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크렘스 강이 보인다. 기차는 곧 강을 건너 다른 곳으로 갈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차창 밖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언덕
위의 수도원과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강
이쪽과 저쪽에 있는 둥근 수림樹林과 광활한 밀밭에게도 손을 흔들
었다.“ 안녕”하며크렘스강가의모든것들에게이별의인사를하
였다.
크렘스 강은 오래 동안 나의 의식 속에서 빛나고 있던 강의 이름
이다. 강의 존재를 최초로 알게 된 것은 먼 지난 날, 남편으로 부터
받은편지에서였다“. 큰가방을들고크렘스강을건너수도원으로
갔소.”이런 글이 편지 속에 쓰여 있었다. 수도원을 찾아가는 이유도
적혀 있었다. 수도원장의 배려로 방학 때면 조용한 수도원에서 휴
가도 보내고 공부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 알게 된 크렘스 강과 크
렘스뮌스타 수도원, 마음속에 깊이 각인이 되었다. 그가 건너간 크
렘스 강의 모습이며 물빛이 상상되고 그가 들고 간 큰 가방의 무거
움이 나의 마음도 무겁게 하였다.
“수도승들이 바치는 새벽 기도 소리에 잠이 깨었소. 긴 회랑을 통
해 들려오는 기도 소리는 천상의 소리 같소.”“수도원 대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하였소. 천사들의 조각상이 우리 아이들의 모습처럼 보
였소.”이런 편지도 왔었다.
남편이 유학을 떠나던 날. 그를 태운 비행기는 멀리 멀리 사라지
고 곁에는 아이들만 남아있었다. 기다림의 육년 간, 나는 산문을 쓰
듯이 그에게 편지를 썼다. 자라는 아이들의 키와 몸, 손과 발, 뛰어가
는 힘 같은 것을 그림을 그리듯이 상세하게 적어 보내었다
귀국을 하고, 다시 객원 교수로 떠나고, 그때 동행한 나를 그가 제
일 먼저 데리고 간 곳이 크렘스뮌스타 수도원이었다. 나를 이끌고
가던그는매우의기양양해있었다.“ 천이백년된수도원봐라.”
“아름다운 크렘스 강을 봐라.”하며 들떠 있었다. 마치 그리운 고향
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크렘스 강을 보았고 처
음으로 크렘스 강을 건넜다. 그리고 수도원의 높은 층계를 남편을
따라 올라갔다.
비엔나에서 린츠까지 급행열차로 두 시간, 린츠에서 여섯 개의 정
거장을 지나야만 마침내 가 닿는 산골 역, 그곳에 1200년의 역사를
지닌 오래된 수도원 있었다. 수도원 문간에서 우리를 맞이해 주시
던 앵겔베르트 신부님, 그리고 오토, 야콥, 안드레아, 알벨토 신부님
들, 남편과 그들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 말로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고 크렘스뮌스타 수도원과 나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
었다.
그 후 우리는 서양에 올 때마다 크렘스 강을 건너 수도원으로 갔다.
성탄이나 부활 축일,혹은 성신 강림의 축제를 보내기 위해, 아니
면 1200주년 기념의 특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수도원으로 갔었
다. 수도원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산속에 있는 아주 작고 오래된 성
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이 세상 한 가운데 서 있다는 나무를 보러 서
쪽 들판을 걸어가기도 하였다. 지난날에는 그 나무를 향해 달려가
듯 빠르게 갔는데 이번에는 느릿느릿 걸어 나무 곁으로 갔다. 오래
된 노목老木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였다.
떠나기 전날, 크렘스 강으로 갔다. 크렘스 강은 넓고 깊은 강이 아
니다. 강폭은 좁고 강물도 얕았다. 강가에는 물속에 몸을 드리운 수
초가 많았다. 작은 물고기들이 수초사이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물
을 만져 본다. 순하고 부드럽다. 이렇게 작고 순한 강이 왜 그렇게 나
를 사로잡고 있었을까. 큰 가방을 들고 크렘스 강을 건너갔다는 남
편의 편지가 왜 그렇게 나를 아프게 하였을까. 크렘스 강과 크렘스
뮌스타 수도원은 남편과 동일체가 되어 나를 손짓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강을 건너온 바람이 물살도 흔들고 나의 옷자락도 흔
들어댄다. 그러다가 수도원 쪽을 향해 몰려간다. 성벽처럼 견고한
수도원은 1200년의 역사를 지키고 있는 듯 끄떡도 않는다.
남편이 수도원의 어떤 창문을 가리키며 그가 거처했던 방이라고
일러준다. 깊은 밤까지 켜져 있었을 창문의 불빛, 불빛 아래 펼쳐져
있었을 두꺼운 책, 책 속에 함몰되어 있는 남편의 옆모습, 그 시절이
그의 삶의 황금기였을까. 수도승들의 기도 소리에 잠을 깨던 청아
한 아침들, 그 시간이 영혼이 맑고 향기롭게 피어오르던 때가 아니
었을까. 남편은 지금도 크렘스뮌스타 수도원과의 만남이 축복이었
다는 말을 자주 한다.
떠나는 날, 수도원 문을 나서기 전 아름다운 성당으로 가서 이별
의 기도를 드렸다. 우리 아이들을 닮았다는 천사의 조각상도 다시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지금 모두 어른이 되어있다. 수도자들과도
헤어지는인사를하였다.“ 비다센.(다시만납시다)”하는독일말
의 인사, 지난 날 우리는 이런 인사를 하며 얼마나 많이 헤어지고 또
많이 만났던가. 그러나 그 만남이 이제는 불가능한 것임을 서로 잘
알고 있다.
기차에 올랐다. 세 시간이 지나면 열차는 비엔나의 서부역에 도착
할 것이고 우리는 삼일 후, 서양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기
차가 크렘스 강을 건널 때 마음이 더욱 쓸쓸했던 것은, 그리고 크렘
스 강의 모든 것들에게 긴 이별의 말을 했던 것은 다시 찾아 올 수 있
는 우리의 힘과 시간의 모자람, 그것을 아프게 자각하고 있었기 때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