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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헌 동기의 운남성 여행기(초안)를 잊어버리기 전에 올립니다.
여행 가시는 분은 많은 참고있으시기 바랍니다.
제 메일로 들어왔기에 김정헌 동기 허락없이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심후섭>
중국 운남성 여행기
첨부: 보이차에 대한 내용, 운남성 여행경비내력
2004년 2월 15일(일요일)
출발 전 여행자 보험에 들고 필요한 물건을 사다.
출발 전날 외환은행에서 미화 500불로 환전하니 자동으로L형 여행자보험에 들게 해준다. 그리고 12명 단체보험에 들다. 개인당 25,000원이고 전체 30만원을 지불하다. 실제 운남에 갔을 때에는 달러나 우리나라 돈은 전혀 사용할 수가 없어 중국은행에서 중국돈 위안화(元)으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환전은 반드시 중국은행(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은행)에서 바꾸어야 되고 다른 은행은 환전업무가 없었다. 경비를 최소로 줄이고, 최대의 여행효과를 얻기 위해 여행사 전문가이드 없이, 호텔도 4, 5성급은 들어가지 않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최주영 선생님이 인터넷에서 뽑아준 준비물 목록에 적혀 있는 배낭, 캐링백, 전대(귀중품, 돈, 여권 등을 넣고 찰 수 있는), 가방을 잠글 수 있는 작은 열쇠, 수첩, 필름, 휴지(중국에는 휴지가 귀함), 구급약 등과 부식(소주 4홉 짜리 5병씩, 고추장, 김, 김치 등)을 준비하고 그 외 각자
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늦게 잠이 들다.
설렘 반 기대 반 중국 운남성 여행을 떠나다.
몇 년간 여행경비를 모으고 몇 달간 연구 끝에 드디어 중국 운남성으로 떠나게 되었다. 최주영선생님이 운남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고, 또 이상우군(휴대폰:13577155580)과 메일을 통해 충분히 검토를 하여 여행일정을 잡았다. 출발자는 최주영?박차남부부, 박창규?김기려부부, 김수일?정혜선부부, 김진상?박은정부부, 김기한?곽복금부부, 김정헌, 조성조선생님으로 이상 12명이 출발하게 되었다.
국내 인솔은 최주영, 현지 가이드로는 이상우군이 맡아 주기로 하였다. 이상우군은 영진고등 출신으로 1년 담임은 조선생이고, 3년 담임은 박선생이였다. 현재 곤명 운남대학에서 민족식물학 박사과정으로 있다. 앞으로 일주일간 모교선생님들을 모시고 많은 수고와 고생을 하게 되겠다. 관광여행사 전문가이드 없이 이 여행을 하려는 것에 대해 약간의 우려심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아침 6시 20분 집을 나서다.
택시를 타고 동대구역 중앙고속 터미널 앞에 도착하다. 경산에서 출발하여 지산동을 경유한 리무진 버스가 7시에 도착하다(1인당 24,800원). 사전 예약을 하여야 하며 구미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간다고 한다. 동대구발 하루 10회 운행(01:40, 02, 02:30, 03:30, 05, 05:50, 07, 09, 11, 13)이고, 인천공항 출발도 10회 운행이다(07:20, 08:40, 10:20, 11:50, 13:20, 15:40, 17:20, 19:20, 20:40, 22). 죽암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9-9:20), 신갈분기점에서 50번고속국도(영동고속)로 가서 안산분기점에서 잠시 서해안 고속국도(15번)로 들어가, 다시 100번(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으로 들어가서 서울요금소, 시흥요금소, 130번 인천공항쪽으로 들어가(10:53), 신공항요금소, 영종대교를 지나 공항청사 앞(2층 8번B)에 도착하다(11:14). 바다 쪽으로 무의도가 보이고 그 너머에 요즘 천만명이 관람하였다고 하는 실미도가 있다고 한다.
공항청사에서 점심을 들고 비행기에 오르다.
1층 카리브(Carib)한식집에서 식사를 하다. 각자 설렁탕(8천원), 비빔밥(7천원) 등으로 식사를 하다. 큰
짐(배낭, 케링백 등)을 화물로 부치고, 공항 이용료 만원을 내고 세관을 통과 대기실로 들어가다.
인천공항청사는 상해보다는 작다고 하나 시설면에서는 최고라고 한다. 면세점을 들러 구경을 하고, 그래도 시간이 조금 남아서 카페에 들어갔더니 맥주 300cc가 5천원이고 김 1봉지가 천원이다. 시내 호프 500cc가 2천원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싸다. 곧 이어 청사 방송에 의해 트랩을 올라, 중국 동방항공 비행기에 오르니(16:20), 10분 뒤에 이륙한다. 좌우 3줄씩으로 약 150명 정도 탈 수 있는 비행기이다. 기내식으로 밥과 빵이 나오고 음료수와 커피, 캔 맥주가 나왔다. 책상에 놓을 수 있는 작은 모형 비행기를 한 대씩 기념으로 준다. 검역카드에 인적사항을 적으면서 잠을 청해본다.
드디어 중국 땅에 도착하다(20:55, 중국현지시간은(19:55). 시계를 중국 현지시간으로 고치다. 우리보다 한 시간이 느리다. 이후부터는 중국 현지시간으로 적어보겠다. 우려했던 만큼 입국수속이 까다롭지 않아 빠르게 공항을 벗어났다(20:30). 운남대 소속 전세버스를 타고 운남대학교 근처에 있는 특달(중국말로 터따이고 786군부대 초대소)호텔에 도착하다(21:05). 상우가 섭외하여 정했다고 한다(1실 100위안). 대강 짐을 정리하고 장비점 쇼핑에 나서다(22:00). 아리랑식당 근처에 등산장비점이 세 곳이 있었으나 한 곳만 열고 있다. 10시가 넘으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근처 꼬치집으로 가서(22:30), 쌀국수(5원), 꼬지(1개 1-2원)를 사먹다(총 45위안). 여러 가지 음식 중 잠자리유충(장구벌레)튀김이 별미여서 한번 시켜 먹어 보다. 물속에 살아 있는 유충으로 기름에 튀겨 나온다. 실제 먹어보니 살은 거의 없고 껍질과 입 부위 찝게가 입안을 살짝 찌른다. 이어서 보이차 집을 방문하여 값을 알아보고 특달로 돌아오다. 1元(위안)은 한국 돈으로 150원에 해당된다. 이후 돈은 원(위안화)으로 적어 나가겠다.
2004년 2월 16일(월요일)
추위에 떨다
밤새 떨고 자다가 6시에 기상하다. 대부분 설합장 밑에 두꺼운 이불이 더 있는 것을 모르고 침대에 있는 얇은 이불로 잤기 때문이다. 곤명에는 날씨가 온난하여 작은 호텔에는 온풍기와 침대전기장판이 없다. 모두들 어이없는 표정이다. 이후 대리, 여강, 중전여행에서는 침대전기장판이나 온풍기는 꼭 있었다. 일교차가 커서 낮에는 반팔도 가능하나 밤에는 온도가 많이 떨어진다.
중전에서는 영하 10도 까지 떨어졌다. 또 아침에 냉수가 나오지 않아 뜨거운 물로 머리감고 세수를 하였다. 닭 잡을 때 닭털 뽑기가 연상되었다. 중국에는 단전, 단수가 예고도 없이 잘 일어난다 것에 유념해야겠다. 그래서 각방에는 비상용 초와 성냥이 꼭 준비되어 있다. 중국인들은 아침을 집에서 먹지 않고 사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들도 호텔 앞 콩국수 집에 가서 꿀이나 설탕을 탄 콩국물에 만두나 튀김도너츠 같은 빵(요우티아오)으로 식사를 하였다. 한 그릇에 0.7원(7각)으로 총 30원 지불.
석림으로 출발하다(석림까지 76km)
삼라만상이 기기묘묘한 돌로 표현되었다는 이곳은 중국 4대 자연경관 중의 하나이다. 세계적인 카르스트지형의 하나로 곤명에서 동남동쪽으로 120km 떨어진 곳에 있다. 대절버스를 타고 초대소를 출발하다(7:50). 13인용버스로 하루 300원으로 15,21,22일은 반일로, 16일은 하루 온종일로 계산하여 전체 800원으로 계약하였다.
곤명시내는 자전거 행렬이 대단하다. 교통신호등에 숫자가 표시된다. 신호가 바뀌는 시간을 초로 나타내고 있다. 즉 숫자가 줄어들어 0이 되면 신호가 바뀌는 것이다. 택시도 많이 있는데 대부분 빈 택시가 많고 뒷좌석과 운전석이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다. 택시강도 때문인 것 같다.
은행도 직원과 고객 사이에 유리나 철망으로 폐쇄되어 있다. 사람과 차와 자전거가 뒤섞여서 질서가 엉망인 것 같으나 사고나 안 나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실제 추돌 사고나 접촉사고도 있으나, 대체로 큰 차가 작은 차를, 차가 자전거에게, 자전거가 사람에 대해서 배상을 한다고 한다.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배상을 많이 하는 식이다.
가로수 노란 꽃이 너무나 화려하다.
가로수로 노란 꽃이 피는 것이 있다. 멀리서도 노란 꽃 무리가 길게 길을 따라 이어져 있는 것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다. 한국에 이것이 도입되면 모감주나무와 쌍벽을 이룰 것 같으나 이 나무가 더 나을 것 같다. 도입되더라도 따뜻한 남쪽지방에 심어야 될 것 같다.
학명은 Acacia dealbata Link로 우리나라 아카시아와는 속이 다르다. 우리나라 아카시아(처음 이름을 잘못 붙였음)는 지금은 아까시나무라고 하고 Robinia속으로 같은 콩과식물이지만 속이 다르다. 잎은 신경초(함수초, 미모사)와 거의 닮았으나 더욱 작고 2회 우상복엽이다. 작은 잎을 하나 떼어서 가지고 오다. 이후 여강 쪽으로 올라가면서 곳곳에 자생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석림 가는 길
한 시간 가니 산과 밭이 붉은 흙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황토가 아닌 홍토라고 한다. 밭에는 노란 유채꽃과 녹색의 콩밭으로 모자이크되어 있다. 노란색과 녹색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으로 보인다. 정면의 주석광산을 지나(8:30), 양종해호수를 지나다(40분). 고속도로가 시원하다. 절개지에는 영춘화, 청색의 갈퀴덩굴종류가 간간이 보인다. 의량(구향동굴 갈림길)을 지나다(8:50). 유칼리나무(유칼립투스)가 가로수로 많이 보인다. 호주원산의 이 나무가 여기서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 긴 줄기를 하늘로 뻗어 그 끝에 잎을 달고 있다. 마치 총채(먼지털이)같이 보인다.
호주에서는 이 나뭇잎을 코알라가 먹고산다. 그러나 이 나무는 유독 식물로 농약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잎을 떼어 냄새가 맡아보면 아주 독특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또 같은 나무인데도 두 가지 잎을 가지고 있다. 원래 잎은 버들잎 모양이지만 도장지 잎은 타원형 잎을 달고 있어서 전문가들도 두 종류의 나무로 볼 정도이다.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 뷰겐베리아, 매화, 쉐프렐라가 함께 어울려 심어져 있고, 그 밑으로 간간히 갈퀴나물종류가 피어 있다. 고속도로 끝에 도착(9:05), 요금소에서 통행료 65원을 지불하다.
석림을 둘러보다.
석림주차장에 도착(9:10), 입장료 80원씩을 주고 들어가다. 주차비 5원 포함하여 1,040원을 지불하다. 작은 연못을 따라 어느 정도 들어가니 오른쪽으로 소로가 나타났다. 사진으로 보았던 뾰족뾰족한 바위사이 길로 접어 들어가다. 석회암 지형이 부드러운 흙에 파묻혀 있다가 비에 의해 흙이 씻겨 내려가 이런 지형이 생겼다고 한다. 어떤 곳은 뾰족한 바위 위에 기묘한 바위가 얹혀 있는 것도 있다. 기기묘묘하여 사진을 찍는다고 정신들이 없다. 그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 길을 따라 들어가다.
반덩굴성의 솜방망이종류, 운남송(잎이 2-3개로 대부분 3개이고, 잎이 좀 길고 아래로 처지는 경향이 있다), 으아리종류, 애기일엽초, 석위, 쐐기풀종류, 자스민종류(흰꽃으로 향기가 진하다), 흰꽃의 콩과식물, 찔레종류, 둥글고 흰 열매를 달고 있는 가지과 식물, 송악, 노박덩굴종류, 서나물종류, 미국등골나물(귀화식물), 벚나무 계통식물, 왕모람, 배롱나무, 부들레아(마취목 비슷), 오색매(마편초과)가 석림 사이사이에 자라고 있다. 석림 복판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정자에 도착하다. 단체 촬영하다. 고욤열매를 달고 있는 식물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무환자나무 열매이다.
이 열매로 중국인들은 염주로 많이 이용한다. 한국에도 도입되어 있고, 대구 제3아양교 지나 우방강촌마을 아파트 정원수로 심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석림을 빠져나와 인삼과(상아빛이고 맛은 없고 수분이 많아 수분보충에 좋겠다), 파인애플, 열대대추를 사먹다. 석림을 빠져나오다(11:35). 길 건너 소석림이 있으나 생략하고 버스로 이동하다.
금석(錦石)주점에서 점심을 먹다(11:45).
중국음식으로 좀 푸짐하게 먹자고 하여 중국식당 금석주점에 들어가다. 중국 맥주로 반주를 하다. 특미인 대벌레튀김(대나무 속에 사는 벌레유충)과 말벌튀김(40원), 무우깍두기, 호박찜, 쇠별꽃종류나물, 완두콩깍지찜, 돼지족발, 빙어(링위)계란튀김, 소간버섯(그물버섯속)찜, 냉이와 두부를 넣은 탕, 그리고 밥이 나왔다. 제일 비싼 대벌레튀김은 몇 분만 드시고 여자 분들은 구경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잠자리유충과 함께 중국사람들도 좋아는 하지만 비싸서 못 먹는다고 한다(총 450원 지불).
구향동굴로 향하다.
1시간 가량 식사를 하고 12시 45분에 출발하다. 물1박스 26원에 사서 나누다. 5월의 이 지역은 꽃밭이 된다고 한다. 지금은 이른 봄에 해당되고 6월이 지나면 장마기가 다가오기 때문에 5월이 관광 최적기라고 한다. 고속도로를 따라가다가 의량으로 빠져 구향으로 향하다(통행료 25원). 오른쪽 강변을 따라 유칼리나무 가로수가 시원하다. 군데군데 가물치 양어장이 나타났다. 이 지역 산 위에는 묘족, 중간에는 하니족, 아래에는 태족이 산다고 한다. 이것은 각 종족간의 세력과 관계 있다고 한다. 노란 유채밭이 끝없이 나타났다(13:40). 물소와 염소 비슷한 산양떼가 지나간다. 유칼리나무와 노란 아카시아나무 가로수가 연이어진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도로로 접어들다(14:15).
구향동굴에 들어가다
구향동굴 주차장에 도착하다(14:20). 의량에서 1시간 15분이 소요되다. 구향동굴 입장료 50원과 무개삭도(뚜껑이 없는 리프트)비 15원을 합쳐 일인당 65원이다. 입구에서 구향동굴 특산 생수 한 병씩을 나누어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동굴 입구에 있는 협곡의 호수에서 보트를 타다(14:45). 이 좁은 협곡을 음취협이라고 한다. 100m정도 안쪽으로 저어서 들어가 볼 수 있어나 지금은 안쪽 공사중으로 50m 정도만 들어갔다가 나오다. 이 물이 구향동굴로 흘러 들어가 한참 아래쪽 계곡으로 흘러나간다고 한다.
보트를 내려 동굴로 들어가다(14:55). 안쪽으로 들어가니 구석기시대 석기를 많이 진열해 놓았다. 그 중 14,000년 전 유물로 20-30cm 정도의 납작한 돌에 둥근 구멍이 많이 파져 있는 것을 전시하였는데 이것을 다항기라고 적혀 있다. 일본에도 하나가 발견이 되었는데 그 용도를 모른다고 한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반은 동굴이고 반은 개방된 동굴이다. 신녀궁을 돌아 폭포와 신전이 있는 쪽으로 내려가다(15:40). 정말 스케일이 큰 동굴이다. 절벽에는 뿔남천 종류의 노란꽃(십대공로)이 피어 있다. 나선굴을 따라 올라가다(16:05). 가마꾼들이 가마를 타고 올라가라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일인당 40원이라고 한다. 중국노동자 하루 일당이 20원이라고 하는데 두 사람이 한번 태워주면 하루 노동일당을 벌게 된다.
지하 석림을 벗어나 삭도를 타다
삭도를 타고 원래의 위치로 올라가게 된다. 삭도는 스키장삭도와 같이 개방이 되어 있어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눈을 감고 타야 될 것 같다. 발 아래는 노란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고, 그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그 사이로 돈나무(만리향), 백목련, 녹나무과 종류, 희말라야시다(이쪽이 원산지), 부들레야의 흰꽃이 보인다.
다시 원래의 주차장에 도착하다(16:30). 주차장 주위에는 아카시아, 태산목 가로수가 주종을 이루고, 피쿠스속(고무나무속)의 나무와 돈나무가 있다. 잎이 없는 나무인데, 가지가 이상하게 아래로 처진 나무도 보인다. 잎이 없어서 어떤 계통인지 모르겠지만 회화나무종류일 것 같다. 마치 처진벚나무 형태 같다. 버스에 오르다(16:45). 의량을 거쳐 소희촌요금소(18:40)에서 고속도로 통행료 40원을 지불하고 다시 곤명으로 돌아오다. 버스계약을 할 때 연료비와 통행료는 타는 사람이 부담하기로 하였다.
한국에서 가지고간 카스테라 부풀어져 탱탱하게 되다.
카스테라가 부풀어져 터질 것 같다. 곤명의 해발이 1900m로 한라산이나 지리산 높이에 해당된다. 압력이 높은 곳에서 진공 포장된 것이 압력이 낮은 곳에 오니 부풀어지는 것 같다. 옥룡설산(4506m)에 가지고 가면 터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여기서 진공포장 되어 가지고 온 깐 호도가 국내에서 완전히 꾸겨 진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여기서는 밥도 잘 되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우리가 높은 산에 가서 밥을 할 때 뚜껑에 돌을 놓아 압력을 높여야 밥이 잘 되는 것과 같은 원리가 되겠다.
아리랑식당에서 짜장면을 먹다(19:05)
주인은 조선족으로 경상도말을 사용하는 것 같아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함경도사람이였으나, 경상도사람이 많이 사는 마을에 살아서 경상도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식당으로 올 때 빨리 되는 짜장면을 시켜 먹고 열차를 타러 가자고 하여 짜장면(10원)을 시키다. 그러나 너무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서는 짜장면이 특미여서 만드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차라리 된장찌개나 냉면을 시켰으면 빨리 나왔다고 한다.
짜장면도 물이 질컥하고 면도 불어터진 것같이 젓가락을 갔다대면 뚝뚝 끊어지는 것이 영 한국 짜장면 맛이 나지 않았다. 밑반찬으로 아주 작은 땅콩, 김치, 무생채가 나왔다. 열차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먹다. 이 집에서 나올 수 있는 한국음식은 불고기가 전문이고 냉면, 된장찌개(10원), 비빔밥 등이 있다고 하고 전화번호는 지역번호 531-5348이다. 식사를 끝내고 나와 상우가 기숙사에 가서 신분증을 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다.
기차시간이 촉박해져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열차역으로 정신 없이 뛰어가다(곤명에서 대리까지) 식당을 출발(20:30), 곤명남부역으로 정신 없이
뛰어가다(20:55). 열차출발은 21시 18분이다. 배낭을 등에 지고 케링백을 끌면서 정신 없이 상우를 따라가다. 남편이고 처고 친구도 돌볼 여유도 없이, 뒤쪽 사람이 따라오는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제일 마지막으로 우리 팀이 개찰구를 빠져나와 대리행 침대열차에 무사히 모두 오르다. 열차번호는 K722호로 2호차 23-25실이다. 3단 6명, 2단 4명과 3명이 들어가다. 3명 들어간 방에는 광동성사람 31명을 데리고 온 여자 가이드가 타고 있다. 아래쪽 칸이 비싸며, 차례대로 95원, 90원, 86원이다(총 1,168원). 10시 가까이 되니 소등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다.
2004년 2월 17일(화요일)
대리석의 고향 대리에 도착하다.
대리도착 30분전에 전등이 켜졌다, 간단히 세수와 볼일을 보고 내릴 준비를 하다. 대리에 도착(5:20), 역을 빠져 나오다. 곤명에서 대리까지 359km에 해당되고 시간으로는 8시간이 걸렸다. 대리는 곤명 서쪽에 위치한다. 곤명이 해발 1895m인데 비해 대리는 해발 1976m이다.
얼하이호수가 반정도 대리를 둘러싸고 있다. 한쪽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 있기 때문에 염호는 아니다. 역 앞에 있는 10인승 버스를 계약하여 짐과 함께 13명이 억지로 구겨 타고 고성 안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다(5:40). 통행료 포함하여 35원이라고 한다. 고성 안 여행자숙소(koreana guest house)에 잠시 머물기로 하였다(6:05). 방 4칸을 빌려(대실료 220원) 잠시 쉬면서 샤워와 볼일을 보다. 화단에 색다른 덩굴식물이 보인다. 현지이름은 거북이귀라고 하고 방기과에 속하는 것 같다. 숙소 앞에 있는 중국공상은행에서 달러를 위안화로 바꾸다(8:21). 생일축하노래가 계속 울려 보았더니, 청소차가 노래를 틀어 놓고 계속 돌아다니고 있다.
코리아나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다(8:30-9:00). 된장찌개, 파전, 잡채, 김치가 나오다(전체 278원 지불). 고성에서 창산 중턱에 보이는 절이 중화사이고 왼쪽으로 한참 돌아가야 감통사가 있다고 한다.
창산의 감통사로 출발하다.
작은 봉고 2대를 30원에 계약하여 출발하다(9:30). 고성 남문을 통해 성을 빠져 나와 왼쪽 얼하이호수와 오른쪽 창산을 두고 감통사로 향하다. 원래 계획은 중화사 삭도를 올라가 보기로 하였으나 이쪽을 계약한 사람이 감통사 삭도를 계약한 관계로 감통사쪽으로 가기로 하였다. 창산 봉우리 쪽은 약간의 눈이 덮혀 있고, 현재 날씨는 바람이 약간 불고 있으나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다. 창산은 무협소설의 작가 김용의 천룡팔부에서 영취봉으로 나오는 곳이다. 감통사 입구 주차장에는 여러 잡상인들이 물건들을 팔고 있다. 살아있는 잠자리유충(장구벌레), 가물치, 붕어종류, 큰조개, 이름 모를 과일들, 어름 비슷하게 생기고 잘록잘록하게 생긴 열매가 특이하다. 이것은 카마리투스(콩과) 열대교목의 열매라고 한다. 또 고기를 밀가루 발라 튀겨 입으로 꼬지를 꿰어 팔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긴 계단을 올라 유개삭도입구에 도착하다(9:55). 중화사 쪽 삭도는 뚜껑이 없는 무개삭도라고 한다. 여기서는 유개삭도를 대삭도, 무개삭도를 소삭도라고 하고 있다. 물론 대삭도가 비싸다. 삭도를 타고 위로 올라가면 능선에 올라, 다시 다음 계곡 쪽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밑을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삭도거리는 3km이고, 15분 정도 걸리고 요금은 왕복 40원이다.
창산의 여러 야생초를 만나다.
삭도 상단에 도착하다(10:15). 위쪽은 공기가 희박하여 숨을 헐떡이며 10분간 오르다. 노새꾼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여기서 창산 중턱을 돌아 수평으로 길이 중화사까지 나 있다고 한다. 3,40리는 족히 될 것 같다. 노새는 한번 타는 데 30원이라고 하고 500m 정도 갔다가 돌아온다고 한다. 그곳까지 가면 노새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ᄃ자 파이프가 박혀 있다. 우리들은 파이프를 지나 약 1km 정도 더 가 보다. 아래쪽으로 멀리 넓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얼하이호수가 내려다보인다. 길가로는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하는 야생 꽃들이 많이 보인다. 설앵초, 키가 작은 여뀌종류, 흰꽃의 정금나무종류, 갈퀴망종화종류, 만병초 2종류(여기서는 두견화라고 한다), 노루오줌풀종류, 솜나물종류, 산토기풀종류, 아주 작은 꽃향유종류, 떡쑥종류, 쑥, 화산송(잣나무종류), 후피향나무, 닷꽃종류, 분홍꽃이 아름다운 철쭉종류, 산딸기2종류, 단풍취종류, 피라칸타(이곳이 원산지), 소귀나무(여기서는 양매), 난쟁이바위솔종류(돌나물과), 오리나무종류, 공작고사리, 석죽과, 송이풀종류, 쇠서나물종류(노란꽃으로 줄기에 가시), 상록 가막살나무2종류, 미역줄나무종류 등 많은 종류의 나무들을 찾아 볼 수 있었다. 특히 마앵화(로도덴드론 델라웨이라는 학명을 가진 적색겹꽃의 만병초)의 화려한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야생화채집자들이 여기 와서 야생화 채집을 많이 한다고 한다. 중화사에서 산허리 중턱을 통해 감통사로 야생화 관찰 산행을 한번 하였으면 싶다. 4시간 정도 코스가 될 것 같다.
마차를 타고 대리고성으로 내려오다.
삭도를 타고 내려오다(11:50). 삭도 아래는 운남송, 화산송(잣나무종류)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군데군데
동과수(오리나무종류) 군락도 섞여 있다. 일인당 2원씩 주고 4-5명씩 마차에 타다(12:00). 길가로는 사비니아종류(씨 채집)의 가로수가 죽 늘어서 있고, 고성에 가까워지면 유카리나무와 노란꽃 아카시아나무가 보인다. 대리고성 남문에 내리다(12:30). 남문 근처에는 관광객들로 들끓는다. 야크마차, 면양마차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고성 시내 관광을 하면서 식당 쪽으로 이동하다. koreana식당에서 간단하게 비빔밥(18원), 미역국(20원), 오이무침(20원) 등으로 점식 식사를 하다(13:40). 영수증을 10장 정도 얻다. 이곳 영수증에 긁는 복권식 영수증이다. 1장이 5원에 당첨되어 상우에게 주다. 아침점심 합쳐 식비가 301원이 지불되다.
여강으로 출발하다
15인승을 600원에 빌려 출발하다(14:45). 여강까지는 186km으로 대리에서 북쪽에 위치한다. 상글리라는 더 북쪽이다. 아쉽지만 삼탑사를 멀리 보면서 지나가다. 길가 유채밭이 너무나 고와 모두 유채밭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다. 노란 유채밭과 녹색콩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노란색과 녹색의 하모니이다. 중국 인구문제 이야기가 나오다. 현재 중국인구는 공식적으로 13억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그 보다는 훨씬 많다고 한다. 자식도 1명까지이고 2명을 놓으면 벌금이 2만원이고, 그 뒤 세금도 많이 나온다. 그러나 부부 합쳐 나이가 70이 넘으면 2명까지 허용한다고 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요금소를 지나니(15:35), 온통 마늘밭이다. 실사구시마을을 지나(16:20), 마을 기와지붕 복판에 동물모형이 얹혀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호랑이상이다. 이 호랑이가 집안의 액운을 막는다고 한다. 길 양쪽이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나라 해송과 비슷하게 생겼다. 이 소나무가 지금부터 계속 나타나는 것을 보니 운남의 대표적인 소나무인 것 같다. 두 번째 요금소를 지나니 집 근방에 소나무갈비를 반구형으로 쌓아둔 것이 많이 보이는데 아마 땔감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드문드문 선인장 무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 눈 덮인 옥룡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16:55). 곧 도로통제신고소에 들러 볼일을 보고 다시 출발, 여기서 여강까지는 48km 남았다. 학경 큰마을에 도착((17:10)하니 물을 채운 논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강에 진입하다.
좌측으로 여강비행장 활주로가 보인다. 재를 넘자 3번째 요금소가 보인다. 옥룡설산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그 왼쪽으로 하빠설산도 보인다. 여강은 해발 2400m이다. 여강은 목씨와 화씨가 세력이 크다고 한다. 대리에서 여강까지 3시간 10분 걸려 여강고성에 도착하다(17:55). 현지 가이드(상우친구)를 기다려 고성 뒷길로 짐을 들기도 하고 끌기도 하면서 인화창객잔으로 들어가다(18:30). 새집으로 우리가 첫손님이라고 한다. 짐을 정리하고 고성관광과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다. 길가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하수로가 있다. 어린아이가 뜰채로 미꾸라지를 잡고 있고, 조금 큰 하수로에는 금잉어, 은잉어가 헤엄쳐 다니고 있다. 생활하수로는 따로 길복판으로 지나가고 전기전화선도 땅속으로 다 파묻혀 있어 지상에는 전선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길 복판으로 보면 信자가 적혀 있는 돌이 보이는데 이것이 지하매몰 전선이나 생활하수로이다. 사방가를 지나니 500년 전에 만들었다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와 도로는 전부 빙퇴석인 오화석(오색돌)으로 짜여져 있다. 여러 가지 돌들이 빙하에 침식 퇴적되어 돌이 된 것으로 그 무늬가 아주 화려하다. 이 돌로 도로와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나시족 전통식당에 들어가다.
물이 흐르는 수로를 두고 식당가가 밀집되어 있다. 식당 앞에는 어디나 홍등이 걸려 있다. 물가 옆 나시족 식당 2층으로 올라가다. 주위 조명이 약간 어두운 가운데 바깥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국적인 멋이 절로 난다. 먼저 청도맥주(1박스 12개, 각 10원)로 반주를 하다. 이어서 돼지고기 굽은 것, 꿉은 순대(맛이 괜찮음), 콩줄기무침, 야크고기, 백김치(산초를 넣은 것 같음), 계란 콩줄기탕, 야크고기를 소금에 절여 술로 닦은 훈제햄, 가지튀김(처음에는 물고기를 벌여 놓았는 줄 알았음), 밥, 파 마늘과 함께 돼지고기를 볶은 후위고주(돼지고기를 먼저 삶아서 다시 뽁음), 감자채뽁음, 술값 포함 전체 480원이다. 여강 지역은 세계문화유산지역으로 비닐 등 1회용품 사용이 전면 금지되어 상품을 사도 비닐로 사 주지를 않는다. 9시에 식사를 마치고 객잔으로 돌아가다(21:30). 모두 2층방에 투숙하다. 최선생님방 온수 수도꼭지가 터져 물바다가 되어 아래층으로 이동하다. 김수일선생님 곤명 초대소에 이어 여기서도 또 다시 더블베드가 있는 방에 들어가게 되어 모두들 웃고 난리이다. 다른 방은 전부 침대가 2개이기 때문이다.
2004년 2월 18일(수요일)
인화창객잔 이 집은 상우군의 나시족 친구집으로 운남대 기숙사 룸메이트였다고 한다. 이 친구의 부모님 모두 양의 한의로 지금은 은퇴하여 고향에 계신다고 한다. 1실 120원으로 7실을 예약하여 전체 840원이 지불되다. 똥파리 두 마리가 고공 비행하는 소리에 새벽잠을 설치다. 침대는 전기장판이 있어서 곤명보다는 훨씬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가다(5:30). 곤명과는 반대로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찬물로 머리만 감다. 어제 저녁 뜨거운 물이 나올 때 샤워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주인이 7시쯤 지나 온수를 개방할 모양이다. 객잔 프론트룸에 소심종류, 곰취종류의 꽃(짙은 푸른색 꽃인데 국내에도 도입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색깔은 청색에서 붉은색, 흰색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국내도입이 되지 않았다면 가지고 가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등, 아잘레아, 물푸레나무종류의 상록분재 2종류(언뜻 보면 꽝꽝나무 비슷, 그러나 잎이 대생이다), 회양목종류(잎이 길고 크다), 꼭두서니과 나무, 군자란, 십자화과 화훼류가 화분에 심겨져 객잔을 밝게 하고 있다. 방 7개 총 840원 지불하다.
옥룡설산으로 출발하다.
15인승 버스를 대절하다. 매일 600원씩 4일간 총 2,400원으로 계약하였다. 기사님 성은 양씨라고 한다.
고성입구를 빠져나와 먼저 흑룡담 앞 회원소흘에서 아침을 해결하다. 쌀녹두죽(쌀죽에 통녹두가 밑에 깔려 있음)에 설탕을 타 먹는데 1원이다. 왕만두(6각) 속으로 감자채, 채소, 김치 같은 것을 넣은 것으로 매운 맛이 나는 것도 있다. 예상외로 만두가 맛이 있다. 전체 30원을 지불하다. 나시족 할머니가 머리에 특이한 모자를 쓰고 허리 부분에 깔개 같은 것을 달고 지나가고 있다. 백족은 흰 모자를 쓴다고 한다. 회원소흘을 출발(8:15), 오른쪽으로 코끼리모양의 야트막한 산이 보이고, 길 바로 정면으로 옥룡설산이 아침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시내를 벗어나기 직전에 여강홍성여행사유한공사에 들러 표를 사다. 삭도 일인당 160원과 보험료 2원, 입산료 40원, 고성문화재관람료 40원 1인당 총 242원을 지불하다. 하여튼 온갖 명목을 붙여 돈을 받고 있다. 옥룡설산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옥룡설산을 왼쪽에 두고 계속 길을 따라 가다. 어느 정도 가니 왼쪽으로 구 길이 보이고, 일직선으로 된 넓은 새 길을 따라 가니 그 끝에 입구문이 나타났다. 양쪽으로는 10-20년 전에 파종한 키가 낮은 소나무 숲이 연이어 나타난다. 넓은 지역은 빙하에 의한 퇴적지로 불모지이다. 자갈이 많이 섞여 있어 밭으로도 이용할 수가 없다고 한다. 셔틀버스요금을 다시 1인당 80원을 내다. 중국은 어딜 가나 돈이다. 조금만 경치가 좋으면 돈을 내라고 손을 벌린다. 주차장에 내려(9:10), 셔틀버스로 갈아타다(9;25). 옥룡설산을 오른쪽으로 돌아 지그재그로 산 경사면을 올라가고 있다. 소나무 등으로 된 울창한 숲길이다. 구상나무와 상록참나무 종류(잎 가장자리 가시)가 같이 섞여 자라고 있다.
삭도(리프트)를 타고 옥룡설산 4506m 지점에 오르다.
삭도 하부점에 도착하다(9:45). 옥룡설산 최고봉은 5,596m로 아직 아무도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의 삭도하부점은 해발 3,356m이고 삭도상부점은 4,506m이다. 삭도를 타고 1,150m를 오르는 것이다. 산소통을 빌려주고 있는데, 1개 30원으로 15분간 쓸 수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사지 않기로 하였다. 줄을 서서 20분간 지루하게 기다리다. 여기 올 때는 좀 서둘러 와야 되겠다. 뚜껑이 있는 삭도에 오르다(10:05). 발 아래는 소나무, 구상나무, 만병초 군락이 나타나더니 곧 나무들이 없어지고 눈 덮인 산이 나타났다. 삭도 아래로 철로 된 계단이 상부점으로 계속 이어져 있으나 눈이 덮여 겨우 흔적만 보인다. 오른쪽으로 푸른빛을 띠고 있는 빙하가 보인다. 이 빙하가 북반구에서 가장 최남단에 있는 빙하라고 한다. 12분만에 상부점에 도착하다. 소주 한 병을 먹은 것 같이 어질어질하고 조금만 뛰어가도 숨이 턱에 차고 머리가 아파 온다. 여기서 오래 있으면 고산병이 바로 올 것 같다. 눈이 없으면 여기서 나무계단을 타고 약 200여m을 더 올라 갈 수 있으나 지금은 눈 때문에 통제되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그 대신 조금 넓은 터에 눈썰매장을 만들어 놓았다. 일인당 10원으로 고무튜브 같은 것에 끈을 달아 여러 명이 줄을 지어 경사면을 달려 내려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마침 오늘 날씨도 화창하여 시야가 넓게 틔어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계속 머리가 아파 오고 어질어질해져 서둘러 내려가기로 하였다. 하부점에 도착하다(11:30) 상부점에서 약 1사건 가량 머물다 내려왔다.
구 길을 따라 옥룡설산을 벗어나다(12:05). 오른쪽 옥룡설산자락에 옥봉사라는 절이 있고 그 안에 500년 된 동백이 있다고 상우군이 말한다. 그리고 그 옆에 지금 식물원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양쪽으로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피라칸타가 야생상으로 자라고 있다. 옥룡설산 입구 문을 완전히 빠져 나오다(12:20).
청송령 나시족 토속음식점에 들어가다
덕흠(더칭)가는 길목에 나시족이 운영하는 일종의 농가식당에 들어가다(12:45).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면서 기다리다. 해바라기씨가 이곳에서는 심심풀이 땅콩인모양이다. 십리향(목련종류), 미켈리아(여강고성에서 본 것), 운남송, 물푸레나무과 계수나무(중국 계림에는 이것이 많아 계림이라고 한다) 등이 주위에 심어져 있다. 음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메밀묵, 녹색콩자반(창뚜어), 노란콩자반(베윈뚜어), 고수로 비린내를 없앤 민물고기탕, 야크고기 2종류, 감자전, 밀가루빵, 돼지고기조림(사천성요리), 백김치, 돼지고기족발탕(여기에 감자 대신 마가 많이 들어 있다)이 차례로 나온다. 퍼석퍼석한 밥을 먹다. 콩은 아주 커 길이 2cm 정도에 이른다. 매실주(이 지방에는 매실을 많이 심고 있다)를 포함하여 총 340원을 지불하고 식당을 나서다(14:05).
상글리라(향격리랍, 중전)로 향하다.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다. 오른쪽에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왼쪽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가다. 앞으로 중전까지는 4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낮은 고개를 오르니 왼쪽 하빠설산과 오른쪽 옥룡설산이 보인다(14:40). 어제 우리가 올랐던 옥룡설산 뒤쪽이다. 그 두 산 사이로 장강 상류인 호도협이 있다고 한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갈림길이 나타나다. 왼쪽은 장강제1일만으로 가는 길이다. 갈림길에서 중전까지는 139km라고 적혀 있다(14:50). 장강 상류인 금사강을 왼쪽에 두고 길은 계속된다(15:05). 지금은 물이 깨끗하지만 여름에는 황톳물이 흐른다고 한다. 양쪽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열대산 대나무(봉미죽)가 나타나고 있다. 이 봉미죽은 땅속줄기가 없이 한평 정도씩 모여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땅속줄기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대나무와는 속 자체가 다르다. 금사강 다리를 건너다(15:20). 건너지 않고 강을 따라 가면 호도협이다. 현재는 아주 넓은 아스팔트길이다. 중간 중간 비포장길이 나타나고 있다. 내년에는 이 길이 전부 포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으로 금사강 너머로 옥룡설산 뒤쪽 수직벽이 높게 바라보인다. 먼지 때문에 창문을 닫고 에어콘을 틀다. 오른쪽에 호도협으로 가는 구 다리가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호도협 계곡이 보이고 정면에는 하빠설산이 높게 서 있다(15:45).
호도협진에서 화장실을 찾다(15:50-55).
진은 전으로 읽고 읍에 해당된다고 한다. 오줌보가 터진다고 하여 공측(유료 화장실)에 들어가다. 중국에는 유료화장실이 많은데 공측이라고 적힌 곳에 들어가면 돈을 받는다. 여기서는 3각이고 화장지는 볼일 포함하여 1원이다. 화장실은 대부분 칸막이로 되어 있어서 조금 고개를 들면 옆 사람이 보일 정도이다. 물론 정면문은 없다. 남여화장실이 따로 있지만 혹 없는 곳도 있다. 앞으로 앉아 볼일을 보는지, 뒤로 앉아 볼일을 보는지 의문이다. 여기서부터 금사강 최상류로 올라가게 된다.
상우군이 한 2가지 이야기
이곳에서 운남 송이버섯과 호도가 많이 난다고 한다. 송이버섯을 캐러간 처녀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그 머리를 처녀집 개가 물고 집에 왔는데 그 어미가 그것을 보고 미쳐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또 하나는 티베트에는 왜 까마귀가 없을까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여기서는 까마귀를 볼 수 있다.
메리설산 근방(덕흠=더칭)의 포탈라궁에서 절을 짓기 위한 나무가 필요하게 되었다. 라마승이 전국에 있는 나무에게 이곳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한 나무(향나무 일종)가 그곳으로 가는 중에 까마귀를 만나게 되었는데 까마귀가 이미 나무가 다 모였기 때문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 후 이 나무는 메콩강 상류 난창강 근방에서 모두 모여 자라게 되고 라마승의 명에 의해 까마귀는 티베트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나무는 그 곳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 된 것이다.
고원지대로 올라가다가 버스 물 보충을 하다.
양수발전소를 지나고(16:30), 여러 마을을 지나다. 마을에는 위성안테나가 많이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TV시청을 위한 것 같다. 다리를 지나(16:40), 버스 물 보충을 하기 위해 서다(16:50-55). 중국버스는 몇 시간 달리면 라디에이터에 필요한 냉각수 보충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이후 몇 번씩 물 보충을 하면서 가다. 간단히 세차도 하고 볼일도 보다. 야크가 길에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한우와 닮은 소도 보이고 또 야크와 소와의 트기도 많이 있다고 한다. 염소 닮은 산양도 보인다. 운남성은 만병초천국이다. 운남성에는 만병초 종류가 250여종이 있고, 카멜리아(동백) 종류도 300여종이 된다고 한다. 그 많은 만병초 중에 먹는 것은 한 종류만 먹는다고 하는데 그나마 꽃을 데쳐서 먹는다고 한다. 옥룡설산 올라가다가 본 송라(지의류 일종)가 여기서도 길가 나무에 많이 걸려 있다. 마치 연한 녹색끈이 뭉쳐져 나무에 걸려 처져 있는 모양이다. 가문비나무와 소나무(해송 비슷)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한국 산타페가 지나가 모두들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고도가 높아지니 장족들의 집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다. 장족들은 고기를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칼을 차고 다닌다고 한다. 멀리 눈 덮인 설산도 보인다.
고원지대에 들어서다(17:30).
장족들 마을입구에는 하얀 탑 같은 것들이 많이 서 있고 수많은 깃발이 무더기로 꼽혀 있다. 또 장족들 지붕 위 복판에는 반드시 깃발이 하나 꼽혀 있다. 고원의 넓은 들판이 나타났다. 이곳을 소중전이라고 한다. 넓은 평원에는 한가로이 야크와 돼지와 산양들이 같이 섞여 어슬렁거리고 있다. 대부분 보리밭이라고 한다. 이제 조금 있으면 보리를 파종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 의자 20배 크기의 보리 말리는 단이 평원에 많이 보인다. 마치 거인이 앉는 의자 모양 같다. 길가에 상록 가시나무(참나무과)종류가 관목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잎 가장자리가 가시로 되어 있다. 길이 넓어지면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타났다(17:45).
상글리라 징디빈관에 여장을 풀다.
상글리라의 뜻은 이상향(유토피아)라는 뜻으로 2차대전 당시 미국비행기가 이 지역 어딘가에 불시착하여 너무나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상글리라라고 하였는데, 중전이 재빠르게 이름을 향격리납(상글리라)으로 먼저 바꾸어 버렸다. 중전시내를 들어가니 열매를 달고 있는 가문비나무가 가로수로 되어 있다. 전나무구상나무는 열매가 하늘을 향해 달리고, 가문비나무종류는 열매가 아래로 매달린다. 징디빈관에 도착하다(18:15). 1실 150원으로 지금까지 숙소 중 제일 나은 것 같다. 냉온풍기, 헤어 드라이기, 진열장에 음료수, 캔, 라면 등이 들어 있다. 물론 체크아웃 할 때 계산을 하면 된다. 한국식당(Yak bar 0887-8288665)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가다. 12공탄 난로가 있다. 지금까지 쭉 보아온 연탄이 난로용임을 알게 되었다. 구멍은 12에서 15개 정도이고 크기가 아주 작다, 식탁에는 촛불을 켜 두고 있다. 중국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전체적으로 어둡다. 거리도 어둡고, 건물 내 실내등도 아주 어둡게 켜두고 있다. 운남성은 수력발전량이 많아 옆 성으로 전기를 팔기도 한다고 하는데도 사정은 이렇다. 참이슬소주(40원), 상글리라포도주(78원), 된장찌개, 김치찌개(15원)으로 지금까지 음식점 중 가장 비싸다(전체 428원). 밥맛이 좋다. 밥알이 펄펄 날리는 인디카쌀로 밥을 먹다가 여기서 자포니카쌀을 먹으니 밥맛이 꿀맛이다. 인디카쌀로 압력밥솥에서 하여 차진 밥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중전은 3200m로 백두산(2744m)보다 높은 지역이다. 국내 높은 산(지리산, 설악산 등)에서 밥을 지을 때, 돌을 얹혀 밥을 하는 것은 압력을 높여 밥이 썰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는 아무래도 압력밥솥을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2004년 2월 19일(목요일)
고산병증세와 불면증으로 2명 징디빈관에 남다.
아침에 일어나 빈관 옆 금적선면관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다. 쌀국수(미시엔이라 하고 대 2.5원, 소 2원)를 먹다(전체 30원). 박차남, 김기려씨는 그 동안 누적된 피로와 불면증, 게다가 고산증세도 일부 겹쳐 오늘 빈관에서 쉬기로 하였다. 11명이 출발하다(8:50). 어제 4,506m에서 오늘 금사강 1,600m로 떨어졌다가 다시 4,296m를 오르는 것에 대해 조금 우려가 되고 있다. 두 번이나 이틀 동안에 올라갔다 내려왔다가 하면 몸에 무리가 온다고 한다. 히말라야 끝자락인 중전에서 북서쪽 방향에 있는 덕흠(더칭)방향으로 출발하다. 시내 가로수는 가문비나무와 만병초 등으로 되어 있다. 주유소에서 버스 연료를 넣으려고 하였으나 물이 얼어 기름 탱크로 물을 넣지 못해 기름이 나오지 않아 시내 쪽 주유소로 다시 들어가 기름을 넣다. 기름탱크에 물을 넣음으로서 기름이 나오게 되는 원리인 모양이다. 기름박스에는
중국석화집단이라고 적혀 있고, 휘발유는 기유, 경유는 자유로 적혀 있다. 리터와 값 표시메타가 돌아가고 그 옆에 자유1#, 기유90#. 93#. 97# 등이 적혀 있다. 다른 곳에서는 자유-10#도 본 적이 있다. 이 숫자와 우물정자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옥탄가인지, 저유황, 고유황유를 나타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주유소를 출발하다(9:05).
납파해를 지나가다
납파해, 얼라이해의 해는 바다海자로 여기서는 아주 넓은 호수나 습지를 나타낸다. 고개를 넘어가니(9:20) 오른쪽으로 고산습지가 나타났다. 습지 너머로 라마교의 송찬림사(작은 포탈라궁)가 보인다. 내일 중전을 떠날 때 보기로 하였다. 장족마을을 지나, 오른쪽으로 고산식물원을 만들고 있는 지역을 지나가다. 야크 떼가 길을 가로질러가게 되어 차를 잠시 멈추게 되었다. 잠시 언덕빈터에 차를 세워 납파해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다. 길가로는 키가 낮은 관목들이 깔려 있다. 잎이 아주 작은 가시나무 종류(침강)로 잎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것이 마치 호랑가시나무잎 같다. 비행기 날개모양으로 생긴 잎 모양의 납작한 가시가 붙어 있는 장미속 식물도 있다. 이 가시나무종류는 이후 3종류 더 관찰되었다. 마니탑이 있는 재를 넘으니 멀리 히말라야설산이 보인다. 오늘 우리가 마지막 도착지점이 설산 중간 잘록한 지점 너머이다. 버스에 물 보충을 하고 계속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다(9:40). 평지집들이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듯이 까마득이 아래에 있다. 갈림길이 나타나다(9:55). 니시라는 곳에 도착, 왼쪽으로는 내리막길이다. 우리들은 오른쪽 길로 계속가다. 이 길을 계속가면 티베트이다. 설산이 훨씬 가깝게 보인다, 끝없는 소나무숲이 이어진다. 석회암채석장을 지나다(10;20)
까마득한 절벽 사이길로 내려가다.
천길 낭떠러지가 아니고 수천m 이상 낭떠러지이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것 같다. 언뜻 바닥의 집이 보이는데 성냥갑보다 저 작게 가물가물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바닥에 떨어져 다시 오를 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내리막길 공터에서 잠시 휴식(10:25-30), 설산을 바라보다. 우리들은 이 설산이 줄곧 백마설산으로 알고 가고 있다. 그러나 사실을 그 너머에 백마설산이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정말 꼬불꼬불한 길을 버스기사 양씨는 겁도 없이 잘 달린다. 눈을 뜨고 절벽아래를 보지를 못하겠다. 건너편 수직절벽(경사도가 70-80도 정도)에 집들이 보이고 집 아래에 약간의 터에 보리밭 등을 경작하고 있다. 멀리 있는 집과 집 사이에 거의 수평에 가까운 소로가 나 있으나 길을 걸어가는 자체가 위험해 보이는 것 같다. 좁은 계곡 바닥에 점점 가까워지니 푸른 보리밭이다. 길가로 선인장도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을 데쳐서 먹기도 하고 펄프로 종이를 만들 때 섬유질을 고르게 분산시키는 호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 계곡 식생을 건열하구(乾熱河口)식생이라고 한다. 건조하고 기온은 아주 높은 하구식생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바닥에는 건조와 높은 온도에 견디는 식물만이 살아 갈 수 있다. 바닥에는 금사강이 흐르기 때문에 그나마 사람이 살 수 있다.
양자강 최상류지역을 지나가다.
작은 협곡을 지나가자 차차 금사강이 넓어지고 있다. 우리들은 작은 호도협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계곡 갈림길에서 다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10:50). 하룡교 다리에서 내려 잠시 경치를 구경하다(10:55-11:05). 이 금사강은 남쪽으로 흘러 장강제일만에서 꺾여 다시 북쪽으로 흘러 호도협을 거쳐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계속 흘러 결국 양자강이 되어 상해 근처에서 서해로 들어간다. 이 금사강에서 서쪽으로 차례대로 난창강, 누강이 남쪽으로 30-50km간격으로 나란하게 흘러 내린다. 이 세강이 나란이 달리는 곳을 삼강병류풍경명성구라고 한다.
우리들은 3분의1정도를 보는 것에 불과하다. 즉 금사강만 보는 것이다. 이 세 강은 모두 티베트에서 발원하는데 누강은 살윈강이 되어 미얀마 수도 양곤 근처에서 안다만해로 들어가고, 난창강은 메콩강이 되어 베트남 호치민시 근방에서 보르네오해로 흘러 들어간다.
운남성에는 10곳 풍경명성구(관광특구)가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들은 석림, 구향, 대리, 여강옥룡설산 4곳과 삼강병류 중 금사강을 본 것에 불과하다. 다리 위 표지판은 덕흠 113km, 중전 69km이라고 적혀
있다. 다시 출발 왼쪽 사면에 둥근 자갈돌들이 많이 박힌 퇴적층대를 지나가다. 하천바닥 층이 융기한 것인지, 물길이 하천을 갉아 바닥 층이 드러난 것인지 의문이다. 오른쪽 금사강을 두고 계속 비포장길을 달리다. 가로수로 유칼리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건열하구식생에 맞는 나무인 것 같다. 올리브도 이 지역에 맞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번자란 도착(11:20), 대학주루에서 점심을 들다. 길 건너 수양버들가지가 꽃을 피어 새파랗다. 곧 잎이 나올 것 같다. 주루 안에는 제라늄, 사루비아, 뷰겐베리아(엽자화), 잎이 크고 꽃이 층층으로 매달려 있는 앵초 종류 등을 심어 놓았다. 음식은 간단하게 채소류를 시키다. 밥, 호박채뽁음, 십자화과 채소뽁음, 다진 야크고기뽁음, 오이생무침, 양파뽁음, 감자채전병으로 식사를 하다. 맥주3병(15원), 백주1병(3원)을 포함하여 전체 137원을 지불하다. 가게에서 사과5개 바나나1송이를 10원에 주고 사 가지고 오다. 공측에서 볼일을 보고 12시 10분에 출발하다.
양기사와 다시 연장계약을 하다.
번자란까지 계약이 되어 있어서, 더칭 가기 전 고개까지 가는데 500원을 더 주고 가기로 하다. 고개까지 눈이 있어 통행이 안 될 것으로 알았으나 더칭에서 넘어오는 버스통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재계약을 하였다. 중국에는 재계약시에 바가지를 쓸 수 있으니 처음부터 계약을 잘하여야 된다고 한다. 아직까지 어디든 팁을 주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하였다. 백두산에 갔을 때에는 관광가이드가 꼭 팁을 주라고 하였다. 자기들의 편의를 위한 잘못된 관행이라고 생각된다. 중국에는 원래 팁이란 것이 없고 계약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설산을 향해 절벽 길을 오르다.
계곡에는 호두나무와 유칼리나무, 선인장이 많이 보인다. 가마득한 절벽 길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버스가 오르고 있다. 2,000m 절벽 길을 오르면 밑 700m 정도는 급사면에 관목이 드문드문 있는 불모지(건열하구식생)이고, 중간 700m 정도는 절벽에 사람들이 살고, 위 700m 정도는 숲이 우거져 있다. 그 이상은 초원지대이거나 불모지이다. 어느 정도 계곡 길을 오르니 백마설산입구라고 할 수 있는 홍살문 같은 안내문을 지나가다(12:30). 지나자 소도가 있어 하차 사진을 찍다. 라마교 전통의 깃발 모듬과 소도(흰색으로 칠한 탑)가 있고 설산이 바로 눈앞이다. 몇 가지 관목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열매가 둥글고 잎은 아주 작은데 아까시잎 모양으로 생기고 털이 많이 난 장미과 식물이다. 줄기에는 잎 모양으로 생기고 끝에 가시가 있는 잎이 대생하는 또 다른 장미과 식물도 보인다. 오른쪽 아래 경사면에 작은 사원이 있고, 빨간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나와 차를 기다리고 있다(12:40). 약간의 동네도 나타난다. 염소(산양?) 떼들이 지나가 잠시 버스가 지체되기도 하였다. 사면에 측백나무도 많이 보인다. 여기가 측백나무의 원산지가 아닌지 모르겠다. 나무에 겨우살이가 붙어 있는 것도 보인다. 차차 소나무가 많아진다. 응달에는 눈이 녹아 흐르면서 얼어 버려 조심조심하면서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차차 높이 올라갈수록 구상나무, 화산송, 가문비나무, 줄기가 붉은 자작나무종류가 나타나고 있다.
작은 돌을 박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작은 돌들을 박은 포장길이 나타나기 시작된다(13:25). 상록가시나무교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잎 뒷면 갈색 털로 덮여 있고, 잎 끝에 몇 개의 가시가 보인다. 나무에 송라가 많이 걸려 있다. 산불난 지역인 것 같은 곳을 지나가다. 큰 나무 밑둥이 그을린 흔적이 보이고 베어낸 나무 그루터기가 보인다. 왼쪽으로 설산이 눈높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 백마설산으로 잘못 안 설산이다. 정면 설산의 잘록한 고갯길이 보여 바로 금방 올라 갈 것 같았으나 오른쪽으로 두 구비를 30분 정도 걸려 간판이 서 있는 고갯길에 도착하다(14:05). 고개 지역은 푸석푸석한 청석돌로 된 길이다. 그러나 이곳이 고갯마루가 아니고 더 가야 고갯마루가 나온다고 한다.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보이는 마지막 고갯길에 서다.
드디어 왼쪽으로 백마설산(5440m)의 말안장 같은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약간의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반복하고 있다. 오른쪽 사면은 만병초 군락이다.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인 4292m고개에 도착하다(14:30). 어제 오늘 두 번이나 4000m 이상을 오르게 된 것이다. 고개 넘어 물은 난창강을 따라 월남 메콩강으로 흐르게 되고 우리쪽 물은 양자강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서쪽을 바라보며 서서 볼일을 보면 그 물은 아마 1년 뒤에 베트남 호치민시에 도달할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더칭 방향 티베트쪽의 히말라야설산 연봉이 연이어 보인다. 여기서는 매리설산, 태좌설산이 보이지 않는다. 더칭으로 좀 더 가야 보인다고 한다. 매리설산도 미답봉으로 작년도에 일본원정대가 오르다가 15명이 죽었다고 한다. 이 매리설산은 장족들의 신성시하는 설산으로 장족들이 원정대들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신에게 기원을 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더칭을 거쳐 티베트 라사로도 갈 수 있다. 여강에서 비행기로 라사로 바로 갈 수 있으나 이 길로 라사로 가는 것은 많은 위험이 있고, 또 중간 중간에 벌금을 많이 물어야 된다고 한다. 도로 폭이 좁아 차를 억지로 되돌리다. 아쉬움 속에서 그리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왔던 방향으로 내려가다(14:55).
더칭에서 오는 버스를 만나다.
곤명 덕흠 간 정기노선버스로 2층 침대버스이다. 18시간이 소요되고, 40명 정도가 탄다고 한다. 곤명에서 저녁에 출발한다고 한다. 냄새가 심하다고 한다. 특히 발 냄새가 심하고, 담배를 피우면 같이 피우기 때문에 완전히 굴 속 너구리 잡듯이 된다고 한다. 뒷좌석에 타면 덜컹거려서 장시간 견딘다는 것이 고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표를 일찍 끊어 앞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운행 중 2번 정도 쉬고 요금은 180원 정도 된다고 한다. 우리도 이 버스가 넘어 오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이 고개까지 온 것이다. 일단 눈이 오면 이 길은 막혀 버린다.
다시 중전으로 되돌아가다.
아슬아슬한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여기서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리겠다고도 하고, 바닥에 닿기 전에 공중분해되겠다고도 하면서 겁주는 농담을 하면서 내려가다. 실제 여기서 추락사고가 나면 사람을 찾아 며칠을 찾아 헤멘다고 한다. 내려다보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빙판길을 지나칠 적에 오금이 저리고 손에 땀이 날 정도이다. 계곡이 깊어 이쪽에서 저쪽 친구집으로 건너 가려면 아마 하루 정도 걸릴 것이라고 생각된다. 번자난 통과(16:45), 하룡교를 통과하다(17:15). 다시 꼬불꼬불하고 아슬아슬한 길을 다시 오르기 시작하여 고원에 올라서다.
장족마을 농가를 방문하다.
니시 직전 신양촌이라는 장족마을의 한 가정을 무작정 들어가 안내를 받다(18:00-50). 가족은 부부와 아들과 딸이 있고 두 명의 아들은 중전에서 택시운전과 버스기사로 있다고 한다. 예쁘장한 딸은 너무 어려 보여 나이를 물어 보니 18살이라고 한다. 집은 아주 크고 3층으로 아래층은 가축들이 있다.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돼지와 야크가 같이 놀고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가축들이 자는 곳이다. 2층은 일반거실로 부엌도 겸하고 있다. 3층은 침실이다. 난로를 가운데 두고 죽 둘러 앉았다. 죽통에 뜨거운 물과 야크치즈를 넣고 흔들어 찻잔(수유차)에 내어 놓는다. 실제 이들은 이보다 더 진하게 타서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보릿가루(미시가루 같은)를 수유차와 섞어 손으로 주물럭거려 떡을 만들어 먹는다. 우리들도 그렇게 하여 다시 수유차를 받아 가며 먹어 보았다. 보릿가루의 고소한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우리의 김정헌선생님께서 무려 6잔을 받아 마신다. 한잔도 못 먹는 사람도 있는데 완전 장족체질이다.
백주(빠오주)도 몇 잔 얻어먹다. 빠오주 통이 걸작이다. 1말들이 플라스틱통에 담겨져 있다. 몇 가지 선물을 드리려고 하니 이 자체가 실례가 된다고 한다. 소녀에게 살짝 주고 나오다. 대문 안쪽 마당에서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다. 주소를 적어 보내주기로 하였다. 주소에 보니 장족들은 성이 없다고 한다. 아쉬움 속에 작별을 하고 헤어지다.
상글리라로 돌아오다.
니시삼거리 통과(19:00), 징디빈관에 도착하다(19:35). 한국식당으로 이동하여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다. 속이 거북한 사람 빼고 10명만 식사를 하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호박전, 김치전, 김치 등으로 밥을 먹다. 123원이 들다. 어제 만난 일본인 친구들이 많이 와서 식사를 하고 있다. 현지 청년들이 20명 가까이 와서 3조로 나누어 트럼프를 하고 있다. 한조는 우리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하고 있다. 빠오주 먹기 내기를 하는 것 같다. 즉 지는 사람이 술을 먹는 모양이다. 그리고 담배는 어찌 그리 많이 피우는지, 담배 값이 굉장히 비싸다고 들었는데 정말 많이 피운다. 우리 13명은 그에 비해 한사람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는 것과 대조되는 것 같다. 한국식당 주인은 여기서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지금 멀리
출타 중으로 종업원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하고 있는데 제법이다. 주인은 중국 사람으로 곤명에서 한국식당에서 요리를 배워 이곳에서 개업을 하였다고 한다. 징디빈관에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길을 돌아가는 곳에 유스호스텔이 있고 그 곳을 지나면 공용전화박스가 있고, 조금 더 가면 이 곳 한국식당이다. 전부 같은 블록에 위치하고 있다. 전화박스에 들어가 한국으로 전화를 걸려면 우선 108-8288(온세통신)을 걸어 안내양의 질문에 따라하면 된다. 1번을 누르면 수신자부담으로 그 다음, 걸고자하는 전화번호를 누르면 된다. 그리고 나올 때 전화사용료를 지불하여야 된다. 거는 시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1-2원 정도이다.
2004년 2월 20일(금요일)
송찬림사에 가다.
상글리라를 떠나 다시 여강으로 내려가다. 짐을 정리하여 징디빈관을 출발하다(8:35). 가까운 금교미식성에서 찐만두, 물만두, 콩국물, 감자병(고르게 모양)으로 식사를 하다(8:40-9:25). 만두 한판은 5원으로 전체 85원을 지불하다. 이곳은 24시간 영업하는 곳이다. 보통 만두집은 아침에만 영업을 한다. 송찬림사로 향하다. 멀리 지붕이 금빛으로 반짝인다. 최근에 금빛도금을 하였다고 한다. 송찬림사에 도착(9:30), 1인 10원을 주고 입장하다. 문을 들어갈 때는 왼발 먼저, 나올 때는 오른발 먼저 나온다고 하여 그대로 따르다. 150개의 계단을 오르는데 숨이 차다.
고도가 3000m를 넘기 때문이다. 법당 오른쪽으로 모자를 벗고 들어가다. 표를 받는 스님이 돌리는 장난감을 팔고 있다. 20원을 주고 사다. 처음에는 잘 돌아가지 않더니 몇 번 연습을 하였더니 잘 돌아간다. 법륜을 돌리는 뜻인 모양이다. 고승이 앉아 있다. 시주 10원을 하고 절을 하였더니 염주를 하나 주고 머리에 손을 얹혀 준다. 크고 높은 불상을 돌아 나오다. 뒤쪽에 공측이 있다(1인 5각, 바가지 쓴 것 같다). 꼬마 라마승들이 아침의 찬 기운인데도 불구하고 소매 없는 옷을 입고 다니고 있다. 송찬림사를 떠나다(10:10)
호도협으로 향하다.
시내에서 송찬림사까지 3번 시내버스가 다니고 있다. 중전시내를 가로질러 일로 여강으로 향하다. 왔던 길을 그대로 가다가 호도협진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호도협이 나온다, 가는 길에 야금에 대해 모든 것을 파는 천보산장에 잠시 하차, 구경을 하고 야크꼬리로 된 먼지털이(100원)를 사다(10:50). 들판에 야크와 돼지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물 보충을 하면서 장족아낙들이 목도리(웨이진)를 짜는 것을 사진 찍다. 물은 셀프서비스로 1각이다. 중전에도 비행장이 있다고 한다. 원래는 중전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하였으나 관광회사에서 독점하여 할 수 없이 여강에서 곤명까지 비행기를 타게 된다. 아스팔트길이 끝나고(12:20),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계곡에 내려오니 도로확장공사로 먼지가 대단하다. 내년이면 포장된 넓은 길을 달리게 될 것 같다. 호도협진에 들어가 이향주루에서 점심을 먹다(12:30-13:15). 어성초 뿌리무침(역한 냄새로 대부분 먹지 못함), 십자화과 나물, 백합인경(전분이 많고 밤맛), 표고버섯무침, 목이버섯탕, 삼잎국화무침으로 밥을 들다. 전부 96원이다. 다시 승차, 원래 길에서 왼쪽으로 작은 강을 건너 호도협으로 향하다. 다시 이 호도협진으로 나와야 여강으로 갈 수 있다.
호도협을 구경하다.
오른쪽 아래 가파른 급경사 위 길을 따라 버스가 들어간다. 상호도협 주차장에 도착하다(13:30). 호도협은 금사강이 죽 내려오다가 옥룡설산과 하빠설산 사이로 협곡이 되어 빠져 나가는 곳이다. 상호도협 중간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디디고 호랑이가 건너뛸 수 있을 정도로 좁다고 하여 호도협이라고 한다. 이 강물은 삼협을 빠져나가 양자강이 되어 상해(상하이)를 지나 황해로 들어간다. 여기서 강 왼쪽으로 길이 계속되어 중, 하호도협을 거쳐 백수대를 거쳐 다시 상글리라로 올라갈 수가 있다고 한다. 백수대는 계단식논으로 된 지역을 말한다. 백수대를 거쳐 상글리라까지 하루거리라고 한다.
수천미터의 두 설산사이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다. 입장료는 30원이다. 중국은 어디가나 조그만 볼거리가 있으면 돈을 내라고 하여 매우 불쾌한 경우가 많다. 건너에도 들어오는 길이 있다. 건너 쪽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래쪽으로 내려 가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고유의상을 입은 조그만 애들이 사진을 찍자고 소리를 지른다. 물보라가 일어나는 수면 가까이 내려가서 사진을 찍다.
가마꾼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한번 타는데 40원이라고 한다. 중국 노동자들의 하루 일당이 20원으로 한번 가마를 태우면 하루 일당을 버는 셈이다. 계속 올라가면서 값을 내리고 있다. 다시 버스를 타고(14:40), 호도협진을 빠져나와(14:25) 여강으로 달리다. 호도협으로 들어가는 구 다리를 지나(15:03), 송원교를 지나(15:30), 장강 제1일만이 내려다보이는 포인트지점에서 잠시 내려 구경을 하다(15:50- 16:00). 여기에도 노천골동품점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살 만한 물건은 없는 것 같다.
장강제일만은 물이 U자형으로 휘돌아 나가는 곳을 말한다. 드디어 여강에 다시 입성을 하다(16:45). 인화창객잔에 다시 짐을 풀고 여강고성을 자세하게 관람하기로 하다.
여강고성을 자세하게 관광하다.
여강고성은 97년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강은 길이 미로로 되어 있어 자칫하면 길을 잃게 된다. 미로로 만든 이유는 외적이 쳐들어 왔을 때 고성안 왕궁을 잘 찾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서의 왕궁은 목부(목씨왕)이다. 중심은 사방가라고 하는데 여기서 4방향으로 길이 나간다. 객잔을 출발하여 고성을 구경하면서 쇼핑도 하고 저녁도 먹기로 하였다. 일단 사방가에서 출발하여 500년 다리, 구문관, 헌우유방문을 거쳐 충의(목부)라고 적혀 있는 목부 입구에 도달하였다.
일인당 35원을 주고 입장하였다. 일단 좌우로 술酒자가 적혀 있는 북이 의사청까지 죽 늘어서 있다. 의사청 안천장에는 용이 새겨져 있고 발톱이 4개이다. 5개는 황제이다. 다시 뒤로 가면 차례대로 만권루, 호법전, 옥화원, 2층 회랑을 거쳐 삼청전으로 올라가게 된다. 삼청전 앞에서 내려다보면 고성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삼청전 앞 양쪽으로 미켈리아(운남함소화, 목련과)가 짙은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그 외 목부에서 본 식물을 보면, 뷰겐베리아, 만병초, 매화, 목련, 영산홍, 앵초, 십자화과꽃(자주색), 겹동백외 2종류, 영춘화 등이 꽃을 피우고 있다. 종려, 피라칸타는 열매를 달고 있다. 목부안의 화장실은 중국에서 본 화장실 중 최고의 시설로 되어 있다.
목부를 나오다(18:30)
고성 입구로 나와 보니 커다란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다. 여기서 다시 사방가 쪽으로 들어가다. 사방가 근처 앵화옥(사꾸라카페, 벚꽃마을)에 들어가 저녁을 들기로 하였다. 남편은 호북사람으로 호가족이고, 부인은 김영애로 한국인이다. 남편은 한국해병대 모자를 쓰고 저녁에 나오고 부인은 오전에 나와 오후에 들어가는데 갓난애기가 있다고 한다. 두 부부가 운남대학에서 만나 이 집을 경영하고 있고, 장사가 아주 잘 되고 있고 관광 책자에도 이 집이 나와 있어 각 국가의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식당 메일(Sakurakim@hotmail.com)도 있다고 한다. 전화는 0086(0888)5187619이다. 벽면에는 부부가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진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각자 식성에 맞게 돌솥비빔밥, 된장찌개, 돼지고기고추장뽁음밥으로 하고 김3쪽, 김치, 오이무침, 부추전이 작은 종지로 개인당 4개씩 나온다. 이 집은 차나 물을 주지 않는 것이 특징 아닌 특징인 것 같다. 된장찌개는 국같이 아주 큰 그릇에 주고 있다. 식사를 끝내고 (전체 302원), 여강 기념상품을 사러 다니다. 인화장객잔으로 돌아가다. 화장실 변기 뚜껑이 힘없이 떨어져 나중에 수리비 20원을 추가하여 지불하다. 중국에서는 실내 물건을 조심하여 만져야 된다. 잘못하면 체크아웃할 때 많이 변상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04년 2월 21일(토요일)
흑룡담을 구경하다.
아침은 사방가 근처에 있는 사방가식당에서 죽, 쌀국수, 콩국과 튀김빵으로 간단히 떼우다(29원). 이른 아침인데도 내외국인들이 많이 식당으로 들어오고 있다. 다시 객잔으로 돌아가 모든 짐을 싸서 차에 싣고 객잔을 떠나다. 흑룡담 입구에 도착하다. (9:35). 20원을 주고 입장하다. 연못에 옥룡설산이 비친다고 한다. 실제 바람이 불어 조금 흔들렸지만 설산 흰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연못에는 금빛잉어가 헤엄치고 있고 물속에 잠긴 물풀에서 흰꽃이 물 위로 내밀고 있다. 오텔리아속이 아닌지 모르겠다. 오른쪽 동파문화관으로 올라가다. 고성지도를 6원을 주고 사고, 운남대출판부에서 만든 운남야생화집도 1권 사다(25원). 왼쪽으로 동파연구소가 있어서 들어가 보다. 낮은 의자가 정렬되어 있고 앞쪽에 나시족 복장을 입은 학자풍의 사람들이 열심히 글자를 적고 있다. 나시족 상형문자와 종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종이는 팥꽃나무과 두메닥나무 같은 나무에서 섬유질을 뽑아내어 종이를 만든 것 같다. 종이 질이 거칠고 두껍다. 여기에 원하는 글자를 적어주면 나시족 상형문자로 적어준다고 한다. 작은 것은 18원이고, 큰 종이에 쓴 것은 60원을 받는다. 몇 사람이 글자를 적어 주니 상형문자로 적어 준다. 흑룡담을 나서다(10:25).
여강에서 비행기를 타고 곤명으로 가다.
흑룡담을 구경하고 남은 시간으로 고성쇼핑을 하면서 앵화옥으로 가다(11:40). 어제 저녁과 동일하게 시키고, 다만 해물파전과 김밥 2인분을 더 추가하여 먹다(전체 262원). 김치 담는 그릇이 아무리 보아도 재떨이 같은 기분이 든다. 빨간색 4각으로 생긴 것이 양쪽에 담배를 놓는 홈이 있는 것이 재떨이 같은 데도 물어 볼 수가 없다. 재떨이로 사용하면 재떨이이고 그릇으로 사용하면 그릇이지하고, 상관하지 않기로 하다. 앵화옥을 나서(12:45), 공항으로 향하다. 고속도로 같은 도로를 달려 요금소에서 통행료를 내고(12:50), 계속 공항으로 향하다. 온 들판이 노란 유채꽃과 녹색 보리와 콩밭으로 덮여 있다. 유칼리나무 가로수가 이어지고, 곳에 따라 논물을 대어 못자리를 만드는 곳도 나타난다. 여강비행장에 도착(13:05), 공항이용료 일인당 50원과 비행기 탑승료는 1인당 340원이다. 중국상해항공(FM452기)으로 14시 05분에 이륙하여 곤명공항에 14시 50분에 착륙하였다.
곤명시내에서 쇼핑을 하다.
대절버스를 타다(15:30), 지금 기온이 25도를 웃돌고 있다고 한다. 가로수로는 녹나무종류, 프라타너스,
유칼리, 태산목 등이 많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5성급호텔을 한번 들어가 보자고 하여 갔으나 1실 420원으로 너무 비싸 들어가지 않다. 우선 시내 장비점인 산아기기대본영에 들어가 1시간 가량 필요한 장비를 사다. 장갑(28원), 파카(327원), 등을 사다. 운남대학교 빈관(2성급)으로 가서 짐을 풀다. 1실 200원이다. 중국호텔은 5성급이 최고로 숫자가 낮아진다. 기본적으로는 5성급이 500원 정도, 4성급이 3-400원
정도라고 한다. 대절버스로 시내 월마트(Wall mart) 쇼핑에 나서다. 그 외에도 까르프, 맥도날드 등
외국회사가 많이 들어와 있다. 약국, 생필품코너, 식품코너를 거쳐 저녁회식에 필요한 먹거리를 사다(191원). 택시로 운남대 빈관으로 오다. 택시기본료는 8.4원이고 버스는 1원이고 카드사용도 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하여 세계원예박람원(99년 세계원예박람회를 보존한 곳)을 가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곤명시에서 약4km 동북교외 방향에 있는 금전 풍경 명승지에 있다.
전번에 와본 아리랑식당(전체 175원)에서 저녁을 먹다(20:20). 마트에서 청도맥주가 3원이다.
곤명식당에서는 8원이고 여강식당에서는 12원을 받는다. 북쪽으로 멀리 갈수록 비싸다. 전체 175원이 들었다.
취호공원(翠湖公園)을 걸어가다
식사를 끝내고 걸어서 보이차를 판매한 곳으로 천천히 이동하다. 취호 호반을 거쳐 지나가기로 하다. 각기 섬들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연잎이 호수에 비취같이 떠 있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호수공원으로 올 때도 갈 때도 낮에 취호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넓은 터에서 경극 비슷한 것을 공연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새벽에는 태극권 등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나와 수련을 한다고 한다.
보이차 쇼핑에 나서다.
작은 것 10원에서부터 큰 것으로는 80원, 150원 최고는 550원도 있다. 비싼 것은 보이차가 얼마나 오래되었느냐에 차이가 있다. 100년 된 것도 있다고 하나 거짓말이라고 한다. 최고 오래되어도 10-20년 정도가 최고라고 한다. 실제 20년 이상되는 명차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일반녹차는 속이 따뜻한 사람이 먹고, 속이 찬 사람은 보이차를 먹는다고 한다. 보이는 운남의 한 지방이름으로 운남 특산차로 지금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고,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서서히 보이차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스님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고, 일반인들도 그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대나무 차판(210원), 차 세트(花玲木으로 만든 것-160원), 보이차를 사다. 철관음차(55원)도 사다. 철관음은 맛이 보이차를 닮았으나 약간의 꽃향기가 나는 것 같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차를 사다. 택시를 타고
빈관으로 돌아오다. 중국 마지막 밤을 축하 및 아쉬워하며 파티를 열다. 김정헌 선생님의 시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수도 없이 읊은 것 같다. 12시 넘어 각자 방으로 돌아가다.
2004년 2월 22일(일요일)
6시반에 기상, 7시반에 1층 빈관에 딸린 뷰페 식당에서 아침을 들다. 식사비는 호텔비에 포함이 되어 있다. 8시 10분 출발, 곤명비행장으로 향하다. 공항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상우군과 작별을 하다. 그 동안 고생하였다고 하여 중국돈 5000원을 주고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다. 비록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이렇게 밖에 고마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동방항공으로 10시 30분에 출발하여 한국 인천공항에 14시 30분에 착륙하다. 한국시간으로 15시 30분이다. 다시 시계를 돌려 1시간 늦추다. 1층으로 내려가 그리운 우리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17시 20분에 리무진 버스에 오르다. 시흥요금소(17:55), 새서울요금소(18:02), 옥산휴게소에서 잠시 휴식(19:10-30), 구미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구미손님을 내려드리고(20:50-21:00), 동대구역 중앙고속버스 터미널 앞에 오다(21:40). 근방에 있는 맥천으로 이동하여 맥주로 지금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을 자축하면서, 사진을 CD로 만들기. 기행문 쓰기 등을 분담하여 일주일 뒤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각자 택시로 그리운 집으로 향하다.
다음은 운남항공에 들어 있는 보이차에 대한 내용이다.
읽어보시고 보이차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보이차
보이차(普?茶)는 윈난성(雲南省)
시쐉빤나(西雙版納), 시마오(思茅) 등지에서 생산되는 중국의 명차(名茶)이다. 보이차의 이름은 생산지명을 따서 붙인 것이 아니라 보이현에서 모아서 출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보이현은 곤명에서
서남쪽으로 450km 떨어진 곳에 있는 현으로 시마오시 위쪽에 위치한다.
보이차는 여러 차 중에서도 특이하고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차이다. 먼저 대부분의 차들이 채집에서 가공까지의 시간이 짧은 햇차를 중요시하는데, 보이차의 경우에는 제조과정에서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고가품의 차가 된다. 대체로 20년 이상이면 최고품에 든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20년 이상 된 것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제조과정
보이차는 미생물에 의한 발효를 거치기 때문에 후발효차(後醱酵茶)에 속한다. 차잎을 우려낼 때 보면
마치 녹물처럼 진한 적갈색이 인상적이며, 다 우러난 색은 홍차와 비슷한 적갈색을 띤다. 차맛은 떫은 맛이 없고 보이차만의 독특한 향기가 난다. 보이차의 약리적인 특징을 문헌에서 찾아보면 『본초강목십유 - 本草綱目拾遺 』에서 기록하기를 "보이차의 향은 독특하며, 숙취를 깨게 하며, 소화를 잘 돕고, 가래를 녹인다. 우리 몸에 해로운 기름기를 제거하고 장을 이롭게 씻어 내며 진액을 생성한다."는기록이 있다.
현대 임상실험을 통해서도 보이차가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비만을 방지하며 소화를 돕고 위를 따뜻하게 하며, 면역력 증강, 숙취해소, 갈증해소와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이 때문에 보이차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 홍콩, 호주 등의 국가에서 '미용차' '비만해소차' '장수차' 등의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보이차의 제조에 사용되는 품종은 운남성 대엽종 찻잎이다.
차잎을 가열 처리하고, 적당히 수분을 가한 후, 대나무 통이나 상자에 퇴적시켜 공기 중의 미생물에 의한 발효과정을 거친 뒤 숙성시켜 만든다. 오랫동안 자연적으로 묵혀서 발효시키는 것을 건창(乾倉)발효라 하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곰팡이를 통해 발효시키는 것을 습창(濕倉) 발효라고 한다. 건창발효를 통해 만든 오래 묵은 보이차는 냄새가 나지 않지만, 습창발효 방법으로 단시간 내에 만든 보이차는 곰팡이 혹은 흙 냄새가 나기가 쉽다. 그러나 습창발효로 만든 보이차도 오랜 세월을 걸쳐 숙성시키면 곰팡이 냄새가 자연적으로 소멸된다. 오래 묵은 보이차가 좋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양에 따른 분류
잎차 형태인 보이차를 만들면 보이산차(散茶)가 되고, 이를 다시 증기(蒸氣)로 찌고 압력을 가해 일정한 형태를 갖추면 보이긴압차(緊壓茶)가 된다. 두 종류 사이에 성분학적인 차이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긴압차(緊壓茶)는 오래 묵을수록 가치가 높지만 산차(散茶)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보이긴압차의 형태는 만두처럼 생긴 타차, 아주 단단하게 만든 긴차(緊茶), 떡 형태인 병차(餠茶), 네모진 형태의 벽돌처럼 만든 전차(전茶), 송이버섯처럼 생긴 고타차 등이다
마시는 방법
1. 끓여 마시기
중국 차역사를 보면 차문화가 생긴 이후 가장 원시적인 차가 바로 긴압차이다. 唐 나라 이전의 음다법에는 소금, 깨, 호도, 도인(桃仁), 대추, 박하, 또는 생강, 파 등과 같은 양념 첨가물들을 넣어 끓여 마셨다.
향보다는 맛을 우선으로 하는 보이긴압차는 차를 탕관에 넣어 찻물과 함께 끓여야만 차의 모든 유효성분이 우려낼 수가 있기 때문에 우려 마시지 않고 끓여 마시는 것이 기본이다. 150~200 ml의 물에 통상 5~10g정도 넣고 끓여서 마신다.
2. 우려 마시기
보이차를 탕관에 넣어 찻물과 같이 끓일 경우 찻물이 늙어버려 산뜻한 차 맛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이병차를 부수어 산차(散茶)처럼 만들어서 오룡차처럼 우려마시면, 맛도 즐기고 향도 즐기는 일종 새로운 형태의 보이 음다법이 된다. 보이차는 카테킨류 함량이 적기 때문에 가능한 열탕을 부어서 우려야 제 맛이 난다. 음용시에는 2-3g 의 차잎을 자사호에 넣고 100-150℃의 온도를 유지하여 2-3분 우려서 마시면 된다. 통상적으로 보이차는 5-7차까지 재탕하여 마셔도 차 맛이 유효하다.
명품보이차
보이차는 오래 묵을수록 그 진가가 발휘되는데 현재 중국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금과공차(金瓜貢茶)인 보이차의 묵은 연도가 100년 정도이다. 1900년대 초기와 중기 사이에 성행하였던 운남성의 다장(茶莊)인 同慶號, 普慶號, 敬昌號, 同昌號, 江城號, 鼎興號, 同興號, 福元昌號 등에서 출하한 보이병차를 구하기란 쉽지않다. 게다가 비싸게 구하였더라도 그것이 진품이란 보장은 없다. 그러면 어떻게 연도와 품질을 구별할 수 있는가? 시중에 나도는 오래된 진품 중에는 화학적으로 교묘하게 처리하여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역사적 근거에 의하여 다소나마 진품 구별법을 나열해 본다.
1) 오랜 묵은 보이병차에는 제조된 다장(茶莊)의 소개지(紹介紙)가 붙어있던 흔적이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상표가 완전된 것은 거의 없다. 보이병차의 출하 역사를 보면 제품에 고유하게 적힌 글씨 [茶]의 색상이 여러 번 변천된 기록이 있다. 붉은 것을 홍인(紅印) 혹은 홍심(紅心), 녹색은 녹인(綠印), 노랑색은 황인(黃印) 이라 부른다.
2) 출하한 다장(茶莊)과 제품명에 따라서 보이병차의 묵은 연도수가 다르다. - 同慶老號, 末代緊茶, 鼎興圓茶, 紅芝圓茶, 鴻昌圓茶 등 : 60-90년 정도 - 普慶圓茶, 同興圓茶, 宋聘圓茶, 敬昌圓茶, ,江城圓茶,
同昌圓茶, 同慶圓茶, 紅印圓茶 등 : 40-60년- 紅印圓茶, 紅心圓茶, 黃印圓茶, 綠印圓茶, 紅蓮圓茶, 圓茶鐵餠, 七子鐵餠, 廣雲貢餠, 思普貢茗, 福祿貢茶 : 20-40년 정도
운남여행 경비 정산
총예산 : 한국에서 송금 120만원(인민페 8000위엔, 1위엔 : 150원) 현지 조달 인민페 2만위엔 총계: 28,000위엔
★ 교통비
▷ 곤명 → 대리 열차 K772 침대 상중하 가격다름 = 1,168 ▷ 대리 → 려강 차량대절 = 600 ▷ 려강 → 곤명
상해항공 340위엔/人 × 13名 = 4,420 + 공항이용료
50위엔/인×13名 = 5,070
▷ 곤명차량대절 300위엔/日, 15일(반), 16일, 21일,
22일(반) 900위엔으로 측정된 예산중 100위엔 돌려
받음(21일을 반일로 침) = 800
곤명 → 석림 고속도로통행료 65위엔/편도 × 2(왕복)
130위엔 + 주차비 5위엔 = 135
▷ 대리도착 열차역 → 대리고성이동 차량대절 30위엔,
고속도로 통행료 5위엔 = 35
▷ 대리고성 → 창산리프트 이동
차량비 두 대 15위엔/ 차량 = 30
▷ 창산리프트 → 대리고성 이동
마차 = 26
▷ 려강, 샹그릴라 차량대절 600위엔/日 × 4日 2,400위엔
+ 번즈란, 公路 4229m까지 추가 차량비 500위엔 = 2,900
▷기타 곤명 및 샹그릴라 시내 택시비 50
소계1 : 10,814 위엔
입장료 및 리프트
석림 : 80위엔/名 × 13名 = 1,040
구향동굴 : 50위엔/名 × 12名 + 학생 25위엔(50%) = 625
구향협곡내 배 : 10위엔/名 × 13名 = 130
구행동굴 리프트 : 15위엔/名 × 13名 = 195
창산리프트 : 40위엔/名 × 13名 = 520
려강옥룡설산 입산료 40위엔/名 × 12名 = 학생
20위엔(50%) = 500
옥룡설산 입산 보험료 2위엔/名 ×13名 = 26
고성문화재 관리비(固城 ???)
40위엔/名 × 13名 = 520
차량주차비 10위엔?
옥룡설산 4506m 리프트 : 160위엔/名 × 13名 = 2,080
보험료 2위엔/名 × 13名 = 26
눈설매 : 10위엔/名 × 13名 = 130
려강고성 木府 입장 : 35위엔/名 × 13名 = 455
흑룡담 : 20위엔/名 × 13名 = 260
샹그릴라 송찬림사 : 10위엔/名 × 13名 = 130
호도협 : 30위엔/名 ×13名 = 390
소계2 : 7,037 위엔
숙박비
2월15일 곤명 1박 100위엔/방 × 6개 = 600
17일 대리 도착후 고성내 코리아나 도미토리
103호(10위엔×4개침대), 204호(15위엔×4개침대),
201호(60위엔), 206호 (60위엔) = 220
17일 려강 1박 120위엔/방 × 7개 = 840
18일 샹그릴라 1박 150위엔/방 × 7개 + 기사방
80위엔/방(더 할인됨) 1개 = 1,130
19일 샹그릴라 1박 150위엔/방 × 7개 + 기사방
80위엔/방(더 할인됨) 1개 = 1,130
20일 려강 1박 120위엔/방 × 7개 = 840
박창규 선생님방 화장실 변기수리비 20위엔 추가되었음.
21일 곤명 운남대 빈관 200위엔/방 × 6개 = 1,200
소계3 : 5,980 위엔
식사비
15일 곤명 운남대 근처 꼬치구이집 45
16일 석림 ?구향동굴
아침: 콩물, 빵(요우티아오) = 30
점심: 석림 앞 = 450
저녁: 아리랑 짜장면 10위엔/그릇 × 14그릇 = 140
17일 대리도착
아침: 코리아나에서 278
점심: 코리아나에서 301
저녁: 려강 도착후 고성내에서 480
기타: 물, 귤 = 31
18일 려강에서
아침: 쌀죽, 만두 = 30
점심: 샹그릴라가는 도중 나시족 전통식당에서 = 340
저녁: 샹그릴라 한국식당(야크바) = 428
기타: 물 한박스 = 26
19일 샹그릴라에서
아침: 쌀국수(미시엔) = 30
점심: 번즈란에서 = 137
저녁: 야크바에서 = 123
20일 샹그릴라 떠나면서
아침: 샹그릴라 시내 분식점에서 만두, 콩물 등 = 85
점심: 호도협에서 = 96
저녁: 려강도착후 샤쿠라 한국식당에서 302
21일 려강에서
아침: 고성내 사방가에서 콩물, 쌀국수 등 = 29
점심: 샤구라에서 = 262
저녁; 곤명 아리랑에서 = 175
기타 월마트 부식 = 190.9
소계4: 4,008.9 위엔
총예산: 28,000위엔
총소요경비 : 27,839.9 위엔
잔액: 160.1 위엔( 여행중 김정헌 선생님께서 주신 찬조금
100은 포함되지 않았음.)
유첨: 대리 코리아나에서 90위엔 환불
잔액은 다음 한국에 갈 때 선물로 전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