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꽃샘추위가 물러간 삼월 둘째 토요일이었다. 광양이나 원동까지 매화를 보러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창원 근교에 때맞추어 피어나는 들꽃을 완상하러 길을 나서고 싶었다만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초등학교 동기가 딸을 시집보낸다는 청첩을 받아서다. 예식장 걸음은 집안 조카정도는 참석하고 웬만하면 마음만 전하기 예사였는데 이번은 산과 들로 향하지 못하고 시간을 만들었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 진작 폐교되었지만 동기들 결속력은 대단하다. 오십 명 안팎 남녀 친구들이 모인다. 매년 봄 정기 총회를 갖고 가을엔 관광 전세버스로 소풍을 다녀온다. 내가 사는 곳에선 격월로 지역 모임도 갖는다. 지난겨울 친구 자제 혼사가 두 차례 지나갔는데 공교롭게 다른 일이 겹쳐 나는 얼굴을 내밀지 못해 미안했다. 친구들한테 내가 무슨 사정이 있을까봐 걱정되어서다.
내가 이번 불참하면 삼진 아웃에 걸린다고나 할까. 이웃에 사는 동기가 연전 며느리를 보았고 이번에는 사위를 맞는 날이었다. 나는 미리부터 마음 비우고 예식장으로 가기로 작정했다. 예식은 시내 어느 호텔에서 오전 11시 시작했다. 혼주나 신부를 만나 먼저 축하해주어야겠으나 하객으로 몰려오는 동기들한테 눈도장을 받는 일도 중요했다. 나는 집에서부터 걸어서 예식 호텔로 갔다.
모처럼 정장에 넥타이까지 맸다. 일 년 중 정장 차림으로 길을 나서보기란 손에 꼽을 정도다. 나에게 정장 입을 기회는 명절이나 기제사로 고향을 찾을 때나 격식을 갖추어 문상을 가야하는 경우다. 평소 근무 중에는 넥타이까지 맬 일은 없었다. 초등학교 동기 모임에 나갈 때는 일부러 어수룩한 차림으로 나간다. 그래야만 고향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마음 터놓고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용지호숫가엔 봄볕을 쬐러 나온 산책객들이 더러 있었다. 거위 한 쌍은 아이들이 던져주는 모이를 받아먹으려고 가장자리로 나와 있었다. 호수 가운데는 까만 가마우지들이 연신 자맥질해댔다. 산책로 벚나무들은 꽃망울이 몽글몽글 부풀어갔다. 보름 남짓 지나면 연분홍 꽃잎이 화사하게 피어나지 싶었다. 예식장에 닿으니 창원은 물론 고향과 김해 부산에서 온 친구들까지 하객이 많았다.
우리들은 여태껏 흐른 세월에서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이라 새삼스러운 검증이 필요하지 않았다. 상스러운 욕이 오고가도 친밀감은 더 느껴졌다. 축의를 전하고 예식이 끝나갈 즈음 한 친구가 점심자리를 안내했다. 몇몇 장소를 물색하더니만 다수가 어시장 횟집으로 가길 원했다. 삼삼오오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마산으로 갔다. 그 횟집은 동기들 모임을 몇 차례 가졌던 곳이었다.
마창대교가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이층 횟집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남녀 동기들은 모두 스물 네 명이었다. 마주 앉은 친구들 이마는 주름이 지고 머리는 희끗희끗했다. 한 친구가 나를 보고 주름 없이 팽팽하다고 했다. 나는 대신 머리카락이 없지 않은가라고 응수했다. 우리들은 먼저 나온 밑반찬만으로도 맑은 술을 몇 잔 들이켰다. 차를 몰아갈 친구에겐 잔을 권하질 못해 유감이었다.
안주는 제철을 맞은 도다리와 숭어 회였다. 각자 그간 살아오고 살아갈 안부를 나누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 봄에 있을 정기 총회 전 임원진 개선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누가 나보고 회장을 맡았으면 해 화들짝 놀랐다. 좋은 적임자를 골라 맡겼다. 이번엔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친구가 나보고 총무를 맡아주길 원해 뿌리치느라 진땀을 흘렸다. 총무는 회장보다 더 난감한 일이었다.
자리가 파할 무렵 식탁 위는 빈 술병이 그득했다. 몇몇 친구는 먼저 자리를 뜨고 나머지 근처 찻집으로 가려고 모두 일어섰다. 나는 창원으로 복귀하는 친구 차편으로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직 해는 중천에 있어 자투리 시간이 아까웠다. 둘러 옷을 갈아입고 북면 지인 텃밭을 찾아갔다. 얼마 전 사 들인 병아리들이 활기차게 놀았다. 바야흐로 매실나무에서는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15.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