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데 마스크하나 사려고 줄지어 선 사람들
이관순의 손편지 [108]
2019. 03. 02(월)
오늘을 위로받고 싶은 사람
하늘 가득 습진 눈이 내리던 날, 눈을 맞으며 산으로 향했습니다. 연 이태, 눈다운 눈을 못보고 겨울을 보내나 소슬했는데 하늘로부터 은총이 내렸습니다. 사방 천지가 낮게 몸을 숙입니다. 회색 하늘도, 눈 덮이는 산야도, 나무들까지... 이 고즈넉함, 충만한 침묵의 기도, 교교하게 흐르는 적막감... 이곳에선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까지 소음입니다.
세상은 더 조용합니다. 우한코로나 때문이겠지만 사람으로 들썩이던 세상 곳곳이 정지되고, 철시한 시장 상가엔 시간마저 멈춰 섰습니다. 살다 살다 이렇게 침묵할 때가 있었을까? 야생 동물은 경계했어도 사람이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도 처음입니다. 길에서도 전철에서도 “가까이 오지 말아요.” 서로간 거리를 둡니다. 언론과 SNS가 시끄러울수록 사람들은 더 나를 고립시켜야 합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잽싸게 발을 집어넣는데 성공한 남자. “다음에 타지, 빠른 척 하긴.” 안에 혼자이던 젊은 여자의 시선이 위아래를 훑습니다. 기분이 살짝 간 남자도 레이저를 쏩니다. 수초 간 이어진 야릇한 침묵... 10층에서 내리는 남자가 ‘올라가세요.’ 오늘 처음 하는 인사라고 손을 흔듭니다.
화장품 방판을 하는 분도 기분이 멜랑꼴리합니다. 월말 수금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하지만 몇 분은 꼭 현금 결제라며 집을 찾게 한답니다. ‘띵동’ 아파트 문 앞에서 인터폰을 누르자 “아, 네 문 앞에 놓았어요.” 뭐얼? 고개를 숙이는데 문짝 아래 틈으로 삐죽 나온 봉투 하나가 보입니다. 아하! 그거네... 찝찝하니 얼굴대하기 싫다? 순간 당황했어요. 당해보지 않으면 그 기분이 어떤지 모를 거라며 전화를 끊습니다.
곳곳에서 비대면! 보름새 이뤄진 사람기피사회입니다. 만남이 끊기고, 대화가 막히는, 기이한 일이 연속되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온 사람들. 이렇게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해 질 때, 어딘가 의지하고 위로받길 원합니다. 그래서 모두들 TV 앞에 앉아 임영웅, 장민호, 영탁아를 외치며 ‘미스터트롯’에 열광합니다. 마음을 달랠 그 무엇을 찾았다는 거죠.
내겐 막 읽기를 끝낸 ‘오드리 햅번 평전’이 위로를 건넵니다. ‘로마의 휴일’ 등에서 청순하고 아름다운 외모와 카리스마 넘친 깜찍한 연기로 세기의 연인이 된 여자. 그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더 큰 이유는 인생 후반기를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며 헌신적인 삶을 산 인류애의 어머니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햅번은 1988년 은퇴한 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제2인생을 살았지요. 에티오피아, 수단, 소말리아 등 50여 나라에서 기아, 질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보살피며 많은 생명을 구합니다. 아이들을 안아주고, 음식을 먹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의 모습에서 사랑으로 감싸는 모성애 가득한 어머니를 만납니다. 그 아름답던 얼굴과 예쁜 목선에 굵은 주름이 내린 모습은 더 원숙한 아름다움, 성스러움을 전합니다.
그녀는 불행하게도 1992년 봉사 중 몸의 이상(암)을 발견하고 돌아온 후, 이듬해 스위스 자택에서 63세로 아름다운 생애를 마감합니다. 그리고 평생 가슴에 담아 애송했던 시 한편도 남겼지요. 이 시는 병상에서 맞은 마지막 크리스마스이브에 유언과 함께 아들에게 읽어주었다고 해서 더 진한 감동을 주었어요.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하게 말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아라./ 날씬한 몸을 원하거든/ 배고픈 삶들과 음식을 나눠라/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싶다면 그대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며 걸어라/ 인간은 회복되어야 하고/ 새로워져야 하고/ 구원받아야 한다/ 누구도 버려져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바로 그것이 네 팔 끝에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사람들이 감동한 이유는 뭘까. 시(詩)처럼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떠난 아름다운 삶을 보아서겠지요. 그녀는 찬사를 보내는 이들에게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저 한 사람의 어머니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세상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애로운 모성애, 사랑이 담긴 어머니 손길이겠지요.
암 투병중일 때 기자가 찾아왔습니다. 왜 그렇게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도왔어요? “이건 희생이 아닙니다. 희생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걸 위해 자신이 원하는 걸 포기할 때죠. 희생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면서 “어린이 하나를 구하는 건 축복입니다. 그런데 백만 명을 구할 수 있다면 하느님이 주신 기회지요.” 그녀의 말은 복음적이기까지 합니다. (소설가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