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55]30년 후인 어제, 역귀성逆歸省 단상
명절 추석을 쇠기 위하여 어제 아내의 집(용인)으로 올라왔다. 올해는 1년만에 가족이 귀국하여 판교에 정착한 아들내외와 손자가 있으니, 아무리 고향에 있는 가장家長이라지만 내가 올라오는 게 마땅한 일일 터. 그러니까 ‘역귀성逆歸省’인 셈. 어떻게 아내와 아들에게 귀성 교통체증을 무시하고 내려오라고 하겠는가. 이것저것 가지고 갈 것을 챙기다보니 빽백은 물론이고 양손에 드는 가방 무게만도 20kg는 족히 됐다. 이까짓 것을 들고 가는 게 대수이랴. 내가 조금 힘이 들면 그만인 것을. 오수에서 수원까지 무궁화호 3시간 40분, 다시 수원에서 정자역까지 지하철 40분. 환승하며 올랑낼랑 계단이 장난이 아니지만, 손자에게 햇밤 까줄 생각만 해도 기쁘다. 말린새우도 챙기고 추석선물로 들어온 부산어묵 한 박스도 며느리가 좋아하니 빼지 않았다. 지금은 차례도 안지내지만 사과와 배도 한두 개씩 넣고, 대파도 껍질을 깠다. 손자를 위해서 '임실 딸기왕'으로부터 선물받은 수제 딸기잼은 필수이다.
아들이 정자역으로 마중을 나오며 놀란다. 그리고 조금은 민망해한다. 문득, 30년 전 추석의 풍경이 떠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지 춘추, 딱 내 나이 68세였다. 아들 넷이 모두 서울에 살므로, 역귀성을 감행한 이유는 간단하다. 벌초하러 내려오지도 말라며 당신이 다 해놓고, 군대 따블백에 온갖 것들을 쑤셔넣고도 부족해 양손에 무거운 짐이라니? 어머니는 머리에 또다른 짐을 이고, 네 살짜리 손자(나의 둘째아들) 손을 잡고 저 멀리서 나오는데, 마중나간 나는 달려갔다. 아들이 넉 달만에 만나는 나에게 달려와 맨먼저 입을 벌려보라 한 후 치아가 틀니인지를 확인하고 안심하는 눈치였다. 시골에서 잠깐 살면서 조부모의 틀니를 보고 제딴엔 걱정한 모양이다.
아무튼, 진짜로 30년만에 똑같은 역귀성 풍경이 재연된 것이다. 장남은 바리바리 싸들고 나오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식을 위하는 부모 마음은 참 한결같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네 자식 가족이 길에서 고생하는 것을 막고자, 당시에는 흔치 않은 역귀성의 단안을 내린 아버지의 결정이 그이후 대가족 불화의 단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형수는 당신과 상의 한마디 하지 않는 시부모의 결정으로, 그때부터 등을 돌렸고, 아들은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시부모와의 갈등이 형제갈등이 되고 총체적인 가족불화로 비화된 것이다. 영명하신 아버지의 ‘앞서간 사랑’이 비극의 불똥으로 튄 것이다. 이처럼 내리사랑은 본능이지만 ‘치사랑’이 안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 아버지는 98세로 요양원에 가신 지 6개월이 넘었다. 아버지는 홀어머니를 50년도 넘게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어머니를 평생 사랑하며 사셨고, 일곱 자식 뒷바라지에 아낌없이 일생을 바쳤다. 세 가지의 덕목(효와 아내사랑 그리고 자식 사랑)을 온몸으로 유감없이 보여주셨건만, 결과가 좋지 못한 것은 아버지의 잘못이 결코 아니다. 부덕한 자식들의 무도한 소행인 것을. 어쩌랴, 시절 탓을 할 것인가.
당시 68세는 노인, 70대는 상노인, 80대는 극노인 대우를 받던 시절이었다. 환갑잔치는 경사 중의 경사. 회사에서는 경축휴가와 축하금을 주고 축하사설까지 파견했었다. 허나, 그로부터 30년 후인 지금 68세는 노인 축에도 못드는, 농촌에서는 마을청년인 것을. 칠순잔치도 촌스럽고, 팔십쯤 돼야 기념으로 가족들이 밥을 먹는다던가. 군대 따블백을 메고 역출구를 나오며 힘겨워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해, 금세 또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내 고향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아버지의 원적에서 명절을 쇠자는 게 요즘 부모의 도리는 아닌 것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1년에 한두 번 성묘는 얘기가 다르지만, 아들들에게 벌초를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들은 이들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내가 역귀성하는 부모의 행렬에 끼었구나, 싶으니 솔직히 암담한 기분도 들었다. 암담하다는 게 어둡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금세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될 것같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어느 노철학자는 65세에서 75세가 당신의 인생 제2막에서 가장 황금기였다며 회억을 하던데, 나도 그리 되고, 그렇게 생각하는 날이 올까. 그랬으면 좋겠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역귀성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