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을 마친 후, 한강대교 난간에서 담아 본 한강 풍경
산행하기 전( 前 )날, 2019년 3월 7일 목요일, 산행 할 준비를 하 기 위하여, 장( 場 )을 보러 나갑니다, 한 제과점( 製菓店 )에 들러, 샌드위치를 6,000( 원 ) 주고, 구입( 購入 )을 한다, 얼마 전 까지 5,000( 원 )하던 건데, 원인( 原因 )을 물어 보니, 최저 임금( 最低 賃金 ) 영향( 影響 )으로, 인건비( 人件費 )가 올라서 그렇답니다, 샌드위치는 산행 전날 아침식사 대용( 代用 )으로 구입을 하는 것이다, 가게에 진열( 陳烈 )이 되어 있는, 카스테러를 보니, 점심식사 대용으로 하기 에는, 양( 量 )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 전에 작은 것이 있었던 것 같아, 있느냐고 물어 보니, 없다고 한다, 가게를 나와, 다른 제과점에 들러, 적당( 適當 )한 양의, 카스테러 한 통을, 구입합니다, 두꺼운 종이 상자 안에, 4쪽이 들어 있어, 먹기에도 좋을 듯하여.... 날씨가 추운 겨울에, 산행을 하며 먹기 에는, 아주 좋은 듯합니다, 그 전에는, 떡 종류를 가지고 갔는데, 굳어 버려, 먹기가 아주 불편( 不便 )하였습니다,
올해 들어 더욱 심하여 진, 미세( 微細 ) 먼지, 드디어 6일 연속( 連續 ), 미세먼지 저 감 조치 발령( 低減 措置 發令 )이라는, 최악( 最惡 )의 상태( 狀態 )에 이르게 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는, 메시지 도착 진동음( 到着 振動音 ), 열심히 메시지만 보내고, 무대책( 無 對策 )이, 대책이 되어 버린, 한심( 寒心 )한, 공무원( 公務員 )들의 행동에, 머릿속은 열기( 熱氣 )로 가득 채워집니다,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어 보아도, 미세 먼지는 나아 질 줄 모릅니다, 그 중, 조금은 미세 먼지 상태가 좋아 진다는, 2019년 3월 8일 금요일을 택일( 擇日 )하여 봅니다,
아침 4시 30분에 기상을 합니다, 간단히 세면( 洗面 )을 한 뒤, 방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샌드위치를 아침 대용으로 먹습니다, 오래 전에는, 집 사람을 깨워, 간단( 簡單 )하게 라면이라도 먹고, 산행 출발( 出發 )을 하였는데, 너무 이른 시간( 時間 )이고, 집사람 나이도, 60대 후반( 後半 )이고 하다 보니, 이른 새벽에, 먹을 것 차려 달라는, 이야기가 잘 나오지를 않습니다, 몇 번은, 지하철역( 地下鐵驛 )으로 가는, 마을버스에서 내려, 문( 門 )을 연, 식당( 食堂 )에서, 식사( 食事 )를 한 후,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서, 산행 지( 山行 地 )로 가기도 하여 보았습니다만, 새벽에, 아까운 시간( 時間 )만, 소비( 消費 )하게 되고, 번잡( 煩雜 )스러 워, 집에서, 새벽식사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세면을 하고 난 후, 마을버스가 다니는, 06시 00분경까지의, 남는 시간을 활용( 活用 )하여 보기로 .....
1 산행년월일시 :
2019년 3월 8 금요일 맑음 13/-1(도), 6일 동안 중국 발( 中國 發 ) 미세먼지에, 국내( 國內 )에서 발생( 發生 )하는 미세먼지에, 대기( 大氣 )는 정체( 停滯 )되어, 바람 한 점이 없는 날이, 6일 간이나 지속( 持續 )되어, 미세 먼지 발생( 發生 ) 역사상( 歷史上 ) 최악( 最惡 )의 상태, 그리고, 중국이 중국의 동쪽, 우리의 서해 쪽에, 집중적( 集中的 )으로, 미세먼지를 대량 배출( 大量 排出 )하는, 공해 공장( 公害 工場 )을 지었고, 지금도 짓고 있고, 더 지을 것이라고 하는, 신문( 新聞 )들의 암울( 暗鬱 )한 이야기들, 그나마 오늘은 하늘에서 축복( 祝福 )을 내리는 지, 바람이 불며, 대기 정체가 풀려, 대기 질( 大氣 質 )이 조금은 좋아 진다고 합니다, 미세먼지 : 보통
2 산행 지가는 길 :
노원역 : 4호선->정부과천청사역 : 4호선 , 산행시작
계속( 繼續 )하여 이어지는, 관악지맥의 맥은, 이번 구간( 區間 )에서는, 찬우물 마을을 지나, 작은 능선 길로 이어 지는 듯합니다, 지맥 길을 따라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찬우물 부근( 附近 )의, 구굴어스 위성사진( 衛星寫眞 )을 보니, 군부대 시설물( 軍部隊 施設物 )이 능선을 점령( 占領 )하고 있어, 통과( 通過 )가 어려운 듯하여, 이 짧은 거리( 距離 )의 능선 길은, 포기( 抛棄 )를 하기 로 하였습니다,
3 집으로 오는 길 :
노들역 : 9호선->노량진역 : 1호선->마을버스 노원 5번
① 다른 지하철 보다, 9호선은, 퇴근 시간 전후, 9호선을 타는 사람들이, 다른 지하철 호선( 地下鐵 號線 )에 비하여, 많은 듯합니다, 노들 역에서, 동작 역 으로 가는, 급행 완행( 急行 緩行 )이 모두 만원사례( 滿員謝禮 ), 도저히 탈 공간( 空間 )이 없습니다, 타기를 시도( 始賭 ) 하가가, 실패( 失敗 )하고, 반대편, 노량진 방향으로 가는, 급행 완행도 모두 만원사례, 지하철이 도착 후, 강제( 强制 )로 밀고 들어가, 어렵게 탑승( 搭乘 )을 합니다,
② 산행을 마치고, 주위에 있는, 노들공원을 둘러 본 후, 내가 걸어 온, 관악지맥( 冠岳支脈 )의 마지막 지점( 地點 )인, 한강( 漢江 )의 모습을 사진( 寫眞 )에 담아 보기 위하여, 한강대교( 漢江大橋 ) 인도( 人道 )의, 난간( 欄干 )에 서서, 멀리 보이는, 한강 주변( 周邊 )의 풍경( 風景 )과, 유유( 悠悠 )히 흘러 서해( 西海 ) 바다로 들어가는, 한강의 물결을 사진으로 담아 봅니다, 지금의 화려( 華麗 )한 모습과, 그 옛날 사공( 沙工 )이, 한강의 이남( 以南 )과 이북( 以北 )을, 노를 저어, 나룻배로 사람과, 인심( 人心 )과, 물자( 物資 )들을 나르던 그 시절( 時節 )이, 내 머릿속에 번가라 크로즈 업 되어 오는, 깊은 환상( 喚想 )에 젓어 보기도 하는, 귀중( 貴重 )한 순간( 瞬間 )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여 봅니다,
③ 관악지맥의 맥( 脈 )은, 조금을 더 달려, 그 맥을 다 하지만, 지금은 무분별( 無分別 )한 도심 개발( 都心 開發 )로 맥이 사라진지 오래 되어, 지맥이 아닌, 아스팔트 깔린 도로( 道路 )를 걸어 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 意味 )가 있겠는가, 그나마 작은 흔적( 痕迹 )이라도 남아 있는, 노들나루에서 지맥산행을 끝내는 것이, 오를 듯하여, 이후의 산행은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
④ 지맥의 많은 구간( 區間 )이, 양( 兩 )옆으로, 주택단지( 住宅團地 )들이 있는, 사이를 위태( 危殆 )롭게 지나며, 작은 규모( 規模 )의, 둔덕 형태( 形態 )로, 그 명맥( 命脈 )이 남아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 多幸 )인 것은, 능선( 稜線 )이 아직까지는, 소실( 消失 )되지는 않고, 그 지역( 地域 ), 주민( 住民 )들의, 건강관리( 健康管理 )를 위한, 둔덕길로 남아 있어, 그나마 조금은 안심( 安心 )이 되었습니다, 주민들의, 편의( 便宜 )를 위하여, 길도 잘 정비( 整備 )가 되어 있고, 운동시설( 運動施設 )도 여러 곳에 설치( 設置 )가 되어 있습니다, 이 산객( 山客 )의, 소박( 素朴 )한 욕심( 慾心 )으로는, 옛날 그대로의 산길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너무나 많이 변한 세상( 世上 )에, 너무 호사스러운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작은 둔덕으로 변한, 지맥의 흔적( 痕迹 )은, 맥이 끊어지고, 도로로 변한 곳도 몇 군데 있기는 합니다만, 이 풍진( 風塵 ) 세상에, 그 맥이라도 남아 있는 것에, 감사( 感謝 )에, 또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능선 길을, 마을 주민을 위한 산책로로 사용 하도록, 잘 정비( 整備 )를 하여 주신, 관련( 關聯 ) 행정기관( 行政機關 )의 노력( 努力 )에도,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 산행시간, 설명에 나오는 지점들에 대하여 :
산행 과정에서, 각각의 지점에 대한, 시간은, 조건에 따라, GPS의 ON/OFF 시간, 웨이포인트를 작성한 시간( 시, 분, 초 단위의 시간 ), 사진기로 이정표 등을 찍은 시간( 시, 분 단위의 시간 )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설명에 나오는, 지점들에 대한 지점의 이름은, 웨이포인트 이름, 첨부 지형도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 산행시작 :
정부과천청사역 : 4호선( GPS ON : 07시 34분 00초 )
5 산행종료 :
노들역 : 9호선( GPS OFF : 17시 57분 34초 )
6 산행시간 : 10시간 23분 34초
7 산행거리 : 17.9537( Km )
8 이정표 통과시간( 숫자의 단위는 Km ) :
07 : 34 : 00 정부과천청사역( 政府果川廳舍驛 ), 6번 출구( 出口 )->교육원 삼거리( 敎育院 삼거리 )->교육원로( 敎育院路 ) 따라서->좌측( 左側 )으로 작은 개울->국사편찬위원회( 國史編纂委員會 ) 통과( 通過 )
교육원로 따라서 걸어가는 길, 좌측으로는, 작은 개울이, 흔적만 남기고 있고, 춥지 않은 겨울의, 작은 흔적으로, 약간의 얼음 빙판( 氷板 )이, 개울 바닥에 남아, 개울물을 대변( 代辨 )하고 있습니다, 다시 개울의 좌측으로는, 찬우물 마을에서 시작 되는 능선이, 작은 위용( 威容 )을 자랑하며, 관악산 본 능선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地球 溫暖化 )의 영향으로, 올라가기만 하는 기온( 氣溫 ), 눈 구경하기 힘든 이번 겨울, 약간( 若干 )의 얼음 빙판이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08 : 02 과천시 야생화 자연학습장, 안내 입간판 통과
08 : 08 관악산 둘레길 과천구간, 간촌 약수터, 입간판 통과
08 : 11 자연 야생화 학습장, 밤나무 길, 안내판 통과
08 : 13 야생화 자연 학습장 안내도 통과
08 : 17 밤나무단지 탐방로 소개, 안내판 통과
08 : 19 이정표, 관악산 둘레길 과천구간( 남태령 망루 ) 6.02(K),
관악산 둘레길 과천구간( 간촌약수터 입구 ) 1.08(K),
정부과천청사역( 지하철 4호선) 2.2(K)
08 : 38 이정표, 관악산 둘레길 과천구간( 간촌약수터 입구 ) 0.57(K),
관상약수터, 밤나무단지 탐방로 0.5(K)
08 : 43 이정표, 관-54, 화장실( 간촌약수터 방향 ) 0.6(K), 국기봉 1.57(K)
08 : 48 지적삼각점표지( 국가중요시설물 ) 석판( 石板 )
1 소재지 :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518-3
2 점의 명( 삼각점의 명칭 ) : 경기 96
3 표고 : 251.32( m )
5 관리자 : 경기도지사( 031-249-2352 )
6 설치연월일 : 1980년 12월 15일
08 : 50 이정표, 관-19, 간촌약수터 0.545(K), 관상약수터 0.240(K),
무당골 0.120(K)
08 : 56 이정표, 관-20, 관상약수터 0.08(K), 국기봉( 육봉 ) 1.05(K),
간촌약수터 1.04(K)
08 : 57 이정표, 관.7 현대아파트 2.17(K)
09 : 02 이정표, 관-21, 중앙공무원교육원 헬기장,
중앙공무원교육원 1.0(K), 국기봉 1.1(K), 관양동
09 : 05 이정표, 넝쿨숲, 국가지점번호 다 사 5239 3626,
동편마을 2.59(K)
암릉 오름 길이, 시작되는 지점 :
이 지점에서부터, 걷기 좋은 산책로 길은, 끝이 나고, 관악산 정상을 넘어, 사당능선을 내려와, 서울 둘레길이, 시작되는 지점( 시간 : 15 : 01 참조 )까지는 암능( 岩綾 )길입니다, 암능 타기를 즐기실 분은, 암능 타셔도 되고, 우회( 右回 ) 길을 이용하셔도 됩니다, 산 꾼들의 안전( 安全 )을 위하여, 암봉( 岩峰 )을 오르고 내리는 길에는, 계단( 階段 )이 설치가 되어 있어, 그리 위험( 危險 )하지는 않습니다,
09 : 06 이정표, 관-22, 국기봉( 육봉 ) 0.85(K),
화장실( 자연학습장 방향 ) 1.28(K), 화장실( 간촌약수터 방향 ) 1.27(K),
현대아파트 2.18(K), 전망대( 팔각정 ) 0.500(K), 동편마을 2.0(K)
09 : 10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관악수목원 안내 판 통과
09 : 30 전망대 도착
09 : 49 이정표, 관-53, 간촌약수터 2.13(K), 자연학습장 2.14(K),
불성사( 화장실 ) 0.340(K)
09 : 51 이정표, 육봉 국기봉, 국가지점번호 다 사 5245 3701,
연주암 1.45(K), 정부청사역 3.80(K)
09 : 53 육봉 국기봉의, 태극기 세워놓은 것, 촬영
10 : 04 이정표, 관-4, 제1 국기봉, 불성사 0.23(K), 관악산 정상 2.06(K)
10 : 19 이정표, 2.9, 구 국기봉, 정부청사역 2.7(K), 연주암 0.8(K)
10 : 20 구 국기봉의, 태극기 세워놓은 것, 촬영
10 : 23 이정표, 관-2, 팔봉( 제2국기봉 ), 불성사 0.38(K),
관악산 정상 1.2(K)
10 : 51 이정표, 2.9-2, 헬기장전 갈림길, KBS송신소 0.3(K),
팔봉능선 1.4(K)
10 : 57 이정표, KBS헬기장, 관악산구조대 T 502-9994,
안양유원지 6.0(K), 팔봉능선 1.5(K), 연주암 0.3(K), 기상대 1.3(K)
10 : 59 이정표, 2.10 헬기장2, 새바위 1.0(K), 팔봉능선 1.5(K),
연주암 0.4(K), 기상대 1.3(K)
11 : 12 이정표, KBS송신소, 관악산구조대 T 502-9994,
안양유원지 7.0(K),, 팔봉능선 2.0(K), 관악산 기상레이더 관측소 1.0(K),
연주암 0.3(K),
11 : 36 위치표시판, K32 제3깔딱고개,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연주암, 제4야영장
11 : 37 관악산 연주대 설명판 통과
관악산 최고봉인, 연주봉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절벽이 솟아 있는데, 깍아지른 듯한, 절벽위에, 약간의 석축을 쌓아, 올린 곳에, 연주대가 있습니다, 연주대란 이름은, 조선 초에 개칭한 것으로, 태조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뒤, 고려의, 충신들이, 이곳에서, 멀리 송경 쪽을 바라보며, 두문동에서 순국한, 72인의 충신열사와, 망국 고려를 연모하며, 통탄하였다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합니다, 태종이 충령대군을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 챈,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왕궁을 빠저나와, 이산 저산을 헤매다가, 며칠 만에 발을 멈춘 곳이, 관악산이었습니다, 그들은 관악 사에 들어가, 수도하면서, 왕좌에 대한 집요한 미련과, 동경하는 마음을 누를 길 없어, 관악 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연주대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관악사의 이름도, 어느덧 연주암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관악구,
11 : 39 이정표, 연주대 0.5(K), 삼막사 3.0(K), 연주암 0.15(K),
서울대( 공학관 ) 1.9(K)
11 : 46 이정표, 연주암헬기장, 국가지점번호 다 사 5264 3829,
과천향교 2.93(K), 연주대 0.27(K)
11 : 53 연주대 설명판 통과
11 : 58 관악산( 冠岳山 : 해발 629m ) 정상 도착
관악산은 ..... :
관악산은, 현재( 現在 )의 행정구역( 行政區域 )으로, 서울특별시( 서울特別市 )의, 관악구( 冠岳區 ), 동작구( 銅雀區 ), 금천구( 衿川區 )와, 경기도( 京畿道 )의, 안양시( 安養市 ), 과천시( 果川市 )에 걸쳐서, 있는 산입니다, 산의 높이는, 해발고도( 海拔高度 ) 629( m )입니다, 조선시대( 朝鮮時代 )에는 한성부( 漢城府 )와, 과천현( 果川縣 )에 속( 屬 )하였습니다, 관악산은, 산에 암봉( 岩峰 )과, 암능( 岩稜 )이 많고, 산의 정상부가,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을 하고 있어, 사람들은 관악산을 “ 갓 모습을 한 산 ” 이라고 하는 뜻의, “ 갓뫼( 간뫼 : 갓 모양 생긴 산 ) ” 또는 “ 관악( 冠岳 : 冠 : 갓 관, 岳 : 큰 산 악 : 큰 산, 높은 산 이라는 뜻 ) ”이라고 하였습니다,
관악산은, 옛날부터, 개성( 開城 )의 송악산( 松岳山 ), 가평( 加平 )의 화악산( 華岳山 ), 파주( 坡州 )의 감악산( 紺岳山 ), 포천( 抱川 )의 운악산( 雲岳山 )과 함께, 경기도( 京畿道 )에 있는 오악( 五岳 ) 중의 하나로, 산의 모양( 模樣 )이, 산세( 山勢 )가 수려( 秀麗 )하며, 암봉( 岩峰 )들이 많고, 오래된 나무와, 온갖 풀 들이, 바위와 어우러 저, 계절( 季節 )따라 변하는, 산 모습이, 마치 금강산( 金剛山 )과 같다고 하여, 소금강( 小金剛 )이라고, 하기 도 하고,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 西金剛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관악산의 최고봉( 最高峰 )을, 연주봉( 戀主峰 )이라 하고, 이 봉우리는, 커다란 암봉( 岩峰 )으로 되어 있습니다, 연주봉 남쪽 기슭에는, 연주사( 戀主寺 )라고 하는 절이 있습니다, 연주 봉 한 쪽에 있는, 연주대( 戀主臺 ), 깍아지른 듯이 험하고 위태로운, 절벽( 絶壁 )위에는, 응진전( 應眞殿 )이라는 작은 불당( 佛堂 )이 있습니다, 관악산의, 동봉( 東峰 )을 연주 봉이라고 하고, 서봉( 西峰 )을 삼성산( 三聖山 : 480.9 m )이라고 합니다, 전( 傳 )하여 지는 말에 의하면, 무학대사( 無學大師 ), 나옹선사( 懶翁禪師 ), 지공선사( 智空禪師 )라고 불리는, 3분의 큰 스님이, 각각 절 지을 곳을 점치며,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이 산의 이름을, 삼성산이라고 하였답니다, 삼성 산의 근처에는, 삼막사( 三幕寺 )라고 하는 절이 있습니다, 관악산의 북봉( 北峰 )은 장군봉( 將軍峰 : 411 m )과, 호암산( 虎岩山 )입니다, 호암산은, 산의 정상에 있는, 바위의 모양이, 호랑이 모양을 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근처에는 호압사( 虎壓寺 )라는 절이 있습니다, 호암산과, 호압사는, 삼성 산에서, 북쪽 방향으로, 약 2( km ) 정도 되는 거리에, 장군봉( 將軍峰 )이 있고, 그 서쪽으로, 347( m ) 높이의 암 봉이 있습니다, 이 암 봉의 생긴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다 하여, 봉우리의 이름을, 호암 산이라고 하였답니다, 호암산과, 호압사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 傳說 )이 있습니다, 조선( 朝鮮 )을 건국( 建國 ) 할 당시, 경복궁( 景福宮 )을 지을 때, 호랑이 모습을 한 괴물( 怪物 )이 나타나, 궁궐( 宮闕 ) 짓는 것을 방해( 妨害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정( 朝政 )에서는, 이 호랑이 모습을 한 괴물을 제압( 制壓 ) 하고 저, 시흥( 始興 )에 있던 호암사를, 산위로 옮겨 짓고, 절의 이름도, 호압사( 虎壓寺 )라고 바꾸고, 산의 정상( 頂上 )에는, 방화( 防火 )의 상징( 象徵 )인, 해태 상( 獬豸 像 )을 세우고, 한 우물이라는 연못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관악산의 주요 능선으로는, 돌산능선, 석수능선, 장군능선, 학우봉능선, 천인암능선, 팔봉능선, 관양능선, 육봉능선, 자운암능선, 사당능선, 용마능선 등, 여러 개의 멋진 능선( 稜線 )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없어 진 비사( 祕詞 )사에 대하여 .....
관악산은, 조선의 건국( 建國 )과, 조선시대( 朝鮮時代 )의 풍수지리에도 밀접( 密接 )한 관계( 關係 )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도, 대략적( 大略的 )인 기술( 記述 )을 하여 볼 까 합니다,
우리나라의, 고대 국가( 古代 國家 )인, 단군조선시대( 檀君朝鮮時代 )에는, 다음과 같은, 사서가 있었다고 합니다, 후대( 後代 )인 고구려( 高句麗 )와, 조선시대까지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배달유기( 培達留記 ), 신지비사( 神誌秘詞 ), 해동비록( 海東秘錄 )이라는 기록들 입니다, 이 중에서 신지비사( 神誌秘詞 )는, 단군 달문 때의 사람, 신지( 神誌 )인, 발리( 發理 )가 지은 것입니다, 내용은, 삼신( 三神 )께 올리는, 옛날 제사( 祭司 )의 서원( 誓願 : 맹세 : 盟誓 : 하고 기원 : 祈願 : 을 한다는 뜻입니다 )의 글입니다,
인터넷 홈페이지 검색 문서 :
(단군조선시대의 기록) 배달유기, 시지비사, 해동비록 참조
1931년 6월 10일, 단재( 丹齋 ) 신채호( 申采浩 ) 선생은 조선일보 학예란에 “ 조선사( 朝鮮史 )에 대하여 연재( 連載 )를 시작합니다, 연재를 끝내고, 연재한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간행( 刊行 )을 하게 되는데, 이 책이 그 유명한 ” 조선의 상고사 “입니다, 단재는, 이 책에서, 우리 민족 최초의 정사( 正史 )는, 신지비사( 神誌秘詞 )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단군조선 때, 신지라고 하는 사관( 史官 )이 쓴 비사라는 것입니다, ” 신지비사 “는, 우주창조, 단군조선의 건국, 산천지리 등을 노래한 것으로, 후대인 고려( 高麗 )때 ” 해동비록 “에, 일부 내용이, 요약, 정리되어 포함이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 해동비록 “은, 1106년, 예종의 명에 의하여, 당시 풍수서 들을, 집대성한 책으로, ” 신지비사 “는, 역사서이자, 풍수서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
성호 이익( 李瀷 : 1681- 1763 )은, 고려비기( 高麗秘記 )에서,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비기( 秘記 )가 많았다고 말을 하고, 《 신지비사( 神誌秘詞 ) 》를 인용( 引用 )하여, ” 마치 칭추( 稱錘 ), 극기 (極器 )와 같으며, 칭간( 稱幹 )은 부소( 扶疎 )이다, “라고 했으니, 칭추라는 것은, 오덕( 五德 )의 땅이요, 극기는 백아강( 白牙岡 )이니, 이것은 저울로써 삼경( 三京 )을 비유한 것입니다. 송악( 松岳 )이 중( 中 )이 되고, 목멱이 남( 南 )이 되며, 평양이 서가 되므로, 극기라는 것은 머리요, 추( 錘 )라는 것은 꼬리이며, 칭간이라는 것은, 벼리( 綱 )를 거는 곳이니, 송악이 부소가 되어 칭간에 비유되고, 평양( 西京 )이 백아강이 되어 칭수( 稱首 )에 비유( 比喩 )되며, 삼각산( 三角山 )의 남쪽이, 오덕구( 五德丘 )가 되어, 칭추에 비유된 것입니다,
인터넷 홈페이지 검색 문서 :
(단군조선시대의 기록) 배달유기, 시지비사, 해동비록 참조
---------------------------------------------------------
” 신지비사 “에서 단재가 주목한 것은 삼경설( 三京說 )입니다, 저울이 제 역할을 하려면, 저울대, 저울추, 저울판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저울의 기능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 國家 )도, 세 곳의 수도인 삼경이 있어야, 나라가 번성하여, 주변 70개국이 조공을 바칠 거라고 하는 기록이었습니다, 저울대, 저울추, 저울판에 대한 설은, 중국의 풍수 서에는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수설이었던 것입니다, 그 흔적은, 고구려의 삼 경제, 고려의 삼경제 등에서도, 볼 수 있는 기록입니다, ” 신지비사 “에서 말하는, 삼경에 대하여, 고려 때의 풍수 관리인 김위제는, 평양( 平壤 ), 개성( 開城 ), 한양( 漢陽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재는, 삼경을 하얼빈( 哈爾濱 ), 안시성( 安市城 ), 평양이라고 반박합니다, ” 신지비사 “는 그 후 어찌 되었을까 ? 고려왕조 까지, 은밀히 전하여 지다가, 조선왕조 시대에 들어와, 금서( 禁書 )가 됩니다, 조선의 태종, 세조, 성종은, 고려의 수많은, 풍수, 음양서, 비기( 秘記 )들을, 금서로 지정하여, 소각하거나, 비장시키게 합니다,
다음 홈페이지에서 : ” 이병도가 고조선의 역사서 "신지비사"를 소유 “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취함
북한산과, 북악산에 대한 풍수 :
화산( 華山 ), 부아악( 負兒岳 ), 또는 북한산( 北漢山 )이라고 불리는, 삼각산( 三角山 )은, 서울( 조선시대의 : 漢陽 )의 진산( 鎭山 )입니다, 강원도 분수령에서 나온 산맥들이, 도봉산( 道峯山 )을 일으키고, 그 여맥이 돌기하여, 만들어 낸 산입니다, 삼각산을 이루는, 3개의 봉우리인, 백운대, 인수봉, 국망봉이, 구름 속의, 세 줄기 부용( 浮龍 )처럼, 삼각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북악( 北岳 )이라고도 하는, 백악( 白岳 )은, 삼각산 남쪽, 지금의 청와대 뒤편에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면악( 面岳 )이라고 불리기도 한 이 산은, 막 피어나는 모란꽃 모양을 하고 있어, 모란봉( 牡丹峯 )이라고도 하는데, 수도 서울의 주산( 主山 )이기도 합니다,
서울의 내사산과 외사산 들 :
풍수상 서울은, 주산인 북악이 현무( 玄武 )가 되고, 청룡( 靑龍 )은 동쪽의 낙산, 백호( 白虎 )는 서쪽의 인왕산, 주작( 朱雀 )은 안산인 남산, 주산인 북악과 마주보는 관악산이 조산( 朝山 )이 됩니다, 이러한 산의 배치를, 내사산( 內四山 : 사신사라고도 합니다 )이라고도 합니다, 내사산은, 조선의 궁궐을 작게 둘러싸는 산의 배치를 말 합니다, 조금 더 크게 둘러 싼, 외사산( 外四山 )은 북한산, 관악산, 용마산, 덕양산( 행주산성에 있는 산 )이 됩니다, 다시 더 범위를 넓히면, 동쪽으로는 양주의 계양 산, 서쪽으로는 부천의 북악산, 북으로는 감악산, 남으로는 관악산이 있어, 서울을 여러 겹으로 둘러싸니 오덕구를 갖춘 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양천도와 서울의 풍수,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원 정 종 수
의 기록 중 일부 발취
오덕구 길지설( 五德丘 吉地說 )에 대하여 ...... :
고려 숙종 때, 김위제의 주장에 의하면, 삼각산( 三角山 : 北漢山 ) 남쪽이, ” 오덕구 “에 해당하는, 풍수상의 길지( 吉地 )라는 것입니다, 오덕구는, 삼각산의 남쪽, 서울을 중심으로 한, 오방( 五方 )의 각 방위에 해당하는, 오행산( 五行山 )이 있다는 것을 말 합니다, 중앙에는 면악( 面岳-白岳 )이, 원( 圓 )하여 토덕( 土德 )에 속하고, 북에는 감악( 紺岳 )이, 곡( 曲 )하여 수덕( 水德 )에 속하고, 남에는 관악( 冠岳 )이, 첨예( 尖銳 )하여 화덕( 火德 )에 속하고, 동에는 양주 남행산( 楊州 南行山 )이, 직( 直 )하여 목덕( 木德 )에 속하고, 서에는 수주 북악( 樹州 北岳 )이, 방( 方 )하여 금덕( 金德 )에 속한 것이라,
관악산의 풍수지리( 風水地理 )와 역사에 대하여 .....
경복궁에서 보면, 조산( 朝山 )인 관악산은, 그 형세가 마치 톱날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 혹은 불꽃이 일어나는 듯한, 형세여서 화형산( 火形山 ), 화산( 火山 )이라고 하였습니다, 관악산에서 내 뿜는, 강한 화기( 火氣 )는, 일차로 한강에서 걸러집니다, 다시 서울로 진입( 進入 )하는, 화기를 막기 위하여, 이름도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의, 숭( 崇 )자를 넣어, 숭례문( 崇禮門 )이라 하였고, 현판( 懸板 )을 가로가 아닌, 세로로 세워서, 설치를 하였습니다, 불은 불로서 막는다는, 오행사상( 五行思想 )의 원리에, 따른 것입니다, 또 경복궁의 오른팔은 대체로 산세( 山勢 )가 낮고 미약( 微弱 )한데다, 헤벌어져 품에 감싸 안는 형국( 形局 )을 이루지 못하여, 숭례문 밖에다, 남지( 南池 : 일제 강점기 직전( 1896년 )까지도 이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숭례문에서, 서울역을 바라보는 서남쪽 모퉁이에, 남지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 일부에서는 연지 : 淵池 : 라고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라는 연못을 파고, 문안에다 지천사( 支天寺 )를 두어, 허 함을 막고 저 하였습니다,
한양천도와 서울의 풍수,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원 정 종 수
의 기록 중 일부 발취
풍수적 측면에서, 관악산은, 한양의 조산 또는 외안산으로 인식되었으며, 관악산의 모양이, 불과 같아서, 한양에 화재가 잘 난다고 생각하여, 꼭대기에 못( 실제로 제가 보니, 관악산 정상의 바위에 작은 구멍이 파여 저 있고, 그 곳에 작은 양의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을 넣어서, 불의 기운을 누르고, 광화문 양쪽에 해태( 獬豸 )를 만들어 놓았다고 전하여 집니다,
관악산정상( 연주봉 꼭대기에 있는 작은 구멍
“ 여지비고( 輿地備考 ) ” 경도편에 " 삼각산 남쪽으로, 오덕구( 五德丘 )를 삼아서, 저울추에 비유하였다, ······남쪽에 관악( 冠岳 )이 있어, 첨형 ( 尖形 )이니, 화덕( 火德 ) 이요······ “로 말한 것과, ” 연주암지 “에서는, " 신라 문무왕 17년( 677년 )에, 의상대사가, 관악사와 의상대를 창건하였다, ”라고 쓰여진 것으로 보아, 관악산은, 서울의 조산( 朝山 )으로, 일찍이 역사무대에 등장을 하였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한성부편에 “ 관악산이, 푸른 빛 보내와서, 자리 위에 들어오고, 양화가 빛 물결 띄어, 성 저쪽에 떨어진다, ” 라고 쓰여 저 있으며, 과천현 편에는 “ 현 서쪽 5리 지점에 있는데, 진산이다 ”라고 쓰여 저 있습니다, 이외에도 『유관악산북암기』, 『미수기언』, 『유관악산기』 등에서도 관악의 모습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개항기 전후해서는, “ 관악산 유람가 ” 라는, 노래가 불러지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국토지리정보원-국토정보 플랫폼, 한국지명유래집( 2008년 ),
중부편, 제 2부 서울특별시 자연 지명 133-134 쪽 참조
11 : 58 이정표, 9.9-1 연주대 2, 사당 5.1(K), 과천향교 3.2(K)
12 : 56 위치표시판, K21, 관악문(상),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13 : 05 위치표시판, K20, 관악문(하),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13 : 17 이정표, 남현동( 사당역 ), 연주대 정상, 연주암
13 : 20 위치표시판, K11 헬기장,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연주암, 관음사 1.2(K)
13 : 36 위치표시판, K10, 헬기장(하),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13 : 54 위치표시판, K6, 하마바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13 : 56 이정표, 연주대 2.3(K), 사당역 2.7(K), 서울시, 과학전시관,
낙성대공원, 전철역, pipe능선,
14 : 08 이정표, 사당역, 연주대
14 : 22 이정표, 남현동( 사당역 ), 연주대
14 : 40 관음사 국기 대 촬영
15 : 01 서울둘레길( 낙성대 ) 1.9(K), 연주대 3.6(K)
인헌 공 강감찬 길( 서울시 테마 산책길 ), 서울둘레길( 관음사 ) 0.7(K)
산책로 길이, 시작되는 지점 :
이 지점은, 관악산 내림 길과, 서울 둘레길이 서로 만나는 지점으로, 걷기 아주 쉬운, 마을 산책로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양 옆으로 주택 단지가 있는 작은 둔덕에 불과 한 산책로 수준의 길이지만, 이 길로 관악지맥이 이어 지는, 소중한 우리의 지맥 길입니다,
15 : 02 관악산 둘레길 1구간 표시판, 서울 둘레길 안내판 통과
15 : 04 이정표, 예촌마을 둘레길, 남은거리 2.212(K)
15 : 07 안내판, 인헌 공 강감찬 길( 3.4 Km )에 대한, 설명 안내판
15 : 09 이정표, 예촌마을 둘레길, 남은거리 2.135(K)
15 : 18 관악산 안내도, 안내판 통과
15 : 26 안내판, 인헌 공 강감찬 길( 3.4 Km )에 대한, 설명 안내판
15 : 26 관악산 둘레길, 제 1등산로 안내판 통과
15 : 29 이정표, 남성역 가는 길,
관악산 둘레길 제 1등산로 합류지점 0.150(K),
동작 충효길 7코스 합류지지점 0.150(K), 사당역 0.95(K)
15 : 33 이정표, 까치산길, 연주대 4.35(K), 관악까치 생태다리 0.2(K),
사당역 1.5(K), 사당 삼익 그린뷰 APT 0.05(K), 남성역 1.15(K),
솔밭로 생태다리 0.6(K), 까치산 근린공원 관리사무소 1.0(K)
15 : 35 동작 충효길 종합안내 판 통과
15 : 39 이정표, 동작동 충효길, 까치산길, 국가지점번호 다 사 5298 4214, 연주대 4.3(K), 사당역 1.4(K), 사당 삼익 그린뷰 APT 0.3(K), 남성역 1.0(K), 솔밭로 생태다리 0.5(K), 까치산 근린공원 관리사무소 0.9(K)
15 : 50 벌 명당과 원당고개 설화 안내판 통과
15 : 51 동작 충효길 안내판 통과
16 : 02 사당동 마을 역사를 써 놓은 안내판 통과
16 : 07 까치산 근린공원과 삼일공원에 대한 안내판 통과
16 : 42 동작 충효길 안내판 통과
16 : 42 이정표, 동작동 충효길 6코스, 동작마루길,
2코스 현충원 상도출입문 0.2(K), 1코스 노들역 3.4(K)
16 : 43 이정표, 동작동 충효길 6코스,
6코스 신대방삼거리역 4.6(K), 4코스 숭실대입구역0.8(K)
16 : 49 이정표, 동작동 충효길 6코스, 동작마루길,
이수역 남성사계시장 2.1(K), 2코스 현충원 상도출입문 0.1(K),
동작역 2.6(K), 6코스 신대방삼거리역 4.7(K),
백운고개( 사당이 고개 )생태다리 0.1(K)
17 : 07 동작동 충효길, 고구동산 길 안내판 통과
17 : 12 흑석동 마을 역사를 써 놓은 안내판 통과
17 : 20 동작동 충효길, 고구동산 길 안내판 통과
17 : 22 상도동 마을 역사를 써 놓은 안내판 통과
17 : 39 동작 충효길 안내판 통과
17 : 45 노량진 근린공원, 고두동산 종합안내판 통과
17 : 57 : 34 9호선 노들 역 4번 출구, 산행종료
9 지점명에 대한 정보 :
지점 명( 地點 名 )에 대한 정보는, 산행시, 본인이 사용하는, 산행용 GPS( 익스플로리스트 710 )를 사용하여, 작성한, 웨이포인트( way point )를 트랙메이커( GPS TrackMaker )를 사용하여, 다시 한 번 작성하여 본 것입니다, 작성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0 지형도로 본 산행경로( 첨부 지형도 참조 ) :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 6번 출구( 산행시작 )->교육원 삼거리->교육원로 따라서->
국사편찬위원회->관악산둘레길->야생화 학습장->둘레길 끝->둘레길 갈( 둘레길 갈림길 )->무당골 갈( 무당골 갈림길 )->넝쿨숲->암릉길 시작->전망대->육봉 국기봉->관양능선( 관양능선 따라서 )->구국기봉->헬기장2->송신소( KBS 송신소 )->관악산( 관악산 정상 )->사당능선길 따라서->411.7봉->379.8봉( 하마바위 )->333.5봉->317.3봉->서울둘레길( 서울둘레길 합류점 )->122.3봉->아파트 공사 중 돌아옴->173.1봉( 서달산 )->9호선 노들역( 산행종료 )
11 여기 저기 둘러보기 :
노들역 4번 출구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GPS OFF ),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노들나루공원 구경을 하러갑니다, 노들나루공원은, 노량진 정수장이 있던 부지에 마련 된 공원입니다, 정수장 터라는 것을 알려주는, 돌 비석에, 정수장이 운영 되었던, 년도( 年度 )를 알려 주는, 숫자가 쓰여 있습니다, 1910년-2001년이라고, 아래에 있는 검은 현판을 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①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258 1
② 부지면적 : 49.280 m
③ 공급구역 : 관악구, 용산구, 영등포구, 마포구, 59개동 45만 명
④ 연혁 :
1910년 : 제 1정수장 신설, 1918년 : 서울시가 인천시로부터, 운영권 인수,
1916-1978년 : 시설확장( 총 생산량 : 300,000 m 일 )
2001년 6월 : 노량진 수도 공원화 사업으로 폐쇄
공원 내에, “ 한강방어선 전투 전사자 명비 ”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명비에는, 다음과 같은, 전투( 戰鬪 )에 대한 설명이 쓰여 저 있습니다,
① 전투개요
한강 방어선 전투는, 6.25전쟁 초기, 서울이 함락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3일 까지, 시흥지구 전투사령부( 사령관 김 홍일 소장 ) 예하의 3개 혼성 사단 및, 김포지구 전투 사령부가, 한강 남쪽 및 김포지역에, 방어선을 형성하여, 북한군 1군단 예하 보병 4개 사단 및, 전차 1개 여단의, 한강 도하를 6일 간이나 저지 시킨,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서울이 함락되고,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강 방어선을 6일 간이나 지탱해, 전쟁 초기 남진을 계속하던, 북한군의, 남침 계획에, 커다란 차질을 주었다, 나아가 미 지상군이 참전할, 시간적 여유를 제공함은 물론이고, 이후 국군 재편성과, 한미연합작전을 가능케 함으로써, 북한군에게 새로운 전쟁을 강요한, 6.25전쟁사에서, 성공적인 작전의 하나로, 평가를 받고 있다,
② 전투 경과 및 결과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3일 만인 28일, 서울을 점령했다, 이에 맞서 국군은, 한강 이남으로 철수한 병력과, 김포지역에서 방어를 실시하고 있는, 부대를 규합하여,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편성, 천혜의 장애물인, 한강을 이용하여, 오늘날 양화 교에서, 광진 교에 이르는, 24 Km 구역 및, 김포지역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적의 한강 도하 및, 영등포 진출을 저지 했다, 한강 이남에서는, 혼성 수도 사단, 혼성 7사단, 혼성 제 2사단 등이, 각각 연대 규모에도 미치지 못한 병력이지만, 여의도 비행장을 포함한, 영등포, 노량진, 신사리에 이르는, 한강 남쪽 강변을 나누어 맡아, 북한군 제 3, 4사단 및 제 1사단 ( 예비 ), 전차 1개 여단 등의, 남진을 저지했다, 김포지역에서는, 김포지구 전투사령부가, 북한군 제 6사단(-)의, 영등포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6월 29일 여의도 앞 밤섬을 장악한, 북한군은, 본격적인 한강도하를 위해, 흑석동, 여의도, 신사리 일대에, 탐색전을 전개 했다, 이날 더글라스 맥아더 미 극동군 사령관이, 한강 방어선을 직접 방문하여, 전황을 살피고, 국군의 사기를 고무 시켰다, 6월 30일 북한군은, 신사리-말죽거리 방면으로, 본격적인 도하를 개시 했고, 김포지역에서는, 김포비행장을 놓고, 피하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 됐다, 7월 1일, 북한군이 여의도-영등포 지역으로 도하를 감행하자, 노량진과 여의도에서 치열한 전투를 전개, 배 운용 소령, 유 상배 중위, 등이 희생되는, 혈전 끝에, 그들을 저지 시켰다, 7월 2일 국군은, 영등포 진지와, 노량진역 부근의 강변진지에서, 공방전을 지속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 공군기는, 계속된 폭격으로 적 전차의 도하 기도를 저지 시키는데 크게 기여 했다, 그러나 결국 7월 3일, 경부선 철교를 통해 ,북한군 전차가 노량진 및 영등포로 진출하면서, 국군은 한강방어선 및, 김포지역에서 철수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흥지구 전투사령부가, 6일 동안 북한군의 한강도하 및, 영등포 진출을, 지연시킴으로써, 국군은 분산된 병력을 수습하고, 미 지상군이 참전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확보 할 수 있게 되었다,
공원( 公園 )을 둘러 본 뒤, 한강대교( 漢江大橋 )로 가서, 인도( 人道 ) 난간( 欄干 )에 서서, 유유( 悠悠 )히 흘러가는 한강( 漢江 )과, 주위( 周圍 )의 높은 빌딩 숲, 그리고 어둠에 쌓여가는 서울의 이른 밤 풍경을 바라보며, 가지고 간 사진기( 寫眞機 )의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어 본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강원도( 江原道 ) 산골짝에서 시작하여 흘러오며, 조양 강( 朝陽江 ), 동강( 東江 ), 서강( 西江 ), 남한강( 南漢江 ), 북한강( 北漢江 )으로 이름을 바꾸며 가며, 큰 물줄기, 작은 물줄기, 마다 않고, 아우르고 포용하며, 흘러가는 큰 이름 한강, 한반도( 韓半島 )의 논과 밭을 살찌우고, 비경( 祕境 )을 만들고. 크고 작은 고을들의 인심( 人心 )과 즐겁고 서러운 사연( 事緣 )들을 넓은 가슴으로 품어 안고, 이곳까지 달려 온, 한강 물의 위대( 偉大 )한 여정( 旅程 ), 잠시 그 고운 자태( 姿態 )를 보여 주고는, 다시 유유히 흘러, 어머니 품속인 바다로 흘러간다, 멀고 먼 옛날, 노들나루를 노저 어 건너는, 사공( 沙工 )과, 천렵( 川葉 )을 나와, 잠시 고단한 삶의 시름을 잊으려는, 아낙내의 노래 가락 한 소절( 小節 )이, 춘 사월( 春 四月 ) 꽃향기를 타고 한강물을 따라 흐르는 듯하다,
노들강변 경기 신 민요
신 불출 작사, 문 호원 작곡
세마치 장단에, 평조 5음계
노들 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 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나 볼가,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들 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 자죽,
만고풍상 비바람에, 몇 명이나 지나갔나,
에헤요, 백사장도, 못 믿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들 강변 푸른 물, 네가 무슨 망령으로,
재자가인 아까운 몸, 몇 명이나 데려갔나,
에헤요, 네가 진정, 마음을 돌려서,
이 세상, 쌓인 한이나, 두둥 싣고 가거라,
관악지맥_정부청사역_야생화학습장_암릉_송신소_관악산_사당능선_마을길산책로_9호선노들역.gp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