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그룹이 솟구치는 기세로 대기업 흉내를 내느라 극동건설을 인수했다가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까지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되었다.
윤석금 회장은 1945년 12월 20일 공주 출신이다. 양력환산하면 1946년 1월 22일, 0905다.
윤석금 회장은 G09로 이미 지난 해부터 위기에 빠져 들었다가 올해들어 구체적인 몰락의 조짐을 맞고 있다.
그는 학습지 시장을 개척하면서 일약 재벌로 성장했지만, 결국 탐욕의 불길을 끄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그는 무려 1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G01인 그 시기에는 계열사를 절반 정도 매각하는 것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최근 극동건설, 태양광 사업 투자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되었다.
윤석금의 몰락은 탐욕을 다스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가 브리태니커 외판원으로 성공한 뒤 학습지 출판 중심의 웅진출판을 성공시킨 건 그의 능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 이런 외판원 조직을 통해 웅진코웨이 사업을 일으킨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후 웅진식품, 코리아나화장품, 웅진케미컬, 서울저축은행을 거느리고, 비록 실패했지만 쌍용화재 대우건설 벽산건설 동아건설 인수 시도 등 탐욕은 그치지 않았다.
윤석금의 몰락은 한국 재벌 들의 탐욕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돈 되면 뭐든 먹어치우는 문어발 경영은 이미 사라진 경영방식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다.
이하 조선일보 기사 <외판원 신화의 몰락>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외판원에서 대그룹 회장으로
사업다각화 내건 무리한 투자로 위기에 몰려
윤 회장 재기 여부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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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판원에서 대기업 총수로 성공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외판원 신화’가 물거품처럼 사라질 내릴 위기에 처했다.
26일 웅진그룹의 지주사인 웅진홀딩스는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하지만 웅진홀딩스 이사회는 이날 윤 회장을 대표이사로 새로 선임했다. 이전 대표이사가 따로 있었지만 윤 회장이 대표이사에 새로 취임한 것은 실질적으로 그룹을 경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윤 회장은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백과사전 세일즈맨에서 6조원의 그룹을 이뤄낸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윤 회장은 1974년 한국 브리태니커 사에 입사해 1년 만에 전 세계 54개국 세일즈맨 중 최고 실적을 올린 ‘판매의 달인’이었다. 윤 회장은 여기서 축적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35세에 웅진그룹 모태인 웅진출판(현 웅진씽크빅)을 설립했다. 하지만 윤 회장은 삼성 계몽사 등 대형 출판사에 밀려 고전했다.
윤 회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직원 7명과 생소했던 영어회화 카세트를 활용해 판매를 시작했다. 곧 대형 출판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1988년에는 웅진식품, 1989년에는 웅진코웨이를 설립했다.
윤 회장은 방문판매 개념을 도입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방문판매는 웅진을 따라올 기업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판매의 달인 윤 회장도 1997년 외환위기(IMF)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15개였던 계열사를 7개로 통폐합해 덩치를 줄였다. 1999년에는 연간 매출액 2500억원으로 그룹 랭킹 2위인 코리아나화장품을 매각하는 카드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특히, 당시에는 고가 제품으로 인식됐던 웅진코웨이 정수기를 매달 2만7000원에 빌려주는 ‘렌탈’ 방식으로 재기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윤 회장은 이후 교육·출판, 환경·생활, 태양광 에너지, 소재, 건설·레저, 식품, 서비스금융, 지주회사 등 8개 사업군, 15개 계열사에를 통해 매출 6조 원대 그룹으로 키웠다.
하지만 윤 회장은 최근 또다시 어려움에 부닥쳤다.
윤 회장이 겪는 불행은 웅진에너지와 웅진폴리실리콘 등 태양광사업과 건설, 저축은행 등 무리한 사업확장을 시도하면서 시작됐다. 그룹의 성장을 위해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태양광·건설·금융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경기 침체로 현금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재무상황이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실제 웅진그룹에서도 “건설, 태양광, 금융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입금 9000억여 원을 견딜 수 없었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 회장은 태양광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전 세계 태양광 관련 산업이 침체됐다. 웅진에서 생산하는 폴리실리콘 가격도 급락하기 시작했다. 작년 하반기 폴리실리콘 값은 ㎏당 25달러까지 추락하면서 회사의 수익성도 극도로 악화됐다.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인수한 극동건설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건물을 지어도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그룹의 자금상황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웅진그룹이 회생 불능의 상태는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아직 웅진코웨이 웅진씽크빅, 웅진케미칼 등 건전한 계열사가 남아 있다.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웅진그룹이 추진했던 대로 웅진코웨이를 매각, 부채를 상환할 경우 그룹 전체가 붕괴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악의 상황에 부닥친 ‘외판원 신화’의 주인공 윤석금 회장의 재기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