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보성-순천 망일봉 (652m)
당당히 일가 이룬 주암호반의 산
망일봉은 보성군 문덕면과 순천시 송광면의 경게에 자리한 해발 652m의 산이다.
존제산(704m)을 지나 백이산(584m)을 향하던 호남정맥이 주랫재를 지나자마자 주암호가 자리한 서북쪽을 향해 곁가지를 일으킨다. 이 산줄기는 국기봉(528 m)에 이르러 다시 두 줄기로 나뉜다. 그중 한 줄기는 서쪽으로 동소산(464m) 지나 주암호에 이르고 북쪽으로 뻗어간 줄기는 오늘 소개하는 망일봉을 지나 역시 주암호에 발을 담근다.
필자에게 망일봉은 해묵은 과제였다. 오래 전부터 일림산을 비롯한 보성의 여러 산을 오르느라 주암호반을 지나다녔다. 기슭에 서재필 기념공원이 세워진 이후에도 인근의 산을 찾느라 공원을 스쳐 지날 때마다 항상 눈에 밟히던 산이다.
망일봉은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진 신비로운 산이다. 산자락 용암리에는 독립신문을 강행하고 독립협회와 독립문을 만드신 선각자 송재 서재필(1864~1951) 선생의 생가와 거창한 기념공원까지 세워졌건만 정작 망일봉은 산꾼들에게 철저히도 외면당했던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매체에 단 한 번도 소개되지 않았고 전국 구석구석을 누볐다는 안내산악회들에게도 생소한 망일봉. 이름에는 비록 '봉'이 붙었지만 국기봉, 동소산, 옥녀봉, 배암산 등을 거느린 인근의 최고봉으로 실제로는 '산'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취재산행을 떠나기 이틀 전인 삼일절은 참으로 가슴 아픈 날이었다. 서울 어느 대단지 아파트. 백여 가구의 아파트에서 태극기를 게양한 곳은 놀랍게도 단 4가구뿐이었다. 필자는 슬픔을 달래며 망일봉 취재산행을 결심하였다.
망일봉의 산행기점은 서재필 기념공원과 생가가 자리한 가내마을 남동쪽 계곡상류에 있는 용암제다. 경칩을 코앞에 둔 어제, 밤새 내린 폭설이 참으로 황홀한 눈꽃을 피웠다. <사람과산> 4월호를 준비하는 취재산행에 꽃이 아닌 눈꽃이라니... 적절하지 않지만 극심한 가뭄에 내린 넉넉한 서설이라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며 기쁜 마음으로 산을 오른다.
용암제 둑에서 북쪽으로 시멘트길을 따라들면 싱그러운 편백숲 속에 아담한 별장이 자리한다. 별장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가면 편백숲을 지나 뚜렷한 지능선길이 열린다. 소나무, 참나무와 더러 굵은 산벚나무가 사이좋게 숲을 이루었다.
해발 340m 지점에서 왼쪽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만난 후 산길은 오른쪽으로 굽어돈다. 지금까지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된 적이 없는 산인지라 행여 길이 없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제법 뚜렷한 산길이 이어진다.
활짝 핀 눈꽃 속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더러 눈싸움도 해가며 오르는 산길은 걸음도 가볍다. 단풍나무가 숲을 이룬 해발 460m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굽어 돌더니 고도가 100m 더 높아지자 조릿대숲이 시작된다. 오르면 오를수록 빽빽한 조릿대를 헤치며 망일봉 정수리에 올라선다.
조릿대가 가득 자라는 정수리에는 '복내 24. 1991 재설' 이라 표시된 2등삼각점이 있다. 정수리 한쪽을 지킨 두 그루 참나무 아래서 사방을 둘러본다. 주랫재에서 호남정맥을 벗어나 주암호를 향해 서쪽으로 달려온 이 산줄기. 정남쪽으로 태극기가 펄럭이는 국기봉이 자리하고 봉황새의 보금자리 동소산과 마당재 서쪽으로 옥녀봉(442m)이며 배암산을 모두 아우르고 굽어보는 망일봉은 어떤 산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그대로 독립된 형국이었다.
취재팀은 옥녀봉까지 도는 원점회귀산행을 위해 남동녘 능선을 이었다. 망일봉을 내려서자마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길이 희미해지고 곁가지가 앞을 막아선다. 수북한 눈이 쌓여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조심 내려 다시 오르니 610봉이다. 길은 희미하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정하고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가시밭 속에 옛길이 보이고 왼쪽으로 능선이 이어진다. 명감나무(청미래덩굴) 가시와 곁가지를 헤치며 더듬더듬 이어가는 산길, 산꾼들의 흔적이 전혀 없는 망일봉 산길은 어쩌면 선구자의 길이요 개척자의 길이다.
이윽고 동봉에 닿는다. 키를 넘는 빽빽한 조릿대숲을 헤치며 올라선 동봉에는 왕소나무 한 그루가 터줏대감인 양 버티고 있다.
이곳에서는 남동쪽으로 전망이 열린다. 맑게 갠 날이면 남쪽의 국기봉과 동소산, 동쪽 호남정맥의 존제산이 우뚝하련만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가려 아쉬움이 남는다. 오른쪽으로 굽어도는 동봉 정상부는 제법 넓고 긴데 필자의 고도계로는 왕소나무 부근이 644m, 마지막 봉이 649m로 표시된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내림길이 시작된다. 수북한 눈과 막힌 시야로 산행이 지체되어 오른쪽(용담제 방향)으로 탈출로를 살폈으나 길이 보이지 않아 남서녘 능선을 길게 이어간다. 해발 450m 지점의 능선삼거리에 이르자 구산리 주변 도로와 내려서는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으로 옷이 흠뻑 젖고 산행이 길어져 예상보다 지체된 취재진은 옥녀봉을 잇는 원점회기산행을 포기하고 남쪽 구산리로 향한다. 그리고 도로를 만나기 전 계곡 합수점에서 3층짜리 멋진 농가를 만난다.
깨끗이 정돈된 뜰에 차나무가 자라고 물레방아까지 설치한 농가의 주인은 누구일까?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참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리라.
농가를 지나 조금만 나오면 왼쪽 정당골로 올라오는 포장도를 만난다. 오르지 못한 옥녀봉을 바라보며 내려가는 길에 풋풋한 봄바람이 입술을 스친다. 구산리 맨 안쪽에 자리한 진산마을 입구에는 마을유래를 새긴 커다란 비석이 있다.
*산행길잡이
용암제-(30분)-능선삼거리-(50분)-망일봉 정수리-(50분)-동봉-(50분)-능선삼거리-(30분)-물레방아농가-(30분)-진산마을 버스정류장
망일봉의 산행들머리는 문덕면 용암리에 자리한 용암제다. 저수지둑에서 조금 더 가면 편백숲속에 자리한 아담한 단독주택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뚜렷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편백숲 지나 소나무, 참나무, 산벚나무가 숲을 이룬 뚜렷한 산길을 이어가면 능선삼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정동으로 걲어지는 능선을 따르다 보면 산죽숲이 시작되고 곧 망일봉 정수리에 닿는다. 2등삼각점이 있는 정수리는 웃자란 나무 때문에 조망이 좋지 못하다.
하산은 남동쪽으로 산길을 따른다. 조금 가면 610봉에 이르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가시덤불을 이룬 옛길 지나 능선길이 이어진다.
곧 나타나는 동봉에는 조릿대가 키를 넘기며 자라는 가운데 이정표처럼 선 소나무도 있다. 남서녘으로 내려서는 능선은 곁가지를 헤치며 가야 한다. 곧 마당재 방향으로 능선이 갈리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여기서 오른쪽 능선을 따르면 구산리의 3층짜리 농가를 만난다. 농가에서 도로가 지척이며, 도로를 만나 오른쪽으로 20여분이면 진산마을 버스정류장이다.
*교통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2회(08:30, 16:00) 출발하는 시외버스로 문덕면까지 간다. 1시간 걸리며 요금은 4,900원이다. 문덕에서 용암제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용암제까지 6,000원 받는다. 문덕택시 061-852-1016.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송광면 곡천을 경유하는 벌교행 시외버스는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쯤 걸리며 요금은 5,300원이다. 곡천에서도 택시로 용암제까지 간다. 요금은 9,000원. 송광택시 061-755-7676.
승용차로는 호남고속국도 주암나들목을 나와 27번, 15번 국도를 따라 서재필박사 기념공원까지 간 후 좌회전해 용암제로 들어서면 된다. 대형버스는 생가주차장까지만 갈 수 있다.
날머리인 구산리 진산마을에서는 보성군내버스가 1일 6회 다닌다. 061-857-6393.
*잘 데와 먹을 데
순천시 송광면의 곡천교 부근에 소나무민박가든, 고인돌식당, 우산농원, 크로버산장 등 식당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송광면 신흥리에 있는 지향맷돌순두부(755-3989) 식당에서는 맷돌로 갈아 직접 만든 순두부를 맛볼 수 있다. 주암호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할 수 있어 좋다.
*볼거리
서재필 기념공원 망일봉 산행들머리 용암리 입구에 서재필기념공원이 잇다. 독립신문을 간행하고 독립협회를 조직했으며 독립문을 세우는 등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생의 삶을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 선생의 생가는 기념공원과 용암제 중간지점인 가내마을에 있다.
전라남도 고인돌공원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 주암호반에 자리한 고인돌공원은 18,000평의 부지에 고인돌 140여 기와 선사시대 움집 6동, 구석기시대 집 1동, 남북방식 모형고인돌과 솟대 등이 전시되어 있다.
글쓴이:김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