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57]아름다운 사람(43)-‘만두의 정석’ 언배의형
언배의焉培義 형. 어제 형을 몇 년만에 만나뵜을까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대학 4학년 때라 쳐도 45년 만입니다. 그때 수원 행궁 근처에서 춘부장이 운영하는 중국집 <일흥원>에 형이 귀빠진 날이라며 저와 한 친구(어느 사립대 중문과 교수로 정년퇴직 후 한의원을 개업한 괴짜학자-글쎄, 교수를 하면서 한의사 국가자격증을 땄답니다)를 초대했지요. 평생 처음으로 고급 중국집에서 10여 가지 코스요리를 먹으며 감격, 감동했습니다. 물론 빼갈도 제법 했을 테지요. 저는 보자마자 형을 알아봤는데, 저를 못알아보는, 달구름(세월)이 근 반세기가 흐른 때문이지요. “영록씨”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도 고마웠습니다.
그 이후 형의 소식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으나 종종 궁금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성균관대 영문학과 동기였습니다. 형은 수원의 명문 화교 출신으로(춘부장이 한국에서 대만 총통선거에 참여하는 1인 입법원 의원이라고 들었지요. 언焉씨는 중국에서도 희성이랬지요), 성대 약대를 3년 다니다 적성이 맞지않아 76학번으로 영문학과에 들어왔다지요. 53년생이니 우리보다 네 살이나 위였는데, 우리 둘이는 어쩐지 형의 조용한 성품(법 없이도 살 ‘고진’-전북의 표준어로 ‘착한 사람’)에 이끌렸고, 형도 우리하고만 어울린 셈이지요. 그러니 생일에 초대해 코스요리로 대접을 했겠지요.
이러구러 45년이 흘렀는데, 보름 전 <꽃받침 한의원> (한의원 이름도 특이하지요. 환자들을 ‘꽃송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에서 지었다더군요) 원장 친구가 <나의 경기도>라는 잡지에 형의 소식을 실렸다고 알려왔습니다. 용인, 분당에 사는 아내와 큰아들 가족과 함께 형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은 까닭입니다. <중국만두 전문점 수원壽園>. <일흥원>까지 포함하면 50년도 넘은 노포老圃인데, 검색을 해보니 군만두 전문점으로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더군요.
흔히 ‘야끼만두’라고 불리는 군만두는 여느 중국집에서는 서비스로 주는 것인데, 형네 식당의 군만두는 그야말로 일품逸品이었습니다. 입맛이 까칠한 아내와 아들내외, 심지어 9살 손자도 박수를 치더군요. 오직하면 박찬일 쉐프가 먹어보고 그 후기를 남겼을까요. 기름을 자작하게 두른 후 윗면은 찐 것처럼 촉촉하고 바닥은 기름에 지지는 ‘옛날 맛’을 고스란히 내는 수원만두. 아예 <만두의 정석>이라고 썼더군요. 형수님과 사십이 넘은 아들과 함께하는데, 주말에는 좁은 골목에 줄을 선다구요. 참 대단하십니다.
형은 거의 반세기 전이나 똑같습니다. 외모와 말씨. 어제는 너무 바쁘셔 형수님에게 인사도 못드리고 왔지만, 어느 평일에 찾아 더 많은 얘기를 나누자며 헤어지는데(더구나 술 한잔도 같이 못했으니) 서운했습니다. 다음엔 그 친구와 함께 오겠습니다. 짧은 만남에도 아들과 딸이 아직 결혼을 안했다는 말씀을 했으니 얼마나 근심이 되겠습니까? 당시 들은 얘기론 춘부장께서 아들 다섯을 낳아 이름을 <인, 의, 예, 지, 신>으로 짓겠다 했는데, 5번째가 여동생이어서, 원배인,원배의, 원배예, 원배지고 그쳤다지요. 당연히 형은 차남, 둘째아들이겠지요. 제 고교 친구의 아버지도 사형제를 낳아 <동, 서, 남, 북>으로 지었다는 얘기를 들려드렸지요.
중국말로는 ‘따꺼大哥’(큰형님)라고 불러야할 배의형, 어제 환대 고마웠고, 만남 정말 반갑고 좋았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어쩌고저쩌고)”하는 유행가 노랫말도 생각났습니다. 다만, 흠 하나는 음식값을 전혀 받지 않은 것입니다. 다음에도 틀림없이 그럴 터이니, 쉽게 가지겠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반값이라도 받아야 형을 찾는 우리의 발길이 부담이 덜하지 않겠어요. 80년에 같이 졸업을 했는데, 이제껏 와본 사람이 원어민 영어교수 맥퍼슨뿐이었다니, 형도 어쨌든 ‘영록씨’를 만난 건 반가웠겠지만, 요리값을 받아야 <수정방>도 시켜 마실 것 아니겠습니까? 다음에는 꼭 그리하소서. ‘시망막폐쇄증’으로 눈이 자꾸 나빠진다는데 걱정이 됩니다. 눈이 안좋아 제 졸저도 잘 읽지 못하시겠네요. 읽으셔야 저를 알텐데 말입니다. 부디 오래 강건하시어, 우리들에게, 아니 수원시민들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맛있는 정통만두를 선보여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너희가 만두 맛을 알아?” 손주의 겨울방학때에는 올라와 틀림없이 평일에 친구와 함께 찾아 얘기 나누겠습니다. 합장.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8번길 6(031-255-5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