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건축은 젓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라는 게 잘 짓든 못 짓든 과정에서
누구나 속이 썩기 마련이다. 다만 어떻게 썩느냐 문제다.
아무리 염장을 질러도 잘 삭으면 그만이다
돈이 궁해도 맘이 통하면 만사형통 아닌 것이 없다
산들내가 그렇다.
산들내는 집이 아니라 마음이다. 이심전심이다.
예를 들어 창고 같은 경우
내부벽체는 보온재를 채운 다음 osb합판에 석고보드를
치고 페인트나 벽지로 마감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산들 사장님이 창고는 마감재를 달리 하자고 제안했다.
농기구가 들락거리는 창고에 석고보드를 대면 찍히기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시공팀 의견이 분분했지만 내가 보기엔 더 보강해봐야
일만 많아질 뿐이다.
'osb합판 노출 그대로 갑시다!'
현대 디자인에서 노출은 다반사다. 노출 콘크리트,
노출 천장ᆢ따로 마감재를 쓰지 않고 재료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마감 방식에 더하여 일부러 노출을
연출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석고보드 이음매 틈새를 메우기 위해 빠데작업한
자체를 그대로 벽체로 활용하기도 한다.
마치 거리의 낙서화가 바스키야의 그래피티처럼ᆢ
생각하고 보기 나름이다. 자재비를 줄일 수 있는데다가
다른 사람이 보면 창고 마감재로 부러 osb 합판을 쓴
줄로 여기지 않을까?
그러나 산들 사장님이 누구신가?
창고에 들어가는 품과 자재비라도 아껴주고 싶은 맘을
침실 천장에 석고보드를 한 장 더 덧대는 걸로 퉁친다.
뿐만이 아니다.
에산을 줄이기 위해 빼버렸던 창고문 상부 캐노피 ᆢ
하지만 막상 산들내 외관이 드러나자 욕심이 생겼다.
디자인 겸 캐노피 삼아 일자 라인이 하나 들어가면
집모양이 살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부탁을 드리려다가 일을 줄이지는 못할망정 늘일 순
없어 그냥 넘어가버렸다. 그런데 내 맘을 읽기라도 한 듯
창고문 위에 캐노피를 올릴 거란다.
그제서야 털어 놓았다.
안 그래도 일자 라인 때문에 끙끙 앓았다고ᆢㅋ



이 대목에선 지금도 말문이 막힌다.
http://m.cafe.daum.net/refarm/QHa/165946?svc=cafeapp
앞선 글 13에서 가장 절박했던 사정을 올렸지만
아쉽게도 귀농사모에선 답을 구할 수가 없었다.
혼자 난리 부루스 춰봤자다.
내 평면도에선 1800폭ᆢ냉장고 깊이 1000을 사용해도
동선에 무리가 없다. 이 사단이 난 건 인허가 도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1500으로 줄어든 걸 놓쳐 버렸기 때문
전적으로 내 불찰이다.
이대로 손을 놔버릴까 하다가 다용도실 벽을 허물지
않고도 냉장고 쓰는데 불편하지 않는 유일한 길ᆢ
오른쪽 개폐창은 애초 없는 셈 치고 그 앞에 냉장고를
두기로 했다. 거기 맞춰 장을 짜면 감쪽 같이 빌트 인
주방이 되는데다가 동선도 더 효율적이다.
그러고보니 만약 1800 그대로 칸을 질렀다면 오히려
거실과 침실이 좁아져 둘 다 죽도 밥도 아닐 뻔 했다.
결과적으론 불찰이 전화위복이다. 천만다행이다.
그래도 자괴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쨌거나 주방창은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른 꼴이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창호가 어른거릴 때마다 죽을 맛이다.
그런데 뒤늦게 시공팀을 통해 사정을 전해들은 산들
사장님이 불쑥 '빌트인 냉장고'를 꺼내들고 나타나셨다
'깊이 600짜리면 해결되지 않나요?'
밴뎅이도 격이 있다. 오뉴월 밴뎅이처럼 때를 잘 만나야
하는데 그동안 계속 헛다리 짚었다. 덕분에 빌트 인
냉장고 냉동고 김치 냉장고 풀세트 거금 들어가게
되시겠다. 그래도 살 맛 난다 되시겠다.
창호도 무죄고 칸막이도 무죄다. 죄라면 산들 사장님을
몰라 본 죄ᆢ앞으로 사장님을 더 받들어 모실 일만
남았다 ㅎㅎ



주방공간을 최적화하기 위해 자질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주방 세레나데를
불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 빌트인으로 정리한 것까지는 신의 한 수지만
복병이 하나 더 있었다. 레미콘 타설을 하기 앞서 싱크
배관을 빼놓는데 내가 표시한 싱크볼 위치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설비가 아무 문제 없다고 하니 그냥 지나쳤지만
아무래도 억지 춘향인 것 같아 배수구멍에 맞춰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무릎 탁! 쳤다.
차제에 ㄷ자 싱크대를 오른쪽으로 통째로 옮기고 그
사이에 공간을 확보하면 좌식공간이 생긴다는 사실ᆢ
건축평수를 최소화시키면서 집에 있던 오래된 고재평상 (1300×2300)은 포기했는데 우연찮게 딱 안성맞춤
좌식공간이 굴러 들어왔다. 도면 대로라면 평상 밑에
배수구가 뚫렸을텐데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피했다.
희한하게도 내 실력으로는 그려내지 못할 주방을
실수연발 칸막이와 배수구가 점지해준 것이다.
꿈도 꾸지 않았는데 좌식과 입식 겸용 주방탄생ᆢ
산들내ᆢ 이리 잘 풀려도 되는가? ㅋ




산들내 빽도 여전하다.
목조주택은 방수가 생명이라며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건 물론 직접 몸으로 떼우는 것도
다반사다.
시공계약을 할 때, 창고 전면은 시멘트블럭으로
마감하는 대신 메지를 선명하게 살려달라고 했다.
그럴려면 조적이 끝난 다음 별도로 메지를 넣어야
된단다.
그런데 조적공이 띄우는 블럭 사이 간격이 들쭉날쭉이다
보다 못한 사장님이 직접 나섰다. 아예 판재를 하나
구해와 이 두께 만큼 띄워달라 하더니 메지를 대충대충
하고 넘어가자 이번엔 전선줄 한 가닥을 주워와 직접
메지를 넣으신다.
보니까 딱이다. 무슨 작품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면
따로 메지 넣는 사람을 부르지 않아도 되겠다 했더니
심혈에 깔끔하게 붓질까지 조적공 저리 가라다.
남의 일이든 내 일이든 스스로 만족할 수 있어야 된다며
최선을 다하는 사장님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창고 전면블럭 선은 어느 정도 빠졌고ᆢ

또 하나의 선은 햇빛선ᆢ
처마선과 이어진 양쪽 기둥은 집의 윤곽을 강조하기
위해 세운 것이지만 한편으로 입구 기둥은 방문객을
자연스레 현관으로 인도하는 유도등 역할도 한다.
큐블럭으로 낮에는 햇빛 밤에는 불빛 드나들기ᆢ
빛과 그림자의 질감을 밟고 들어오기ᆢ




정직하게 사각 큐블럭 전체를 빛구멍으로 하려다가
좀 심심한 것 같아 미술쌤에게 그려봐달라 부탁을 했다.
미니멀하게 살짝 비틀어 보시라ᆢ


맘에 안 들면 다시 쌓으면 된다.
얼마든지 갖고 놀 수 있으니 후환이 두렵지 않다 ㅎ
그런데 큐블럭 몽땅 반품하시겠단다. 촌구석에선 흔히
사용하지 않는 자재이다보니 때도 타고 모서리도
나가고 재고티 팍팍 난다며 ᆢ야튼 못 말리는 사장님
사장님 산들 사장님 덕에 산들내 살 판 났다.
자꾸 통정하니까 집이 되어가고 있다.
젓갈처럼 오래 통정할수록 10년ᆢ20년 살만한 집이
될 것이다.
오늘은 20년 지나도 사랑일까 노래도 부르며~^^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Ja0HBp2hL-Q
20년ᆢ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VRlxgW5yzVU
그 뒤를 이은ᆢ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wbTmQBxS790#
'아이들이 직업으로 음악을 하게되면 더 이상 음악을
즐기지 않게 될까봐' 전 세계의 초청을 거부하고 자기가
사는 동네의 작은 축제에서만 노래하는 ᆢ
그런 마음으로 산들내의 20년을 즐길 수 있길 바라며^^
첫댓글 본문엔 목소리가 변하기 전에 딱 500장만 발매한 한정판 음원을 올렸지만
이삭과 노라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라이브 영상ᆢ
https://youtu.be/oDEu39FLYpw
PLAY
https://youtu.be/-eqJAAi1kE8
지금 따로 음악까지 정리해 올릴 형편은 못 되고
파두처럼 부른 '20년'도 색다른 맛ᆢ
PLAY
며칠째 서울에 와있습니다
산들내 현장에선 지금쯤 징크지붕이 올라가고 있겠지요ᆢ 전적으로 믿을 수 있기에 자리를 비울 수 있다는 거ᆢ얼마나 다행인지요
하루빨리 복귀해 다음 편 징크를 올릴 수 있으면 좋겠심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10.15 08:1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10.15 08:23
진짜 10년 늙겠습니다ㅎㅎ
메지 잘 넣으면 벽돌이 더 이쁘다는...
아주머니 두분이서 이틀한 정성이 아까워서 벽지도 안발랐습니다.
석고보드는 좀 아쉽습니다. 천정에 두겹은 무게가 있으니 신중히 생각하시길...
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이번달 안에 공사가 끝나야 늦은 단풍구경이라도 하실건데
꼭 필요치 않은 곳엔 한 푼이라도 공사비를 절감시켜 주는 게 내 할 일이고요
천장에 두 겹은 목수가 내게 자랑해서 그때서야 알았어요
안 그래도 일반석고보다 두꺼운 석고보드 쓰디만 두겹으로 했으니 침실단열은 끝내주겠지요
석고보드 무게를 감당못할 타카핀을 쓰지는 않구요
하늘이 무너질까 기우~^^
단풍은 바로 이웃 놀러가는 길이 단풍길ᆢㅎ
사진 올린 곳
청학동쪽 차 마시러 가는 길도 단풍길
따로 놀지 않아도 숨은 비경 천지라요
공사마감은 준공허가 문제도 있고
세월아네월아 할기라요 ㅎㅎ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10.15 14:15
안녕하십니까
이제 얼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셨군요
집 한채 짓고 나면 몸이 말이 아니라고 예전에는 그랬는데 그래도 올리시는 글을 읽어보면 각자 책임을 다 하는것 것 같아 건강은 그리 생각하지 않아도 될것 같은데요 ㅎㅎㅎ
한가지 질문은 침실에 석고를 두장 붙이는 이유가 무슨 이유인지요
단열이 잘되면 전 평수에 모두 그리하면 난방 효율성이 더 좋을것 같은데요
지하수를 사용하시면 펌프 설치 위치가 좀 깊을수록 좋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 있는곳은 통상 가장 추운 동절기 온도가 영하18~20도 인데 1m 지반 밑에 설치 했어도 동파가 되더군요
해서 4m밑으로 설치 위치를 잡고 벽체는 300mm 로 해서 정사각형의 창고 겸용으로 5*5*4(m)로 하니까 동파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동절기 장기간 가지 못하면 에어컴프레셔 로 실내 수관에 있는 잔여 물을 빼내야 안전한것 으로 경험도 했지요
대변기는 잔여 물이 뺄수가 없는데 여기는 소금 한 주먹 량을 투여하면 동절기간 안심이 되더군요
이 역시 수업료 내고 경험을 한것입니다 ㅎㅎㅎ
과정을 배우게 해 주십시요
건강 조심하시고요
가을은 오는가싶으면 가버리더군요.
산들집?도 결실을 보게 되는군요~제대로 곰삭아야지 아주 푹 썩어버림 아니 되옵니다 ㅎㅎ더 춥기 전에 마무리하셔야죠.
음악을 곁들여 짓는 산들네, 곰삭는다는 말도정겹습니다.
사람 잘 만난 노래님 엄지 척! 평생가는 사람사는 집이니
성실한 장인의 숨이 얼마나 중요할지...
Nora, 아직 꼬마인데도 우수에찬듯한
표정에 안정된 목소리, 넘 귀여워요.
그녀가 20살일때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