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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누구인가‐ 서구(유럽, 북미)의 맥락에서
* 이 글의 일부는 한국선교연구원(KRIM)에서 발행하는 「현대선교」에 게재된 필자의 논문에서 발췌하였음을 밝힌다. “예수는 누구인가(Who is Jesus)?: 지구촌기독교(World Christianity) 역사의 시각에서,” 「현대선교」 14 (2012): 67-90.
지금까지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유대, 헬레니즘, 동방, 바바리안의 맥락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서구(West)의 맥락에서 이를 다루고자 하는데, 시기적으로는 근세로 접어드는 시점부터로서 최근 500년간의 역사이다. 이 시기에 유럽에서는 종교개혁, 시민혁명, 산업혁명 등 역동적인 근대적 변혁이 일어났으며, ‘서구’라는 지구촌의 강력한 한 블록이 형성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유럽의 확장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형성된 북미 지역이 세계사의 후발주자로 등장하였다. 그렇게 유럽이라는 ‘구세계’와 북미라는 ‘신세계’는 모두 서구의 강력한 축이 되었다.
유럽과 북미
중세 천년의 시간 동안 유럽 세계는 강력한 크리스텐덤(Christendom)을 구축했다. 비록 각 왕국의 언어와 민족적 배경은 달랐지만 이들은 왕 중의 왕인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예배와 신학의 공용어인 라틴어를 토대로 연대하며, 유럽 세계에 위협이 되는 이슬람에 맞설 수 있었다. 십자군전쟁은 크리스텐덤의 이상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1453년 천년의 도성이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며, 유럽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그간 이슬람의 확장을 억제한 동로마 비잔틴이 무너지면서 서방 유럽이 이슬람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어수선한 틈새에서 종교개혁의 불씨는 들불처럼 번져갔으며, 동시에 유럽 세계는 가톨릭 세력인 이베리아의 해상력과 지리상의 발견을 통해 잃어버린 기독교 영토 그 이상을 얻었다. 뒤이어 영국과 네덜란드 등 개신교 국가도 확장을 이루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미국 또한 부상하게 되었다. 근대사의 신생국으로 태어난 미국과 캐나다가 있는 북미의 영향력은 현시점에서 구세계인 유럽을 능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미는 유럽과 같은 서구임에도 다른 특성을 지닌다. 민족 중심의 자연발생적 국가가 아니라 이민으로 형성된 국가이기 때문이다. 북미대륙의 초기는 유럽인들이 주로 이주했다는 점에서 신유럽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은 북미대륙을 식민지로 차지하면서 자기 나라의 이름을 따 뉴잉글랜드(미 동북부), 뉴네덜란드(뉴욕, 뉴저지, 델라웨어주 등), 뉴프랑스(캐나다 퀘벡 및 미국 루이지애나주 등), 뉴스페인(캘리포니아 및 텍사스주 등 미대륙 서부와 남부) 등으로 명명했다. 이러한 식민지 영토 확장의 여파로 유럽 이주민이 들어온 것은 맞지만, 대부분은 영국의 청교도처럼 본국의 종교적 탄압을 피해 온 이들이었다.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은 신대륙 내 여러 국가와의 패권 다툼에서 최후 승자가 되고, 19세기 소위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신념을 갖고 서부 팽창을 시도하여 북미대륙의 동서를 석권한 초대형국가가 되었다. 이후에 이주한 유럽인들은 주로 경제적 이유로 대거 이주했고, 1965년 이후부터는 미국 이민법의 개정으로 비유럽계, 즉 많은 아시아인들도 이주하여 더욱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이민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제 북미는 더 이상 신유럽이 아니라, 세계이주의 중심국이라는 위상을 갖게 되었다.
서구의 중심 질문: 개인의 신앙적 자유
근세는 기독교의 역사에서 또 다른 변혁의 시기였다. 먼저 중세봉건주의가 몰락하며 근대사회로의 전이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군주나 영주가 지배하던 공동체적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개인주의적’ 사회로 질서가 바뀌었다. 둘째, 종교개혁으로 야기한 신교와 구교 간의 끊임없는 종교전쟁과 교파논쟁은 신앙의 자유와 종교에 대한 관용이라는 새로운 모토를 만들어냈다. 이제 기독교 신앙은 공공의 영역에서 점차 ‘개인적’ 영역으로 전이되어 갔다. 구원의 문제도 더 이상 공동체적 이슈가 아닌 ‘사적인’ 문제로 전환되었다. 관용의 덕을 역설한 존 로크(John Locke)의 『관용에 관하여』(Letters Concerning Toleration)라는 서한에는 당시 종교 문제에 관한 시대적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는 종교개혁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앙 양태에 맞닥뜨린다. 이전까지는 교회 혹은 몇몇 사제나 귀족, 왕만이 하나님의 말씀, 즉 성서를 소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여러 ‘개인’이 성서를 소지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라틴어가 아니라 모국어로 성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종교개혁 시대의 선교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는 성서번역과 동시에 인쇄술의 발달이 크게 공헌했다. 특별히 공용어(vehicular language)에서 자국어(vernacular language)로 지평이 확장되면서 ‘개인의’ 성서연구가 활발해졌다. 물론 다양한 성서해석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양상도 있었지만, 성서해석의 독점으로 벌어진 지금까지의 신학적 오류를 점검하는 장치가 되기도 했다.
특히 개신교의 선교운동은 가톨릭이나 정교회와 같이 왕권이나 공교회의 제도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서를 읽는 각 개인의 자각과 자발성에서 비롯되었다. 교회의 선교적 인식에 관하여 아드리안 사라비아(Adrian Saravia), 폰 벨츠(Justinian von Welz), 그리고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로 이어지는 선구자들은, 오직 사도와 초대교회에만 적용된다고 간주되어 온 예수의 ‘위대한 위임’(The Great Commission)이 모든 시대, 모든 교회에 적용된다고 재해석했다. 이는 개신교 내에 선교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예수는 누구인가: 개인의 구세주
청교도운동, 경건주의운동, 복음주의운동, 대각성운동으로 이어지는 영적 갱신운동, 그리고 개신교의 선교적 자각이 부상한 18세기가 지나고, 소위 선교의 ‘위대한 세기’(The Great Century)라 일컬어진 19세기가 도래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개신교의 선교는 전무후무할 만큼 확장되었지만, 전도나 선교의 방식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을 띠었다. 이제 예수는 ‘개인의 구세주’(Personal Saviour and the Lord)로 인식되고 강조되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개인 신도 간의 관계를 중요시하던 개신교의 특징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18세기 모라비안의 지도자 친첸도르프(Nikolaus Ludwig von Zinzendorf) 백작의 선교신학과 ‘위대한 세기’의 상징적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의 선교신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친첸도르프는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다수를 개종시키기보다는 하나님이 복음을 듣도록 예비해둔 소수의 사람에게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했다.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공통의 인식에 기반을 둔 ‘신 중심적’(Theocentric) 선교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 기반을 둔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 선교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하나님과의 철저한 개인적 관계(personal relationship)와 믿음 선교(faith mission)를 강조한 테일러의 경우에도 교회 설립 중심의 선교나 의료선교, 복지선교 등에 관심을 두지 않고 철저하게 개인전도와 영혼구원적 형태의 선교에 주력했다. 이러한 근세의 선교 패러다임은 오늘날 복음주의적 선교의 전형과 모체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부상하고 있는 이머징교회(Emerging Church), 가정교회(House Church)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머징교회는 기성교회의 형식과 틀을 벗어나 탈권위적이고 소규모이며 자유로운 형태로 예배하고자 하는 새로운 양상의 교회이다. 가정교회가 중국도 아닌 미국에 있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이머징교회와 마찬가지로 서구의 가정교회는 물량화되고 소비자적인 행태로 변질된 대형교회,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형태의 기성교회에 대한 상처와 반발로 인해 출현한 교회 형태이다. 그들은 마음이 맞는 신자들과 함께 소규모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다. 소위 가나안 성도와 같은 이들이 예배하는 예수는 교리적이고 기성화된 예수가 아니라 체험적인 예수, 개인적인 필요와 친밀감을 채워줄 수 있는 예수이다. 특별히 20세기의 문턱에서 일어난 오순절, 은사주의운동과 같은 성령의 역사에 비서구는 물론 서구의 많은 이들이 반응하는 것은 그 안에 이러한 개인적 체험과 필요를 채워주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성서는 분명 예수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이(막 1:8, 눅 3:16)임을 증거하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눅 11:13, 행 2:38)을 구하는 자들이라 하겠다.
실상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구는 오순절 현상의 도래와 함께 기독교의 모든 전통과 교단을 망라하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다. 소위 은사주의운동이 불일 듯 번져가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오순절/은사주의운동을 또 다른 종교개혁이라고까지 일컫는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교황으로 대변되는 제도권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며 교권이 아닌 성서 자체에 권위를 두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을 권위로 인정하며 변혁을 초래한 것이다. 이렇듯 오순절/은사주의 현상을 종교개혁이라고 일컫는 것은 신앙생활의 권위가 성서에서 각 개인의 체험, 즉 성령의 체험으로 이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언, 예언, 신유, 초자연적 경험 등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이들이 지도자가 되고, 그러한 체험 자체가 신앙생활의 권위로 작동하게 되었다. 이는 객관적인 면에서 주관적인 면으로의 이동이기도 하다. 이제 이러한 예수에 대한 개인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이 서구와 비서구를 막론하고 이 시대의 주요한 신앙의 지표가 되었다.
서구의 공헌과 유산
서구가 끼친 공헌과 유산은 특별히 기독교의 확장과 더불어 전해진 서구문명이라고 하겠다. 물론 서구의 선교적 확장이 식민주의, 제국주의적 확장의 물결에 편승하여 이루어졌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두고 제국주의의 앞잡이 혹은 문화파괴자라고 매도하는 것은 정당한 평가라고 할 수 없다. 라민 사네(Lamin Sanneh)와 같은 아프리카 학자는 오히려 선교로 인해 자국 언어, 자국 문화에 대한 의식이 고양되었다고 평가한다.1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한자가 아닌 한국어로 성서를 번역했는데, 이는 세종대왕 때 창제되긴 했지만 한자보다 차별받아 온 한글을 대중화하고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선교의 원동력이 된 영적 갱신운동으로 세계 곳곳에 파송된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청교도적이고 경건주의적이며 복음주의적인 신앙의 배경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성서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기조의 기독교가 소개되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선교는 또한 선교신학자 데이비드 보쉬(David J. Bosch)가 그의 패러다임적 선교 이해에서 말하는 소위 ‘계몽 시대의 선교’라고 할 수 있다. 보쉬는 선교신학의 역저 『변화하는 선교』(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에서 전 기독교 선교의 역사를 여섯 시기의 패러다임으로 분류한다.2
그중 하나인 ‘근대 계몽주의 패러다임’에서 보쉬는 이 시기의 선교적 특색을 말해주는 본문으로 사도행전 16:31, 요한복음 3:16, 요한복음 10:10을 들고 있다. 특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는 말씀은 이 시기의 특색을 잘 설명해준다.(물론 예수가 의미하는 ‘풍성’이 물질적 풍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시기의 선교를 서구문명 선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서구의 근대 의학과 교육, 그리고 산업발전이 서구에 비해 물질적으로 뒤떨어진 비서구 세계에 문화적 혜택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기독교는 서구인들의 종교라는 인식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예수를 믿고 기독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개화적이고 진보적이며 많은 혜택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아마도 예수에 대한 인식은 양을 돌보는 목자 이상으로 교육자(Educator)요, 깨우쳐주는 자(Enlightener)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의 위대한 선교사인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이 표방한 ‘3C’(Christ, Commerce, and Civilization)에서 이 시기의 선교적 모티브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노예무역으로 피폐해진 아프리카의 상황을 보고 서구인들은 아프리카인들에게도 문명의 혜택을 전해주고자 했다. 그들에게 지극히 필요한 복음이었으리라. 즉 이 시대의 선교적 이상은 서구의 문명과 함께 간 그리스도, 서구의 문화적 혜택과 함께 간 복음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복음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며 발견하고 개척한 아프리카는 식민주의자들의 길목이 되어버렸다. 리빙스턴의 바람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서구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착복지가 되었고, 아프리카에 부를 가져다주기보다 부를 빼앗아 간 꼴이 되고 말았다.
서구의 위기와 도전
1,000년 가까이 기독교 왕국을 이룬 유럽은 역사적(historic) 기독교의 본거지로 그리스정교회, 로마가톨릭, 개신교의 본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구가 거쳐온 세속화, 이교화의 위협으로 ‘유럽이 곧 기독교’라는 표현이 무색해져 버리고 말았다. 서구의 위기와 도전, 그로 인한 새로운 기회를 아래에서 정리해보겠다.
첫째, 기독교 왕국, 곧 크리스텐덤의 해체이다. 동방에서 기독교 왕국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오던 비잔틴제국은 1453년 오스만 튀르크의 침입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서방의 기독교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19세기 초까지 1,000년간 그 명맥을 유지했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유럽에서 자행된 두 번의 세계대전, 그리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걸으며 공산화된 동구권과 더불어 급속한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사실상 기독교 국가 간 전쟁이라 할 수 있는 세계대전으로 인해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는 더욱 커져만 갔고, 국가의 자원은 고갈되었으며, 결국 식민지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말았다. 이후 비서구 세계는 탈식민지화 과정을 겪으며 신생국가가 만들어지고, 더불어 신생교회의 등장과 성장이 불일 듯 일어나게 된다. 어찌 보면 유럽의 위기는 서구의 권위 아래 자생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비서구 지역의 교회를 현지 지도력 아래 활성화시키며 폭발적 성장을 가능하게끔 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기독교 신앙이 사적 영역으로 제한되고 말았다. 근세 이전까지 기독교는 공적이고 공공적 가치를 갖고 있었지만, 오늘날 특히 유럽에서 기독교는 사적 영역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계몽주의를 유럽 기독교의 최대 위협으로 보았다. 계몽주의의 유희장이 된 유럽의 상황에서 과학은 ‘사실’(fact)을 추구하는 영역으로, 종교는 ‘가치’(value)를 추구하는 영역으로 이원화되었다. 기독교 신앙은 객관적이고 공적인 영역에서 점점 더 주관적이고 사적인 견해로 내몰렸다. 뉴비긴은 기독교의 복음이 진리라면 이는 사적 영역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도 진리(The Gospel as public truth)여야 함을 천명하고 복음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이에 발맞추어 ‘공적 신학’(public theology)과 같은 담론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셋째, 오늘날 서구에는 탈기독교적 영적 기후가 일고 있다. 세속화가 절정기였던 1960년대, 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와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Berger) 등은 앞으로의 과학기술 발달이 인간의 많은 종교적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따라서 종교나 교회가 급격히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빗나갔고, 결국 자신들의 이론을 수정해야만 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북미에서는 종교에 대한 관심보다는 새로운 영적 관심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다. 이는 제도화되고 기성화된 교회에 대한 흥미보다 더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영성을 추구하려는 시대의 경향을 보여준다. 소위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혹은 ‘SBNA’(spiritual but not affiliated)라는 표현은 종교적이진 않지만 영적이고, 혹은 영적 관심은 있지만 어떠한 기성 종교조직에도 관심이 없는 새로운 풍조를 나타내는 유행어로, 이러한 시대적 영적 기후를 반영해주고 있다.
이미 유럽에는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슬람의 유입은 유럽 내 심각한 갈등과 이슈를 계속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이제 유럽의 영적 기후는 아브라함에 기원을 둔 유대교-기독교-이슬람 전통이 아닌 타종교, 특히 동양종교(힌두교, 불교)와 신비주의로 관심이 옮겨졌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서구에 유행하는 소위 ‘서방 불교’(Western Buddhism)이다. 서구 내 불교의 수용 속도는 전무할 정도로 놀랍다. 불교가 아시아에서 자리 잡는 데 적어도 수백 년 아니면 천년의 시간이 걸린 데 반해, 일부 서구 국가에서는 단지 10여 년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불교로 전향한 이들 중 많은 경우가 이전에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교회에서 상처를 입거나 염증을 느낀 자들이다. 이들은 불교에 대해 말하기를, 대단히 지적인 자극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고속버스에서 지적이고 점잖게 생긴 백인 신사 옆에 앉은 적이 있다. 그 신사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당연하다는 듯 불교인이냐고 되물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대답하자 새삼 놀란 듯 쳐다보며 본인은 불교인이라고 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닌가! 유럽의 실상과 지구촌기독교의 실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많은 유럽인들은 식상한 ‘종교’(religion)가 아니라 새로운 ‘영성’(spirituality)을 찾아 갈망한다. 대개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에서 그러한 영성을 찾고 있다. 이는 이미 뉴비긴에 의해 지적된 바 있는데, 그는 기독교 이전의 유럽의 이교적 모습(Pre-Christian Pagan)과 기독교 이후 유럽의 이교적 모습(Post-Christian Pagan)을 처녀(virgin)와 이혼녀(divorcee)의 모습으로 비교하여 오늘날 유럽의 영적 상태를 표현하기도 했다.
넷째, 신학의 서구화이다. 근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계몽사상, 세속화 등이 가져다준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과학주의적 세계관은 무신론, 이신론, 유물론, 진화론 등 다양한 모양으로 기존의 기독교 신앙을 위협했다. 이러한 도전은 교회의 권위는 물론 성서의 해석, 신학의 방법론까지 위협했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것은 서구가 마치 절대적 기준과 표준이라는 고착된 생각이다. 오늘날 후기식민주의나 지구촌적인 시각에서는 이러한 서구의 태도를 유럽종족주의(European Tribalism)라는 말로 표현한다. 지구촌의 일부밖에는 안 되는 서구만을 중심에 둔 채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때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은 이러한 일면을 잘 나타내는 예이다. 그들은 기독교 진리의 초자연적, 영적 부분을 과학주의적 세계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신화적 껍데기로 여겨 제거하고자 했다. 어찌 보면 이것도 서구의 상황화된 신학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문화는 중력과 같이 신학화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지구촌적 시각에서는 오히려 타문화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성서를 균형 있고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고 여긴다. 그동안 당연시한 서구의 절대성과 중심성을 상대화시키고 서구도 세계의 일부라는 자각과 서구적 프레임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시각이다. 또한 진보주의적인 서구와 상대적으로 보수주의적인 비서구 사이의 새로운 에큐메니컬 대결 양상도 초래되고 있는데, 특히 성 정체성에 대한 이해, 동성애자 목회자의 안수 문제 등에서 첨예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나가면서
지금까지 서구의 맥락, 즉 유럽과 북미의 맥락에서 예수에 대한 이해와 서구 기독교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분명 서구는 기독교 역사에서 긴 대로 또한 짧은 대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별히 비서구 지역에 끼친 영향력은 상당했다. 하지만 이제 지구촌기독교의 모습을 일몰과 일출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서구는 기독교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지평선 너머 일몰의 지구 반대편은 일출을 맞는다. 과연 서구의 반대쪽에 있는 다수 세계의 기독교는 어떠한 모습이며 예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다음 호에서는 비서구(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맥락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주(註)
1 Lamin Sanneh, Translating the Message The Missionary Impact on Culture (Maryknoll: Orbis, 1989).
2 David J. Bosch, 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 (Maryknoll: Orbis, 1991), 181-189.
박형진|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선교 역사 및 지구촌기독교(World Christianity) 연구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으며, 지금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선교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저서로 『지구촌기독교 선교 역사 이해의 지평들: 아돌프 하르나크에서 앤드루 월스까지, 선교역사가 8인의 눈으로 본 기독교』가 있다.
첫댓글 그러나 이제 유럽의 영적 기후는 아브라함에 기원을 둔 유대교-기독교-이슬람 전통이 아닌 타종교, 특히 동양종교(힌두교, 불교)와 신비주의로 관심이 옮겨졌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서구에 유행하는 소위 ‘서방 불교’(Western Buddhism)이다. 서구 내 불교의 수용 속도는 전무할 정도로 놀랍다. 불교가 아시아에서 자리 잡는 데 적어도 수백 년 아니면 천년의 시간이 걸린 데 반해, 일부 서구 국가에서는 단지 10여 년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불교로 전향한 이들 중 많은 경우가 이전에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교회에서 상처를 입거나 염증을 느낀 자들이다. 이들은 불교에 대해 말하기를, 대단히 지적인 자극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것은 서구가 마치 절대적 기준과 표준이라는 고착된 생각이다. 오늘날 후기식민주의나 지구촌적인 시각에서는 이러한 서구의 태도를 유럽종족주의(European Tribalism)라는 말로 표현한다. 지구촌의 일부밖에는 안 되는 서구만을 중심에 둔 채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때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은 이러한 일면을 잘 나타내는 예이다. 그들은 기독교 진리의 초자연적, 영적 부분을 과학주의적 세계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신화적 껍데기로 여겨 제거하고자 했다. 어찌 보면 이것도 서구의 상황화된 신학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문화는 중력과 같이 신학화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지구촌적 시각에서는 오히려 타문화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성서를 균형 있고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고 여긴다. 그동안 당연시한 서구의 절대성과 중심성을 상대화시키고 서구도 세계의 일부라는 자각과 서구적 프레임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시각이다. 또한 진보주의적인 서구와 상대적으로 보수주의적인 비서구 사이의 새로운 에큐메니컬 대결 양상도 초래되고 있는데, 특히 성 정체성에 대한 이해, 동성애자 목회자의 안수 문제 등에서 첨예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