왕의 마음과 부합한다면, 우매한 주장이 성명한 군주와 일치하는 것이므로 계속적으로 관리가 되어 신령스런 부명에 순응할 것입니다.
만일 간언이 군주의 뜻과 다르다면, 저의 평범한 자질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저 자신의 어리석음을 지키겠습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운명에 따르는 것이니, 거짓으로 구미지 않고 세상을 속이지 않으며 본성에 순응하고 천명을 즐겨 따르는데, 어찌 유감스럽겠습니까?
이것이 궁궐로 들어온 후 나가지 않고, 관직에 있지만 없는것 같았던 까닭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을 때 항상 깨어 있었던 굴원을 편협하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취해 있는 어부(굴원 작품 속의 인물)의 태도를 불순하다고 하고, 유하혜(춘추시대 대부)의 몸을 낮추어 굴육을 받는 태도를 경시하며, 백이, 숙제의 고결함을 원망했다고 느꼈습니다.
군주의 마음과 합쳐졌다고 하여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다르다고 하여 잃는 것이 아닙니다. 뜻을 얻어도 비굴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잃어도 애통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레에 타서도 앞에 있을 때는 뒷부분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고, 뒤에 있을 때는 앞 부분의 무게를 아는 일이 없습니다. 평판을 팔아서 은택을 구하지 않고, 과실을 범함에 있어서 실각을 피하지 않습니다.
무슨 책임을 져야 합니까? 무슨 교육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무슨 바른 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무슨 직언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아홉 차례의 근무평가에 전이시키지 않은 것은 진실로 제가 지켜왔던 것입니다.
지금 조정의 관리들은 산처럼 많고, 발탁된 준재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어 어류와 폐류가 거대한 바다속에 숨어 있고, 새나 짐승이 등림(전설상의 큰 숲)에 모여 있어 새가 날아가도 그 수는 감속하지 않으며, 부유하는 방어(담수어의 일종)가 와도 그 수가 증가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태양은 당의 시대에 쇠하였고, 달은 상의 시대에 대응하여 성하였으며, 양우 냇물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홍수의 피해는 멈추었고, 상림 해안가에서 기도하자 은혜로운 단비가 대지를 적셨습니다.
만물의 동작과 정지에는 도리가 있고, 운명의 개폐에는 시기가 있습니다. 제 스승(공자)이 남긴 교훈에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논어, 헌문)'고 하여, 운명에 몸을 맡기고 자기를 단정하게 했으니 제가 또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말은 다했고 저의 길은 한가지입니다. 저는 당초의 지절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경전에 전해져 내려오는 향기를 종합하고, 공자가 남긴 학문을 연구하여 미묘하고 심원한 언어를 엮어 도의를 보존하고, 선인의 도를 규범으로 하여 오늘의 제 언어를 엮어 도의를 보존하고, 선인의 도를 규범으로 하여 오늘의 제도를 만들겠습니다.
저는 숙힐(춘추시대 진나라 대부 양설힐로 자 숙향)의 유유자적함을 평가하고, 소씨(한나라 소광과 그의 형의 아들 소수)가 먼 곳으로 떠난 것을 칭찬하며, 멈춤과 만족할 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고, 강물로 떠돌아다니다가 작은 집에 안주하여 욕심 없는 생활을 즐기며, 이 세상에서 받은 허물과 후회를 없애려고 하는데, 이 마음이 아직 불안함을 돌아보고 만년의 길이 정체될까 두려워 부단히 격려하며 노력을 배가하고, 내심의 감정을 자유롭게 하여 운명을 받기를 청합니다.
과거 구방은 최고의 말에서 정기를 고찰했고, 진야는 다른 형세를 자세히 살폈습니다. 호량은 현에 의탁하여 명성은 전했습니다. 제나라의 노예는 손으로 대퇴부를 쳐 닭 울음소리를 내서 전문을 구했으며, 초나라의 식객은 적진에 침입하여 형초를 보전시켰습니다.
옹문은 금슬을 타고 설득하고, 한애는 수레를 잘 몰아 명성을 크게 떨쳤습니다. 노오가 현관산에서 비상하자, 그 인물은 오히려 구름 저쪽으로 몸을 두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이러한 사람들과 같은 기예를 갖출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조용히 자신을 지키며 스스로를 편안하게 한 것입니다.'
설촉은 보검을 식별하여 명성을 날렸고, 호량은 현에 의탁하여 명성은 전했습니다. 제나라의 노예는 손으로 대퇴부를 쳐 닭 울음소리를 내서 전문을 구했으며 초나라의 식객은 적진에 침입하여 형초를 보전시켰습니다.
옹문은 금슬을 타고 설득하고, 한애는 수레를 잘 몰아 명성을 크게 떨쳤습니다. 노오가 현관산에서 비상하자, 그 인물은 오히려 구름 저쪽으로 몸을 두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이러한 사람들과 같은 기예를 갖출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조용히 자신을 지키며 스스로를 편안하게 한 것입니다.'
263년에 초주의 의견에 따라 유선이 항복할 때 극정이 등애에게 항복할 문서를 작성하였고 위나라로부터 열후에 봉해진다. 그러나 264년에 종회가 성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유선은 낙양으로 옮기게 되었고, 촉나라의 중신 중 극정과 장통만이 처자식을 버리고 유선을 따랐다.
그 때 유선은 극정의 조언에만 의거하여 행동하니 모든 일에 잘못이 없어 감개하며 그의 능력을 이제서야 알아 그를 발탁하지 못한 것을 그제서야 후회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정사 주석 한진춘추에도 서술되어 있는 사마소와 유선이 술자리를 가졌을 때의 일이다.
사마소가 유선을 위해 옛 촉의 기(技-가무)를 짓게 하자 주위에 있는 모든 촉 출신의 사람들은 모두 슬퍼했으나 유선은 기뻐하고 웃으며 태연자약하니, 사마소는 가충에게 '사람이 무정하니 가히 이 지경에 이른 것이오! 비록 제갈량이 살아 있었다고 해도 능히 보필하여 오래 보전하지 못했을 것인데, 하물며 강유라고 오래 가겠소?'라고 말했다.
가충이 이에 '이와 같지 않았다면 전하께서 어찌 그를 아우를 수 있었겠습니까?' 라며 서로 유선을 디스했다.
그 후 어느 날, 사마소가 유선에게 '촉이 생각나지 않으시오?'라고 묻자 유선은 '여기가 즐거워 촉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이에 극정은 유선을 따로 만나서 눈물을 흘리며 간했다. '왕(사마소)이 다음에 묻거든 흐느끼며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선인들의 분묘가 멀리 농, 촉에 있어 마음이 서쪽을 향해있고 비감하니 하루라도 생각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시면 됩니다.'
때마침 사마소가 다시 묻자 유선은 눈물을 흘리려 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어쨌든 극정이 시킨 대로 대답했다.
이미 심복을 통해 엿들었던 사마소가 '어찌 극정의 말과 같단 말이오!' 라고 말하자 유선이 놀라서 쳐다보며 말했다. '참으로 존명과 같습니다.' 그로 인해 좌우에서 모두 웃었다는 이야기다.
272년에는 옛날 성도가 혼란하였을 때 절의를 지켜 충성과 절개를 위배하지 않았고 임용을 받음에 이르러서는 마음을 다해 일을 다하였다는 찬사와 함께 파서태수로 임명된다.
278년에 세상을 떠나는데 그가 저술한 시, 논문, 사부 등을 합하면 백개가 넘어갔다고 한다.
⏹ 소굴대신(小屈大伸)
출전 : 강희맹(姜希孟)의 사숙재집(私淑齋集)
이 성어는 조선 세조시대 명문장가 강희맹(姜希孟)의 사숙재집(私淑齋集) 송이내상 출안관서(送李內相 出按關西)에 나온다.
당시(當時) 골치 아픈 일이 많던 황해도 관찰사(黃海道 觀察使)로 나가게 된 승지(承旨) 이경동(李瓊同)에게 사람들이 이번 임명(任命)을 좌천(左遷)이라고 하지만, “성상의 숨은 속뜻에 소굴대신(小屈大伸)의 이치가 담긴 줄은 모른다.(李公其屈矣, 盖未知聖上注擬之微意, 小屈大伸之理)”고 적었다.
어려운 일을 맡겨 그 처리를 보고 장차 큰일을 맡기려는 깊은 뜻이니 낙심치 말고 더 분발하라는 격려였다.
한편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이 진사 왕참원(王參元)의 집에 화재(火災)가 났다는 소식(消息)을 듣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賀進士王參元失火書 / 柳宗元
진사 왕삼원이 화재를 당한 것을 축하하는 글 / 유종원(柳宗元)
得楊八書, 知足下遇火災, 家無餘儲.
양씨의 여덟 째 아들의 서신을 받고 그대가 화재를 당해 집안에는 먹을 식량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仆始聞而駭, 中而疑, 終乃大喜.
蓋將吊而更以賀也.
이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무척 놀랐으나 얼마 지난 뒤에는 의심이 생겼다가 끝내는 대단히 기뻤습니다. 그래서 본래 위로하려 했으나 마음을 바꾸어 축하합니다.
道遠言略, 猶未能究知其狀. 果若蕩焉泯焉而悉無有, 乃吾所以尤賀者也.
길도 멀고 서신도 간략하여, 정확한 상황은 아직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전소되어 하나도 남지 않았다면 제가 더욱 축하드리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省略)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축하(祝賀)가 웬 말인가?
유종원의 글에 대해 조선말기 유학자 김흥락(金興洛)은 서산집(西山集) 답조원가(答趙圓可) 글 에서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嘗見柳文, 有賀人失火書, 以大亨之先有小屈也.
일찍이 유종원은 화재를 입은 왕진사에게 축하편지를 보냈다. 그 뜻은 ‘크게 형통하기 전에 조금 굽힘이 있다.
즉 이번 불행을 장차 크게 형통할 조짐(兆朕)으로 알아 상심(喪心)을 털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으라는 뜻이라고 풀이 한 것이다.
정경세(鄭經世)는 우복집(愚伏集) 5권 ‘옥당(玉堂; 弘文館) 시절 올린 시무차(時務箚)’에서 변방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끝 부분에 이렇게 적었다.
殿下之所以屈己忍辱者, 豈不以小屈思所以大伸, 暫辱思所以久榮乎?
전하께서 자신을 굽히고 치욕을 참은 것이 어찌 작은 것을 굽힘으로써 큰 것을 펴기를 생각한 것이 아니겠으며, 잠시 동안의 치욕을 참아서 오랫동안 영예를 누리고자 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소굴대신(小屈大伸), 조금 굽혀 크게 편다.
잠욕구영(暫辱久榮), 잠깐 욕되고 오래 영예롭다.
조금 굽히고 잠깐 욕(辱)됨을 참아야 비로소 큰일을 할 수 있는 경륜과 역량이 깃든다.
세상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며 사생결단하고 싸운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싸움은 어느 한쪽이 죽어도 끝나는 법이 없다. 남북의 다툼도 여야의 싸움도 대신(大伸)의 의욕만 넘치지 소굴(小屈)의 물러섬이 없다.
한번 물러서면 완전히 지는 것으로 아는 대통령, 너도 한번 당해보라며 오기만 키우는 야당, 임명자의 당부에도 뜻을 꺾지 않는 장관.
굽혀야 뻗고 물러서야 내달으며 양보할 때 더 얻는 소굴대신(小屈大伸)의 이치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국민의 삶의 질만 나날이 팍팍하다.
▶️ 小(작을 소)는 ❶회의문자로 한 가운데의 갈고리 궐(亅; 갈고리)部와 나눔을 나타내는 八(팔)을 합(合)하여 물건을 작게 나누다의 뜻을 가진다. 小(소)는 작다와 적다의 두 가지 뜻을 나타냈으나, 나중에 小(소; 작다)와 少(소; 적다)를 구별하여 쓴다. ❷상형문자로 小자는 ‘작다’나 ‘어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小자는 작은 파편이 튀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작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고대에는 小자나 少(적을 소)자의 구분이 없었다. 少자도 작은 파편이 튀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小자는 ‘작다’로 少자는 ‘적다’로 뜻이 분리되었다. 그래서 小자가 부수로 쓰일 때도 작은 것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지만 때로는 모양자 역할만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小(소)는 크기에 따라 대(大), 중(中), 소(小)로 나눌 경우의 제일(第一) 작은 것의 뜻으로 ①작다 ②적다 ③협소하다, 좁다 ④적다고 여기다, 가볍게 여기다 ⑤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주의하다 ⑥어리다, 젊다 ⑦시간상으로 짧다 ⑧지위가 낮다 ⑨소인(小人) ⑩첩(妾) ⑪작은 달, 음력(陰曆)에서 그 달이 날수가 30일이 못 되는 달 ⑫겸양(謙讓)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어 ⑬조금, 적게 ⑭작은, 조그마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작을 미(微), 가늘 세(細), 가늘 섬(纖),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대(大), 클 거(巨)이다. 용례로는 적게 오는 눈을 소설(小雪), 일의 범위가 매우 작음을 소규모(小規模), 작은 수(數)나 얼마 되지 않는 수를 소수(小數), 나이 어린 사람을 소인(小人), 어린 아이를 소아(小兒),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작은 규격이나 규모를 소형(小型), 자그마하게 포장한 물건을 소포(小包), 줄여서 작아짐 또는 작게 함을 축소(縮小), 가장 작음을 최소(最小), 공간이 어떤 일을 하기에 좁고 작음을 협소(狹小), 키나 체구가 보통의 경우보다 작음을 왜소(矮小), 아주 매우 작음을 극소(極小), 약하고 작음을 약소(弱小), 너무 작음을 과소(過小), 매우 가볍고 작음을 경소(輕小), 보잘것없이 작음을 비소(卑小),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지어 언행을 삼감을 소심근신(小心謹愼), 작은 것을 탐하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음을 일컫는 말을 소탐대실(小貪大失), 혈기에서 오는 소인의 용기를 일컫는 말을 소인지용(小人之勇),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노자가 그린 이상 사회 이상 국가를 이르는 말을 소국과민(小國寡民), 큰 차이 없이 거의 같음을 일컫는 말을 소이대동(小異大同), 어진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면 소인들은 겉모양만이라도 고쳐 불의한 것을 함부로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소인혁면(小人革面),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지어 언행을 삼감을 일컫는 말을 소심근신(小心謹愼), 세심하고 조심성이 많다는 뜻으로 마음이 작고 약하여 작은 일에도 겁을 내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소심익익(小心翼翼), 조그마한 틈으로 물이 새어들어 배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작은 일을 게을리하면 큰 재앙이 닥치게 됨을 비유하는 말을 소극침주(小隙沈舟), 얼마 안 되는 작은 물 속에 사는 물고기라는 뜻으로 죽음이 눈앞에 닥쳤음을 이르는 말을 소수지어(小水之魚) 등에 쓰인다.
▶️ 屈(굽힐 굴, 옷 이름 궐)은 ❶형성문자로 음(音)을 나타내는 出(출, 굴)과 구부러진 꼬리(尾, 尸)의 뜻이 합하였으며 굽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屈자는 '굽히다'나 '움츠리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屈자는 尸(주검 시)자와 出(날 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屈자는 본래 尾(꼬리 미)자와 出(날 출)자가 결합한 것이었다. 금문에 나온 屈자를 보면 尾자 아래로 出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두려움에 꼬리가 움츠러드는 모습을 出자로 표현한 것이다. 해서에서는 毛(털 모)자가 생략되면서 지금의 屈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屈(굴, 궐)은 ①굽히다 ②굽다, 구부러지다, 한쪽으로 휘다 ③오그라들다, 움츠리다 ④쇠(衰)하다, 쇠퇴(衰退)하다 ⑤다하다 ⑥(길이가)짧다 ⑦꺾다, 억누르다 ⑧베다, 자르다 ⑨강(強)하다, 굳세다 ⑩물러나다, 물리치다 ⑪거두다, 거두어 다스리다 ⑫섞다, 뒤섞다 ⑬솟다, 솟아나다 ⑭지명(地名) ⑮이상한, 색다른, 그리고 ⓐ옷의 이름(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꺾을 절(折), 굽을 만(彎), 굽을 곡(曲), 굽을 왕(枉), 굽을 요(橈), 굽을 오(迂), 줄일 축(縮),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펼 신(伸)이다. 용례로는 머리를 굽히어 꿇어 엎드림을 굴복(屈伏), 굽혀 복종함이나 힘이 모자라 복종함을 굴복(屈服), 남에게 눌리어 업신여김을 받음을 굴욕(屈辱), 휘어서 꺾이는 것을 굴절(屈折), 남에게 굴하지 아니함을 굴강(屈强), 이리저리 꺾이고 굽음을 굴곡(屈曲), 몸을 앞으로 굽힘을 굴신(屈身), 절개나 정조를 굽힘을 굴절(屈節), 무릎을 꿇어 절함을 굴슬(屈膝), 계책을 쓰지 않음을 굴책(屈策), 손가락을 꼽아 헤아림을 굴지(屈指), 상주가 두건 위에 덧쓰는 건을 굴건(屈巾), 비겁하여 용기가 없고 품성이 천함 또는 줏대가 없고 떳떳하지 못함을 비굴(卑屈), 온갖 고난에도 굽히지 않고 꿋꿋이 나아감을 불굴(不屈), 문장이 읽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길굴(佶屈), 남에게 굽힘을 당함을 견굴(見屈), 뒤로 또는 반대쪽으로 구부 반굴(反屈), 스스로 굽힘을 자굴(自屈), 뒤쪽으로 굽어 있음을 후굴(後屈), 형세가 기울어 꺾임을 세굴(勢屈), 폐기하여 없애 버리거나 잘못 적용함을 폐굴(廢屈), 손가락을 다 꼽을 수 없다는 뜻으로 수효가 매우 많음을 이르는 말을 지불승굴(指不勝屈), 백 번 꺾여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는다는 말을 백절불굴(百折不屈),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다음에 몸을 펴고자 함이라는 뜻으로 훗날에 성공을 위해 잠시 굽힘을 이르는 말을 척확지굴(蚇蠖之屈), 죽음을 당하는 처지에 이르러도 끝까지 굽히지 않는다는 말을 지사불굴(至死不屈) 등에 쓰인다.
▶️ 大(클 대/큰 대, 클 대, 클 다)는 ❶상형문자로 亣(대)는 동자(同字)이다. 大(대)는 서 있는 사람을 정면으로 본 모양으로, 처음에는 옆에서 본 모양인 人(인)과 匕(비) 따위와 같이, 다만 인간을 나타내는 글자였으나 나중에 구분하여 훌륭한 사람, 훌륭하다, 크다의 뜻으로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大자는 ‘크다’나 ‘높다’, ‘많다’, ‘심하다’와 같은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大자를 보면 양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크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大자는 기본적으로는 ‘크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정도가 과하다는 의미에서 ‘심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러니 大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大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크다’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사람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大자가 본래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大(대)는 (1)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 큰, 으뜸가는, 뛰어난, 위대한, 광대한, 대단한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존경(尊敬) 또는 찬미(讚美)의 뜻도 나타냄 (3)큼. 큰 것 (4)큰 달. 양력으로 31일, 음력으로 30일인 달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대) ②높다, 존귀하다(대) ③훌륭하다, 뛰어나다(대) ④자랑하다, 뽐내다, 교만하다(대) ⑤많다, 수효(數爻)가 많다(대) ⑥중(重)히 여기다, 중요시하다(대) ⑦지나다, 일정한 정도를 넘다(대) ⑧거칠다, 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대) ⑨낫다(대) ⑩늙다, 나이를 먹다(대) ⑪대강(大綱), 대략(大略)(대) ⑫크게, 성(盛)하게(대) ⑬하늘(대) ⑭존경하거나 찬미(讚美)할 때 쓰는 말(대) 그리고 클 태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태) ⓑ지나치게(태) 그리고 클 다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다) ㉡극치(極致), 극도(極度)(다) ㉢지나치게(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위(偉), 클 굉(宏), 클 거(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작을 소(小), 가늘 세(細)이다. 용례로는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큰 일을 대사(大事), 크게 구분함을 대구분(大區分), 일이 진행되는 결정적인 형세를 대세(大勢), 크게 길함을 대길(大吉), 조금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같음을 대동(大同),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큰 규격이나 규모를 대형(大型),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사물의 큼과 작음을 대소(大小), 크게 이루어짐을 대성(大成), 크게 웃음을 대소(大笑), 넓고 큰 땅을 대지(大地), 넓혀서 크게 함을 확대(廓大), 가장 큼을 최대(最大), 몹시 크거나 많음을 막대(莫大), 뛰어나고 훌륭함을 위대(偉大), 매우 중요하게 여김을 중대(重大), 마음이 너그럽고 큼을 관대(寬大), 엄청나게 큼을 거대(巨大), 형상이나 부피가 엄청나게 많고도 큼을 방대(厖大), 더 보태어 크게 함을 증대(增大),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대기만성(大器晩成), 거의 같고 조금 다르다는 대동소이(大同小異), 바라던 것이 아주 허사가 되어 크게 실망함을 대실소망(大失所望), 큰 글자로 뚜렷이 드러나게 쓰다라는 대자특서(大字特書), 매우 밝은 세상이라는 대명천지(大明天地),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대도무문(大道無門) 등에 쓰인다.
▶️ 伸(펼 신)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펴진다는 뜻을 갖는 申(신)으로 이루어졌다. 사람인변(亻; 사람)部를 붙여 지지(地支)의 申(신)과 구별하여 편다는 뜻의 전용자(專用字)로 삼았다. ❷회의문자로 伸자는 '펴다'나 '내뻗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伸자는 人(사람 인)자와 申(펼 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申자는 번개가 내려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伸자는 이렇게 '펴다'라는 뜻을 가진 申자에 人자를 결합한 것으로 "사람이 몸을 늘려 펼친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몸을 펼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나 포부를 넓게 펼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사물을 넓게 펴거나 늘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伸(신)은 ①펴다, 펼치다 ②늘이다 ③내뻗다, 내밀다 ④해명하다, 설명하다, 진술하다 ⑤(기지개를)켜다 ⑥자다, 눕다 ⑦사뢰다(웃어른에게 말씀을 올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베풀 장(張),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굽힐 굴(屈), 줄일 축(縮)이다. 용례로는 물체나 세력이나 권리 따위를 늘이어 넓게 펴거나 뻗침을 신장(伸張), 늘어남과 줄어듦을 신축(伸縮), 길이나 힘 따위를 늘림을 신장(伸長), 원통한 일을 풀어 버림을 신원(伸寃), 억울함을 말하여 밝힘 또는 명백하게 말하여 드러냄을 신백(伸白), 사실을 낱낱이 말하여 밝힘을 신변(伸辨), 소원이나 희망을 말하여 청함을 신청(伸請), 죄 없는 사람을 사실대로 변명하여 구원함을 신구(伸救), 늘이어 펼침을 신전(伸展), 억울함을 호소함을 신소(伸訴), 뜻을 펴게 됨 또는 소송에 이김을 득신(得伸), 늘이어 펌을 연신(延伸), 잡아 당기거나 펴서 늘임을 인신(引伸), 몸의 굽힘이나 폄을 굴신(屈伸), 뒤에 추가하여 말한다는 뜻으로 편지 등에서 글을 덧붙여 쓸 때 글 머리에 쓰는 말을 추신(追伸), 하품과 기지개를 흠신(欠伸), 늘었다 줄었다 하는 데 구애받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조건과 환경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 여유가 있고 구속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신축자재(伸縮自在),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버리고 창피스러운 일을 씻어 버린다는 말을 신원설치(伸冤雪恥), 이불 안 봐 가며 발 편다는 뜻으로 일을 하는데 주어진 조건을 생각하면서 하여야 한다는 뜻의 속담을 이르는 말을 양금신족(量衾伸足), 굽히고는 펴지 아니한다는 말을 굴이불신(屈而不伸), 당기어 늘인다는 뜻으로 응용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이신지(引而伸之), 머리를 들고 눈썹을 편다는 뜻으로 고고하여 굽히지 않는 태도를 나타내는 말을 앙수신미(仰首伸眉)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