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배경 시점은 2015년입니다.)
134. 카멜레온 쌍칼
“저 뒤에 쥐색 트라제가 우리 따라오는 거 맞지?”
검은색 그랜저를 타고 진영읍내로 향하는 쌍칼이 운전석의 수색조장에게 물었다.
“예, 대장님. 분명히 미행하는 것 같습니다. 어쩔까요?”
김해 자성병원에서 출발할 때부터 쌍칼의 지시로 백미러를 통해 뒤쪽을 힐끔거리던 조장이 틀림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쌍칼은 다른 장유파 대원들은 모두 김해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서 치료받게 지시했다. 그리고 자기는 일부러 조직의 본거지인 장유면 코아상가 사거리를 거쳐 진영읍내를 향해 가는 중이다.
“파출소 앞에 있는 정형 의원으로 가자.”
손가락 세 개가 베인 왼손을 손수건으로 감싸 쥔 채 아직도 쓰린 통증을 참느라 눈을 찡그리며 쌍칼이 지시했다.
“예? 거기는 파출소 바로 앞인데요? 소방서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조장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쌍칼은 지금 경찰을 피해서 숨어 지내는 중이다.
진영 읍내에 정형외과 의원 두 개 있는 게 하나는 파출소 앞 도로 건너 백 미터 이내에 있고, 한 개는 소방서에서 앞 큰 사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 안에 있다.
아까 올 때는 소방서 앞에 있는 정형외과 의원으로 가자고 했는데, 갑자기 파출소 앞으로 가자고 하니까 조장이 얼떨떨한 모양이다.
“저놈들도 무슨 조직원들 같잖아? 우리처럼 파출소는 피하려고 할 거야.”
미행하는 차량이 문도네와 한패인 걸 짐작한 쌍칼이 나름대로 이유 있는 설명을 했다.
여차해서 마주쳐도 자기들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지 않겠냐는 뜻도 된다.
“아, 예. 알겠습니다.”
감을 잡은 조장이 파출소 앞 정형외과 의원으로 향했다.
진영 읍내로 들어선 그랜저는 서쪽으로 꺾어 좁은 왕복 2차선 골목 도로를 천천히 통과했다.
잠시 후 진영파출소 앞을 지나 80여 미터를 더 가자, 길가 우측에 3층 건물인 정형외과 의원이 나타났다.
“주차장 안에 들어가지 말고 병원 바로 앞에 세워라.”
앞을 주시하던 쌍칼이 길가에 주차하라고 일렀다.
“예, 대장님.”
조장이 백미러로 뒤따라온 쥐색 트라제를 훔쳐보면서 턱이 낮은 인도 위로 차를 몰았다. 그랜저는 인도에 거의 다 올라가서 왼쪽의 바퀴만 도로에 걸치고 정차했다.
몇 대 안 되는 길가의 다른 차들도 모두 다 그 모양새로 주차되어 있다. 워낙 좁은 도로이다 보니 교통경찰도 자주 보는 주민들이라 주차단속을 제대로 안 하는가 보다.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까, 너는 저놈들 주차하는 거 확인하고 들어와.”
쌍칼이 먼저 내려서 바로 앞에 있는 정형외과 의원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장은 백미러에 비친 트라제가 옆을 지나 수십 미터 앞에 주차하는 걸 확인한 다음에 차 밖으로 나섰다.
자성병원 주차장 전투에서 앞장서 해삼을 공격하다가 맨 처음 삼봉의 백동전 팔매질에 코뼈 옆을 맞았던 조장은 아직도 볼록하게 부어있는 코뼈를 만지며 정형외과 의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놈들 주차했지?”
의원 안 대기실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던 쌍칼이 핸드폰을 꺼내 든 채 재확인했다.
“예, 우리 차를 미행한 게 맞습니다. 수십 미터 앞에 주차했는데, 두 명이 타고 있습니다.”
조장이 확실하다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쌍칼의 다친 손을 내려다봤다.
한시가 급할 텐데 얼른 치료받지 않고 이 양반이 왜 이러나 싶은 표정이다.
손가락은 잘못 베이면 신경세포와 힘줄이 끊어져서 나중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불구가 되기도 한다.
“네가 먼저 치료받고 나와. 나는 전화 걸 데가 있다.”
쌍칼이 지시하고 미리 찾아두었던 핸드폰의 버튼을 눌렀다.
“예, 알겠습니다. 얼른 치료받고 나오겠습니다.”
조장이 감을 잡고 접수 카운터로 걸어갔다.
핸드폰에서 상대편이 나오자, 쌍칼이 구석진 조용한 곳으로 걸어가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불사 형님, 저 쌍칼입니다.”
불사는 쌍칼의 고향 선배인 진영읍내파 두목 성불사다.
-“그래, 쌍칼. 웬일이냐?”
성불사가 반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예, 제가 지금 손가락을 좀 다쳐서 진영파출소 앞에 있는 정형외과 의원에 왔습니다.”
쌍칼이 성불사가 놀라지 않게 상처는 별거 아닌 듯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 그래? 왜, 어쩌다 다쳤어? 근데 장유가 아니고 왜 여기에 왔냐?”
말하던 불사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예, 설명해 드리자면 좀 복잡한데요, 제가 지금 미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송사리한테 애들 몇 명 붙여서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쌍칼이 최대한 불사의 신경을 덜 건드리려고 애쓰면서 간곡히 부탁했다.
“그래? 그래, 알았다. 곧바로 보낼게. 열 명쯤 보내면 되겠냐?”
감을 잡은 불사가 염려 말라는 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예, 형님! 그럼 형님만 믿고, 저는 치료받으러 들어가겠습니다.”
안심한 쌍칼이 핸드폰에 절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성불사의 진영읍내파 아지트는 이 골목길에서 파출소를 지나 불과 칠팔 백 미터 거리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있다.
만약 아지트에 대원들이 있다면 달려오는데 몇 분도 안 걸릴 것이다. 읍내에 흩어져 있어도 불러 모으는데 십 분도 채 안 걸릴 것이다.
쌍칼은 아직 부하들에게 자기가 경찰 몰래 숨겼던 장유파 필로폰을 진영읍내파에 넘겨준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다.
쌍칼이 접수하고 기다리는데 먼저 치료받은 조장이 콧등에 큼직한 반창고를 훈장처럼 붙이고 진찰실을 나왔다.
“조금 있으면 어떤 애들이 와서 우리 차를 호위할 거야. 누가 들어와서 나를 찾으면 네가 인사하고 진찰실에 있다고 말해. 우리 편이니까 친절히 대해주고! 뭔 일인지 물으면 대충, 자세히 설명해 줘라.”
쌍칼이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편이요? 아, 예. 잘 알겠습니다.”
바짝 쫄아있던 조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안심이 되어 행동대장을 존경스런 눈으로 쳐다봤다.
쌍칼이 진찰실로 들어가고 그리 오래지 않아서 깍두기 머리의 건장한 사내 세 놈이 그랜저 뒤쪽에서 다가왔다.
차 안을 들여다보고 의원 출입문을 힐끗 쳐다보더니 차량을 보호하는 것처럼 인도에 뭉쳐 서서 머물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조장이 반기는 얼굴로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칫하고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누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한 10분쯤 지나자, 날렵해 보이는 사내가 수하로 보이는 대여섯 명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먼저 와있던 깍두기들이 허리 굽혀 인사하는 걸로 봐서 그중에 대장인 듯싶다.
의원 출입문을 힐끗 쳐다본 대장이 깍두기들에게 몇 마디 물어보더니 함께 온 수하들에게 손으로 도로변 앞뒤를 가리키면서 뭔가를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수하들이 두세 명씩 뭉쳐서 도로의 앞뒤에 주차된 차량을 향해 느긋한 폼으로 걸어갔다. 아마 도로변에 주차된 차량들 내부를 살펴보려는 것 같다.
수하들에게 지시를 마친 대장이 혼자 정형외과의원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대기실 의자에 있던 조장이 엉거주춤 일어서자 힐끗 쳐다보고는 접수 카운터로 걸어갔다.
조장이 얼른 뛰어가서
“저, 실례합니다. 혹시 쌍칼 대장님 찾아오신 분 아닙니까?”
라고 물었다.
“맞소. 뉘시오?”
대장이 조장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아, 예. 저는 쌍칼 대장님 모시는 사람입니다. 지금 진찰실에 들어가 계십니다. 오시면 인사드리라고 하셔서요.”
조장이 예의를 갖추고 허리 굽혀 인사를 올렸다.
“그래요? 나는 진영읍내파 행동대장 송사리요. 그런데, 쌍칼이 어쩌다 손가락을 다친 거요? 누구랑 한판 붙었나 본데?”
콧등에 반창고 붙인 조장을 보고 예삿일이 아닌 줄 알아차린 송사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예. 아까 김해 어방동에 있는 자성병원에서 어떤 놈들하고 한판 붙었습니다.”
조장이 주저주저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영읍내파 행동대장이라니! 쌍칼이 대단하다 싶다.
“김해 어방동 병원? 거기는 삼방파 나와바린데, 걔들하고 붙은 거요?”
진영읍내파 행동대장이라 김해 시내를 꽉 잡고 있는 삼방파는 잘 안다.
“소속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걔들이 테이저건이랑 페퍼건에다 드론까지 들고나와 공격했습니다.”
조장은 자기들보다 상대편이 더 세었던 것처럼 둘러댔다.
“그래요? 그 새끼들이 별걸 다 가지고 다니네! 몇 명이나 되었길래 쌍칼이 다친 거요?”
송사리와 쌍칼은 진영읍내 초등학교 동창으로 친한 친구 사이다. 쌍칼의 잭나이프 솜씨가 보통 아닌 걸 잘 아니까 의아스럽다.
“예.. 그게, 그 자식들은 네 명밖에 안 되는데, 쌍칼 대장님이 그 중에 이글스파 해결사 하던 놈하고 맞짱을 떴습니다.”
조장이 이글스파와 해결사에 억양을 높이며 힘주어 말했다.
“뭐? 이글스파 해결사 출신이라고?”
송사리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울 신림동 이글스파의 악명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는데, 거기다 해결사라니!
“예. 그 해결사 새끼가 혁대를 풀어서 휘둘렀는데, 혁대 끝에 면도칼이 달려있어서 대장님이 거머잡다가 손가락을 베었습니다.”
조장이 혁대 돌리는 폼까지 취하며 자세히 설명했다.
“음.. 이글스파 해결사라! 근데, 어쩌다 그런 놈하고 붙게 된 거요?”
김해 촌구석 장유면 조직이 어쩌다 그런 엄청난 조직 출신들과 붙게 됐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아, 예. 실은 그 해결사 놈이 조직을 배신하고 도망 중인데, 그놈들 연고지가 함안이라서 이글스파가 친분 있는 서면파에 수색을 부탁했답니다.”
“그런데, 왜 장유파가 나서서 그놈들과 싸워요?”
“아, 예. 서면파가 우군이면서 김해로 진출하는 유태파에게 의뢰했고, 유태파는 우리 장유파 하고 거래관계에 있어서 다시 우리한테 그놈들 수색을 부탁해 온 거랍니다.”
“음.. 그리된 거구먼. 쌍칼이 많이 다쳤소?”
“예. 손가락 세 개나 베었는데, 아마 봉합수술 해야 되지 싶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요.”
“그만하기 다행이네. 근데, 누군가 미행한다고 전화했다던데, 누가 따라왔다는 거요?”
송사리가 보스 성불사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나서 물었다.
“확실히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그 새끼들 한 패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장유면 코아상가 사거리부터 따라붙었습니다.”
“아, 그래서 쌍칼이 일부러 이쪽 진영까지 끌고 온 거구먼. 그 차가 여기에 주차했소?”
“예, 우리 차 앞쪽 수십 미터 앞에 있는 쥐색 트라제입니다. 안에 두 놈이 타고 있습니다.”
조장이 얼른 가서 그놈들 때려잡아 족치자는 듯 우쭐댔다.
약자에게 강한 조폭의 본성이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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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삼봉과 함께 투싼을 몰고 장유면으로 향하던 문도는 쌍칼의 차를 미행하고 있는 갑조 조장 감똘개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응, 그래요. 변동사항이 있소?”
-“아, 예. 쌍칼이 파출소 옆에 있는 정형외과 의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감똘개의 목소리가 뭔가 잔뜩 겁먹은 것처럼 쉰 소리를 내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예. 어떤 놈들이 여남은 명 몰려와서 쌍칼 그랜저를 둘러싸고, 몇 놈은 길가에 주차된 차 안을 살피고 있습니다. 우리 차로도 곧 올 것 같습니다.”
감똘개의 목소리가 다급해지면서 약간 떨리는 것 같다.
“그래요? 음, 누구지? 알았소. 일단 차를 움직여서 거기에서 떠나시오. 조금 있다 다시 전화합시다.”
상황파악이 덜된 문도가 일단 현장을 피하라고 지시했다.
-“예, 알겠습니다. 안전한 곳에 가서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감똘개의 전화가 황급히 끊어졌다.
“무슨 일 있답니까?”
운전하는 삼봉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응. 어떤 놈들 여남은 명이 몰려와서 쌍칼 차를 호위하고 주차된 차들을 수색한단다.”
“그래요? 그렇다면 어떤 조직원들이란 얘기 아닙니까? 진영읍에도 조직이 있습니까?”
김해 주변을 잘 모르는 수원 출신 삼봉이다.
“응. 진영 읍내파라고 한 30명쯤 되는 조직이 있어. 아마도 그놈들 같은데, 그 자식들이 장유파와 우호 관계란 말인가? 나는 서로 라이벌인 줄 알고 있었는데.”
쌍칼이 진영읍내파 두목 성불사의 고향 후배고 행동대장 송사리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절친인 줄 전혀 모르는 문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 시골에도 큰 조직이 있었네요! 장유파와 우호 관계면 보통 일이 아닌데요?”
삼봉의 머릿속에 장유파와 진영읍내파 덩치들이 뭉쳐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래. 그렇다면 아주 큰 일이다.”
문도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에 장유파를 중심으로 한 관련 조직들이 쭉 나열된다.
첫째, 조직원 30명의 영도파 두목 배차돌은 사상파에 패퇴한 다음 날, 장유파 두목 이무계와 행동대장 쌍칼을 만날 정도로 아주 밀접한 사이다.
둘째, 영도파 배차돌은 조직원 40명의 유태파 두목 박신배의 15년 넘은 수하로, 박신배의 지시에 따라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수족 같은 사이다.
셋째, 쌍칼이 진영읍내파를 금세 불러내어 경호원으로 부릴 정도면 진영읍내파 30명도 장유파 30명과 한 패거리로 보아야 한다.
만약 유태파를 중심으로 이 조직들이 합류한다면, 전체 인원이 130명이나 되는 거대한 바위 같은 어마어마한 세력이 형성된다.
이글스파를 배신하고 잠적한 해삼과 멍게를 은닉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문도 자기라는 사실도 쌍칼은 이번에 알아차렸다.
장유파가 그동안 유태파로부터 필로폰을 공급받았다는데, 문도에게 심하게 깨진 쌍칼이 복수할 마음으로 유태파 두목 박신배를 만나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칠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유태파는 이참에 해삼을 보호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김해 삼방파를 아예 쳐서 접수하려 들 것이다. 그리하여 수배자들을 색출하고 서면파에 넘김으로써, 신20세기 연합세력 내에서의 유태파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유태파를 깨부수기 위해 먼저 장유파 쌍칼을 선제공격 하려던 문도의 계획은 시작부터 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