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비론의 한국 정치
1. 새해(2023) 첫 답사는 겨울 한강의 느낌을 보고 싶어 김포시 ‘전류리 포구’에서 시작하는 한강 하류 코스를 다시 걸었다. 하류 쪽으로 밀려온 얼음들이 겨울의 풍취를 제대로 선사하였다. ‘평화의 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길을 천천히 여유롭게 차가운 바람을 받으며 걸었다. 마음도 몸도 새로운 시작임을 자각하게 하는 상쾌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일말의 걱정도 밀려왔다. 이 평화로운 길이 언제까지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 것이다. 북한의 연일 이어지는 핵무력 시위와 그에 질세라 과시적으로 쏟아내는 남한 권력자들의 맛대응은 다시 한반도의 평화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2. 현재 대한민국은 극도의 불안이 지배하고 있다. 어쩌면 그 불안의 근본적 원인은 북한의 위협보다도 우리 사회를 양극단으로 분열시키는 정치의 위기에서 시작되고 있다. 문제는 이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보다 정치 세력은 분열을 활용해서 자신들의 지분을 늘리려고만 광분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극단적 지지층을 명분삼아,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파당적이고 분파적인 논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분열의 가장 큰 원인은 양 정치적 집단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의 인성과 자질에서 시작한다. 공격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두 정치인은 온갖 비리와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조금도 자신을 반성할 줄 모르고 상대에 대한 공격에 열중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과 행동이 설득력있기 위해서는 ‘로고스(논리). 파토스(정서). 에토스(도덕)’ 모두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의 두 정치가는 로고스와 파토스에서는 어느 정도의 지지를 받는다할지라도 ‘에토스’라는 인간의 자질과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너무도 문제가 많은 인물들이다. 신뢰할 수 없는 지도자들의 막장 대결이 불안하다. 워낙 문제가 많은 두 정치가이기에 상대쪽 에서는 공격할 거리가 너무도 차고 넘친다. 문제는 정치가들의 선동과 이익 탐욕에 수많은 지지자들이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3.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한국 사회는 ‘양비론’으로서 비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쪽도 저쪽도 온갖 문제를 갖고있는 상황은 두 집단의 근본적인 개혁과 변화가 필요함에도 어느 쪽도 상대의 약점에만 의존하면서 좀비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양비론’은 양쪽 모두를 공격함으로써 실제적인 문제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다. 때론 양비론은 문제해결을 위한 어떤 실천도 하지 않은 채 문제를 소극적으로 바라본다는 비판도 동반한다. 하지만 현재 정치를 이끌어가는 두 집단의 문제가 크다면, 양 쪽에 분명한 비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양비론’은 2023년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전제인 것임에 분명하다.
4. 다만 양 쪽의 잘못에 대한 불만에서만 멈춰서는 안 된다. 잘못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변화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제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높아지고 변화를 요구할 때, 그 변화에 더 빠르게 반응하는 집단이 정치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보다는 야당 세력의 변화가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도자에게 몰빵하는 현재의 정치는 암담할 뿐이다.
5. 현재의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선택한 방식은 냉철한 인식과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했던 ‘수동적 응시’의 필요성이다. 집단적 주장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문제를 좀 더 깊고 넓게 판단하는 지혜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게 해야만 ‘선택’으로서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우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표현과 언론의 진정한 자유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6.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할 때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키고 싶다. 첫째, 현재 상황에서 누가 현 상황에서 필요하고 중요한 가치와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이다.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둘째, 그들이 말하는 가치가 구체적인 정책과 실행과정에서 얼마나 공정하고 차별없이 적용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일이다. 이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롤스의 ‘정의론’이다. 롤스는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평등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만약 차별이 필요하다면 그 사회의 가장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 차별이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정책이 약자가 아닌 강자의 권리에 집중될 때 그것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파당적 이익추구에 불과하다. 셋째는 어떤 좋은 가치나 정책이더라도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설득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이때 절대 부정해야 것은 ‘공격적인’ 태도이다.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병행한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변화의 방향과 본질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7. 2023년은 극도의 정치적 혼란과 국제적인 정치적, 경제적 불안이 확산되고 팽창하는 시기라는 것을 누구나 경고한다. 이 시기에 개인은 무력하게 언론을 통해 일어나는 과정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때론 그러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극적인 선동을 일삼는 ‘유튜버’들의 발언에서 위안을 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 우리 사회의 실제적인 평화와 안정 그리고 다원적인 가치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가치와 구체적인 이익 사이에서 자신만의 판단 방식을 신중하게 수립해야 한다. 타인의 판단이 아닌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을 위한 개인적인 노력이 집중될 때만이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분명 ‘양비론’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으며, 그 양비의 극복을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첫댓글 - 걱정스러운 정치 행태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냥 현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무지하면서도 돌파하려는 의욕이 많은 자와 자기 꾀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상황만 바뀌기를 바라는 자의 모습이 안쓰럽다. 어쩌면 새로운 변화를 위한 소용돌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