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초파일 날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는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제일 먼저 몸 단장을 하시고 우리들을 깨우셨다. “얘들아,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약간의 떨리는 음성으로 상기된 얼굴이셨다. 엄마가 아침밥 준비해 뒀으니까 챙겨먹고, 아버지랑 낮에 정토사로 와서 부처님께 절 올리고 점심공양 하고 가라신다. 오늘 늦게까지 등 접수를 받아야 된다고 하시면서. 그날 어머니는 대웅전, 지장전, 삼천불전, 설법전, 그리고 마당에 당일등을 불자들로부터 접수를 받으셨다. 법당마다 빨간등, 파란등, 노란등, 주황등, 예쁘디예쁜 연등들이 자비의 물결, 광명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어머니께서는 건강이 좋지 않으셨지만 그날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하루를 보내셨다. 오랜만에 잊혀진 얼굴도 만나고, 불교대학 동기생도 만나고 맘껏 부처님의 자비를 충만한 마음으로 느끼고 즐기셨다. 그런데 어느 젊은 보살님이 아이의 손을 잡고 백등을 주문하셨단다. 영가등이었다. 남편이신 모양이었다. 콧날이 시큰거리고 젊은 나이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 얼굴에 자꾸 시선이 가더라 하시며 우리는 건강하고 화목하게 살자 하시며 우리들 어깨를 두드리셨다. 어머니께서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백등을 지장전에 다셨다. 지장전 삼분의 일은 백등이다. 속세의 모든 인연일랑 잊으시고 극락왕생 하시라고 어머니는 청소를 하시면서도 길을 걷다가도 지장보살 지장보살을 외치셨다. 대웅전은 우리가족의 빨간 연등이 달려있고 지장전엔 두 분의 백등이 달려 있어 어머니는 두 분이 보고 싶으면 지장전으로 달려가신다. 지장보살님에게 푸념도 하시고 어머니 소식을 지장보살님에게 전하면 두 분에게 전달이 될까싶어 하소연도 하고 오신다. 마음속으로 이지만 그 때 작은 연꽃을 얻어와 우리집 식탁 위 꽃병에 꽂아놓았다. 얼마전 아버지께서 장미꽃 다발을 한 아름 안고오시면서 우리집 식탁 위는 꽃잔치를 열고 있다. 식탁 유리밑에는 광명진언도 적혀있고 카세트에는 신묘대다라니도 꽃혀 있다. 작은 책꽂이에는 불교서적들로 가득 차있고, 덕진스님의 연꽃처럼, 햇살처럼, 지혜문, 행복문, 밝은 마음 고운 세상 등 많은 시집도 꽂혀있다. 6시쯤에 마치고 집에 오셨다. 부모님은 또 다른 두 절로 발길을 옮기셨다. 남산사였다. 어머니는 친정절집 이라신다. 외조부모님들의 사십 구제를 올린 곳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연등을 달고 어머니는 멍하니 15년 전의 기억들을 더듬으시는 것같다. 주지스님의 인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세 번째로 문수사로 올라갔다. 도착하고 보니 울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난생처음 이렇게 아름다운 연등을 보긴 처음이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형형색색 불을 밝힌 연등들은 마치 내 등이 최고라고 뽐내는 듯 모든 이들의 기원을 담아 온누리에 불을 밝혀 자비광명을 전달하려 출렁거렸다. 나도 누군가에게 마음의 불을 밝혀 지혜와 자비와 광명을 전달하는 참불자가 되고 싶다.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