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레인디어 게임'을 빌리러 비디오 가게에 갔다가 허탕치고 와서 분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니까 리플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위: 1995년 21st Pick: Michael Finley : Phoenix Suns
대학 시절, 마이클 핀리 만큼 높은 관심을 끈 선수는 없었습니다. 이 선수는 Wisconsin 대학 역사상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고, 대학 농구 관계자들은 이런 이야기 까지 했습니다. "이 마이클(핀리)은 세상에서 마이클(조던)과 가장 흡사한 선수다." 하지만 핀리는 4학년 시절, 외곽슛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친 나머지, 저조한 야투율을 보이며 자신의 주가를 깍아내게 됩니다. 이런 주가 하락은 핀리를 드래프트 1라운드 후반까지 남아 있게 했습니다. 선즈는 이게 왠 떡이냐 하고 핀리를 뽑습니다. 핀리는 수많은 국제 경기와 NCAA 토너멘트에 나가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었죠. 그래서 루키 시즌 때 그는 여느 베테랑 못지 않은 안정된 플레이를 펼칩니다. 팀 내에 찰스 바클리, 대니 매닝, 웨이먼 티스데일 등, 수준급 포워드들이 많은 팀 사정 속에서도 핀리는 스몰 포워드로 출전하며 평균 15점, 4.6 리바운드, 3.5 어시스트를 기록합니다. 그 다음 시즌, 그는 제이슨 키드와 트레이드 되어 달라스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되죠. 이 곳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한 핀리는 결국에는 올스타에 뽑히고, 지금은 NBA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선수 중 한명이며, 또한 가장 화려한 선수들 중 한명이 되었죠. 21번째로 뽑힌 선수가 이정도로 성장하다니... 선즈의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2위: 1992년 24th Pick: Latrell Sprewell : Golden State Warriors
이 선수보다 더 화끈한 가드가 있을까요? 92년 당시, 스프리웰은 그리 주목 받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이 선수는 고등학교 2~3학년에 와서야 농구부(Organized Basketball Team) 20점대 스코어러가 즐비했던 그 때(Harold Miner와 Adam Kefee조차 20점을 넣었던 시기입니다.), 스프리웰의 기록(3학년 평균 8.9득점, 4학년 평균 17.8득점)은 평범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위리어스는 팀 내에 크리스 멀린(한창 잘 나갈 때), 팀 하더웨이 등의 뛰어난 스코어러 등이 많았기 때문에, 스프리웰의 득점력 보다는 SEC Defensive Team에 뽑힌 그의 수비력을 중시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프리는 첫 시즌에 15.4점을 기록하며 워리어즈의 새로운 기둥으로 떠올랐습니다. 그 다음 시즌에는 조던이 빠진 리그 탑 슈팅 가드 자리에 그가 올라가죠.(All NBA 1st Team) 그 후, 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뉴욕으로 이적한 스프리는 농구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팀을 FINAL까지 이끌고 가게 됩니다. 스프리를 24번째로 지목한 위리어즈의 프런트는 정말로 뛰어난 안목을 갖췄던 것 같습니다.
3위 : 1995년 5th Pick: Kevin Garnett : Minesota Timberwolves
미네소타의 케빈 멕헤일이 95년도에 가넷을 5번째로 뽑았을 때, 사람들은 멕헤일을 정신 병자라고 욕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만 해도 고졸의 리그 진출이 흔치 않았었기 때문이죠. 비록 그가 시카고 지역 최고의 농구 선수로 뽑히며 기량을 인정 받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KG의 능력에 물음표를 달았습니다. 루키 시즌을 10.4 득점, 6.3 리바운드로 비교적 성공적인 데뷔를 한 가넷은 다음 시즌 부터 기량이 부쩍 늘었고, 이제는 리그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멕헤일의 모험은 결국 엄청난 성공을 이끌어 왔고, 팀을 역사상 최초로 플레이 오프로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루게 되죠. 멕헤일의 선택은 정말로 탁월했군요.
4위: 1993년 37th Pick : Nick Van Exel: LA Lakers
밴 엑셀은 37번째로 LA에 뽑혔습니다. 37번째!!! 보통 이쯤 되면 무엇인가르 바라고 드래프트를 할 수 있는 시점은 아닐 것입니다. LA도 큰 것을 기대하고 밴 엑셀을 뽑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벤 엑셀은 13.6점 5.8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수준급 PG로서 자리메깁하게 됩니다. 매직 존슨의 은퇴와 시델 트레트의 노쇄 등으로 허접이 되었던 LA 백코트에 새로운 희망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2년 후, LA는 또 하나의 백코트 플레이어 에디 존스를 영입하며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 후, SHAQ, Kobe의 가세로 LA는 가장 인기 있는 팀이 되었고, 97-98 시즌에는 에디, 코비, 샤크와 함께 올스타에 선정되죠. 얼마 후, 벤 엑셀은 덴버로 가서 맥다이스와 콤비를 이루며 서부의 플레이 오프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Nick da Quick... 37번째 픽 치고는 기량이 엄청나군요.
5위: 1996년 13th Pick: Kobe Bryant: Charlotte~LA Lakers
30.8 ppg, 12 rpg, 6.5 apg, 4 spg 3.8 bpg
코비가 Lower Marion 고교 재학 시절 기록한 말도 안 되는 수치들입니다. 이 정도로까지 다방면에 출중한 선수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기록들입니다. 하지만 코비도 가넷과 마찬가지로 고교 졸업 후 프로 직행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서 우려의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가넷이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는 인사이드에서 플레이 하는 빅맨이었기에 퍼리미터에서 플레이하는 코비는 아직 기량이 프로에 통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평가를 들어야 했죠. 하지만 샬럿은 그에게 미네소타가 가넷에게 했던 것 과 같은 기대를 하며 코비를 뽑았습니다. 하지만 곧 그를 LA의 Blade Divac과 트레이드 하고, Kobe는 올스타 가드인 에디 존스와 세드릭 세발로스 밑에서 실력을 쌓으며(가다듬는 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두번째 시즌 부터 평균 15점을 넣으면서 올스타에 뽑히고, 오늘날에는 오닐과 팀을 2연패로 이끄는 훌륭한 선수가 되었죠. 13번픽... 사람들이 코비가 이 정도로 성장할 줄 알았다면 그는 13번 까지 남아 있진 않았겠지요.
6위 :1994년 10th Pick: Eddie Jones : LA Lakers
7위: 1993년 24th Pick: Sam Cassell : Houston Rockets
8위 :1997년 9th Pick: Tracy McGrady: Toronto Raptors
9위 :1998년 10th Pick: Paul Pierce : Boston Celtics
10위:1998년 41st Pick: Cuttino Mobley : Houston Rocke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