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를 지닌 사람, 노무현 - 최종원(연극인,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안녕하십니까. 배우 최종원입니다. 날씨도 쌀쌀해지고, 겨우살이 준비하느라 얼마나 바쁘십니까. 입시생을 둔 가정에서는 초조한 날들을 보내시느라 애간장이 타실 겁니다. 연말연시로 다들 부산한데, 나라 살림을 꾸려갈 대통령 선거까지 있어 더욱 마음이 바빠지는 것 같습니다.
연극배우로, 안방극장 탤런트로 30여 년 뼈가 굵어온 저 같은 사람에게도 대통령 선거의 열기는 뜨겁게 느껴집니다. 때론 여러 후보들이 펼치는 무차별 폭로전, 무협지를 능가하는 공방전 탓에 대학로를 찾는 연극 관객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직업상의 걱정도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는 앞으로 5년간 우리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큰 일꾼을 뽑는 중대한 일입니다. 우리의 한 표를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연말이라 회사에서, 가정에서, 혹은 모임에서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맺음하고 정리할 것도 많습니다만, 2002년 12월 정말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일입니다. 그 놈이 그 놈이라고 외면해버리면 결국 손해보는건 우리 국민입니다. 흔히 정치는 우리들이 마시고 살아가는 공기와 같다고 합니다. 공기가 싫다고 마시지 않으면 살수가 없고, 나쁜 공기를 마시면 우리들만 골병듭니다.
저는 노무현 후보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무슨무슨 연예인 후원단이라서 해서 각 당의 후보자들을 그림자같이 졸졸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애초부터 저는 그런 자리에 얼굴을 내민 적도 없고. 노무현 후보를 국민 후보로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노사모의 회원도 아닙니다.
사실 저는 지난 3월인가요, 민주당이 이른바 국민경선 방식으로 대통령 후보를 뽑겠다고 했을 때 설마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노 후보가 되길 바랬지만, 바란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참,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그렇게 쉽게 포기해 버린 걸 보면 저도 늙긴 늙었나봐요. 어쨌든 노 후보가 국민경선 초반 1위로 올라섰을 때만 해도, 바람이라거나 깜짝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노풍이 단순한 신드롬이거나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느낀 것은 그 뒤 저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서였습니다.
지난 3월중순 제 고향인 강원도에 내려가 친구들과 속초 어항에서 소주 한잔 나누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때 노무현 후보가 국민경선 때문에 속초에 내려왔더라구요. 그 때 우연히 노무현 후보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노무현 후보의 숨은 힘이랄까요, 화려하지 않지만 속 깊은 인간적인 매력에 홈뻑 빠져버렸습니다. 비릿한 냄새와 왁자지껄한 소리, 고기잡이 배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전등은 검은 바다에 유난히도 밝게 켜져있었습니다. 참, 인간이 만든 별, 어부들의 별, 어부들의 꿈이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후보들은 밤늦게까지 곳곳을 누비다 새벽이 되어서야 어시장에 들렀습니다. 다른 후보들은 제주도에서 시작된 강행군에 지쳐 그저 상인들과 형식적인 악수를 나누고 지나가기에 바빴습니다.
근데 유독 노무현 후보의 얼굴만은 생기가 돌고 말도 많아집디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곧장 포장마차로 가는 겁니다. 포장마차까지 가기까지에 스친 그 많은 사람들이 막말로 바로 표 아닙니까. 그저 포장마차에 가서 어부들 곁에 앉습니다. 꼭 늘 알아왔던 동네 친구같이. 꼬깃꼬깃 때가 묻고 비린내가 확 풍기는 이들과 격의 없이 소주잔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표를 억지로 빼앗아올 생각은 없습니다. 땀 흘리고 냄새 나는 사람들도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저를 빌려 쓰십시오" 하면서 격의 없이 술잔을 돌리자, 굳이 형식적인 눈인사를 하며 어시장을 돌지 않아도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더군요.
당시 노 후보는 말끔한 자신의 옷이 더렵혀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찬 목로에 털썩 주저앉아 돌아오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술이 바로 약술입니다. 저도 술 좋아하지만 기분 좋게 마시는 술 한잔, 캬 그게 보약입니다. 강행군의 피로도 거뜬히 잊고 떠오른 밝은 표정, 서민들의 힘든 삶을 함께 해본 사람만이 나눌 수 있었던 그 술잔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고 봅니다. 신경림 시인의 말마따나 무지랭이들은 못난 얼굴만 만나도 흥겹다는 게 딱 들어맞는 자리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후보가 여러 어부들의 입을 거친 그 술잔을 격의 없이 받아 마실 수 있겠습니까? 또 여러분이라면 어느 후보에게 서민들의 삶이 묻은 술잔을 선뜻 돌릴 수 있겠습니까? 어떤 후보가 서민 흉내내느라고 시장에서 씻지도 않은 오이를 먹는 사진이 장면이 신문이 나오던데, 그런 서민 흉내와 노후보의 향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봅니다.
그는 사람을 사로잡는 진실의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겉으로 꾸미거나 억지로 지어낸 친근감만으로는 생길 수 없습니다. 그에겐 거창한 약속이나 깜짝쇼 따위는 없었지만, 진정으로 가슴에서 우러나는 소신과 그것을 밀고 나가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돈으로 산 표몰이꾼을 동원해 표를 만들지 않았고, 낡은 지역주의를 앞세워 사람들을 선동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후보를 지켜보는 저로서는 남다른 감회가 따릅니다. 그가 갖가지 어려움을 넘어 대통령 후보로 자리하기까지의 과정은 제 삶의 행로와도 같아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고생, 지나고 나서야 약이 됐다고 하지만, 솔직히 고생 안 하면 안 할수록 좋은 거 아닙니까.
제 연기 생활 30년, 예 30년만에 소위 떴습니다. 그 30년이 어땠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제 고향인 태백은 탄광촌인데요, 그곳에서 공고까지 졸업한 뒤 무대에 서겠다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으니 지금의 자리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과 한숨의 밤을 지냈겠습니까. 데뷔 초창기에는 동아연극상 등 큰상을 더러 받기도 했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늘 어렵기만 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 그거 정말 처절한 것입니다.
처자식 하나 잘 길러보겠다고 모든 걸 엎고 탄광촌으로 내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배우가 되겠다는 저의 꿈은 처자식의 고생을 담보로 다시 연극 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밤 기차에서 차마 버리지 못한 채 꾸깃꾸깃해진 연극 대본을 언 손으로 읽던 기억은 저에게 무한한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고향 마을에 날리던 스산한 탄가루는 저에게 고향에 주저앉기보다 고향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이야기를 대신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밤 기차 속에서 탄가루 날리는 선술집에서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저와 함께 눈물과 웃음을 나누었던 많은 이웃들이 있었기에, 영화 [투캅스]와 드라마 [육남매], 맥주 CF 등에서 보여드린 저 최종원의 연기가 수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노무현 후보에게서 동병상련의 정을 느낍니다. 동병상련, 서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느끼는 정 말입니다. 사실 연기를 하다보면, 누구나 잘나 보이고, 카메라 빨 잘받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합니다.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은 집안 좋고, 학벌 좋고, 미끈한 외모를 가진 사람으로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면 딴나라 얘기죠. 화려하지 않지만, 진실되고, 정직한 사람에게 정을 많이 느낍니다. 저 같은 사람이 시청자 여러분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아마 그런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노무현 후보를 보고 '바보 노무현'이라고 하쟎아요. 아마 정치인중에 바보라고 불리우길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가능하면 똑똑하고 잘난 사람으로 비쳐지기를 좋아하죠. 그런데 노무현 후보는 '바보 노무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노무현 후보의 일관된 정치역정,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온 그의 원칙과 소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지난 총선에서는 당선이 보장된 서울 종로를 버리고, 정치적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또다시 낙선의 쓴잔을 마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아름다운 패배'라고 했습니다. 다들 비단길, 따뜻한 길을 가는데, 그는 가시밭길, 험한길을 택한 것입니다.
전요, 계란으로 바위친다는 말 기억하시죠? 하나의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면 바위는 깨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만 개, 수천 억개의 계란이 바위를 친다면, 그 바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첫 계란이 노무현이었다면, 그 나머지 계란이 바로 우리 국민입니다.
'지역주의'라는 바위를 우리 한번 깨봅시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5시간 밖에 안 걸립니다. 나눌래도 나눌 게 없는 작은 땅입니다. 그것마저 잘라먹으려는 구세대 정치인들을 최종원이와 여러분이 함께 깨야지요. 노 후보가 깃발을 들었다면 우리 국민이 행동해야 합니다. 한국 정치의 고질을 타파하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지킨 노무현 후보. 그것은 온갖 험난한 산과 바다를 건너 오늘에 이른 저 최종원의 모습입니다. 최종원 같이 정직하게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저는 얼마 전의 노무현 씨와 정몽준 씨 간의 단일화 후보 과정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얼마나 박수를 쳤는지 모릅니다. 저 자신도 연극협회장 선거를 치러 보았습니다만,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이 없이는 소속원 간의 결속과 밝은 미래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생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자녀가 학교에서 반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잘 사는 새 친구가 전학을 왔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잘 사는 그 친구를 반장으로 내세워야 한답니다. 다시 뽑자는 겁니다. 이거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걸 받아들인 사람이 노무현 후보입니다. 전 남모르게 겪었을 노 후보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의 과정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후보 단일화 결정 방법을 받아들여 여론 조사에 임할 때에는 눈물마저도 핑 돌았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일찍이 [명예를 얻는 비결은 정도를 걷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까지의 노무현 후보의 행로는 굽힘없이 정도를 이루어 왔다고 봅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장담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후보단일화를 위한 마지막 협상에서 보이던 그의 당당한 표정을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연기자로 잔뼈가 굵어온 사람이지만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표정과 거짓으로 꾸민 표정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간파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얼마 전에 노무현 후보가 제 후배 연예인의 공연장에 들러 만만치 않은 기타 연주 솜씨를 보여줘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대학로의 연극 공연장을 들르는 연극 매니아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전요, 이런 말 드리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문화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꼭 한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외국 대통령들의 연설문을 보면 문학작품에서 좋은 대목을 인용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문학적 감수성을 지니지 못한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의 어려움을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문화를 사랑할 줄 아는 노 후보를 사랑합니다.
또, 저의 가슴을 울리는 노 후보의 진면목이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제가 원하는 연극을 한답시고 아내에게 참 소홀했습니다. 가난해서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노 후보에 대면 핑계밖에는 안 되요. 지금에 와서 잘 해준다고 아무리 애써도 그 서운함이 어디 쉽게 풀리겠어요. 이 자리를 빌어 한 마디 하고 싶네요. "여보, 고마워" 하하 쑥스럽네요.
이것 참, 제가 왜 이러냐구요? 국민경선 때 말입니다. 노후보가 장인어른의 가슴 아픈 일로 공격을 받자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아내를 버리지는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 아내도 그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저 한 동안 엄청 시달렸습니다. 저 같은 처지에 몰린 남성들 많을 겁니다. 하하 그래도 좋은 일이지요. 우리나라 남성들도 애정표현 적극적으로 해야합니다. 여러분, 제 생각이 어떻습니까?
제가 우스개 소리 하나 할까요? 후배들과 술자리를 갖다가 역대 대통령들을 한 글자로 말해보자고 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총'이라고 그러대요. 군인하다가 바로 대통령 됐으니까 그랬겠죠? 노태우 대통령은 '물'이라고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깡'이라고 하대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꽝'이라고 합니다. 참 많은 일을 했지만, 아들들 비리 때문에 한순간에 "꽝"이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지금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은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제 입장에서는 이회창 후보는 "빼"입니다. 제가 지지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빼겠다는 것이죠. 두 아들도 살을 뺐다죠?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말하자면 '소'같다고 할까요? 원칙과 소신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온 발자취가 '소'같은 느낌을 줍니다. 농사질 때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소'처럼, 노무현 후보는 우리 국민들과 애환을 같이할 수 있는 편안하고 소중한 친구처럼 보입니다.
만약 정치인 노무현이 원칙과 소신을 버리고 좀더 편한 길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쯤 그는 여러번 당선된 중진 국회의원이 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통령 후보가 되지는 못했을 겁니다. 낙선에 낙선을 거듭하면서도 원칙과 소신을 우직하게 지켰기에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겁니다. 모진 시련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준비해왔기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직한 대통령 후보로 우리 앞에 서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제 선택의 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직 누구를 찍을지 결정을 못하고 계시다구요? 국민들은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 새로운 대한민국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저나 노무현 후보나 나이에 비해 주름이 참 많습니다. 근데요, 제가 본 노 후보는 참 젊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젊은이 보다 더 젊은이답다고 해야할까요?! 직접 정치에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사용한다고 합니다. 젊은이들도 하기 어려운 일이죠. 그만큼 탐구심과 실천력을 갖춘 지도자죠.
그는 고시공부 할 때 한 자라도 더 보기 위하여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는 독서대를 만들기도 했답니다. 여러분 이런 발명가 대통령, 컴퓨터 프로그래머 대통령을 가진다면 우리나라 정말 잘 될 것같지 않습니까?
여러분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댁내 두루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참 12월19일 반드시 투표하는 것 잊지마세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분이 곁에 계셨기에 노짱은 행복했을겁니다.
지금은 저~ 멀리서 광재엉아를 보고 안타까움에 젖어 계시겠지만.....
최종원후보가 꼭 당선되기를 마음 깊은곳에서부터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