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딱 반 구십이다.
사십 오년을 사는 동안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았던가?
아니면 사는 대로 생각했던가?
문득 반 구십 앞에서 반문해 보는 생일이다.
45번째 생일
매 해마다 생일날 미역국을 먹지 못했던 해가
더 많았던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그랬다.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다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생일날 미역국을 못먹는다고 다 성공못하는 것이 아닐텐데
미역국에 아침밥에 집착하지 말자고
그랬다.
내 인생은 어릴 땐 방목되어
부모님께선 사는 게 바쁘셔 내 생일 깜박하시는 게 다반사여서
그러려니 했고.
결혼해서 애 놓고 살기까지
그땐 왜 누구도 내 생일 아침밥 챙겨주는 사람 없어도
사실 섭섭한 줄 몰랐던 것 같다.
늘 전쟁 같은 시간들
출근길이 전쟁이었으니까
그렇게 게을러 내 손으로 내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를
챙기는 부지런함이 없었으니
또 그러려니 했었고
지난 십년은
늘 늦은 밤 귀가에
이른 출근
그렇게 생일상 차릴 시간이 없이
살았던 것 같다.
늘 그렇게 스케줄을 짤 때
내 생일이라고 수업을 빠트린 적이 없었네 싶다.
물론 올해 내 마흔다섯 생일날도 서울 수업이 있는 걸 보면
생일이란 내게 늘 같은 어느 365일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특별한 적이 없었다.
살면서 늘 뭣이 중한지가 우선이었던 생각에서였을까?
흔하디 흔한
누구에게나 있는 돌사진 하나 없는
나는 그렇다고 부모님께 왜 돌사진도 안찍으셨냐고
그렇게 가난했었냐고
묻기엔 용기도 없는
내 존재의 가벼움
슬퍼서도 못 묻고
이제 이 나이에
그 돌사진이 뭐 그리 중한가 싶어
묻지 못할 나이가 되고 보니 그런 것 같다.
나는 그다지 남들과 같지 않아서인지
그래서
나는 그다지 남들과 같기를 바라며 살지 않았던 것 같다.
정작 따지고 묻고 싶은
아주 많은 내 부모님에 대한 건의도, 불만도, 불평도
도리어 용서가 되어야 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부모님들은 이제 너무 노인이 되셨다.
비교적 이성적으로 부모님을 안아드리려 애 쓰지만
가끔은 내가 왜 태어났는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태어난 나에 대해
참 많은 숙제를 풀어오면서
한 핏줄로 이어진 혈육의 정이란
그래서 물보다 진하다 했던가?
정말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 부모님을 품안에 안기까지
나는 늘 외로운 생일을 맞이했었던 것 같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라고 했던가
어릴적부터 내 부모님의 부모로 살아내야 했던
시절까지 떠나오는 시간이
참으로 무덥고 긴 여름을 살아낸 것에 대한 안도감
어쩜 너무 짧아서 너무 허무하면서도
너무 벅찬 건 뭐지
나도 모르게 지나간 미풍같았던 봄도
너무 아쉽게 스쳐가버렸다.
그리고 성큼 다가온 이 가을 앞에
다시 없이 불안한 건
애써 너무 정신없이 살지 않기를
미친 듯 추수하지 않기를
늦가을 저물 때까지
이 가을의 자연을 들추어야 하는데
그래야 한이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애처로운 가을이다.
나는 나와 내 부모님과
내 자식의 인생까지 거두며 살아오는 동안
일 중독에 해독할 여력 없이
내 인생 가을 앞에 맞이한
반 구십의 생일
내가 사랑하는 계절
그렇게 나는 내가 사랑했던 가을을
만남에 있어
오랫동안 잊었던 연서를 받아든 듯
짜릿한 그리움에 사랑 앞에
한없이 외롭고 쓸쓸하지만
반대로 한없이 뜨거운 이 정감은 무얼까?
그래
내가 두려운 건 내게 올 겨울이 아니라
지금 남은 내 열정이 어디선가 멈추어 버릴지 모를
불안함인지 모른다.
나는 과거와 헤어졌고
나는 가난과 헤어졌고
그리고
나는 마흔다섯과 헤어진다.
그리고 내 아픔과 상처 좌절 고통과 비정했던 세월과도 이별한다.
다 헤어질 수 있어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정녕 살점이 떨어져 나가듯
세상 밖에서 무너진 남편과
누구도 돌보지 않던 경제적 빈곤에서
부모도 친구도 내놓지 않던
썩은 동아줄을
내 인생의 여름에 보낸다.
핏덩어리 같던 두 녀석
건사하며 밥벌이를 위해
세상 앞에 구걸했던 청춘의 나를 보낸다.
파탄난 내 청춘도 떠나보낸다.
잠세시간, 일일일식 하며
숨 쉬는 시간조차 아껴 살았던
내 뜨겁던 시절도 마저 다 보낸다.
끈질기게 부여잡았던 내 생존본능까지
다 떠나보낸다.
그렇게 나는 다시 그 시절의 실타래를 풀며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 있고
나는 떠나온 계절 앞에
다시 가을을 만난다.
다시 무조건 몰입해서 살겠지만
다신 누구만을 누구를 다수를 위해선
내 시간을 좀먹지 않으리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왕비재테크 카페 멤버 당신이
나와 인생관이 같기를 바라지도
눈높이가 같을 수도 없거니와
내 생각과 내 철학이 다 옳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나와의 공존을 원하며
이젠 사정하며 살지 않으리라
그래 모든 건 운명이다.
어찌 내가 원하는 세상을 함께 볼 수 있으리오
어찌 내가 보여 주고팠던 세상을 알겠소.
함께 한다는 건
서로 한 방향을 쳐다보는 것이다.
생텍쥐베리는 이야기 했었는데
어쩜 사람들은 함께 한 방향은 같아야 한다고 믿지 않을 수 있다.
어릴 적 내가 읽었던 톨스토이의 부활 역시
뜻이 같을 수는 없었듯
세상 앞에 왕비재테크와의 인연 또한 그러하리라
강제로 동지애적 결합을 이루는 일 또한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한때 미친 카리스마와 열렬한 투지로
내 목 병들어가는 거 모르고
소리 질렀던 어제까지의 시간 앞에
참 엄청난 해프닝을 선물 받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매달렸었다. 같이 함께 부자되자고.
비밀스레 혼자 부자되려하진 않았다.
아는 것 없이도 확신은 있었고
학사석사박사 공부보다 지금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떠들 때
나를 깍아내리려던 적들과 맞섰고
어설픈 자본주의 쿠데타를 일으킨 내가
내가 보아도 적당히 귀여운 노예였을는지 몰라도
나는 진실했다.
지난 여름 나는 이런 카페를 만들기 위해
사기꾼 조심하라고 자본 광복을 외쳤고
그 여름 부동산 공부해서
더 가난해지지 말자고 자본독립운동을 했었다.
그래도 용케 그 혹독한 태양 앞에 쓰러지지 않고 살아내었다.
물론 그 화상자국이 너무 선명하지만
그래도 후회 없다.
대신
이렇게 아름다운 내 인생의 가을을 만났으니
이제 이 가을 앞에 더 애틋할 수 있는 깨달음도 얻었으니
지난 봄과 여름의 세상 군 때 지워버렸으니
이 가을 비단결 바람 앞에
저 나뭇가지에 열심히 무르익는 과실 앞에
이 따스한 가을 햇살 앞에
나는 이제 다시 46번 생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의 가을은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어린 시절이 되리라
인생이란 남에게 빌붙어 사는 게 아니다.
남의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자신을 지켜내며 사는 일에
자유로울 수 있을 때
훌륭한 수확이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앞으로도 어떤 이들처럼 생일날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보다 다시 반복할 수 없는 시간
후회 없이 살기위해
미역국을 먹기보다 케잌을 불기보다 화려하기보다
내 영혼의 불을 켜는 하루로 살고 싶다.
그래서 늘 그랬듯 오히려 혼자라서 더 쓸쓸한 날이 아니라
혼자라서 더 강해지는 거침없는 마흔 다섯번의
생일을 내 스스로 기록할 수 있도록만 살고 싶다.
내 죽는 날
내 제삿날 역시 내 생일처럼 내가 정할 수 없겠지만
자연과 하늘이 허락한다면
내가 가장 아꼈던 이 계절 가을에 죽고 싶다.
그래서 혹여 내 생일날과 내 제삿날이 겹쳐준다면
나는 그것이 천복인 줄 알고 준비할 수 있어
이 보다 귀한 신의 선물이 어디 있으랴
2063년 9월 11일 10월 6일
이 두 날이 내 제삿날이 되길 기도하며 살아 보리라
그래서 생일 그 쓸쓸함
나는 지금 평화롭습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첫댓글 인생사 모든것이 세옹지마다고 했든가요
참 많이 공감하는 글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