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름의 초입으로 접어든 6월의 주말인 14일(토),
안양 9경 9!9!9! 플로깅이 있는 날입니다.
자난 5월 24일에 예정되었던 제4경 망해암에서의 활동은 대선 때문에 연기되었고 오늘은 제5경 안양일번가에서 플로깅 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안양자원봉사센터 담당자께서 오늘 플로깅 활동을 진행할 안양문화유산해설사회의 염영랑 해설사님을 소개합니다.
걸어요
안양9경
제5경 안양1번가,
1905년에 개통된 안양역을 준심으로 형성된 안양1번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하이틴 패션성지로 다양한 음식과 쇼핑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안양9경을 한 번 더 알아보겠습니다.
제1경 : 안양예술공원,
제2경 : 안양천,
제3경 : 평촌중앙공원,
제4경 : 망해암 일몰,
제5경 : 안양1번가,
제6경 : 수리산성지(최경환성지),
제7경 : 평촌1번가 문화의거리,
제8경 : 병목안 시민공원,
제9경 : 만안교.
안양역광장 주변 안내도
안양1번가는 안양역 앞을 지나는 구도로와 안양대로 사이에 형성된 직사각형 모양의 중심상업지역을 이르는 말입니다.
안양시 관광안내도 앞에서 오늘 활동에 참여한 시민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플로깅 활동을 시작합니다.
염영랑 선생님이 안양1번가가 형성된 역사를 소개합니다.
1795년 정조 임금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수원 현륭원(顯隆園)을 참배하기 위해 어머니를 편히 모실 수 있도록 그동안 다니던 험준한 남태령길 대신 안양천변을 따라 새로운 시흥길을 만들었습니다.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안양역이 운영되면서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안양역 주변에 공장이 세워지고 안양1번가는 금융, 행정,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먼저 안양역사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새겨진 원태우 의사를 소개합니다.
원태우(元泰祐) 의사(義士)
원태우 의사께서는 1882년 3월 4일 과천면 안양리 642번지(현재의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 642번지)에서 출생 하셨다.
원의사 께서는 1905년 11월 22일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가 수원에 사냥을 갔다가 안양을 거쳐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고 서리재 고개(현재 안양육교)를 지날 때 혼자의 몸으로 돌을 던져 큰 상처를 입히고 일경에 체포 구금되었다.
이 의거는 민간 항일운동의 효시가 된 거사로써 당시 대판매일신문, 대한매일신문, 동경매일신문 등의 언론은 물론이요, 일본이 제작한 일로전쟁화보와 속음청사에도 그 내용이 수록된 일대 사건이었다.
원의사께서는 1906년 1월 24일자로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루었다.
당시의 고문으로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지내신 원의사께서는 69세의 일기로 수푸루지(지금의 안양 비산동)에서 타계(1950년)하셨다.
그 후 40년이 지난 1990년 정부에 의해 건국훈장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구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길을 건너 안양1번가로 들어갑니다.
안양1번가로 들어서서 쓰레기를 줍기 시작합니다.
염영랑 선생님이 조금전에 보고 온 원태우 의사 집 터를 소개합니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원태우(元泰祐) 집 터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만안로 217
원태우 집 터는 열차에 타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돌을 던진 원태우가 살던 곳이다.
1905년 11월 22일에 이토 히로부미가 수원군 일대를 살펴보고 서울로 올라간다는 첩보를 입수한 원태우는 안양의 서리재에 대기하고 있다가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를 향해 약 9Cm 정도 크기의 돌을 던졌다.
이 돌은 이토 히로부미의 머리를 명중하였으며 유리창 파편 8조각이 얼굴에 박혔다고 한다.
원태우는 의거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징역 2개월에 곤장 100대를 맞고 1906년 1월 24일에 석방되었다.
다음은 안양역 건너편 광장에서 안양역 주변을 소개합니다.
안양역사(安養驛舍) 뒤편에는 안양천 맑은물을 이용한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현재의 래미안 아파트 자리에는 월급을 많이 주었다는 한국제지 공장이, 푸르지오 더샵아파트 자리에는 태평방직 공장이 생겼고 그 사이에 안양시장과 우시장 등이 들어섰던 곳입니다.
안양역 광장에서 안양대로 방향으로 오다가 대동문고를 소개합니다.
1960년대에 개점한 대동문고는 3층짜리 별관에 이어 8층짜리 본관 건물을 증축할 정도로 번성하였으나 세월의 흐름이 인터넷 서점의 등장과 독서 인구의 감소로 인하여 하향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대동문고는 안양 지역사회에 문화예술행사와 장학금 등 많은 사회사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1980년대에는 안양백화점에 이어 두 번째로 본백화점이 개점하면서 안양은 영화와 패션의 고장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에 평촌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상권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안양 중앙사거리에서 안양의 영화산업과 안양에 있었던 극장들을 소개합니다.
1957년도에 석수동에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종합영화촬영소가 만들어져 한국 영화의 메카로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빨간마후라' 등 수많은 영화가 촬영되었고 안양 지역의 화단극장과 안양극장(읍민관), 삼원극장 등 3개 대형 극장에서는 서울과 동시에 개봉이 되고 영화관람비가 저렴하여 서울에서 안양으로 원정관람을 많이 왔다고 합니다.
삼원극장은 현재 롯데시네마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수암천변(秀巖川邊) 현재의 삼덕공원 자리에서 1961년부터 2003년까지 삼덕제지(주)를 운영하던 전재준 회장(1923~2010)이 회사 터를 안양시에 기증하면서 삼덕공원이 생기게 되었고, 안양시에서는 이를 기려 11월 3일을 기부의 날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안양대로 중앙사거리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국민은행과 교보빌딩 뒤편으로 일제강점기 조선비행기주식회사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해방 후 비행기공장 자리에는 금성방직이 들어섰다가 대농(대한농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안양대로에서 다시 안양1번가 안으로 들어가서 안양행궁터를 소개합니다.
안양행궁터는 정조 임금이 1795년 시흥로를 새로 닦고 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을묘원행 때 이곳에 행궁(行宮)을 지어 쉬어가던 곳이라고 소개합니다.
안양행궁지(安養行宮址)
이곳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1752~1800)이 수원 화산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원침(園寢)인 현륭원(顯隆園)을 참배키 위하여 쉬어가던 행궁이 있던 자리이다.
행궁의 건립시기는 만안교(萬安橋)가 가설된 1795년 경으로 추정되나 언제 훼철(毁撤)되었는 지 알 수는 없으며 근대에는 이곳에 큰 집이 있었다 하여 대궐터(大闕址)로 불리고 있다.
이곳에서 안양대로 쪽을 바라보면 안양중앙시장이 보입니다.
안양역 뒷편에 우시장과 함께 형성되었던 안양시장이 1925년 을축대홍수로 떠내려간 군포장을 흡수하면서 번창하였으나 1961년도에 큰 불이 나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고 1970년대에 안양대로가 새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염영랑 선생님은 자녀들이 어릴적에 안양중앙시장에 들러 떡복이와 순대도 사먹고하면서 자주 들렀던 곳이라고 합니다.
안양중앙시장 앞 안양대로는 지금 월판선(인천 월곶~성남 판교) 공사가 한창입니다.
월판선이 개통되면 안양중앙시장은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01 아웃렛(구 벽산쇼핑) 맞은편 다이소가 있는 자리는 옛 안양극장(구 읍민관)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아웃렛 대각선(현재 사진을 찍는 곳) 꽃가게 자리는 교육청이 있었던 터입니다.
안양대로 뒷 블럭 삼원프라자 자리는 시흥군청 자리입니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이 통폐합되면서 시흥군, 과천군, 안산군 3개를 묶어서 시흥군이 되었습니다.
당시 시흥군에 속했던 영등포가 1946년도에 서울로 편입되면서 영등포에 있던 시흥군청이 이곳 안양면사무소(구 서이면사무소) 옆으로 이전되면서 안양은 시흥군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안양읍사무소, 안양경찰서, 의용소방대, 교육청 등 관공서와 양화점, 양복점, 다방, 식당 등이 밀집한 다운타운이 되었습니다.
시흥군청 터 인근에 있는 구 서이면사무소로 이동합니다.
구 서이면사무소(舊 西二面事務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0호
구 서이면 사무소는 1914년 4월 1일 과천군 상서면(동안구 일원)과 하서면(만안구 일원)이 통합하면서 세워진 행정관청으로 원래는 호계동에 세워졌다.
1917년 7월 6일 현재 이곳으로 이전되어 1941년 10월 1일까지는 서이면사무소로, 1949년 8월 13일까지는 안양면사무소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14일 안양면이 안양읍으로 승격되며 읍청사가 서이면 사무소 좌측에 신축됨에 따라 본 건물은 개인에게 매각되었다가 2000년10월에 안양시에서 매입하여 이후 복원을 하였다.
면사무소 당시 부지면적은 약 320평으로 31평 규모의 본관과 함께 농기구와 씨앗을 보관하던 약 15평 창고 및 40평 정도의 회의실이 있었다.
복원한 구서이면사무소 본관은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ㄱ'자형 곱은자집으로 1고주 5량의 가구구조이다.
고증을 거쳐 당시 직원 근무실과 면장실, 숙직실을 복원하였고, 날개채의 화장실과 대형 주물 수조가 있는 목욕탕은 재현되었다.
서이면사무소로 들어갑니다.
당시의 정문과 현관은 건물 뒤편에 만들어서 면사무소 현판을 설치하였습니다.
염영랑 선생님이 서이면 사무소를 설명하고 전시된 자료들을 살펴보도록합니다.
서이면사무소 연혁
1914.4.1. : 과천군 상서면과 하서면이 통합되어 서이면이 호계도서관 부근에 자리잡음(호계동 923의 86번지 일대)
1917.7.6. : 안양의 중심지가 안양리로 이동되면서 현 위치로 이전
1941.10.1. : 시흥군 안양면사무소로 명칭 변경
1949.8.14. : 시흥군 안양읍으로 승격, 읍청사 신축 이전(이형래님에 매각)
서이면장실
등사기
시흥군 관내지도와 인장
건물의 반대편에 현관이 있습니다.
안양 조선비행기주식회사 설립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안양 조선비행기주식회사 설립
안양 조선비행기주식회사의 설립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와 대표적인 친일 매판자본가 박흥식(朴興植, 1903~1994)에 의하여 설립된 전투 비행기 제작 군수공장으로 안양지역의 주민 강제동원과 수탈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박흥식은 1931년 종로 화신백화점과 1934년 화신연쇄점을 운영하며 당시 '조선 최고의 갑부'로 불렸으나 실제로는 조선총독부와 연계되어 실업계와 경찰, 군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계를 가졌으며 특히 식민 착취 기관인 동양척식회사의 감사를 지냈다.
1944년 7월 박흥식은 조선총독부로부터 항공기 제조사업을 허가받아 같은해 9월, 회사를 창설하고 다음해 3월부터 안양의 구 대농방직 터에 있던 조선직물과 동양방적을 헐값에 인수, 공장 가동과 함께 평촌지역에 비행장 부지를 계획하였다.
헌금, 헌납 운동과 애국기 시흥호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쟁물자의 보급과 구입을 위한 헌금, 헌납 운동을 읍과 면 단위까지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또한 당시 조선군사령부 산하 '애국부'에서 벌인 '애국기 헌납운동'까지 포함, 더욱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헌금, 헌납운동이 실시되었다.
1937년 9월 16일의 동아일보 기록에는 시흥군의 각 면으로부터 모금한 국방헌금이 1937년 9월 중순까지 총 5,100원으로 국방헌금 900원, 위문금 1,200원, 군사후원회비 1,500원, 비행 협회비가 1,500원 이었다.
이와 함께 도, 군 단위로 애국기 헌납 운동을 실시하였는데 당시 많은 친일인사들이 앞다투어 비행기를 헌납하였다.
헌금과 헌납운동의 또 다른 사례로 1940년 4월 29일의 서이면장 이기선의 공적조서를 살펴보면 군용물자 조달, 군수품 제조, 공출 및 수리에 각종 곡물과 가축의 가죽 공출, 군인과 군대 전몰자의 위문, 시국강연, 채권과 저축 장려, 국방헌금에 총 1,770엔 모금 등의 공적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국방헌납에 따른 일제의 착취와 수탈이 매우 조직적이고 전국에 걸쳐 행하여졌음을 보여주며 이에 따른 식민지 백성의 삶과 참상이 어떤지를 충분히 짐작케 하여 준다.
국방헌금 강요에 의한
애국헌납기 시흥호
염영랑 선생님이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된 플로깅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새롭게 형성된 평촌지역도 3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면서 새로운 문화와 역사가 담겨가고 있다고 합니다.
염영랑 선생님이 해설을 마치고 플로깅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안자봉 담당자가 쓰레기를 수거합니다.
오늘 오후 1시부터 구 서이면사무소 작은음악회가 열린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준비를 한 염영랑 선생님이 안양1번가에 대한 역사를 많은 시민들의 뇌리에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활동는 6월 28일(토) 안양 제5경 수리산 성지에서 강세일 고문님이 진행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첫댓글 염영랑 해설사님
안양1번가 플로깅 해설 수고하셨습니다
참 잘하셨습니다
포토님 생생한 현장정리 감사합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로 함께 하신 시민들도 많이 지치셨고 행사담당자도에서 서이면 사무소에서 마무리 하자고해서 마무리는 서이면 사무소에서 했습니다.
함께 해주시고 꼼꼼히 기록해 주신 강호인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잘하셨습니다
참여하신분들 집중도도 높고 동선도 잘 선택하셨습니다
더운날씨에 고생하셨습니다~~~
더운날 두곳에 봉사하신 두분샘
애많이 쓰셨습니다
단체의 위상이 높아지는 밝은 기운을
넘치게 남기셨습니다 ^^
무더위에 안양1번가를 꼼꼼하게 탐방하셨네요.
두 분 선생님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