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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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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스크랩 천등산 박달재
이영자 추천 0 조회 15 08.01.28 19:0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등산 박달재 (435m)

'천등산'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산은 전국에 여럿 있다. 전남 고흥 천등산(550m), 전북 완주 천등산(707m), 경북 안동 천등산(575.5m), 그리고 충북 제천의 천등산이다. 그중 제천과 충주의 경계지역에 놓은 천등산은 인근의 지등산(535m), 인등산(666.5m)과 더불어 천지인(天地人)을 이루는 유서 깊은 산으로, 조선 세조 때 황규라는 지관과 얽힌 '삼등산 전설'이 전해오는 명산이다.

38번 국도상 제천시 백운면과 산천면 송강리 박달재 동편에  위치한 천등산 ( 天登山) "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로 시작되는 노래가사와 함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산으로 실제 박달재가 있는 산은 시랑산(侍郞山, 691m)이고 천등산은 이보다 서남쪽으로 약 8km쯤 떨어진 다릿재와 연결된 산이다.  (아래 지도 참고)

천등산(天登山) 박달재라고도 한다. 길이 500m. 예로부터 제천에서 서울에 이르는 관행길이 나 있으나, 첩첩산중으로 크고 작은 연봉이 4면을 에워싸고 있어 험준한 계곡을 이룬다. 이 곳은 1217년(고려 고종 4) 7월 거란군이 10만 대군으로 침공해 왔을 때 김취려(金就礪) 장군이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전공을 세운 전승지로 알려져 있다. 산에는 잣나무 ·전나무 ·향나무 ·육송 등의 상록수가 울창하며, 도로가 구비돌아 9곡(曲)의 유서 깊은 박달재로 유명하다.  
 

한국의산천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朴達)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 하룻밤을 묵게 됐는데 사립문을 들어서는 순간 이 집에 있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은 선비 박달의 초초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니 선녀와 같았다.
박달과 금봉은 금새 가까워져 밤마다 두사람은 만났고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로 굳게 약속하고 한양으로 떠났다.

 
 한국의산천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깨나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詩)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과장(科場)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박달은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내 보내고는 날마다 서낭에서 빌었다. 박달의 장원급제를.. 그러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후에 낙방거사 박달은 풀이죽어 평동에 돌아왔다.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박달은 땅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뒤따라 가서 금봉을 잡았다. 와락 금봉을 끌어 안았으나 박달은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의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 금봉이와 박달이 동상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한국의 산천님이 2006년 4월24일 촬영한 것 입니다.

 

한국의 산천님이 2006년 4월24일 촬영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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