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봐도 저절로 이런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굳세어라 금순아]는, 그러나 [해적, 디스코왕 되다]식의 추억을 우려먹는 복고풍 액션 멜로 영화는 아니다. 금순이는 포대기에 애를 묶어 등에 둘러업은 아줌마고, 돈이 없어 룸살롱에 붙잡힌 남편을 구하기 위해 그것도 자정이 넘어 유흥가 한 복판을 헤매고 있는 아줌마다. 그렇다, 아줌마인 것이다.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고 해서 영화가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20대가 영화의 주소비계층인 우리나라에서 아줌마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미덕이 못된다. 만약 아줌마가 주인공이라고 해도 그것을 감추기 위해 홍보사에서는 기를 쓰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굳세어라 금순아]는 당당하게 아줌마가 주인공임을 오히려 강조하고 있다.
[해피엔드]의 전도연도 아줌마였고, [편지]의 최진실도 아줌마였으며, [선물]의 이영애도, [인디안 썸머]의 이미연도 아줌마였다. 금순이도 아줌마인 것은 분명하지만 배두나는 지금까지의 아줌마들과 조금 다르다. 우선 그녀의 나이는 이제 겨우 20살. 6개월 된 갓난아이가 있지만 분명히 그녀는 아이 같은 아줌마이다. 전직 국가대표 배구선수 출신 금순이는 자신의 왕팬이었던 준태(김태우 분)의 대쉬를 막지 못하고 덜컥 아이를 갖게 되자 그 길로 결혼을 한 초보 주부, 어리숙한 아줌마이다.
술값이 없어 룸쌀롱에 붙잡힌 남편을 구하기 위해 아이를 들쳐 업은 초보 아줌마가 심야 유흥가로 진출했다가 벌어지는 야단법석을 코믹하게 풀어낸 [굳세어라 금순아]는, 아줌마라는 대한민국 특유의 제3의 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가족애를 관객들의 세포 속으로 삼투시키는데 성공한다.
핸드폰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남편이, 출근 첫 날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연거푸 마시더니 인사불성이 되어 거리로 혼자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삐끼의 덫에 걸린 남편의 지갑에서 카드 한 장 나오지 않자, 룸살롱 주인은 마시지도 않은 고급양주를 마셨다고 금순이에게 170만원의 술값 독촉 전화를 한다. 하지만 금순이는 아줌마인 것이다. 아이를 포대기에 들쳐 업고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조폭들과 시비가 벌어져 온 골목을 뛰어다녀도, 다음날 새벽 시골에서 올라오는 시부모님을 위해 고등어 2마리 사는 것을 잊지 않는 알뜰 주부인 것이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배두나를 위한, 배두나에 의한, 배두나의 영화이다. 이미 [플란더스의 개]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이며 빛나는 감성과 튼튼한 내공을 드러냈던 배두나는, [고양이를 부탁해]와 [복수는 나의 것]을 거치면서 성큼 성장했다. 그녀 아니면 누가 이렇게 밉지 않고 수더분한 어린 초보 열혈 아줌마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처음과 끝에만 등장하는 금순이의 아파트씬을 제외하고 영화 전편이 길거리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불쌍한 금순이는 시종일관 길거리에서 아이를 들쳐 업고 달리거나, 옥상에서 떨어지거나, 조폭들의 볼따구를 향해 손바닥을 쫙 펴서 강스파이크를 날린다. 시속 150km의 충격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강스파이크를 맞은 조폭들은 누구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저절로 불쌍한 생각이 들 정도로 꾀죄죄한 몰골로 밤새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메고 다니는 금순이의 모습은 배두나를 통해 관객들에게 체감 있게 전달된다. 상상력 있는 연기로 풍부한 여백의 미까지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배두나의 연기는 꼼꼼한 현남섭 감독의 손끝에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
특히 포장마차에서 마주친 의문의 가죽잠바 사내(장세진 분)나 15년만에 출옥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하얀 색으로 치장한 왕년의 전설적 조폭 백사(주현 분)같은 캐릭터는 [굳세어라 금순아]의 내러티브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 외에도 밤거리에 공존하고 있는 마음씨 좋은 포장마차 부부, 금순이의 잃어버린 한쪽 신발 대신 낡은 신발을 신겨주는 고물상 사내, 조폭들을 피해 정신없이 달리다가 잃어버린 금순이의 딸을 소중하게 맡아준 넝마주이 집단의 설정은, 유흥가 한 복판에서 좌충우돌하는 [굳세어라 금순이]를 통해 감독이 무엇을 발언하고 싶은가를 엿보게 해준다.
소박하고 너무 의도적이어서 탄력성은 줄어들지만 그래도 생동감 있게 묘사된 이런 살아있는 캐릭터들은, 자칫 조폭들의 대결에서 방황하는 금순이로 인상될 뻔한 이 영화의 소중한 출구 역할을 한다.
초보 아줌마의 활약을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마케팅, 가족들을 위해 유흥가를 좌충우돌하는 코믹극이라는 소재는 [굳세어라 금순아]의 착지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전통적 가치관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내 자신의 개인적 안위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희생정신은 아줌마에 의해 극대화되어 표현된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전통적 여성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가족들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것을 제일의 미덕으로 삼았던 아줌마의 구태의연함으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여전히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것은 아줌마이고, 밖에 나가 돈을 벌어 오는 것은 남편의 역할로 설정되어 있지만, 위기에 빠진 남편을 구출하기 위해 금순이가 삶의 막장까지 거침없이 달려가는 모습을 통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