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해변길(노을길) & 백사장항
1. 매년 10월 후반이나 11월 초에는 태안 안면도의 백사장항을 방문한다. 이때 특별하게 맛볼 수 있는 별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자연산 대하’이다. 대부분의 수산물이 양식이 자연산보다 큰 경우가 많은데, 대하만은 자연산이 훨씬 크고 탄력이 넘친다. 하지만 자연산 대하와의 만남은 까다롭다. 대부분 지역에서는 자연산 대하를 보기 어렵다. 가까운 남당항조차 자연산 대하가 눈에 띄지 않는다. 가장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백사장항’이다.
2. 하지만 작년에는 물량이 거의 없었고, 올해는 과거보다 일찍 철수하는 바람에 백사장항의 자연산 대하가 사라졌다. 연이어 두 해에 걸쳐 대하와의 만남이 좌절된 것이다. 과거 S와 가졌던 소중한 시간이 반복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이맘때 오게 되면 편하고 다양하게, 대하의 진한 맛을 즐길 수 있었는데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올해도 모둠 튀김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술도 깰 겸, 해안가 주변에 의자를 펴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으로 잠겨가는 바다의 침묵과 함께, 밝아오는 항구의 불빛이 묘하게 대조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이지만 서늘한 느낌까지 편안하게 느껴지는 장소다. 항구의 방파제를 거닐면서 막혀버린 노래의 목청을 되살려보려 했다. 쓸쓸함은 가슴에 가득하지만, 그것을 토해낼 노래가 표현되지 않는다. 음정도, 목소리도, 감성도, 죽어버렸다. 젊은 날, 술에 취해 불렀던 노래의 애틋함은 이제 다시 찾기 어려운 기억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항구의 밤은 아름답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간만으로도 백사장 항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 듯했다.
3. 백사장항은 태안 해변길 5코스의 출발점이다. 이곳에서 해안가를 따라 꽃지해변까지 약 12km 코스이다. 답사 길은 해변만을 이동하지 않는다. 길은 안면도의 명물인 소나무 숲으로 인도하면서 바다와 소나무의 절묘한 조화를 선사한다. 확 트인 바닷가의 전경과 소나무로 가득한 숲 속의 포근함은 좋은 길의 장점을 동시에 제공하는 무대였다. 정말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경기도 지역 서해안에서 발견하는 약간은 탁한 바다와 달리 충청도에서 발견하는 서해의 색깔은 훨씬 투명하고 정갈하다. 무너진 사구도 많이 복원되었고, 사람들이 걷기 좋도록 길도 만들었다. 언제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걸을 수 있는 안전한 길이었다.
4. 백사장항에서 안면도 맨 끝에 있는 영목항까지 해변길은 3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모두 40km의 거리이다. 이번 코스를 걸으면서 다음번에는 숙박을 하면서 안면도 전 코스를 걸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바람을 받으면서 서해의 낭만과 소나무의 향기를 체험하는 시간은 어떤 길보다도 매력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익숙했지만,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던 안면도의 숨겨진 모습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첫댓글 풍경 속에 남아 있는 맛과 추억의 아련함이.............