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세버그>
1.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미국 배우 진 세버그의 삶과 투쟁을 그린 <세버그>에는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다 간 한 인간이 겪게 되는 오해와 비극의 단면이 담겨있다. 자신이 속한 계급이나 집단이 아닌, 순수한 사회적 가치나 이념의 중요성 때문에 이질적인 세계로 진입하여 연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러한 활동이 국가의 정책과 정면충돌할 때, 인간의 정상적인 삶은 불가능해진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갔던 한 여배우의 모습은 진한 감동과 함께 격한 안타까움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2. 영화의 성공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세버그는 196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쓴 ‘흑인민권운동’에 동참한다. 그들에게 금전적인 후원 뿐 아니라 집회 현장에도 직접 참여하며 오랫동안 믿고 있었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 실현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배우로서의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의사’ 표현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가는 본인도 분명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러한 선택이 국가의 기본 방향과 대척점에 있을 때, 위험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특히 보수적 미국인들은 당시 흑인 민권운동을 미국을 파괴하는 테러 행위로 취급하였고, 그것을 붕괴시키는 것을 하나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선봉에 FBI 국장 후버가 있었다.
3. FBI는 집요하게 세버그 주변을 도청하고 감시하면서 약점을 잡으려 시도하였다. 결국 FBI의 비밀 공작에 의해 흑인 민권운동과 세버그의 도덕성을 공격할 수 있는 약점을 찾아낸다. 세버그와 흑인 운동 지도자 사이의 불륜 현장을 잡은 것이다. 세버그는 선의를 가지고 연대한 민권 운동이었지만, 심각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더구나 세버그가 임신하게 되자 태아를 흑인 지도자의 아이라는 추측성 기사를 통해 그녀의 명성과 존재를 파괴시켰다. 영화는 흑인 민권운동의 참여와 그 과정에서 붕괴되어 가는 세버그의 고통을 응시한다. 자살까지 시도하는 망가진 삶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된다.
4. 영화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세버그의 삶과 운동 그리고 파괴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를 도청하는 FBI 수사관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다. 국가의 대의를 위해 활동하던 수사관도 어느 순간 인간을 파괴시키는 과도한 도청과 접근 그리고 추적이 지나치게 위험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결국 그는 무너져 버린 세버그에게 위험을 경고하기도 하고, 결국 그녀에게 나타나 그동안의 도청과 추적과정을 알려준다. 영화 마지막 장면, 수사관을 떠나보내고 그를 바라보는 세버그 시선의 복잡하고 모호한 모습이 부각된다. 어쩌면 그것은 세상의 시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이제 어떤 재기의 힘도 사라진 인간에게 비친 하나의 빛과 같은 손길이었는지 모른다. 비록 자신을 파괴한 당사자임에도 그러한 행위의 부당함을 통해 수사관은 세버그의 삶을 긍정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던 인정받고 싶어한다. 세버그의 눈빛은 최소한 그를 지지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했음을 상징하는지 모른다.
5.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성공을 신념과 맞바꿀 수 있었던 세버그의 용기와 도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쩔 수 없는 저항이 아닌, 누군가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연대의 저항은 단순한 취미로서의 혁명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수많은 비난의 시선 속에서도 그것을 지속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신념이 지닌 강도와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사회적 가치의 실현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한 인간이 실천에 들어갈 때, 주의해야 할 인내와 제한에 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녀에 대한 비난과 공격의 발단이 흑인 남자와의 스캔들이었고, 결혼한 여자의 혼외임신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이든, 도덕성이 상실된 실천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중대한 가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는 그들이 설득해야 할 보통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모순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6. 영화가 끝나면서 세버그에 대한 후일담이 자막에 흘렀다. 충격적인 사건 이후에 그녀는 완전히 영화 활동을 접었고, 민권 운동에 올인하게 된다. 그러다 40살 되는 해에 실종되었고, 차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영화에는 유서가 발견되었다는 말은 없지만 다른 기록에는 ‘지쳤다.’라는 유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영화의 핵심은 어쩌면 한 인간의 사회적 운동과 신념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인간적 파멸을 가져오는 국가 권력의 횡포를 주목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위협 속에서도 굳건하게 신념을 실천했던 사람들이 이 사회의 진보를 가져오는 힘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더욱 강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회적 신념과 개인적 욕망의 불일치였으며, 국가적 폭력 앞에 무력한 한 인간의 절규였다. 그리고 그 절규는 메아리로 퍼지지 못하고 다만 자신의 차 안에서만 머물다 사라지고 잊혀진 목소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실천의 중요성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의 허무가 느껴진 것이다.
첫댓글 - 지쳐가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을까? 삶보다 더 나은 죽음을 선택하였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