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도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남도 소리체험 글/사진: 이종원 진도대교를 건너며 남도인의 정서가 가장 짙게 배인 곳이 진도다. 수려한 자연환경과 비옥한 농토, 드넓은 청정해역이 펼쳐져 있고, 인심 또한 후하여 한때 옥주(沃州)라 불리웠고 한 해 농사지어 삼 년을 먹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풍요로운 땅이다. 그런 토양 속에 터를 가꾼 민초들은 시화와 민속에 대한 소질이 남달랐다. 일찍부터 문인들의 유배 문화와 고유한 토속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그렇기에 진도는 시, 서, 화가 발달한 '예향의 고장'이라고 불리운다. 남도의 구성진 문화와 밭고랑마냥 굽이치며 흘러나오는 진도아리랑 가락을 음미하다보면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다.
뭐니뭐니해도 삼별초를 빼고 진도를 얘기할 수 없다. 고려조정이 백기를 들고 투항했건만 삼별초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비굴하게 사느니 의연하게 칼을 받는 것이 이들에게는 잘 어울렸다. 그 아나키스트 정신은 독특한 섬 문화를 만들어냈다. 진도아리랑의 한 맺힌 소리는 비명에 간 삼별초의 귀곡소리며 씻김굿은 님을 위한 진혼곡처럼 들려 슬며시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울돌목과 진도대교 대교가 놓이면서 섬이라기보다도 반도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섬 진도. 그 초입은 울돌목이 반긴다. '소리 내어 우는 바다 길목'이란 뜻인 울돌목은 명량해협이 되어 동양에서 가장 센 물살을 자랑하고 있다.
칠전도 싸움에서 대패를 하고 조선은 그야말로 바람 앞에 등불이었다. 콧바람 한번 내불면 조선의 역사는 끝장이다. 마지막 희망은 이순신이 이끄는 12척의 배밖에 없었다. 133척의 적배를 앞에 두고 일자진으로 적과 일전을 불사른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물밀듯이 밀고 들어오는 적....장군은 조류가 바뀌는 세찬 물살을 이용하여 단박에 적을 섬멸해 버린다. 하늘도 울고, 바다도 울고, 백성도 울고....그 세찬 울음소리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다.
진도의 여인들도 군복을 입고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여 군인이 많은 것처럼 위장했고, 산봉우리를 이엉으로 엮어 군량미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 녹진 전망대 아래에는 강강술래터가 있으며 근처 벽파진에 가면 이충무공 전첩비가 당시의 승리를 말해주고 있다. 2005년 12월 15일 제 2진도대교가 개통 되었다. 운이 좋아 개통되는 날 진도를 찾았다. 84년에 진도대교가 놓였으니 딱 20년만에 쌍둥이 형제를 얻은 것이다. 소포리 전통민속 전수관 진도읍 서쪽 12km에 떨어져 있는 소포리마을은 우리나라 최초의 노래방마을이다. 해 지면 마을 주민들이 서둘러 마을회관으로 슬금슬금 몰려든다. 이곳에서는 잡가, 만가, 진도아리랑과 남도민요, 북춤 등 애잔한 소리의 향연에 흠뻑 빠질 수 있다. 잘 짜여진 각본도 없다. 흥이 나면 어깨춤을 들썩이며 북소리는 커진다. 트로트도 북과 장구의 추임새에 어울리니 그렇게 흥겨울 수 없다. 그렇다. 원초적 감성만 있으면 그만이고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함께 흐느끼고 목청껏 따라부르면 그만이다. 그것이 바로 진도의 소리다. 진도에서 초상을 치르면 전문 예능인을 불러 보아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것이 '다시래기'다. 다시래기는 한자로 표현하면 '多侍樂' 즉 많이 모여 즐거움을 나눈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모놀(모여서 놀자)이다. 슬픈 곡소리가 아니라 풍악이 울려퍼지고 웃음꽃이 터진다. 슬픔의 차원을 이미 넘어 죽음을 기쁨으로 승화시킨다. 하긴 오늘이 다시 태어나는 날인데 오늘만큼 기쁜 날이 어디 있을까? 절묘한 역설이며 페이소스다. 그렇기에 진도를 '문화의 원형'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진도의 민초들은 누구나 문장가이며 명창이다.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 만났어도 시를 짓고, 결판이 나지 않으면 노래로 우열을 가린다. 그래도 결판이 나지 않으면 그제서야 주먹대결을 한다고 한다. 외딴 장터의 아낙이 흥겨운 장단에 맞춰 어깨춤을 추지 않나, 설렁탕집 아줌마가 나 혼자를 위해 즉석공연을 벌이지 않나? 화끈한 홍주마냥 진도의 민초들은 머뭇거림이 없고 자신의 감정을 원초적 소리로 풀어낸다. 이러니 내가 진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진도군립예술단의 명창이 구슬프게 심청가를 부른다. 가느다란 명주실을 끊임없이 풀어내는 것처럼 가슴을 쥐어짠다. 진도의 걸군농악 거지들의 농악인 진도의 걸군농악.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웃음을 팔고, 우수꽝스런 몸짓까지 해댄다. 하긴 이들에게 무슨 꾸밈이 필요하겠는가? 인간의 원초적 본성과 밑바닥 삶을 솔직하게 털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 환한 미소 뒤엔 허기와 연민이 서려있다.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북 치고 춤 출수밖에 없었던 그 절박함. 그러나 그들의 눈동자엔 번뜩이는 광채가 묻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거지 행세를 하며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우군에게 알려주어 승리에 기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의 승리에는 춤추는 소리꾼이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설북 명인 박태주선생 1807년생인 북춤의 명인 박태주 선생은 어릴때부터 걸군농악을 전수받았다. 그 기량이 뛰어나 당시 최고명창인 임방울 선생이 소포리를 방문했을때 양손으로 북치는 박태주의 연기를 보고 감탄을 하고 함께 공연다닐 것을 권유했을 정도다. 그러나 부인과 자식의 만류로 소포리에 눌러앉아 후배를 양성하였다. 그 명인의 제자가 바로 박관용, 조기주였고 그 재주를 이어받은 사람이 오늘날 내가 만난 김내식 할아버지였다. 양손으로 북채를 휘날리는 그 예술혼에 흠뻑 젖어든다. 공연을 마치고 가픈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할아버지께 달려갔다. "내가 죽으면 큰일났소.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은 내 춤사위가 나오지 않아 걱정이오. " 걸군농악 중. 상모를 돌리고 있는 소포리 할아버지
작년에 남편을 잃고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사부곡을 부른다. 소리가 아니라 절규다. 푸른
풀이 우거진 골짝 신이여
내 사랑아 불러봐도 대답이 없네. 내
정은 청산이요 녹수야
청산을 빙빙 감고 돌지마는 마을사람들은 모두다 소리꾼이다. 누구를 지명해도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재주를 뽐낸다. 오히려 빨리 자신을 지목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백설같은 한복에 피빛같은 고름을 달고 있고 한의 소리를 풀어낸다.
전통 소리만 풀어내는 것이 아니다. 간드러진 트롯도 걸출나게 불러제낀다. 참 좋다. 동네 아줌마들이 자연스레 무대로 뛰어 나온다.그리고 한바탕 춤바람이 무대를 장식한다. 요새는 행락지에 녹음기를 커다랗게 틀어놓고 질펀나게 엉덩이 춤을 추던 아줌마들을 보기 힘들다. 힘든 농사일을 끝내고 스트레스를 단박에 해소했던 그 모습이 그린운 때다. mp3를 들고 이어폰을 끼고 있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그 문화를 받아들이고 표출해낼 수 있을까? 한때 왜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프렸는지 반성하게 한다. 이제는 진도의 소리꾼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손님이나 마을사람이나 하나가 되었다 . 양영훈 작가가 무대에 올라 매화타령을 불러 제낀다. 쑥쓰러운지 자세를 고정시키고 노래만 부른다. 어쨌든 앉은이나 서 있는 이나 모두 하나였다. 노래에 자신없으면 청중들에게 이렇게 큰 절을 바친다. 나 때문에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지. 마을 어르신이 장타령을 불러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각설이가 되어 흥을 돋궈 노래판이 후끈 달아오른다. 국악원에서 공부하는 예쁜 처자는 국악으로 가요를 불러본다. 막걸리처럼 걸쭉한 소리에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소양강처녀, 네박자까지.... "어때요? 가공 안된, 삶속에 녹아는 소리가 이곳에 있습니다. 삶이 힘들고 찌들었을 때 그걸 풀어나가는 도구가 우리네 소리입니다."
이대로 끝나면 안돼. 나는 이 무대에 오르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우리나라 최고의 무대인 소포리 마을회관무대에 꼭 서고 싶었다. 어찌 이런 용기가 나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장님...저 노래 한 번 시켜주세요." 마지막으로 강강술래. 왜적을 무찌른 아낙들의 흐느낌이다. 노래가 아니라 전투였다. 뛰어보세 뛰어보세. 날장날장 늘어서서 앞뒤사람 손을 잡고, 발맞추어 뛰어보세 새옷으로 단장하고 손과 손을 마주 잡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흠겹게 뛰어 논다. 손을 잡는 것만으로 마을의 단합을 보여준다. 일제때 일본인들은 이런 단합된 모습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남해 서해안의 당집을 허물고 당산나무를 베고...우리의 정신문화를 송두리채 뿌리 뽑을려고 했다.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멋과 원형질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김병철 소포리마을 이장 문화사랑, 해박한 지식, 걸쭉한 소리, 세련된 무대매너까지....소포리를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마을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대단하다. "소포리는 목포에 다녀오시는 할아버지의 손에 있을 사탕 한봉지를 생각하며 눈보라 휘날리는 노두에서 기다리던 추억이 깃든 곳입니다. " 이장님이 말씀하시던 그 눈이 쏟아지고 있다. 석쇠에 달구어진 돼지고기가 함박눈을 양념삼아 살근살근 구워지고 있다. 눈보라를 헤치고 밭에 나가 배추 한 포기를 뽑아온다. 쩍쩍 갈라지는 배추잎에 노릇노릇한 목살을 얹고 된장 한숟가락 쓱쓱 발라서 입에 구겨 넣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맛이다. 눈은 그칠 줄 모른다. 이 눈을 계속 이어져 사상 최대의 폭설을 맞는다. 소포리 사람들은 피해가 없는지.....내 마음은 아직도 소포리 마을에 가 있었다.
군내호 백조도래지 소포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군내호가 있다. 겨울 진도의 진수는 역시 우아하게 비상하는 백조의 자태를 보는 것이다. 눈부신 날개를 쭉 펴며 비행하는 모습은 장엄 그 자체다. 알콩달콩한 부부애, 새끼를 돌보는 자식사랑...지켜 보는 것만으로 감동적이다. 항공사 마크처럼 우아하게 나는 것도 절묘하지만 수면을 박차고 비상하는 장면과 수면으로 착륙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길조로 알려진 고니(白鳥)는 진도군 군내면 해안 일대와 다도해 해안에서 12월과 2월 사이에 월동한다. 고니는 꼭 가족과 함께 움직인다. 유심히 관찰하면 발레 '백조의 호수' 가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고니는 서조(瑞鳥)로 알려져 있어 많이 날아오는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하며, 사람에게 가까이 하는 것을 좋아해 구미지역과 일본에서는 백조가 먹이를 달라고 접근해 오기도 한다. 방한옷과 스코프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우리 나로 최고의 일몰포인트 - 세방낙조 우리나라 최고의 일몰을 볼 수 있는 세방낙조 전망대가 나온다. 붉은 빛이 올망졸망 떠 있는 섬과 바다를 비추고 있을 때 그 감동은 극에 달한다. 붉디 붉은 진도홍주는 이 낙조를 병에 담은 것이 아닐까? 손가락섬, 발가락섬, 사자섬등 동화책에 나오는 형상들이 바위로 굳어졌다. 전 세계 어느곳을 가도 나는 진도 서쪽 해안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여태 보지 못했다. 중앙기상대는 셋방낙조를 남해안 최고의 낙조로 뽑았다. 세방낙조포인트의 바로 뒤산이 동석산이다. 진도의 마이산임을 말해주듯 두 귀를 쫑끗 세워고 있다.눈덮힌 바위산이 더욱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남도석성 남동리 바닷가에 외롭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남도석성. 가뜩이나 예쁘장한 석성에 소복한 눈까지 쌓여 더욱 고귀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마냥 감상적으로 성을 감상해서는 안된다. 고려 때 배중손 장군이 삼별초를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였고 패주하던 삼별초는 돈지에서 둘로 나뉘었는데 , 배중손 장군은 이 곳까지 쫒기다가 최후를 만났다. 김통정장군은 이곳에서 제주까지 건너가 항파두리성에서 항쟁하다고 결국 함락되어 한라산 중턱에서 칼을 받으며 대몽항쟁의 막을 내리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성을 다시 쌓고 수군과 종 4품을 배치하여 다도해역을 관찰했다고 전해진다. 성의 길이는 610m로 한달음에 둘러볼 수 있다. 동문입구에 장승처럼 서 있는 나무 성 안 관아로는 객사, 동헌, 군관청, 진무청이 있었으며, 격량고, 보군고, 군기고가 있었고 남문 밖에 선창고가 자리잡고 있다. 성안에는 마을이 형성되어있다. 소박한 집들이 지붕을 맞대고 오밀조밀하게 비집고 있으며 하얀 눈을 뚫고 빼곰히 머리칼을 내밀고 있는 파밭도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 있기에 죽어 있는 성이 아니라 새근새근 숨 쉬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후 문화재 보존차원에서 이들을 전부 내쫒는다고 한다. 그럼 해미읍성같이 죽어 있는 성을 또 만나야 한다.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창고의 창문을 코카콜라 괘짝으로 막아 놓았다. 24개의 허파를 가지고 있었다. 삭막한 시멘트 담벼락에 구멍도 숭숭 뚫려 있다. 그 크기도 제각각이다. 무슨 용도로 구멍을 뚫었을까? 태풍이 몰아쳐도 감싸안을 줄 아는 헐렁한 돌담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성은 편마암 석재를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그 나약한 돌이 오랜 세월동안 견뎌온 것이 기특하다. 남문의 눈이 소복히 쌓였다. 한때 수 많은 병사들이 다녔을 성벽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눈보라가 휘날린다. 아낙의 엉덩이처럼 풍만한 옹성에 올라 성문을 바라보는 맛이 그만이다. 성에는 동문과 서문, 남문 등 세 개의 문이 서 있으며 성을 타고 오르는 적을 막기위헤 세운 옹성은 무려 7개나 된다. 집안의 국내성의 옹성 흔적은 웅장하고 지금이라도 전투에 임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 반면 한반도 끝 섬마을 진도에서 본 옹성은 어딘지 모르게 싸울려는 의지가 없다. 진도아리랑처럼 부드러운 곡선미를 뽐내려는 것만 같았다. 옹성뿐 아니라 무지개 모양을 하고 있는 단운교 역시 다리라기 보다는 늘씬한 여인네의 각선미를 뽐내기 위해 세운 것 같다. 그만큼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다리 위에 흙을 돋우고 잔디까지 심어 놓았다. 다리의 아치 윗부분에는 부드러운 편마암질의 돌을 사용했고 아랫부분은 큼직한 강돌을 사용하여 그 견고성까지 높였다. 특히 아치 부분은 다듬지 않은 납작한 모양의 돌을 세로로 세워서 촘촘하게 만들어 놓았다. 위대한 앙코르왓의 건축물에도 볼 수 없는 홍교...우리 건축의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 쌍운교는 개울의 넓어 단운교로 부족했기에 쌍무지개 형식을 가미했다. 이 다리는 해방직후에 마을 사람들이 놓았다고 전해진다. 단운교와 마찬가지로 편마암재를 이용했고 다듬지 않는 석재를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미를 높여 서민적 정취가 느껴진다.
바다에서 솟아난 샘물-강계 해변에서 솟아 오르는 샘물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강계다. 1799년 마을사람들이 식수를 구하던 중 바닷가 모래밭에서 물이 솟아 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물맛을 보니 기가 막힌 약수였다. 그들은 구멍을 내고 샘을 만들어냈다. 바다물이 빠지면 짠물을 퍼내 조금만 기다리면 약수가 철철 넘친다. 식수를 바닷물로 씻어먹는 유일무이한 샘이기에 1960년대까지 마을주민의 알뜰한 식수로 사용되었다. '江界'라는 지명도 육지물과 바닷물의 경계이기 때문이 얻어진 이름이다. 강계는 굴구이로 유명하다. 해변 한 편에 천막이 늘어서 있다. 집집마다 특수제작한 굴 구이통과 전선을 감았던 나무통이 테이블을 대신한다.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면 앞바다에서 캐온 자연산 굴을 실컷 맛 볼 수 있다. 거기다 진도 홍주 한잔 걸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진도 사람들은 붉은 홍주를 '술 깨는 술'이라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홍주는 취하지 않는 것처럼 취하게 만드는 술이다. 마시다보면 자연스레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홍주는 성냥을 그어 대면 불이 붙을 정도로 독주다. 내가 마신 홍주는 40도. 자연산 굴회..꿀꺽..한 접시에 2만원으로 알고 있다. 진도읍내의 돌담풍경 식당입구에 북어를 걸어 놓았다.
다도해관광회센타 진도군 세방마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 한폭의 동양화 같은 다도해 절경과 무아지경에 빠질 듯한 일몰장면을 볼 수 있는 식당이다. 진도와 완도군에서 나는 자연산 활어와 해초무침의 자연그대로의 싱싱한 맛은 탄성이 나온다. 특히 봄, 가을 전어잡이철에는 세방전어구이를 맛 볼수 있다. 식당 주인이 소유한 쾌속선으로 인근 다도해 관광도 할 수 있으며 바다낚시, 민박도 가능하다. 자연산 농어와 감성돔(1kg 6만원) 061-543-7227 /전남 진도군 지산면 가학리 126-8
(사진설명: 6천원짜리 보리쌈밥) 돌담한정식 서울서 사는 사람들이 남도에서 밥상을 받으면 미안할 정도로 반찬이 푸짐하다. 특히 여수,해남,장흥,진도등 바닷가를 끼고 있는 동네에서는 육지에서 보기 힘든 해산물과 해초류, 수많은 젓갈이 상을 차지 하고 있어 밥 한공기 축내는 것은 순시간이다. 진도는 삼보삼락의 고장이다. 삼보는 진돗개, 구기자, 돌미역을 말하고, 삼보는 노래, 서화 홍주를 말한다. 땅이 비옥하고 바다가 가까워 먹는 것도 운치있고 푸짐하다. 생선회가 아니더라도 어느 백반집에 들어가도 홍주 한병 비울 수 있는 반찬이 딸려나온다. 진도읍내에 있는 돌담한정식도 그런 곳이다. 6천원짜리 보리쌈밥을 시키면 생선조림, 파레, 꼬막, 굴, 부침개, 된장찌개뿐 아니라 공기좋은 곳에서 자란 나물까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반찬이 딸려 나온다. 특한정식(1인 3만원/10명이상 가능) 일번 한정식(1만원), 보리쌈밥(1인분 6000원) 등 남도 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문의: 061)544-1170 진도군청 근처
*주의 모든 원고와 사진의 저작권은 저작자에 있습니다. 사전동의 없이 무단게재 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됩니다 |
첫댓글 진도는 언제 가나요? 빨리 가보는 그날 또다른 모놀을 볼수 있을 터인데
언제나 같이한번 발품 팔아볼꼬..
진도 답사 기다려집니다... 생각만 해도 울렁~울렁~~~
아고~~6찬원짜리 쌈밥 먹으러 가야 할낀데.....???^^*
대장님 ~ 감사함니다 완도 진도 해남 강진 ~ 그리 돌라믄 시간이 ~
멋진 체험을 하셨습니다.노래 듣기로만 통해서 오로지 오랜 연습과 반복으로 감정의 소리를 만들어내고 음악을 완성하는사람과 사람으로 계승되는 우리의 창. 아름답고 가슴이 저리도록 감성이 풍부한 우리의 남도 창을 통해 모두가 즐기고 감동할 수 있는것은 그곳에 계신분들이 있기에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좋은곳 소개 감사합니다.
대장님 표정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