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오염되는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본문 주해)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12:17)
13장은 바다 모래 위에 선 용이 두 짐승을 불러내어 자기의 권세를 위임함으로 여인(교회)이 낳은 생명 얻은 성도들을 위협하고 괴롭힌다.
땅과 바다의 경계가 바닷가 모래이기에 바다의 짐승과 땅의 짐승을 불러내어 함께 싸우려고 하는 내용이 13장이다.
오늘 본문(13:1~10)은 용이 바다 짐승을 불러내어 성도들을 괴롭히는 내용이다. 바다란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거대한 힘과 세력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바다의 짐승이란 우상화된 전제주의, 제국주의를 나타낸다. 하지만 국가만이 아니라 모든 우상(탐심)이 짐승의 속성인 것이다.
1~4절 : 짐승의 모습 중 열 뿔과 일곱 머리는 나타나고 사라지는 제국주의들이며 또한 면류관등은 교회를 박해하는 강력한 정치적 권력을 상징하는 말이다. 열 뿔과 일곱 머리는 제국의 왕들로서 바벨론, 메대, 페르시아, 그리고 헬라 왕이다.
그런데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은 이 짐승들의 결합체이다. 지금 교회를 박해하는 로마 제국은 기존의 여러 제국보다 당당하며 강력하며 잔인하다.
요한이 본 바다의 짐승은 몸통은 표범, 발은 곰, 입은 사자와 같다. 이는 다니엘 7:3~8에 나오는 짐승의 모습과 흡사하다. 다니엘서는 사자, 곰, 표범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열 뿔 짐승으로 되어 있다.
용이 바다의 짐승에게 권세를 주는데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소생한다,
온 세상은 짐승의 머리가 소생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그 짐승을 따르고 용에게 경배하였다. 짐승이 상징하는 로마 황제에 대한 숭배는 그에게 권세를 준 용(사탄)을 숭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세상 사람을 미혹하는 사탄의 궤계인 것이다.
용이 주는 권세로 바다의 짐승인 국가나 땅의 짐승인 종교나 간에 대단한 영웅적인 일들을 만들어 내어 사람들의 경배를 받고 찬사를 받게 하는 일이 용의 일이다. 이러한 용에게 사로잡혀 있으면 십자가의 예수님은 완전한 실패로 보이는 것이다.
5~7절 : 짐승은 한시적으로 성도들을 박해한다.
짐승이 권세를 부릴 수 있는 기간은 마흔두 달로 정해졌다. 이는 교회를 상징하는 여인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기간-1260일-과 일치한다. 이 기간은 구약의 기간(십자가 사건 이전)이요 또한 신약의 기간(십자가 사건 이후 재림 때까지)을 의미한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어 성도들을 잠시 이기게 되지만, 그 용은 이미 십자가로 패배하였기에 비록 성도를 핍박하고 죽인다고 하여도 그 영혼을 빼앗아 가지는 못한다.
십자가 사건은 구약의 성도들의 구원을 완성하였고, 또 그같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이루신다.
8절 : “그러므로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때부터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모두 그에게 경배할 것입니다.”(새번역)
창세 이후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주님께서 짐승(우상)에게 경배할 수 없도록 조치를 하신다. 우상숭배의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담당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우상들이 다 무너지는 것이다. 나라든 개인이든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우상들이 무너져야 유대인들에게는 저주받은 죽음이라 거리끼고,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9~10절 : 짐승을 숭배하는 시대,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을 요구한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어 성도들과 이기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 용이 이미 십자가로 패배하였기에 비록 성도를 핍박하고 죽인다고 하여도 그 영혼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는 것이다.
사로잡혀 가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면,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면,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짐승인 나라들이 성도들을 죽이고 핍박하여도 십자가는 이미 승리하였다.
십자가로 뱀의 머리가 깨어졌음을 믿기에 인내하는 것이다.
(나의 묵상)
용이 권세를 준 바다 짐승이란, 이 세상 역사에서 오고 간 모든 제국주의의 나라와 개인적으로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탐심(우상)을 가리킨다.
세상의 모든 나라는 각각 자기 영역을 지키고 힘을 키우고자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자기가 속한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사실 각자의 이익을 따라 행동하는 그 나라들이 바로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되는 것이다.
사탄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제공하기에 역사 속에서 많은 제국주의 나라들이 그렇게 명멸했던 것이다.
사탄은 그렇게 구약의 성도들을 위협하고 때로는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까지 빼앗아 가지는 못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들을 하늘에 앉히셨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자(신약의 성도들)들의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질 때(주님의 재림 때), 구약과 신약의 온 성도들의 구원을 함께 완성하실 것이다.
오늘날은 초대교회 때와 같은 핍박은 없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국가든 개인이든 아무도 나를 잡아가두거나 죽이고자 하는 위협이 없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이후로 참 그리스도인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이 화려한 시대에 주님을 향한 참 마음이 차츰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안타깝다.
어쩌면 초대교회의 핍박보다 더 강력한 사탄의 위협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땅에 붙은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그것은 탐심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마음이다.
탐심이라 하니 무슨 과도한 욕심을 생각하게 되어 ‘내게는 그러한 것이 없다’고....그저 소소한 행복을 바랄 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러나 인간적인 그 작은 행복이란 것이 가장 큰 탐심이요 위험인 것을 느낀다.
주님 없어도 마음의 평안을 얻기를 원하고, 주님의 간섭 없이 그저 내 마음의 원대로 선행을 하면서 살고 싶은 것....언뜻 보면 속기 쉬운 그 삶은 용이 제안한 달콤함이요, 짐승이 주는 안락함인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고상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용의 제안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은밀하게 진행되는 더 지독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복음에 관심이 없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 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자기들은 좋다고, 이상한 소리만 하는 고리타분한 예수쟁이들이 싫었다.
그런데 우야다가(어쩌다가) 믿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교회를 다녔어도 예수 이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열심을 내었어도 십자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나는 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요, 생명책에 이미 이름이 기록된 자였다!
주님께서 느닷없이 찾아오셔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생명의 교제를 하게 하심으로, 용을 경배하고, 짐승을 따르는 그 더러운 짓을 끊어내게 하신 것이다.
나의 그 더러운 욕심들의 포장지를 걷어내고 그제야 그 실체를 알게 되니, 십자가에 그것을 못 박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여전히 온전치 못하지만, 주님의 다 이루심을 믿는다.
지금도 이루어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매일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인격이 점점 깊어지고 높아지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점점 더 깊이 신뢰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오늘날도 용이 권세를 받은 짐승들이 이 땅을 헤집고 다니면서 성도들을 미혹한다.
때로는 나라 사랑, 세계평화, 인권.....등에 주먹을 쥐어 목소리를 높이게 하고, 때로는 ‘너의 소소한 행복을 위하여’ 라고 속삭이면서 각자의 탐심을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어느새 우상을 섬기는 일이 마땅한 것이 되도록 속이는 것이다.
아, 그렇게 살다가 영원히 멸망 당할 인생, 그 끔찍한 것에서 구하여 주시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알아가게 하시니 너무도 감사하다.
계시록을 보면 볼수록 평안을 누리게 되고, 또 깨어있게 하시는 성령님께 감사를 드린다.
(묵상 기도)
주님,
용의 권세를 받은 짐승의 실체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라든 개인이든 주님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은 파해져야 함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몸을 입고 이 땅을 사는 동안 구별하고 구분하며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련하고 아둔한 자로 하여금 짐승을 따르고 섬기는 일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오직 말씀의 빛으로, 주님의 십자가로 인도함을 받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