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창문을 열자 가을바람이 느껴졌다. 서서히 폭염이 물러가는 모양이다. 오늘은 정기산행이 있는 날이지만 심한 폭염이 이어져 취소한다는 안내문을 받았다. 9월부터 다시 이어 나가기로 한 모양이다. 단독으로 계곡 산행을 염두에 두고 있던 차 동행하겠다는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약속시간을 정한 후 일정표를 만들어 두었다. 전나무 밀도가 좋은 숲으로 다가간 후 그 옆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맑은 물 따라 오르다 활엽수 그늘이 짙은 깊은 산중 약수터 옆에 설치된 통나무 평상에 앉아 점심을 해결하고 작은 산 너머 절 집으로 가 맑은 샘에서 목을 축이고 하산하는 것으로 정해 두었다. 폭염이 이어져 내려와 그랬을까? 산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어 있었다. 노 브랜드 상점에 들러 행동 식 몇 가지를 챙긴 후 산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걷기 좋은 날씨라는 것을 산으로 다가갈수록 느껴졌다. 전나무 숲, 이곳에 도착하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정갈하고 고요한 숲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무들끼리 간격도 일정하고 다른 수종이 섞이지 않아 그런 인상을 받는 것이다. 나무향도 송진내음이 가득하여 스치는 바람 영향에 진하게 느낄 수 있어 오랜 시간 머물고 싶은 숲이 전나무 숲이다.
전나무 하면 크리스마스트리가 떠오르고 그 내면에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떠 오른다. 가톨릭 신부로 재직하다 면죄부와 관련하여 교황청과 대립하다 결국 종교개혁에 앞장서서 개종 후 목사의 신분으로 살아 간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어느 날 별이 가득한 전나무 숲을 걸으며 산책을 하다 별빛과 전나무 숲이 어울리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그 감동으로 전나무를 자르고 집안으로 갖고 와 촛불로 장식하여 감동을 이어갔는데 그것이 바로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어 성탄을 대표하는 장식물이 된 것이다.
전나무의 속살이 흰색이라 옛사람들은 柏木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최고급 종이를 만드는데 전나무가 사용되기도 한다. 전나무가 유명한 곳으로 강원도 월 정사, 전북 내소사가 있는데 그 이유는 곧게 빠르게 자라는 나무로 절 집 신축, 보수 등에 유용하게 쓰여 전나무 숲을 가꾸었기 때문이다.
다시 잣나무 숲 옆으로 흐르는 계곡에 다다르자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게 다가섰다 기분 좋은 바람이다. 처서가 지나니 여름 습도가 높은 바람이 산들바람으로 변한 것이다. 그래도 늦더위 기운이 남아 걸으면 열을 식히려 티 사스가 축축하게 젖어왔다. 마침 인적도 끊긴 지점에 작은 폭포가 있어 잠시 쉬기로 하고 폭포와 마주 앉으니 비말과 물이 떨어지며 일으키는 바람의 영향으로 너무 시원하였다. 하루 반나절 제대로 된 피서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불청객들이 찾아들었다. 우선 선생님이 찾아와 10분만 놀다가 가겠다고 하셔서 승낙하고 피서자리에서 물러서자 이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폭포아래에 세어주면서 사진을 찍어주고 단체사진도 만들어주면서 적극적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전문적으로 교육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교생 실습으로 교사로 서의 자질을 다진 후 교단에 서는 교사를 스승이라 하여 존경하며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 하였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은 당신 자식들을 학교에 맡기면 일절 관여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가정방문을 통해 선생님을 만나실 적마다 엄하게 가르쳐달라는 말을 서슴지 않으셨다. 어느 해부터 전교조라는 조직을 만들고 그들이 교육계를 장악하더니 스승이란 존재성이 허물어지더니 결국 지금의 사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예견된 일이었다.
스승은 존경받아야 한다. 그 중심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인성교육과 학과 교육이 성취될 수 있는 길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못된 학부형의 질책과 간섭과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듣지도 보지 못한 일이 벌어져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수많은 교사들이 거리로 나와 교사들의 교권을 수호하기 위한 쟁의를 벌이는 중이다. 이러한 시기에 토요일 아이들과 어울려 자연 속에서 함께하는 선생님 모습을 보니 반갑고 고맙다는 생각이 깊이 새겨졌다. 10여분 노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에서 우리가 자리를 내주고 그곳을 떠났다.
계곡에서 나 온 후 작은 숲 길을 찾아 오르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나이 먹은 노인이 연장자루를 걸머지고 산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뒤를 따른 적이 있었다. 평생을 목수 일을 하며 지내온 사람이라 자신을 소개하며 강풍에 쓰러진 나무 모아 놓은 곳에 길을 멈추고 작업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동안 산에 올라 틈틈이 나무를 이곳에 모아두었다는 것이다. 이런 나무 무더기를 여러 곳 만들어 놓아 다하며 맑은 표정으로 웃었다. 자루에서 톱, 망치, 끌, 도끼, 나무껍질을 벗기는 둥근 낫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 모든 연장을 사용하여 그 노인이 하는 일은 통나무 평상과 의자와 상이 였다. 이곳은 숲이 좋아 사람들이 찾아와 쉬어 가기 좋은 곳이라 이런 시설을 여러 군데 만들고 있는 중이라 하는 것이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남을 위한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나면 참 선함이 얼굴 윤곽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음이 선하면 얼굴에도 드러나는 모양이다. 별안간 그 당시에 그분께서 만들어 놓으신 통나무 평상이 떠오른 것이다. 지금 아무래도 세상을 등지셨겠지 만 그분의 선한 열정은 통나무 평상으로 남아 세월을 대신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지체 없이 추억의 그 장소로 발을 옮겼다. 그냥 그대로 그곳에서 숲을 지키고 있었다. 신을 벗고 위로 올라 가 자리를 깔고 노브랜드 마트에서 준비한 음식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후배와 나누며 옛일을 나도 모르게 꺼내 들었다. 회상이란 꿈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다시 그 일이 나에게 재현된다면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스스로 훈수를 두며 많은 일을 보완하여 성공의 완성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회상의 대부분 좋은 회상과 상처로 엮어진 일이지만 좋은 일보다는 마음에 상처가 기든 일이 회상의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이 또한 상처가 남긴 아픔이다.
한두 시간 정도 천천히 음식과 반주 몇 잔을 마시며 나의 모든 것을 삼림욕 속으로 넣어 두었다가 다시 꺼낸 듯 나의 모든 것이 많이 맑아져 있었다. 숲에 집중할 수 있어 얻어진 수확이다. 다시 걸음을 산비탈로 옮겨 산자락 몇 겹을 넘었다. 동안 수해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암석이 뒹굴고 나무는 널브러져 있고 열매가 달리 나뭇가지들은 꺾여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당장은 보기 흉하지만 스스로 복원의 시간을 보내면 다 치유되어 다른 모습으로 자연은 되돌아온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절에 들러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목을 축였다. 청량감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제야 나의 시선이 내가 돌아갈 집 방향으로 열렸다. 한적한 숲 길을 선택하여 걸으며 악동들과 몰려 산에 오르며 불렀던 곡을 모아 떠올리며 걸었다. 이들과 우정은 서른 가까이 유지되며 지냈지만 생업을 위하여 각자 해외로 지방으로 결혼을 하면서 각자 자기의 길로 떠났고 서울에 남아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악동들이 차지하던 공간은 상급학교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사회 또는 직장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로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갖고 태어난 삶의 시간 따라 모든 것이 변해가듯 인연들도 알게 모르게 변해가는 모양이다.
늘 주문 외우듯 상기 시기는 평화와 선이란 단어가 저만치 산 그늘에 찾아 드는 노을이 내일의 희망을 암시하듯 나의 마음 정곡을 찌르며 달아났다. 다시 단어를 부축하고 세워 놓은 후 잠시 결을 두며 생각에 잠겼다. 가장 좋은 매듭은 선으로 모은 매듭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나의 앞을 가렸다. 그렇게 되려면은 긍정의 인식과 자애의 짙은 성격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함을 바탕으로 자선이 따른다면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구름에 비유하면 구름이 되고 바람에 비유하면 바람이다. 달에 비유하면 여유롭고 태양에 비유하면 강렬함이 깃든 성취로 연결 지어진다. 그러나 때에 이르면 다 무모함에 무너지는 것이다. 어떠한 길을 걸어왔던 때에 이르기 전에 매 순간 선함으로 한 알 한 알 매듭 질 수 있다면 완전한 평화로 드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깊어진다. 하산 후 후배는 요즈음 안식구가 낙상하여 복숭아 뼈 부근이 깨지고 틀어져 대수술을 받고 거동을 할 수 없어 병간호를 몇 개월 째 하고 있는 중이다. 그 고통을 익히 알기에 저녁을 대접해야 갰다고 마음을 먹고 자주 가는 집으로 안내를 하여 함께 저녁을 해결하고 지하철 역에서 배웅한 후 부근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였다.
발걸음에 놀란 산비둘기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날아올랐다. 공원을 돌아 나가면 벌써 우리 집이다. 꼭 산비둘기의 안내를 받으며 집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후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무사히 잘 귀가하였다는 말을 전해온 것이다. 참 오랜만에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후배들을 인솔하고 산을 다녀온 날, 후배들에게 등산 종료는 귀가 까지라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헤어진 결과가 만들어낸 습관인 것이다. 육십이 넘어서도 이를 실천하는 후배가 참 고마웠다. 이 또한 기분 좋은 매듭이었다.
이제는 여름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없다. 가을을 재촉하고 싶은 마음에 가을에 부르기에 알맞은 노래를 올려 놓습니다. 혹시 이렇게 한다고 가을이 성큼 오지 않겠지만 부르며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우리 곁에 서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가을을 맞을 준비하시지요. 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