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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FKA 작품 요약 설명
리얼리즘+초현실적 환상적 소재+실존주의(절망,좌절,불안, 공포)
초현실적, 환상적 소재를 구사하여 몇 중으로 소외된 현대인들의 절망, 좌절, 불안, 공포를 냉철히 정관하면서 그것을 리얼하고 실감나게 묘사한 20세기 최대의 소설이다. 그는 생전에는 극히 제한된 일부에게만 인정되다가 사후 그의 친구인 막스 브로트(Max Brod, 표현주의 작가이다)에 의해 유고(遺稿)가 발표되자 실존주의의 유행과 발맞추어 실존주의 문학의 원류로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작품들은 독일어권이 아닌 프랑스, 영국, 미국 등지의 외국에서 문제가 되고 높이 평가되어 그의 문명이 일약 세계적인 것으로 되었다. 그러다가 역수입이 되어 독일에서도 정당한 평가 받아 신진작가들에게 크게 어필되었다. 지금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온 세계에서 무수한 카프카 관계의 연구서가 출판되고 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당시는 오스트리아헝거리 제국)의 수도 프라하(Prag)에서 유태인 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생활력이 강하고 아집이 세고 이해심이 부족하고 사나운 면이 있었다. 반면에 어머니는 학구적인 가계 출신으로서 선량하고 마음씨 고운 부드러운 여성이었다. 카프카는 아버지에 대해서 평생동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열등감을 가졌었다고 한다. 독일어로 초, 중 교육을 마친 다음 프라하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았다. 이 시대에 그는 친구인 막스 브로트를 알게 되었고, 문학에 심취되어 창작을 시작하였다. 막스 브로트와의 친교는 운명적인 것이었다. 그는 내성적이고 우울했던 카프카를 문단에 끌어들였고, 카프카 사후(死後)에 유고(遺稿)를 발굴하고 지켜 전집을 출판하게 된다.
졸업 후에는 노동자 재해보험국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 막스 브로트의 권유로 단편 『관찰 Betrachtung, 1912』, 『화부 Der Heizer, 1913』, 『판결 Das Urteil, 1916』 등을 발표하고, 이어 『변신 Verwandlung, 1916』을 발표하여 무질(Robert Musil), 슈테른하임(Carl Sternheim) 등의 일부 인사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가 폐병을 앓게 되었고, 1차 대전 중의 궁핍한 생활 때문에 병이 악화되어 1917년에 휴직하고 요양생활에 들어갔다. 이 시기에 많은 단편을 썼고, 그리고 파스칼(Blaise Pascal), 키에르케고르 (Sören Kierkegaard)를 숙독했다. 그 후 몇 번 연애를 했으나 병상의 악화로 1922년에 작품 『성 Das Schloß』을 집필하면서 퇴직하고 창작에만 전념했다. 다음해 여행지에서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어 그녀와 베를린(Berlin) 교외에서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비로소 수개월 동안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위압에서 벗어나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병상이 악화되어 빈(Wien) 교외의 요양소에서 죽었다.
카프카의 짧은 생애에서 중요한 점은 프라하에서 유대인의 혈통으로 태어나 독일어로 교육을 받은 서방적 유대인이었다는 카프카의 위치이다. 서방적 유대인은 동방적 유대인처럼 절망적 가난에 허덕이지는 않았지만 유대교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고, 유대교에서 혐오하는 유럽의 개인주의 영향 아래 있었고, 소수의 독일인이 지배하던 프라하에서 유대인은 경시되었다. 그 당시 민족 해방을 주장하던 체코인들도 독일 교육을 받은 유대인을 적대시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노동자 재해보험협회의 직원으로서 시민 계급도 아니었고 상인의 아들로써 노동자 계급도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카프카는 조국이라든가 공동 사회라는 관념보다는 이방인, 국외자라는 관념으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는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그의 작품은 평범한 일상적 경험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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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수도자 (Ein Hungerkünstler, 1921)
변신 (Die Verwandlung, 1912)
선고 (Das Urteil, 1912)
성 (Das Schloß, 1922)
소송 (Der Prozeß, 1915)
시골의사 (Ein Landarzt, 1917)
유형지에서 (In der Strafkolonie, 1914)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Ein Bericht für eine Akademie,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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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수도자 (Ein Hungerkünstler, 1912/22)
- 단식은 예술의 알레고리. 무엇을 완성해 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굶는 비생산적인 것, 창살 속의 좁은 우리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부자유, 바로 이것이 단식 수도자
<줄거리>
이것은 관중에게 자신의 단식술을 보여주는 광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관중들은 관심은 처음에는 날이 갈수록 고조되어 밤에도 구경꾼이 몰려든다. 40일 후 흥행주는 단식 수도자에게 다시 음식을 조금 먹을 것을 설득한다. 그리고 관중들과 함께 단식의 성공적인 완료를 즐기는 작은 축제를 벌인다. 그러나 몇 년 후 카프카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상황이 급변한다. 단식가에 대한 관중의 흥미는 점점 줄어들어 이 사람은 어느 곡마단에 취직을 하게 되고 여기서 동물우리 옆방 하나를 배정받는다. 얼마 후 관리인이 이 광대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만다. 그리하여 그의 단식일을 기록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 계속 단식을 한다. 죽기 직전에 그는 자신이 광적으로 단식한 이유를 털어놓는다. 즉 자신의 입에 맞는 음식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빈 우리는 젊고 싱싱한 표범으로 채워진다.
이 작품은 세계 속에서의 예술의 문제 또는 수도자의 존재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카프카로서는 이 당시 결핵의 발병과 세 번째의 파혼, 아버지와의 위기, 밀레나와의 체험 등 다양한 삶의 고통을 겪고 나서 죽음을 예감하던 시기였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예술적 삶에 대한 자기확인을 『단식 수도자』로 표현한 것이다. 대체로 그의 말년의 분위기는 절망이라든가 비극성, 문학적 생산이나 외부사회에서의 궁극적인 좌절감 등이 구조를 이룬다. 자신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작품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서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단식은 예술의 허구적 변형으로 보인다. 작가 자신이 늘 문학적 생산에 회의를 느꼈고 외부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는 내면세계의 문학을 고집한 것처럼 주인공의 단식술도 동일한 특성을 보여준다. 우선 그것은 무엇을 완성해 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굶는 비생산적인 것이다. 인간의 삶과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먹지 못하는 무능력, 마음껏 운동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창살 속의 좁은 우리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부자유, 바로 이것이 단식 수도자가 그 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가치이다.
그 자신만이 갖추고 있는 이러한 단식술은 시초에는 많은 관중이 몰려듦으로써 수도자의 내면적 세계가 사회와 커뮤티케이션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늘 재미를 찾는 관중의 일시적인 변덕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어 나중에는 곡마단으로 쫓겨가고 거기서도 관중의 흥미는 동물들에게로 향하게 되어 결국 무관심 속에 죽는 것이다. 즉, 수도자의 궁극적인 소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다음에 보듯이 그가 스스로 좋아서 하는 단식의 이유를 관중은 커녕 흥행주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0일이 된 지금에 왜 단식을 중단해야 하는가? 앞으로 얼마든지 더 견뎌낼 수 있는데, 왜 지금 그만둬야 한단 말인가? (……) 좀더 계속하려는 단식의 영광을 왜 박탈하겠다는 건가? (……) 한번은 어떤 인정 많은 사람이 나타나 광대가 우울해 하는 원인은 아마 단식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하려 했다. 그때는 마침 단식이 절정을 향해 가는 때였다. 수도자는 그 설명에 갑자기 화를 내며 야수처럼 우리의 창살을 요란하게 흔들어 구경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벌써 흥행주가 즐겨 쓰는 해결책이 있었다. 흥행주는 관중 앞에 나가서 수도자를 위해 변명을 하는 것이었다. "배불이 먹는 여러분께서는 아마 이해하기 곤란하겠지만 단식을 하던 사람이 성을 내기가 쉽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신다면 광대의 난폭한 행위를 용서할 수 있을 겁니다."
단식 수도자 자신이 스스로 만족을 찾아 선택한 행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단식에 대해 그 자신만이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관객이라고 할 수 있다.
40일이라고 하는 한계가 흥행주가 최대의 흥행효과를 위해 임의로 정한 기한이지 단식가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더우이 그는 40일이 경과하면 관중들 앞에서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새로운 단식에 도전한다는 우스꽝스런 의식을 위해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식사를 해야 한다. 그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관중 중에 누구도 없고, 둘도 없는 동료인 흥행주도 모른다. 그 결과 그는 항상 서글픈 심정이고, 그의 감정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기에 더 우울해지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의 단식은 구미에 맞는 제대로 된 음식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음식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삶을 지탱해 갈 길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작가적 환경으로 다시 눈을 돌릴 때 자신의 문학적 삶이 외부세계의 생존과는 양립될 수 없다는 카프카의 자기인식과 유사하다. 공동체와의 소통의 수단으로, 동시에 영위되지 못한 삶의 대체물로서 그의 문학은 아버지에게 끝까지 수용되지 못했고, 꿈 같은 내면의 기록이 사회에 이해되리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유고를 파기해 달라는 유언도 나온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이 세상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주인공의 인식은 세계와 대치된 가운데 자신의 카프카의 자기확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가 앓은 후두결핵은 실제로 그에게 아사선고를 내린 방이다. 그가 키얼링의 요양소에 있을 때 『단식 수도자』의 교정을 봤다는 사실은 수도자의 소외를 단식이라는 형태로 허구화시켰으리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해준다. 카프카의 말년, 요양소에서 도라 디아만트와 더불어 그에게 헌식적인 도움을 준 로버트 클로크슈토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 증언은 이 작품에 임하는 작가의 필사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이 무렵의 카프카의 육체적인 상태나, 말 그대로 굶어 죽은 전반적인 상황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는 교정을 끝냈는데, 이것은 끔찍한 정도의 정신적인 긴장을 주는 작업으로서 감동적인 정신과의 재회였다. 이때 그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카프카에게서 이런 식의 감정표현을 경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늘 초인간적인 극기의 힘을 지녔던 것이다.
이 같은 증언은 『단식 수도자』에 스며 있는 작가의 강한 자기투영을 직감케 해준다. 그는 그로테스크한 아이러니의 수단을 자신의 예술성에 의문을 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의 젊은 표범의 모습은 외부세계의 삶이 최후의 승리를 차지한다는 다른 작품들의 자취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표범은 활동적인 사회적 삶의 요구를 대표하고 있다. 단식술을 지닌 수도자는 표범에 맞서 주장할 수 있는 바가 없다. 표범은 '아무리 우둔한 인간이라도 밝은 감정을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즐비한 이빨 사이에라도 자유가 숨겨져 있는 듯한' 동시에 '생에 대한 환희가 목구멍으로부터 강한 열기를 내뿜는' 그 자태로부터 관객들의 환호를 살 만한 요소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가 절대적인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 정상적인 삶의 요구가 자기파괴적인 단식수도자 앞에서 무제한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관객의 반응을 전적으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이들 집단은 다른 한편으로 비정하고 만족만 추구하는 것으로 천박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어느쪽이 정당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따라서 예술과 활력적인 삶의 요구 사이에서 카프카는 분명한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언어기능을 상실한 『변신 Die Verwandlung』의 그레고르처럼 외부환경과 전혀 소통되지 못하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예술에 대한 유일한 관객으로서 존재하는 단식가는 소외된 개체의 숙명을 조명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와의 교통이 단절된 가운데 그 사회와 투쟁해야 하는 소외된 개체의 실존은 출구부재의 숙명적 순환으로 암시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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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Das Urteil, 1912)
- 두 개의 자아, 시민 안락한 삶 vs 예술가의 삶. 시민적 안락한 삶에 익사 선고
이 단편은 1912년에 완성되고 1913년에 발표되었는데, 카프카의 일기에 따르면 9월 22일 밤 10시부터 23일 새벽 6시에 걸쳐 단숨에 쓰여졌다고 한다. 앉아 있는 동안 뻣뻣해진 다리를 책상에서 빼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브로트에게 보내는 유서를 통해서도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작가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의심의 여지없이' 마음에 들어한 것으로 보인다.
<줄거리>
주인공 게오르크 벤데만은 젊은 상인으로서 3년 전부터 러시아에서 거주하고 있는 친구에 게 편지를 통해 자신이 유복한 집안의 딸인 프리다 브란덴펠트와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이어 편지 내용을 아버지에게 말하자 아버지는 이 소식을 듣고 분명치 않은 비난을 퍼붓는다. 아버지를 염려하는 게오르크는 그를 침대로 옮기고 이불을 덮어 준다. 이때 아버지는 거대한 형상을 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화를 내면서 게오르크가 자신과 멀리 떨어진 친구를 져버렸다는 일종의 논죄를 한다. 프리다와의 약혼이 자신과 죽은 어머니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이다. 이어 아버지는 아들에게 익사하라는 선고를 내린다. 게 오르크는 비틀거리며 집을 나와 강으로 달려가서 물속으로 뛰어든다.
일기에 의하면 이 글을 쓰면서 카프카는 브로트의 『아놀트 베어』, 또 자신이 이전에 일기에 초고를 기록해 놓은 『도시의 세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되어 있다. 작가 자신이 작품의 소재 원천을 밝힌 셈이다. 특히, 1911년에 기록된 『도시의 세계』는 『선고』를 집필 하게 한 동기를 주는 듯한 줄거리로 되어 있다. 즉 주인공 오스카는 방탕한 생활로 부모를 서서히 파멸시킨다는 비난을 아버지로부터 받는데, 이것을 일종의 살인고발로 간주한다면 『선고』에서 아들에게 내리는 아버지의 익사선고는 인과응보의 성격을 지닌다는 풀이도 가 능할 것이다. 한편, 이듬해인 1913년 일기에는 이 작품의 이해를 위해 중요한 단서가 될 표현이 나온다.
내 경우에 대한 『선고』의 결과들, 이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그녀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게오르크는 약혼녀 때문에 파멸한다.
여기서 그녀라는 것은 이 소설이 헌정된 펠리체 바우어를 말한다. 이 부분의 일기를 쓴 시 점은 결혼을 놓고 상당한 고민을 거듭하던 때로서 펠리체와의 약혼, 혹은 결혼에 대해 작가 특유의 양가치적인 평가나 망설임의 고백이 소설로 형상화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서 작품 속의 약혼녀 프리다 브란덴펠트가 펠리체 바우어와 똑같 은 F. B.의 두 음을 지녔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난 독자가 느끼는 최대의 의문은 게오르크 벤데만이 실제로 자신의 죄를 시인할 수 없다면 도대체 왜 아버지의 선고에 따라 자살하느냐 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대체로 서술시점의 기준이 되는 게오르크와 러시아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친구와 의 관계에서 그 해답을 읽어내고자 한다. 게오르크는 사업의 수완이 있고 사회에 적응력이 있는 성공한 인간인데 비해 멀리 러시아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친구는 곤궁하고 병들었으 며, 사업적인 성공도 모르고 게오르크의 결혼을 부러워하는 존재이다. 게다가 금욕적으로 살아가는 독신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서술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친구의 정체를 좀더 가까이 관찰해 보도록 하자.
"그는 집안살림에 불만을 품고 몇 해 전에 러시아로 가버린 그 친구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어떤 사업을 경영해 처음에는 괜찮았던 모양이었으나, 수년 전부터 그의 귀향은 점점 드물어졌고 그때마다 고충을 털어놓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사업이 기울어진 것 같았다. 이 친구는 쓸데없이 외국에서 죽도록 고생만 했고, 어린 시절부터 낯익은 그 얼굴에는 이채로운 수염만이 거칠었으나 누런 안색은 무슨 병에라도 걸려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하는 폼으로 보아 그는 동향 사람들인 그 지방의 독일 사람들과 별로 연락도 없었다. 게다가 토착민과의 접촉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는 결정적으로 독신생활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길을 잘못 든 사람, 누구나 동정은 하면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도대체 뭐라고 편지를 쓴단 말인가."
친구의 묘사를 다소 길게 인용한 것은 이 인물이 본 작품의 해석에 열쇠가 되는 역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동시에 게오르크의 시점에서 보는 친구의 모습 역시 결정적이기 때문이 다. 친구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문학을 지향하는 작가의 형상과 동일하다. 카프카 자신도 문학 작업에 확신을 갖지 못했듯이 이 친구는 '사업이 기울었고', '병에 걸린' 모습이며, 그가 고독한 환경에 있는 것과 같이 '접촉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독신자'로서 살 아가고 있다. 그리고 문학이 쓸쓸한 작업이듯이 그 친구 역시 멀리 떨어진 러시아에서 쓸쓸히 생활하고 있다. 이 같은 친구의 존재와 시민적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게오르크의 관계는 결혼과 문학을 놓고 번민을 거듭한 작가의 두 가지 존재방식이 투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즉, 결혼은 외부세계적 삶의 형태이면서 따뜻하고 안락한 환경을 제공하는 데 비해 문학의 길은 쓸쓸하고 곤궁한 독신자적인 삶의 방식인 것이다. 다만 문제는 두 가지 존재방식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인데, 익사선고를 통해 게오르크를 죽임으로써 외부세계 지향의 자아를 단죄하는 자의식이 엿보인다 할 것이다. 동시에 고독하고 곤궁한 독신자의 삶이지만 순수자인 친구는 살아남는다. 여기서 게오르크의 아버지는 카프카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와는 반대의 역할을 한다. 즉, 헤르만 카프카는 실제로 문학에 늘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여기서의 아버지는 러시아의 친구를 지지하고 나중에는 그 친구의 대리인 역할을 자처하기까지 함으로써 내면세계의 가치를 대변해 주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게오르크가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 주는 행위는 아버지를 죽이려는 무의식적인 제스쳐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그럼으로써 계획된 프리다와의 결혼을 성취하고 동시에 아버지의 지위로 올라서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친구를 지지하고 대변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보았을 때, 순수자아를 억누르고 일상적인 시민적 삶의 욕구를 성취하려는 분열된 자아의 의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는 게오르크 아버지의 형상화를 통해 평소 자신이 바라던 아버지 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항상 문학작업을 통해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게오 르크의 존재방식을 향한 것이다. 게오르크의 아버지가 내리는 익사선고는 게오르크와 동시에 시민적 존재방식을 향한 것이다. 그리고 게오르크가 순순히 선고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버지 및 작가적 존재인 친구와의 결속을 염원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분열된 자아로 보이는 친구와 달리 안정적 시민적 삶에 안주함으로써 고유한 본래의 소망을 벗어난 것에 자책하여 아버지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이다. 시민적 존재에 대한 사형선고, 이것이 바로 펠리체와 결혼을 놓고 고민을 거듭한 작가가 예술적 소망을 통해 내리는 내면적 결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펠리체 바우어에게 바쳐졌고, 게오르크의 약혼녀 프리다 브란덴펠트가 바우어의 모델이라는 배경을 생각할 때 주인공에게 내려지는 익사선고는 펠리체와의 결혼에 대한 순수자아의 단죄라는 해석이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선고를 통해 러시아에 있는 또하나의 자아는 결혼으로 인해 예술적 존재가 침해받을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작가가 마음에 들어한 전기적 사실에서도 알 수 있지만, 『선고』야말로 카프카의 문학적 명제를 가장 핵심적으로 요약한 단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예술적 삶이 외부 세계에서는 극단적인 개인의 소외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공식의 에센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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