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이 두 개의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모든 사람들 안에는 성스러운 존재와 악마가 같이 공존하고 있다.
즉 모든 인간 속에는 천국과 지옥이 공존한다.
그래서 인간은 내면에 지복至福의 꽃을 피울 수도 있고, 끝없는 고통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인간은 두 측면 중에서 최종적으로 한 쪽을 얻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옥의 해변으로 떠밀려가면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자기 안에 천국을 만들어낸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내면에 성스러움을 창조해내고 있는가, 아니면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신성함으로 빛나는 첫 번째 초상화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인생을 첫 번째 초상화로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오늘 이야기하려는 주제가 바로 이런 질문들 속에 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이 천국이 되고, 향기가 되고, 아름다움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불멸의 그 어떤 것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인간이 성스러움의 신전에 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데 우리의 삶은 결코 첫 번째 초상화가 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은 오히려 그 반대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우리는 천국에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우리 모두는 지옥에 들어와 있다.
어린 시절 이후로 우리는 지옥으로 향하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순수하고 깨끗했다.
하지만 점차 우리는 위선과 계략에 물들어간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육체적으로 늙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쇠약해진다.
몸만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황폐해진다.
결국에는 ‘그래, 인생은 이런 것이야.’라면서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는다.
참된 종교는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참된 종교는 이렇게 천국에서 시작해 지옥으로 끝나는 삶의 여정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생은 그 정반대로 진행되어야 하며, 가치 있게 끝맺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고통에서 축복으로, 암흑에서 광명으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실 이것이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불타고 있는 갈망이다.
필멸必滅에서 불멸不滅로, 암흑에서 광명으로, 거짓에서 진실로 가는 것이 인간의 내면에 불타오르는 가장 강력한 열망이다.
- 오쇼의 <섹스란 무엇인가> 중에서
첫댓글 오쇼의 종교관은 천국에서 출발하여 지옥으로 아니면 지옥에서 출발하여 천국으로가 있지만 지옥에서 천국으로 마감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라고 이야기 합니다. 같은 의미로 순자의 성악설(性惡說)과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을 들 수 있겠습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악한 심성을 가지고 태어나므로 살아가면서 이를 수양과 교육으로 치유하라는 것이고,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은 태어날때 이미 선한 마음으로 태어났으므로 선한 마음에 악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수양하고 공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두 사람 모두 수양과 공부의 중요성에 대한 주장은 같습니다. 공자도 인을 주장하였으므로 그의 제자 맹자도 인(仁)과 의(義)를 주장한 것이지요. 결국 오쇼의 종교관에서도 순자 맹자 공자의 말씀에서도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수양과 공부로 겸손과 배려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소중한 가르침이라고 이해합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