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9화>
“죄송합니다. 사건이 좀 심각해서 도저히 불구속은 힘들었습니다. 검찰로 송치되고 나서 1심 재판 받고 보
석신청을 하는 방법 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변호사의 말을 들으며 주경은 낙담한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해요? 남편이 너무 힘들어 할 건데….”
변호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주경을 쳐다 본다.
주경은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변호사 사무실을 나와 태호와 접견을 하려고 경찰서로 향한다.
며칠 사이 까칠해진 태호는 주경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여보! 나 좀 나가게 해줘. 제발 부탁이야. 미칠 것 같아.”
언제나 근심걱정없이 인생이 마냥 즐겁기만 한 듯 해맑던 얼굴은 사라지고 두려움만 가득한 겁먹은 얼굴을 하고 펑펑 우는 태호를 보는 순간 주경은 만감이 교차 했다.
“걱정 말아요. 꼭 나올 수 있게 애쓰고 있으니까.”
“그래, 고마워 여보. 날 구해줄 사람은 당신뿐이야. 나가게 되면 정말 잘할게. 여보. 그 동안 내가 잘못했어. 정말이야.”
비굴할 정도로 애절한 표정으로 호소하는 태호를 보며 주경은 찹찹한 생각이 들었다.
경찰서 주차장에 주차한 차안에서 주경은 눈을 감고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
‘잘못했다고? 뭘? 지가 뭘 내게 잘못했는지는 정말 알고 있나? 잘하겠다고? 어떤 게 내게 잘하는 것인 줄은 정말 알기나 할까? “
감은 주경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 고모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아빠가 구속됐다는데 무슨 말이야?”
호주에 있는 민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모는 쓸데없이 너한테 뭐한다고 전화를 했다니?”
주경은 민주의 전화를 받는 순간 짜증이 확 났었다.
무슨 자랑거리라고 멀리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순진이 연락을 했는지 생각이 모자라는 건 집안 내력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 걱정 마. 회사일로 그런 거니까. 곧 풀려나실 거야. 엄마가 애를 쓰고 있어.”
“괜찮겠지? 아빠 풀려나겠지? 우린 엄마만 믿어. 엄마 힘내!”
민주의 전화를 받고 주경은 잠시 흔들렸었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시, 민주가 태호를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그 동안 아빠에게 적대감을 갖지 않도록 방패막이를 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성인이 되어버린 자식들에게 아빠의 실체를 알려줘야겠다는 결심했다.
“주경아! 강사장이 구속됐다면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김두식의 아내 윤영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끼리 오랜 친구이다 보니 아내들끼리도 막연한 사이가 됐었다.
윤영희는 태호와 골프동호회 회원이기도 했다.
“응. 언니. 변호사 선임했는데 조세포탈이 워낙 중죄에 속해서 영장실질심사에서 불구속으로 나오지 못했어. 1심 재판 받고 보석신청하려고 애쓰고 있어.”
“너도 참, 속도 좋다. 강사장이 구속이 되던 실행을 받던 뭐가 이뻐서 네가 왜 변호사 선임해가면서 까지 풀려나게 해주려는 거야? 변호사 수임료도 만만찮을텐데. 나 같음 감옥에서 살아봐라 싶어 아무것도 안해주겠다.”
윤영희는 마치 자신의 일 인냥 분통터진다는 듯 흥분했다.
“애들 아빠잖아.”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어 핑계를 대는 주경은 남편이잖아 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애들 아빠? 아빠같은 소리하고 있네. 생물학적 아빠겠지. 애들 커는 동안 강사장이 아빠 노릇한 게 뭐 있다고! 아빠소리가 나오냐? 어이그, 등신아!”
언니, 동생하며 지내온 지 오래되다보니 친언니처럼 주경에게 대하던 윤영희는 주경이 하고싶은 말을 시원하게 대신해줬다.
“애쓰지 마라. 애써서 강사장 풀려나게 해줘봐야 네 덕으로 아는 인간 아니다. 울 신랑도 속이 다 시원하데. 죄값 치른다고 하네. 너에 대한 죄값….”
윤영희의 거침없는 말에 주경은 약간의 위로를 느꼈다.
“골프동호회 남자회원들도 그 동안 강사장이 여자회원들하고 개인적으로 라운딩 다니면서 주변 여자회원들 중에 몇이나 애인으로 만드는 꼴 보는 동안 눈꼴시러워 했었는데 그 사람들도 네 형부처럼 그런 생각들 하는 것 같아. 네가 지금 강사장한테서 등을 돌려도 아무도 널 뭐라 할 사람 없어. 그 동안 네가 강사장한테 한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강사장이 누구 덕에 그렇게 즐기며 살았는데,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윤영희가 물어다 준 주변 반응에 주경은 자신이 몰고 가야할 분위기를 감 잡았다.
‘그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해!’
23년간 태호에게서 받은 수많은 마음의 상처가 일순간 이렇게 폭발하리라고는 주경 자신도 몰랐었다. 어떤 계기가 자신의 분노를 일깨웠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여자, 주경의 토시를 버젓이 자신의 것인 냥 끼고 태호와 골프를 쳤던 그 년. 그 동안 자신의 것을 얼마나 다른 여자에게 빼앗기고 살아왔었는지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분노가 북받쳐 올랐다.
문득 바이클 동호회 여자가 생각났다.
토시를 꼈던 여자랑 바이클 동호회 여자가 동일 인물인가 궁금해졌었다.
윤영희에게 핸드폰을 걸었다.
“언니, 혹시 강사장이 회장으로 있는 바이클회원 중에 누구 아는 사람 있어?”
“그건 왜?”
윤영희는 갑작스런 주경의 질문에 의아해했다.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아는 동생 신랑이 강사장이랑 같은 회원이야. 뭐가 알고 싶은데?”
윤영희의 말투에 자신이 다 알고 있으니 물어봐라는 뉘앙스가 풍겼었다.
주경은 막상 그 여자에 대해 물어보려니 입이 잘 안 떨어졌다.
“혹시 바이클 여자회원들과 강사장과의 관계가 알고 싶어?”
마치 주경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이 콕 집어내는 윤영희의 말에 주경은 왠지 자신이 비참해짐을 느꼈다.
“그렇잖아도. 내가 네게 해줄 말이 많았어. 그 동안 들은 것 네가 상처입을까봐 말 안하고 있었던 게 얼마나 많은데. 괜찮겠어?”
윤영희는 주경을 걱정했다.
“아니, 됐어. 안 들을래. 그 동안에도 모르고 있었는데 새삼….”
주경은 또 어떤 말이 자신의 가슴에 비수로 와 꽂힐지 두려웠다.
“네가 힘들 것 같으면 듣지 말고. 나도 말하기 싫어. 아니 가치도 없고, 화가 나서 하기 싫어.”
윤영희가 오히려 자신이 뱉을 말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 것 같았다.
얼마나 충격적인 이야기이길래 저러나 싶어 호기심이 발동했다.
“좋아. 괜찮아. 언니 말해줘. 지금 이 마당에 내가 뭔 소리를 감수 못하겠어?”
윤영희는 주경이 받을 상처에 대한 걱정으로 조심스럽게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해줬다.
태호가 바이클을 사려고 회사 공금을 사용했었다는 이야기는 2년 전에 경수에게서 들었다.
그 바이클로 클럽활동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여자들을 태호가 등에 태우고 다녔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윤영희는 돌싱인 골프 여자 레슨프로가 태호랑 드러내놓고 애인 사이이며 골프동호회 회원들 사이 떠도는 소문을 이야기했줬다.
4개월 전에 태호가 그 여자 레슨프로에게 아파트를 사줬었다는 이야기를 듣던 주경은 순간 동영상에서 봤던 여자의 아파트가 떠올랐다.
바이클 동호회 여자는 남편이 있다고 들은 것이 생각났다.
두 여자가 다른 사람인 것이 확인됐다.
결국 이중장부의 원인은 태호가 여자 레슨프로에게 사준 아파트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인과응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