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대축일 (요한20,19-23) 반영억 라파엘 신부 |
복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약속대로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오늘 성령강림은 바로 한결같은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 줍니다. 예수님의 승천이 가져온 슬픔에 잠긴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시고 “성령을 받아라.”하시며 두려움을 거두어주신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같은 성령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세미나를 하는 중에 또는 기도회를 하다 보면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나는지 알게 됩니다. 물론 성경을 읽는다든지, 성체조배 중에, 기도하는 가운데 얼마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을 느끼고 받아들이려면 영적인 삶이 꼭 필요합니다. 영은 영을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눈물을 통하여, 어떤 사람은 웃음을 통하여, 어떤 사람은 뜨거운 열기를, 어떤 사람은 시원한 바람으로, 어떤 사람은 온몸에 기운이 빠져 안식을 갖고 어떤 사람은 이상한 언어를 하고 어떤 이는 마음의 어두움을 씻어내어 평화를 회복시켜 주심으로, 어떤 이는 친절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채워 주심으로, 어떤 이는 용서의 마음으로, 그렇게 미웠던 배우자가 사랑스럽고 더 잘해주지 못했던 동안의 부족함을 볼 수 있게 해 줌으로써 ……무뎌진 마음을 일깨워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허물이 무엇인지를알게 해 주시고 마음의 정화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채워 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성령의 역사는 오만가지 방법의 맞춤형으로 이루어집니다.
한 자매와 상담을 하였는데 그는 일찍 부모를 잃고 두 동생을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삶의 고달픔으로 웃음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 벌을 내린 탓이라고 생각하였고, 마음에 자리한 하느님은 무서운 하느님, 두려운 하느님, 벌을 주시는 하느님이었습니다. 부모에 대한 사랑이 그리웠고 그 사랑을 느끼고 싶었고, 제발 한 번만이라도 사랑의 하느님으로 만나고 싶고, 기쁨을 회복하여 웃어보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안수하는 중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너무도 평화롭게 한없이 소리 내어 웃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울고불고하는데 너무도 기뻐 어쩔 줄 모르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그 자매의 웃는 얼굴이 환하게 빛났습니다. 맑고 밝은 웃음을 회복한 그가 얼마 후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혼인 청첩장을 보내왔습니다.
세미나를 받고 어떤 사람은 ‘성경을 쳐다보면 졸음이 쏟아졌는데 한 시간을 읽고 두 시간을 읽어도 더 읽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른다’ 고 하는 분도 계시고……‘늘 만나던 사람이지만 유난히 사랑스러워 보이고 그야말로 사물까지도 다르게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다양하게 은총의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미사참례를 그저 의무로만 했고, 짧은 미사를 가느라 어린이 미사에만 갔는데 이제는 미사에 맛 들여 매일 미사참례를 하고 영성체가 기다려지고, 말씀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욱이 성체를 모시는 기쁨이 너무도 커서 가슴이 벅차오르고 감사의 눈물도 흘립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각 사람에게 알맞은 방법으로 다가오십니다. 불길처럼, 뜨거운 감동으로 오기도 합니다. 불은 정화하고 갱신하며 불순한 것을 깨끗이 태워버립니다. 그렇듯이 우리 안에 옛것을 태워버리고 새 삶을 살도록 인도합니다. 세상 것을 우선시하던 마음을 천상의 삶을 그리워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불로 표상되는 성령의 특성을 교회는 빨간색으로 상징화하였습니다. 붉은 제의는 바로 내면의 불꽃을 상기시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바람처럼 임하기도 합니다. 세찬 바람으로, 때로는 여린 바람으로 나의 진부한 것들을 쓸어내기도 하시고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기도 하십니다. 우리 성당의 장점은 사도들의 후계자이신 주교님께서 자주 오신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열정이 우리 안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시는 성모님을 통해서 다가오시기도 합니다. 또한 물처럼 샘솟기도 합니다. 내면의 기쁨이 솟구쳐 올라 기쁨과 활력을 주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비둘기처럼 다가옵니다. 평화와 온유함으로 어떤 상황 안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요란스럽지 않게 다가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일상 안에서 성령의 강림을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늘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하고 기도를 시작해 보십시오. 성령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때 원하시는 방법으로 역사를 이루시지만 특별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경 말씀을 읽으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체조배를 하는 가운데, 그리고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가운데 성령의 손길이 더 강하게 역사하시니만큼 그에 걸맞은 영적인 삶을 살아감으로써 성령의 힘과 능력을 체험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갈라티아서에는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갈라5,22-23)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성령으로 가득 찬 생애였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에 의하여 예수님을 잉태하였고(마태1,28-30), 예수님께서 훗날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에도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 왔습니다. 이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데려가서 유혹을 물리치게 하였고 예수님의 공적 활동도 성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루카4,14-15).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악령에 시달리는 이들을 풀어주었고(마태12,28). 병자를 치유하셨습니다(루카5,17). 또한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3,5이하).하시며 새로 나기 위해 성령의 세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은 성령과 함께한 역사였습니다.
이렇게 성령과 함께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승천을 통한 작별을 하기에 앞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시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파라클레토스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15,26-27).
이 말씀은 당신이 얼마 후 제자들의 곁을 떠나게 되겠지만 대신에 이들을 도울 보호자이신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하실 것을 확신시켜 주시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상 제자들은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 두려움에 사로잡혀 다락방에 모여 문을 모두 잠가놓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아! 그래서 그리하셨구나.’ 하며 무릎을 친 것은 바로 오늘 성령의 강림을 체험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구약의 예언 말씀과 예수님의 약속은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이 성령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서 뿔뿔이 도망쳤던 겁쟁이 제자들을 당당한 복음의 선포자로 변화시켰습니다. 죽음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을 복음의 증거자로 변화시켜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전하게 하였습니다(사도2,1-11). 한마디로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제자들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제자들이 송두리째 바뀌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교회의 탄생일로 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의 손길이 더욱더 요청되고 있습니다. 사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성령의 역사를 느끼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내 선입견과 욕심, 세상 걱정 때문에 그분의 숨결을 내가 놓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다가오시지만 내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까닭으로 역사하시지 못하십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이미 우리 안에 오신 성령께서 활발히 역사하시도록 그 장을 만들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성령의 도움으로 거룩함을 회복하십시오. 복음의 증인이 되십시오! 성령께서는 당신 은총의 선물을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 주시고 모든 부분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성 아우구스티노의 기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성령이여, 제가 거룩함을 생각하도록 제 안에서 숨 쉬게 하소서.
성령이여, 제가 거룩함을 행하도록 제 마음을 움직이소서.
성령이여, 제가 거룩함을 사랑하도록 저를 이끌어 주소서.
성령이여, 제가 거룩함을 보호하도록 저를 강하게 해 주소서.
성령이여, 제가 결코 거룩함을 잃지 않도록 저를 보호하소서.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